▲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22장 강박증의 유형과 치료적 대응(5)

강박증은 실로 다양한 증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다룬 것만 해도 10여 가지를 다루었으니 말이다. 강박증이 행동의 특성을 중심으로 하는가, 아니면 정신의 특성을 중심으로 하는가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된다는 것은 획기적인 발견이다. 행동적 특성에서 상당히 알려진 편이기에 이해가 어렵지 않지만, 정신적 특성을 중심으로 하는 강박증은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성격이 까다로운 정도로 알아왔거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각한 질병에 해당하는 점에서, 병리적 세계는 넓어지고 있다.

1. 관료주의적 강박증

관료주의적 강박증은 관료세력에 지배되는 형태에서 이해된다. 관료주의에서는 획일적인 행동양식이나 사고방식 등이 작용하는 위계질서가 중요시된다. 주로 관료 정치에 따르는 비밀이나 독선 등이 조직체에서 작용되므로 아랫사람을 통제하고, 지휘 감독하는 힘의 우위성이 중요시되는 점에서다. 이처럼 철저한 위계를 중요시하는 특성은 엄격한 의미에서 질서를 바탕으로 한다. 일정한 원칙이 인정되거나 통용되는 상황에서 질서는 그 바탕이다. 다만 그것이 상당히 지나친 정도에서 병리적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관료주의적 강박증은 다른 강박증과는 달리 사회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를 움직이는데 일정한 체제가 중요한데, 이때 개인은 사회를 유지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은 그 체제 속에 뛰어들어 적절히 적응하거나 순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관료주의는 사회와 개인, 그리고 사회를 움직여가는 체제를 지나치게 중요시한데서 유발되는 현상이다. 이는 관료주의적 강박증이 개인에게 철저한 사회적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서 관료적인 특성을 잘 숙지하고 순응할 것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1) 증상의 특징

관료주의적인 강박증은 위계적인 특성을 기초로 한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이 유형은 대개 오랜 관료체계에서 형성되는 사무적이고 메마른 성격적 특성이 드러난다. 이 관료주의 강박증은 다른 강박증과 유사하게 전통적인 가치, 기존의 잘 확립된 권위, 형식적인 조직 등에 잘 순응하며 매우 성실하게 일을 해내는 편이다. 관료주의적 강박증을 가진 사람은 권위나 조직의 규율에 분노하거나 이로부터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대신에 이러한 대상으로부터 위안을 받거나 자기 삶이 견고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관료주의에서 사회의 위치가 되는 직위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사회에서의 직위는 곧바로 존재의 가치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들은 그 직위를 중요시하는 것 뿐 아니라 그 직위에 충실하기도 하다. 이들은 자신보다 높은 직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순종하면서 부하에 대해서도 조금의 여유도 없이 냉정한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는 집단이나 관료제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과 확고하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인식을 준다. 이들은 회사, 조합, 종교단체 등의 조직과의 연합을 통해 자존감의 측면에서 강화를 받는 편이다.

이들에게 집단은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굳건한 토대가 되며, 행동의 틀과 방향을 결정해 주는 일련의 확립된 규칙이나 가치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이들은 자신이 이러한 집단에 소속된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에서 큰 안도감을 얻는다. 집단의 구조나 목표 역시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삶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므로 이들에게 큰 위안을 준다.

그러나 이런 관료주의가 지나치게 편중이 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다. 그들의 생활에서 관료주의적 태도는 주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사고의 추리나 판단에서도 언제나 우위를 점유하거나 중심적으로 작용하는 편이다. 이런 태도는 그들의 생활에서 유연성이나 융통성을 허용하거나 용납하기 어려워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억지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런 현상이 바로 병리 증상인데, 그 증상이 관료주의적인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관료주의적인 강박증이 된다.

관료주의적 강박증 환자에게는 자기 내면의 충동이 분출될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잠재되어 있으므로 언제나 적절한 결정의 지침이 되는 확고한 행동의 경계나 기준을 모색한다. 이들은 보다 심층적인 수준에서는 조직의 규칙을 따름으로써 아무도 자신들을 비난하고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안도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그들이 해야 된다고 여겨지는 것”만을 행동으로 옮기는 편이다.

2) 심리적 이해

관료주의적 강박증은 하나의 단체를 중요시하는 데서 이해된다. 사회라는 거대한 단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개인은 그 체제에 철저히 순응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다만 관료주의적 강박증은 이런 관점이 지나쳐서 과도한 적응이나 순응을 요구하게 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는 관료주의적 강박증이 갖는 특이한 점이기도 하다. 집단적인 문제를 중요시하다가 개인적인 문제를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심리학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이해할 수 있다.

첫째로 관료주의적 강박증은 책임의식이 분명하다. 관료주의적 강박증은 일정한 명령 체계, 위계조직을 중요시한다. 그들은 명령체계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명령체계에 오래 익숙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수동적으로 되거나 순응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태도는 한편으로 삶의 다양한 측면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책임감과 부담으로부터 이들을 해방시킨다.

게다가 이런 특성은 누가 상관이고 누가 부하인지 명확히 규정된 위계조직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와 책임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할 수 있다. 일단 이것이 확립되면 이들은 충성스럽고 의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된다. 이들은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므로 조직이 확립한 경계 내에서는 자유롭게 자신을 풀어놓는다. 그러나 이미 조직 내에 허용된 자유나 경계는 매우 경직되고 제한적인 것이 보통이다. 이와 더불어 자신에게 무엇이 기대되는지 분명히 알 수 있고, 타인들에게 맡겨진 역할과 기대 역시 분명히 정의되고 있으므로 이들은 조직 내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로 인해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조직체계에서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기에 이들에게 타인과의 연합은 안정감을 제공한다.

둘째로 관료주의적 강박증은 관료사회에서 형성된다. 관료적 사회는 이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하고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지표이며, 정체성과 자기 존재의 이유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조직체계 속에 머무는 한, 이들은 자신에게 높은 가치가 부여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서 이들은 충성되고 신뢰로우며 상당히 근면한 조직의 구성원이 되어 조직의 목표와 가치에 성실하게 헌신한다.

관료주의적 강박증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조직 구조에 더 엄격하게 집착한다. 행동 규칙이 명확하게 서 있어야 하고 자신의 의무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인지하여야만 한다. 이들은 누가 상관이고 누가 부하인지를 엄격하게 따지며, 계획표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인다. 이들이 신앙인이라면 청교도적 직업윤리에 철저하며, 위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도식을 가지고 타인들을 대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데도 개인적인 특성보다는 업무능력을 중요시 하고 명확하게 서열적 체계 내에서 평가하고 순위를 매길 것이다.

셋째로 개인보다는 단체성을 우선에 둔다. 개인의 욕구나 감정, 혹은 주관적인 목표 등은 조직의 목표와 가치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언제나 회의적인 대상이 된다. 전체주의적 사회에서 관료주의적 개인은 개성을 억누르고 조직의 공적인 가치에 헌신을 한다. 조직의 윗사람이 이러한 유형의 성격을 지녔다면 아랫사람들은 더없이 피곤해진다. 이러한 상사는 경직된 관료사회의 정책이나 관행, 유연성이 결여된 원리주의에 보수적으로 집착하면서 아랫사람에게도 이를 따르도록 은연중에 혹은 직접적으로 강요한다.

또 매우 고압적이고 간섭이 심하며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세세하고 하찮은 일들에도 늘 신경을 쓰며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조직체 속에 자신을 융합시킴으로써 자기 존재의 가치나 중요성을 확인하려 한다. 그러기에 이들에게 중요한 일은 조직 사회의 기여도이다. 개인의 가치는 그 사람이 조직에 얼마나 기여하고 헌신하였느냐는 점이 개인의 가치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이는 개인은 그 조직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이로 인해 그 개인의 가치는 조직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증상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기준으로 평가하게 될 것이다.

3) 치료적 대응

관료주의적 강박증은 위계질서에서 이해된다고 했다. 관료체계에서 형성되는 사무적이고 메마른 성격적 특성이 문제적인 증상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였다. 그런 이유로 관료주의적 강박증은 다른 증상들과는 달리 사회적 체제에 잘 적응하거나 순응하는 효과를 갖는 측면도 있다. 오히려 이에 대한 거부감이 문제를 파생한다는 관점에서다. 이들은 권위나 조직의 규율에 분노하거나 이로부터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대신에 이러한 대상으로부터 위안을 받거나 자기 삶이 견고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태도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거나 유연성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강박증이라는 병리적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을 위한 치료는 이런 점을 중요시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첫째로 조직체와 개인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조직체와 개인, 또는 단체와 개체는 상관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개인의 존재는 미미한 편이다. 그들에게 개인은 오로지 단체나 체제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이 우선시되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것은 그들의 강박증상을 유발한 원인이 되었다. 이런 것은 조직과 개인이라는 차이를 구분함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조직은 사회성이라면 개인성은 전체성의 문제이다. 이런 문제는 사회에서 개인이 어떤 존립이 가능한가를 질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관료에서 개인성이 어떻게 인정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 관료주의적 강박증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조직에서만 규정된다. 조직에서는 대개 개인성은 뒤로 물러나는 특성이 있다. 조직의 존재가 개인의 존재보다도 우선시된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조직이 살아야 개인도 살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것은 맞는 말이지만 조직도 개인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조직은 수많은 개인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단체이기에 조직적 사회는 많은 개인의 인격이 존중되면서 조직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은 조직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요건이다.

인간은 생물체로서 집단이나 조직을 이루는 사회적 구성원이지 아무런 감정이나 사고도 할 수 없는 채로만 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각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소속한 단체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각성은 인간의 본질을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인간의 고뇌가 있는 동시에 또한 성취의 기쁨이 있다. 조직에서도 인간은 스스로 자각하고 결단함으로 조직에 잘 순응하고 자기를 초월할 수 있다. 그러나 자각에는 반드시 적절한 내용이 있어야 한다. 내용이 없는 것은 일정한 목적이 없다는 것이므로 맹목적이기 쉽기 때문이다.

둘째로 보편성과 특수성을 구분해야 한다. 관료주의적 강박증에서는 반드시 해내야 할 사건이나 일이 중심이 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개인의 사정이나 조건이나 형편이 고려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한다. 그러다 보니 상관의 말이나 지시에 부하는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이런 현상은 특수한 사건이나 일을 가지고도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상관의 말이니 지시라면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유연성이나 융통성은 결여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연성이나 융통성이 결여되는 경우에는 그 어떤 경우에도 상당한 억지가 작용될 여지가 있다. 그 억지가 바로 강박증인 것이다. 이런 것은 보편성과 특수성을 잘 구분하는 것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보편성과 특수성은 언제나 대립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상호보완적이 될 수 있다. 보편적인 측면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문제들이 특수적인 측면에서는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런 보편성과 특수성은 기독교의 공의와 사랑으로 비교된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속성이 공의와 사랑의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공의는 위배되는 어느 것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지만 사랑은 위배되는 것을 모두 용서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공의로움을 갖고 있으나 회개하면 그것을 용서해주는 사랑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죄지은 사람을 공의에서는 도저히 용서되지 않으나 사랑에서는 이행되고 용서되는 것이다.

이런 측면은 구약성경을 보편성이 가득한 율법으로 되어 있다고 하면, 신약성경은 특수성의 문제로 가득하다고 생각된다. 그러기에 구약의 율법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없는 일들을 신약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사람은 그 자리에서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오히려 보호해주는 사건이 그 절정이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당장 돌로 쳐죽여야 할 여인을 예수께서는 보호해주었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는 다른 말로 객관성과 주관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셋째로 인간적 이해를 시도해야 한다. 관료주의적 강박증에서는 푸근한 인정미와 따뜻한 인간미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것은 그들이 오로지 사람보다는 일만을 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조직사회에서의 우선시되는 문제는 언제나 업무처리가 된다. 그래서 조직사회는 인간성이 무시되기 쉬운 특성을 갖고 있다. 조직은 집단의 생존을 위해서 개인의 정체성은 무시되고 그 대신 집단의 이기주의가 우선시된다. 그러다 보니 인간을 이해하는 문제는 자연히 뒤로 밀리기 마련이다. 집단은 그 특성상 개인적인 요소보다는 사회적 요소가 강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다. 사실 인간은 날 때부터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의 삶은 사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조직의 위계질서에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의 관계성이다. 사회에서의 생활은 타인과 사회적 대인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조직은 딱딱한 체계로 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간적 이해를 가진 사람이 조직을 잘 이끌 수 있다. 그것은 조직이라도 드러나지 않는 인간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관계성이 조직을 이루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가 교차되는 중심에 있다. 인간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누구의 부모 또는 누구의 자식으로서 부자지간(父子之間)을 이룬다. 또 누구의 아내 또는 남편으로서 부부지간(夫婦之間)이라는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누구의 스승 또는 제자라도 사제지간(師弟之間)을 이루고 또 누구의 벗으로서 친구지간(親舊之間)을 이루고 또 민족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포지간(同胞之間)) 속에서 살아간다.

2. 절약적 강박증

절약적 강박증은 지나치게 절약하는 것이 병리적인 증상이 되는 것이다. 절약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나치게 또는 과도하게 절약한다는 점이 병리적 증상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절약적 강박증은 현대사회에서는 흥미로운 증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생활에서 아무리 지나치게 또는 과도하게 절약한다고 그것이 어떻게 병리적인 증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증상은 이미 양면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절약이라는 점에서 목청 높여 환영하고 받아들여지지만, 개인의 인격에서는 반드시 수정 및 개선돼야 할 증상이라는 점에서다. 이미 강박증상이라는 점에서 병리적 관점이 보이므로 치료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절약적 강박증은 절약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환영받고 칭찬받아야 할 것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병리적 증상이 되므로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증상이라는 점이다.

1) 증상의 특징

절약적 강박증은 지나치게 또는 과도하게 절약한다는 증상이라고 했다. 지나치게 절약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경증적인 측면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성장의 과정에서 넉넉하게 살지 못한 것이 그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절약하려는 특성을 갖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 보니 그들은 누가 보기에도 지나치게 인색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강박적으로 절약하게 되어서 이제는 부자연스러움을 드러내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절약적 강박증은 일단 인색함이 그 특징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균형을 위해서 어느 정도는 절약하면서 생활해야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친 경우에 정략적 강박증상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유연성이나 융통성이 전혀 허용되지 않거나 용납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들은 자신이 가진 물건이나 소유에 대하여 남달리 애착을 보이거나 지나치게 가치를 부여하기에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게 된다. 마음의 인색함은 그대로 마음의 강팍함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차피 사용해야할 물건이고 사용해야 할 비용이라면 과도히 아낀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물건이나 재산의 소유에 지나친 집착을 드러내고 있다. 아마도 가진 물건이 없어질까 봐서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색함은 그대로 소유로 이어지는데, 인색함은 소유에 집착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이들의 소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외형적으로는 물건을 과도히 아끼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건의 아낌은 그 정도를 지나치므로 주변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도 있을 것이다. 왜 인상을 찌푸리게 될까를 생각해 보면 그것은 주변 환경과의 조화의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회생활은 적절한 조화를 필요로 하는데 비해 절약적 강박증의 인색함은 그 조화를 깨뜨리는 결과를 산출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더 나아가 이들에게 더욱 조화를 방해하는 요인이 있다. 그것이 바로 그들 자신의 문제로서 완벽주의라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사람은 내면이 허탈할수록 그 반작용으로 완전성을 추구하려는 심리가 발동한다. 아마도 채우지 못한 공간을 무엇으로든 채우려는 심리가 자연발생적으로 유발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런 완벽주의는 일의 완성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는 아름다운 것이 될 수 있지만 순조롭지 않게 억지를 부린다는 점에서는 사실상 많은 부조화를 산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런 것은 임상적인 장면에서 보면 중요한 사실이 발견되는 측면이 있다. 완벽주의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내면적으로는 열등감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이다. 완벽주의는 스스로 지각한 자기부족에 대한 보상적인 노력이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반항적인 추동이나 저항적인 태도가 노출될까봐 두려워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는 점에서다.

2) 심리적 이해

절약은 낭비를 방지한다는 점에서 좋은 것이고 장려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개인의 인격을 해치게 되므로 결국은 사회에서도 문제로 드러날 수 있다. 이는 과유불급(過猶不及),즉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부족한 것만도 못하다는 점에서 이해된다.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오히려 좋지 않은 폐해를 초래한다. 절약적 강박증에 대하여 우리는 심리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첫째로 절약적 강박증은 인색함이 그 특징이다. 이 절약형은 [크리스마스 송가]에 나오는 구두쇠 스크루지가 전형적인 인물이다. 구두쇠는 금전이나 물건을 지나치게 아끼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금전이나 물건을 과도하게 아끼는 대신에 그것의 사용을 꺼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금전이나 물건이 이들의 손에 한 번 들어오거나 붙잡히면 나가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이들을 보면 마치 물건이나 재물을 모으는 것에만 목적이 있다고 보이는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물건이나 재물을 사용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인다. 이런 점이 바로 절약적 강박증을 진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러니까 절약적 강박증이라 할 때는 그 사용에서 문제를 두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입은 어떠할지라도 사용에서 까다롭게 행동하는 경우로서 수입은 온갖 신경을 쓰면서도 지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인색함을 보이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것을 굳게 부여잡고 나가는 것을 철저하게 조절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들의 조절은 지나치게 통제하는 것으로 아끼다 못쓰게 될 정도이다.

이들에게 지나친 절약은 사용보다는 축적에 편중된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편중의 현상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이것이 심리적으로는 병리적인 증상으로 보는 것이다. 물건이나 재물의 적절한 사용은 축적과 심각할 정도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병리적인 증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에리히 프롬(E. Fromm)의 축적행동에 대한 논의는 절약적인 강박성격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보이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인색함인데, 이것은 자신과 외부세계 간에 스스로 만들어 놓은 장벽이다. 그들이 과도하게 아끼는 인색함은 타인과의 거리감과 장벽을 만들어 심리적 교류를 중단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장벽을 오히려 안정되게 생각한다. 이 장벽을 통해서 이들은 자신의 소유물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고 철저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색함은 그들에게는 이중성을 갖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들에게 인색함은 그들의 소유물을 지키거나 수호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정상적인 관계에서는 장애물이 된다는 점에서다.

둘째로 소유에 집착하는 현상이다. 이들의 인색함은 소유에 집착을 의미한다. 이들의 소유물의 집착은 성장과정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그들은 성장 과정에서 가져보고 누려보지 못한 것이다. 남들이 가질 때 가져보지 못한 마음이 오늘의 자신을 인색한 마음이 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물건이나 재물을 과도하게 아끼는 사람으로서 집착에의 모습을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심리학적으로는 남들이 가지고 살아가는 물건을 자신은 갖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마음에 다양한 부정적 현상을 일으킨다. 그것이 이른바 우리의 사회에서는 '없이 산다'는 열등감일 수 있고, 그 열등감에 따른 존재의 위축감이 그들을 여유 없는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이제 이들에게 물건이나 재물은 모두 귀중하다는 신념이 자리하게 된다. 어떤 물건이라도 쉽게 버리지 못하고 귀한 것으로 아끼게 되고, 특히 물건의 대표가 되는 재물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절약증은 그대로 물건의 수집형 강박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그들에게는 일단 갖고 싶은 소유욕이 강하게 마음에 자리하게 되었다.

소유욕은 인간의 본능적이면서 매우 뿌리 깊지만 문제는 향유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물건이나 재물을 지나치게 모으려고만 하고 그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심리적으로 유익할 것이 전혀 없다. 이런 점은 우리에게 소유가 아니라 소유에 대한 누림이 문제라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기에 갖기만 하고 누리지 못하는 경우에 심리는 병리적이 되고 있다. 이미 획득하고 소유한 것에 대하여 누리지 못할 때 누림에 대한 여유로움이 생겨나지 않기에 마음은 더욱 경화되거나 위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갖지 못해서 위축되던 것이 다시 누리지 못해서 위축되거나 경화되는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셋째로 절약적 강박증은 심리적인 측면이 중요하다. 절약적 강박증은 드러나는 측면은 소유욕이지만, 그 내면에는 심리적인 측면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물건에의 집착, 소유욕에 대한 집념 등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대해 거리를 유지하고 소유물의 공유를 꺼리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무도 자아의 내적인 공허함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은폐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성취나 능력이 메말라 있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기를 원한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이 모은 물건이나 재물로 인해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을 인정받고자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존경을 받거나 무시되지 않는 유일한 방법도 재물을 모으는 것에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강박증은 어렸을 때부터 적절한 인정과 수용의 경험이 박탈되어 왔기 때문에 열등감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많다. 완벽주의라는 것도 스스로 지각한 자기부족에 대한 보상적인 노력인 것이다. 자기에 대하여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들은 가급적이면 타인에게는 숨기고 싶은 것이다. 그러기에 이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반항적인 추동이나 저항적인 태도가 노출될까봐 두려워한다. 책임감이나 사회적인 적절성을 전면에 내새워 이러한 내면의 감정을 은폐하고 있지만, 남들이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본래의 허울을 발견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누군가를 존경하는 듯한 태도, 매우 격식을 차리는 형식적인 태도 등은 사적인 감정의 교류나 더욱 밀착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방지하는 하나의 효과적인 전술이다. 요컨대, 이들은 소유물에 집착하며 인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내면에는 자기 존재의 가치를 뿌듯하게 느끼도록 해줄 만한 것을 소유하지 못한 공허감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3) 치료적 대응

사회적으로 좋은 것이 개인적으로는 좋지 않은 것도 있다. 절약이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지나치거나 과도하면 개인에게는 인격의 문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절약적 강박증이다. 그러나 절약적 강박증은 상당히 양면적인 점도 간과되지 말아야 한다. 결국 사회적으로 좋은 것이 지나치면 개인에게 문제로 되고, 이것은 다시 사회의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다. 정당한 사회적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이어지는 점에서, 신기하게도 절약적 강박증이 대표적이다. 사회에서 잘 한다고 박수를 받아야 할 절약성이 어떻게 병리적인 증상이 되는가 말이다. 물론 이 증상은 사회생활에서 적절한 조화를 필요로 하는데 비해 인색함으로 그 조화를 깨뜨리는데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들에게 조화를 방해하는 요인을 찾아 치료하는 점이 그 관건이 된다.

첫째로 박탈의 경험이 문제이다. 절약적 강박증은 발달 과정상의 측면에서 이해된다. 그들은 성장의 과정에서 물건의 충분한 사용과 금전적인 여유로움을 누리지 못하였다. 마땅히 가져야 할 물건을 갖지 못하였다든가, 당연히 사용할 수 있어야할 금전을 사용하지 못한 어려움을 경험한 것이다. 이런 부정적인 경험이 그들로 하여금 이제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어 위축시키기에 이르렀다. 박탈의 경험이 그들에게 지나치게 또는 과도하게 절약적이게 했다. 이런 절약성이 그들에게 인색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박탈은 반드시 물건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도 있다. 강박적 특성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포용적이고 여유로운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부모나 윗사람들로부터 비난받지 않고 안전하게 혼자 비집고 설 땅을 찾기 위해 분투하게 되었다.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기에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적 신념이 정신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은 스스로 철저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는 책임적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런 것은 절약적 강박증이 그 결과 생성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제한적이고 적으나마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소유를 빼앗기지 않고 지키기 위한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된다. 이처럼 너무나 많은 소망과 희망을 아동기에 박탈당했기 때문에 이제는 스스로 성취한 것을 결사적으로 수호하려는 것이다. 치료자는 이런 박탈의 경험을 이해하여 그들의 존재를 수용해야 한다. 이런 치료자의 태도가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준다고 생각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상당히 여유로운 치료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둘째로 심리적 유연성에 집중해야 한다. 절약적 강박증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준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다. 그들의 증상은 외부적으로는 물건이나 재물에 대해서 과도하게 아끼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의 문제는 외적인 물건에의 집착이나 소유욕이 아니라 자신의 수치스러움을 감추려는 심리적인 내면의 문제인 것이다. 이들에게 나타나는 오늘의 인색함은 사실상 과거에 자신의 결점을 감추고 싶은 심리인 것이다. 그들은 지난날에 어렵고 힘들게 살았던 과거를 감추고 지금은 성공한 사람으로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누구보다 책임감 있고 철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그래서 이들이 내보이는 인색함은 '상실'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과 이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 자기보호 및 방어의 태세를 반영한다.

이들이 심리적 유연성을 보이지 못하는 많은 부분은 재산과 소유에 관련되고 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다음과 같은 심리적 태도를 드러낸다.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다, 내가 네 것을 건드리지 않는 것처럼, 너도 내 것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굳게 지키며, 자신의 소유를 박탈하려는 자들을 저지하고 회피하려 한다. 이들은 상당히 인색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 줄을 모르며, 마치 소유란 한 번 잃으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또한 냉담한 태도로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외부의 침입에 대해 자기 자신을 굳게 닫고 지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점에서 절약적 강박증은 아마도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 많이 나타난다. 이들에게 유연성을 갖게 하려면 삶의 시야를 넓히는 일이다. 그러면 자신이 가진 물건이나 재물을 지키면서도 어느 정도 여유를 갖게 된다. 생각을 넓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롭게 된다는 점은 임상에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셋째로 존재 가치를 인정하도록 하자. 절약적 강박증은 내면의 깊이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외부로 드러나는 행동은 내면에서 일정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그들의 내면의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존재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는 길이다. 그들은 인정을 받고 싶은 심리, 결코 무시되지 않으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누군가가 무시하지 못하도록 강하게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인정에 약하고 동정이 많은 부드러운 측면도 있다. 다만 그들은 그것을 의도적으로 허용하지 않거나 거부하고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 외면적으로 강직한 사람일수록 내면은 인정스럽고 부드러운 사람이 많다.

치료자는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치료해 나가야 한다. 그들은 과거에 피나는 고생을 통해 '절약만이 살길이다'는 놀라운 인생의 교훈을 얻은 사람들인지 모른다. 다만 그런 교훈을 얻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지금의 생활을 인색하게 만들고 있는 점이 문제이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도 모르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인생은 모름지기 나처럼 살아야 한다”는 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생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살고 있고 매사에 아끼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심리적 태도는 은연중에 타인을 비판하는 심리가 바탕에 자리한다고 보아야 한다.

자신처럼 철저하게 산다면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살 수 있다는 무언의 교훈을 자신에게와 타인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심리는 다르게는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라는 내면의 소리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이들과 대화하려면 일단 그들의 공적이나 공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로 인해 치료자에게는 일단 그들을 인정해주는 자세가 요구된다. 치료자가 그들을 인정할 때 그들은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마음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마음이 열리면 그들은 스크루지처럼 대단한 기부금을 낼 수 있는 사람으로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작은 것에는 과도히 아껴도 명분 있는 큰일에는 오히려 헌신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결론: 강박증이 아닌 것 같지만, 강박증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관료주의적 강박증과 절약적 강박증에 대하여 기술했다. 관료주의적 강박증이나 절약적 강박증은 강박증으로 알지 못하고 지나온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심각한 정신질병으로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관료주의적이란 대체로 직위에 대하여 남다른 권위를 내세우는 것으로 인지해 왔을 것이고, 절약적이란 사회적으로 모범시하는 풍조 속에서 오히려 칭찬을 받을 만하다고 여겨져 온 것이다. 이런 것이 강박증이라니 아마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조금은 의아해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런 것이 그 정도에 지나친 관계로 강박증으로 기술된 것이다.

관료주의적 강박증에서는 관료 세력에 지배되는 형태를 중심으로 기술했다. 관료주의에서는 획일적인 행동 양식이나 사고방식 등이 작용하는 위계질서가 중요시된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여 주로 관료 정치에 따르는 비밀이나 독선 등이 조직체에서 작용되므로 아랫사람을 통제하고 지휘 감독하는 힘의 우위성이 중요시되었다. 이처럼 철저한 위계를 중요시하는 특성은 엄격한 의미에서 질서를 바탕으로 했다. 다만 그것이 상당히 지나친 정도에서 병리적 현상을 보이는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일정한 원칙이 인정되거나 통용되는 상황에서 질서는 그 바탕이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관료주의적 강박증은 다른 강박증과는 달리 사회에 대한 인식이 높은 편이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회를 움직이는데 일정한 체제가 중요하기 때문인데, 이때 개인은 사회를 유지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였다. 개인은 그 체제 속에 뛰어 들어가 적절히 적응하거나 순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기에 관료주의는 사회와 개인, 그리고 사회를 움직여가는 체제를 지나치게 중요시한데서 유발되는 이상적인 현상이었다. 이는 관료주의적 강박증이 개인에게 철저한 사회적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서 관료적인 특성을 잘 숙지하고 순응할 것을 요구하는 이유였다. 이를 위해서는 증상의 특징, 심리적 이해, 그리고 치료적 대응이 부차적으로 다루어졌다.

절약적 강박증에서는 지나치게 아끼는 태도가 병리적 증상임에 주목했다. 절약적 강박증은 지나치게 절약하는 것이 병리적인 증상이 되는 것이었다. 절약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그다지 문제 될 것은 없을 것이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또는 과도하게 절약한다는 점이 병리적 증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절약적 강박증은 현대사회에서는 흥미로운 증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생활에서 아무리 지나치게 또는 과도하게 절약한다고 그것이 어떻게 병리적인 증상이 되는가에서다. 그런 점에서 이 증상은 이미 양면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기까지 했다.

그것은 절약이라는 점에서는 목청을 높여서 환영하고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개인의 인격에서는 반드시 수정 및 개선되어야할 증상이라는 점에서였다. 이미 강박증상이라는 점에서 병리적인 관점이 보이므로 치료를 요구했다. 실제로 절약적 강박증은 절약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는 환영받고 칭찬받아야 할 것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병리적 증상이 되므로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증상이라는 점이었다. 여기에는 증상의 특징, 심리적 이해, 그리고 치료적 대응이 부차적으로 다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