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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할 때 예 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 하라" (마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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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현 목사 설교] 다윗 왕의 시종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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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8.04 22:47   

날짜: 2012년 7월 29일
본문: 역대상 29:21~30
설교: 석기현 목사
제목: 다윗 왕의 시종 행적

'인생만사(人生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중국의 어느 마을에 살던 '새옹'이라는 사람에게 아주 좋은 말이 한 마리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말이 도망쳐 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새옹을 위로했지만 그는 그것이 오히려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별로 아쉬워하지 않았는데, 얼마 지난 후에 그 사라졌던 말이 다른 암말 한 마리를 데리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이 과연 새옹의 말처럼 되었다고 다들 축하했지만 새옹은 그것이 또 화가 될지 모른다고 하면서 그렇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몇 달 후에 정말 그의 걱정대로 새옹의 아들이 그 새로 온 암말을 타고 달리다가 낙마하여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결국 절름발이가 됩니다.
이웃들은 또 그를 위로했지만 이번에도 새옹은 다시 한 번 "이런 화(禍)가 복(福)이 될지 누가 압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에 흉노가 침략해 오는 바람에 마을 청년들 모두가 다 전쟁터로 나갔고 십중팔구가 전사하고 말았지만, 불구자가 되었던 새옹의 아들은 바로 그 때문에 징집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 되새겨 볼 만한 내용이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세상만사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니 사실상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라도 그 '새옹지마'의 사건 중에서 '복이 화로 바뀌는 일'은 없이 오직 '화가 복으로 바뀌는 일'만 자기 인생에서 생기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처럼 '화가 복이 되는' 일방적인 새옹지마의 인생을 누린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역대상의 말씀은 사무엘하에 기록된 것보다는 비교적 간단하게 다윗의 일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윗의 말년에 있었던 사건들이 생략되고 오직 성전 건축을 위하여 준비하며 그것을 솔로몬에게 위임한 일을 대표적으로 부각되어 있는데, 이제 오늘 본문에서는 그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종결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앞의 장면에서 다윗은 온 이스라엘 회중을 불러 놓고 성전 건축의 사명을 확인시켜 주면서 그것을 위한 특별헌금을 함께 드린 후 그 모든 것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본문 21절 이하 25절의 내용은 그 모임을 마치기 전에 특별제사를 올리는 장면입니다.
그 순서는 우선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고 그 후에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백성들이 함께 식탁의 친교를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솔로몬에게 기름 부음으로써 그를 공식적으로 왕으로 추대하는 예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에게 왕위와 동시에 성전건축의 사명이 위임됨으로써 다윗 왕의 공적인 생애는 정식으로 종결되었으며, 그런 후에 이 역대상은 곧바로 다윗의 일생 전체를 요약하는 결론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참으로 비범한 일생을 살았던 다윗, 이스라엘이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성군이었으며 또한 성경의 인물 가운데서도 돋보였던 다윗, 그 다윗의 전 생애는 어떻게 요약되는 것이었습니까?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다윗 왕의 시종 행적'을 총정리하고 있는 역대상의 마지막 몇 절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기독신자들은 과연 어떻게 '화(禍)가 복(福)으로 바뀌는 인생'을 누리게 되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신자의 인생은 '고난의 연단'을 통과해야 할 때도 있지만 결국 '영광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26절부터 28절 상반절에 "26이새의 아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27이스라엘을 치리한 날짜는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치리하였더라 28a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라고 기록했습니다.

다윗이 "이새의 아들"이었을 때에는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한 어린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속된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시골구석에 박혀 있는 '촌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새의 아들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사십 년" 동안이나 왕위에 앉아 있었으며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그야말로 동화이지만, 다윗의 생애야말로 그런 동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새의 아들 목동'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그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와 같이 극적인 인생의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그 모든 것은 우선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택함을 입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장래의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 받음으로써 평범한 '목동'에서 벗어나 장래의 '왕'으로서의 길이 열렸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다윗의 신분이 그처럼 최하에서 최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순전히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다윗은 저 유명한 골리앗과의 조우를 통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모든 이스라엘 장군들과 병사들이 벌벌 떨고 있던 골리앗을 대항하여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고 외치면서 물맷돌 하나만을 들고 당당히 나아갔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다윗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욕을 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의분과 그 하나님의 이름만 의지하면 사나운 짐승이든지 거인 골리앗이든지 간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까지 발휘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 골리앗을 쓰러뜨림으로써 하룻밤 사이에 일약 이스라엘의 최고 영웅으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부터 다윗의 평생을 통하여 가장 길고도 괴로운 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백성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게 된 것 때문에 오히려 사울 왕으로부터 극심한 질투와 미움을 받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죽음의 위협까지 당하면서 정처 없는 도망자의 길을 걷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산과 들을 방황하며 수풀과 동굴에서 노숙을 했어야만 했고, 그뿐 아니라 최악의 시기에는 적국인 블레셋 왕에게 투항하다시피 해서 목숨을 부지하려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다윗이 나중에 헤브론에서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을 때가 그의 나이 30세(삼하 5:4)였으므로, 그는 문자 그대로 '20대의 황금기' 전체를 그렇게 비참하게 보낸 셈이었습니다.
실로 그 날들은 웬만한 청년이었다면 미치든지 아예 목을 매든지 했을 만큼 괴롭고도 두렵기 짝이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그처럼 하루하루를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에 급급한 도피자로 자신의 청춘을 다 보낸 것이 그의 인생의 황금 시기를 낭비해 버린 것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바로 그 고난의 시절을 통하여 '정금 같이 연단'시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처럼 무력한 도망자 신세가 되는 바람에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자기를 죽이려고 길길이 날뛰는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는 동안 다윗은 원수까지 사랑해 줄 줄 아는 마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날마다 괴로움과 두려움이 엄습해 올 때마다 다윗은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들을 짓고 기도에 곡조를 붙여 찬송 드림으로써 새 힘을 얻는 경건생활에 더욱 익숙해져 갔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그런 고난을 통과하게 하심으로써 그를 영적, 인격적으로 명실 공히 최고 수준의 인물로 연단시켜 가셨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다윗의 도망자 시절 역시 사실은 '성군으로서의 자질'을 완벽히 갖추기 위한 실로 소중하고 값진 성장의 과정이었습니다.
'이새의 아들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은 바로 그런 '고난의 연단'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온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최고 축복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금광석은 뜨거운 용광로를 통하여 제련되어야 불순물이 제거되면서 정금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원석 역시 수많은 연마의 과정을 지나야만 거친 표면이 매끄럽게 바뀌면서 아름다운 빛을 내게 됩니다.
사람의 인생 역시 '고난의 연단'을 통과함으로써 더욱 성숙해집니다.
그래서 '젊을 때의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군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성호를 위하여 자기 전 생애를 바치려는 각오가 되어 있는 성도에게도 역경의 시기는 있기 마련이며 그것은 사람의 눈에는 무언가 잘못된 모순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에 있어서 그것은 결코 무슨 억울한 일이 아니며 손해를 보는 일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택함을 받은 자녀들이 인생길의 도중에 겪게 되는 환난이란 그 어떤 경우에도 실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런 파란만장한 역경까지도 오묘하게 사용하셔서 결국에 가서는 엄청난 축복이 되도록 섭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처럼 선하신 하나님의 손에 꽉 붙잡혀 있는 줄 믿는다면, 지금 자기의 현실이 좀 '잘못 꼬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현재보다 나중이 더욱 창대하도록' 이미 계획해 놓고 계시는데, 지금은 아직 '헤매고' 있는 것 같고 매사에 '쫓기기만' 하면서 살고 있다고 해서 불안해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저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택자의 인생에 무슨 '시행착오'를 저지르실 분이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지금 당장은 '죽지 못해 겨우 사는 것'처럼 여겨진다 해도 절대로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이미 작정해 놓으셨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사오케이'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라 저 만군의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하여 우리 기독신자의 인생에는 '현재 당하는 고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장차 받을 영광스러운 축복'이 이미 예비되어 있음을 확신함으로써 매사에 칠전팔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신자의 인생도 때때로 '죄의 시험'에 빠질 때가 있지만 끝내는 '악에서 구원받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28절 하반절에 "28b그 아들 솔로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과정 역시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열왕기상에는 더욱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만 여기서는 세부적인 사항들은 생략하고 요점만 간결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다윗의 왕위는 이미 솔로몬에게 이어졌습니다.
그것과 함께 성전건축이라는 중차대한 사명 또한 전수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결과적으로 다윗과 솔로몬이라는 부자(夫子)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전성기를 함께 성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다윗과 솔로몬 사이에 왕위 계승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는 그저 어떤 '정치적 성공' 이상의 특별한 영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곧 다윗이 한때 일생일대의 큰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때문에 그의 인생이 망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결국에는 그 실족을 딛고 일어서도록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그는 다윗의 아들들 중에 원칙적으로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장자(長子)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적자(嫡子)조차 아니었습니다.
그는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였던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얻게 된 소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 사건은 다윗으로서는 정말 일생일대 최고로 수치스러운 죄악이었습니다.
말이 간단해서 '밧세바 사건'이지 그 내막을 세세히 따져 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일급 아니라 특급에 해당될 중범죄였던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우선 엄연한 남의 아내, 그것도 자기의 충성스러운 부하의 아내와 간음을 저질렀습니다.
정말 파렴치한이란 말이 딱 맞는 일이었습니다.
거기에다 한 술 더 떠서 다윗은 그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계획적으로 죽이기까지 했었습니다.
특별 휴가를 주어도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임무만 생각하고 있는 그 충성스러운 부하를 다윗은 일부러 적군의 활에 맞아 죽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야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밧세바를 왕궁으로 들여앉혔습니다.
율법에 비추어 볼 때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저 인간사회의 도덕윤리로 보거나 사람의 기본양심에 비추어 보기만 해도, 정말 사람이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의 부끄럽고도 악한 죄를 다른 사람 아닌 다윗이 저질렀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누가 이런 죄를 저질렀다면 그 사람의 남은 인생에서 무슨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자기의 죄를 책망하러 온 선지자 같은 사람은 깨끗하게 죽여서 그 입을 막아 버리면서 평생토록 위선자 노릇을 하며 살기 십상일 것입니다.
그러다가 만일 그 죄가 백일하에 드러나게 된다면 그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목을 매달고 죽든지 아니면 무슨 깊은 산골에 파묻혀 외부와 철저히 단절하고 살든지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생애의 위대한 면모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우선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고 철두철미하게 회개를 했습니다.
그는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자마자 즉시 "내가 여호와께 범죄했습니다."하고 아주 깨끗하고 솔직하게 자복했습니다.
그리고는 금식하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면서 밤을 새워 회개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지은 죄를 두고 얼마나 뜨겁고 진실하게, 얼마나 애통하며 간절히 회개했는지는 시편에 있는 그의 회개의 시들을 보아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다윗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를 용서해 주신 과정이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에 낳은 첫 아이는 하나님께서 죽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살려 주시기를 정말 간절히 금식하며 기도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에 대한 징계로서 그런 벌을 내리셨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둘째 아들 솔로몬이 태어났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여디디야"라고 즉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그 아이의 이름까지 지어 주셨습니다.
그 불륜의 관계를 통하여 맺어진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솔로몬을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사랑해 주시고 그처럼 그 아이에게 당신의 사랑의 입은 자라는 뜻의 애칭까지 지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그 큰 죄를 그야말로 깨끗이 잊으시고 문자 그대로 '기억도 하지 않으실' 정도로 완전히 용서해 주셨다는 증거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그 솔로몬은 다윗에게 있어서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면서 자신의 남은 생을 더욱 충성하며 하나님 앞에 온전히 헌신한 증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솔로몬이 왕위를 물려받으면서 다윗이 반평생 정성을 바쳐 준비해 왔던 성전 건축의 사명까지 이어받음으로써, 다윗은 그냥 입으로만 한 회개가 아니라 진실한 마음과 함께 '회개에 합당한 열매'까지 하나님 앞에 보여 드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 솔로몬이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는 기록은 그저 '왕위 계승이 잘 이루어졌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이 짧은 한 문장의 행간에는 다윗이 자기가 저지른 일생일대 최악의 죄를 두고 얼마나 진실하게 회개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깨끗하게 용서해 주었는가 하는 사실이 충만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큰 죄악에 빠졌던 다윗을 그보다 훨씬 더 큰 은혜로써 위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비록 중생을 받은 신자라 할지라도 죄에 대하여 완전히 자유로운 생애를 누리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완전타락의 본성이 아직도 우리의 육신을 옭아매고 있는 까닭에 분명히 성화 과정에 있는 신자도 때때로 자범죄의 실족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만 따지고 양심적으로만 생각한다면 그런 죄를 저지르는 우리 자신이란 존재는 스스로 헤어날 길이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도 한심하며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여기에서도 '화(禍)가 복(福)으로 바뀌는' 신기한 역사가 벌어집니다.
바로 '한번 택하신 자는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사랑이 작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참된 성도는 그런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반드시 진실한 회개를 하게 되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통회자복하는 당신의 자녀를 결코 멸시치 아니하시고 놀라운 소생의 은혜를 무한정으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가르치신 기도'를 드릴 때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하는 것처럼, 실로 사람을 '악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원래 악을 범한 죄인이란 그저 '죽어 마땅한' 존재일 뿐입니다.
'다윗'처럼 천인공노할 죄를 저지른 인간이라면 정말이지 '천벌을 받아도 싼' 인간이라고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도대체 어떻게 '화가 복이 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그 어떤 죄인도 감히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구원을, 그리고 그런 죄인을 바라보는 그 어떤 사람도 결코 주고 싶을 리가 없는 기상천외한 사랑을 베풀어서 그 죄인이 받아 마땅한 '저주'가 '은혜'로 바뀌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이지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기적적인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아니겠습니까?
꼼짝없이 '인과응보(因果應報)'의 마땅한 영벌만 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이토록 무한한 자비와 긍휼로써 '악에서의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하늘 아버지의 은혜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그 어떤 '죄의 시험'을 당하더라도 결코 완전히 쓰러지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29절과 30절에 기록하기를 "29다윗 왕의 시종 행적이 선견자 사무엘의 글과 선지자 나단의 글과 선견자 갓의 글에 다 기록되고 30또 저의 왕 된 일과 그 권세와 저와 이스라엘과 온 세상 열국의 지난 시사가 다 기록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 사무엘의 글"이란 바로 사무엘서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선지자 나단의 글"이나 "선견자 갓의 글"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확실한 것은 "다윗 왕의 시종 행적" 즉 그의 전 생애는 여러 선지자들의 글에 남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처럼 '다윗의 행적'이 '선지자의 글'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의 생애가 그저 평범한 한 인간의 생애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일부분이었으며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성취되어 가는 한 과정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다윗의 생애는 그와 같이 멋진 '시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새의 아들'로 태어난 목동 출신에 불과했지만 모든 고난을 이겨낸 후에 결국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이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로 인하여 일생일대의 죄를 저질렀지만 진실로 회개함으로써 끝내는 '솔로몬'을 통한 용서와 회복의 은혜를 받게 된 것 - 이처럼 '화(禍)'로 시작되었던 일이 결국에 가서는 '복(福)'으로 종결된 그의 생애 전부가 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인도하시고 성취하신, 하나님의 섭리요 역사였던 것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 시종'이 바로 이런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능하신 손에 붙잡혀 있다는 것은 정말 그 얼마나 든든하고도 고맙기 짝이 없는 일이겠습니까?
이런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인생에서는 그 어떤 고난도 결코 재앙이나 패망은 아닙니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에게 결국에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은 신자의 인생에서는 그 어떤 실족과 범죄도 그를 완전히 파선시킬 수는 없습니다.
인애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늘 아버지께서는 '밧세바와의 죄악'에 빠졌던 자에게까지도 끝내는 '여디디야의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고난 뒤에 축복'을, 그리고 '회개 후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을 자신의 전 인생의 유일하고도 참된 주님으로 늘 든든히 의지하며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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