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

<서론>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십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도 우리 일생을 통해서 크고 적은 일들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제가 이 예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마음에 깊이 느낀 것은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였습니다. 생활이 궁핍하고 어려운데 부산에 있는 우리 어머님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맏이가 보고 싶으니까 서울 올라가서 한주일 동안 같이 있다가 부산으로 내려오겠다. 큰일났습니다. 왜냐하면 단칸방에 대접할 수 있는 음식도 없는데 어머니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고해서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가 날보고 싶어서 부산서 서울까지 올라오는데 나는 서울역에 나가서 모셔올 차비도 없고 삼시세때 진지를 차려 드릴 수 있는 양식도 없고 모두 아무것도 없는데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런데 그때 미국의 버드 목사님이라는 부흥사가 와서 서대문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부흥회를 하는데 제가 통역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 어찌하든지 우리 어머니 잘 모시게 해주십시오. 기도를 하고 통역을 하는데 그 목사님은 자기 설교하고 나는 내 설교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어머니 걱정이 꽉 누르니까 귀에 말씀이 들어와야 말을 하지요. 그래서 설교를 마치고 난 다음에 어머니 모시러 가야 되겠는데 서울역에 완행열차를 타고 오신다고 했는데 자연적으로 포켓트에 손을 넣고 포켓트를 뒤집니다.

옛말에 객지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남자는 포켓트를 뒤지고 여자는 화장부터 고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도 포켓트를 뒤져 보니까 종이봉투 하나가 손에 잡혀요. 이 무슨 봉투인가? 보니까 돈봉투에요. 그런데 거기 보니까 우리 어머니 일주일 동안 모시고 기차표 사서 내려보낼 만한 돈이 거기 들어 있어요. 나는 도저히 누가 그렇게 했는지 지금까지도 상상이 안돼요. 깜짝 놀랬는데 내가 누구에게 악수를 하고 가까이할 시간도 없었는데 언제 내 포켓트에 와서 그것을 넣었는지 그래서 제가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언제 누구를 시켜서 이 봉투를 제 포켓트에 넣었습니까? 알고 싶습니다. 내 마음속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그런 것 너는 알 필요없다. 그런 걱정은 내가 하는 것이고 너는 돈만 있으면 될 것 아니냐. 잘 모셔라. 그래서 나는 어머님을 잘 모셔서 일주일 동안 대접 잘하고 기차표 사서 내려 보낸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수많은 일에 하나님이 미리 예비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은 큰 것만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적은 것에도 예비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비하는 하나님을 제일 먼저 발견하고 야훼 이레라는 이름을 붙인 분이 아브라함입니다. 100세에 낳은 아들을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에 재물로 드리라고 했을 때 그 아들을 데리고 사흘길을 걸어가서 모리아 산에 올라가서 재단을 쌓고 아들을 잡아서 재물 드리려고 칼로써 목을 따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들에게 손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않고 내게 주었은즉 네가 참으로 나를 사랑한 줄 아노라. 그런데 산양 우는 소리가 나서 보니까 넝쿨에 산양의 뿔이 걸려가지고서 못가고 버둥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재물을 직접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서 그 산양을 가지고 목을 따서 피를 흘리고 각을 떠서 재단에 불을 펴서 이삭 대신 재물로 드리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산에서 예비하신다.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 이 땅에 살면서 우리 힘으로 못하는 일들이 많이 있지만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알 듯 모르듯 우리 가운데 계셔서 예비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자기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예비한 모든 것은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이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전능전능, 무소부재하신 영광과 능력으로 예비하시는 것이요 우리는 그것을 일일이 다 알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바라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무한한 과거와 무한한 미래를 합쳐 놓은 것이 영원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 과거도 현재 손 위에 가지고 계시고 미래도 우리 손 위에 현재 가시고 계시므로 다 현재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일을 주님 이미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 일에 대처할 수 있도록 예비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은 이미 그 문제를 미리 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요나의 체험
성경에 보면 요나의 체험을 통해서 얼마나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하나님인가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중 한 사람인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했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욘 1:2)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하나님 심판을 받아 사십일 이내에 멸망당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요나는 마음속으로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삼고 고통을 많이 가했습니다. 재산을 빼앗아 가고 물질을 모아서 가고 장정들을 군대에 복무하도록 만들고 고통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가 망한다고 하니까 이 웬 떡이냐. 내가 무엇 때문에 가서 경고할 필요가 있느냐. 나는 도망쳐야 되겠다. 그래서 하나님은 북방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는데 그는 배를 욥바에서 배편을 타고 다시스로 저 남쪽 오늘날 스페인 지역을 향해서 도망을 쳤습니다. 그는 배 밑창에 들어가서 아에 하나님께서 말씀에도 안들리도록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나서 1장 4절에 보면 “야훼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하나님이 큰 바람과 폭풍을 예비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배가 그냥 파도에 일렁거리고 물이 배에 가득해지고 배가 물에 파산되게 되매 사공들이 놀래서 노아에게 와서 깨워 일으키면서 당신이 누구이기에 이렇게 편안하게 잠을 자느냐. 이 환난이 누구 때문에 왔느냐. 제비를 뽑아보자. 제비를 뽑아보니까 요나에게 탁 거렸습니다. 누구냐. 네가 왜 걸렸냐. 나는 이스라엘 선지자로써 니느웨에 가서 회개복음을 전하는 것을 반대로 다시스로 도망을 치고 있는 중이니까 하나님께서 나 때문에 심판을 했으니까 나를 물 가운데 던져라. 요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니느웨에 가서는 설교 안하겠다고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씨름을 해서 이길 자가 없습니다. 그 옆에 사공들이 미안하지만 우리가 너 때문에 죽을 수가 없으니까 네가 먼저 물에 들어가라.. 하나 둘 셋 하고 던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죽었다고 생각하고 눈을 딱 감고 있는데 무엇이 왔는지 덜컥 자기를 삼켜 버립니다. 성경에 보니까 야훼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3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느니라. 요나를 삼킬만한 물고기는 요사이는 그런 물고기가 없습니다만 보통 큰 것 아닙니다. 사람들은 고래가 요나를 삼켰다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래는 입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요나와 같은 사람을 삼키려면 입이 굉장히 커야 될 것인데 하나님이 특별히 예비하신 물고기입니다.

그런데 요나를 삼키고 난 다음 사흘동안 물고기가 굉장히 고통을 당합니다. 뭘 하나 배가 고파서 배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었더니만 소화불량증이 걸려가지고서 아이구 위장 속에서 자꾸 위를 때리면서 두들기면서 회개를 하고 할퀴면서 회개를 하니까 위통과 복통이 생기고 견딜 수가 없어 사흘만에 니느웨 해변가에 와서 어~ 시원하다. 확 토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요나는 공짜배를 타고 니느웨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써 상당히 큰 도시로써 걸어서 이쪽저쪽 사흘길을 가야 끝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즉시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사십일 이내에 니느웨 성이 멸망할 것이라고 하매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듣자마자 모두다 감동을 느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 그런 감동을 느낄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성령으로 역사하시매 온 국민 전체가 이 말을 듣고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상복을 입고 부르짖었습니다.

이 말이 임금에게 들어가니 임금이 보좌에서 내려와서 삼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아서 온 국민에게 먹지도 마시지도 말라 짐승들도 먹이지도 말고 마시게도 하지 말라. 하나님이 용서 안해준다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겠느냐. 이렇게 회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길 것 아니냐. 그래서 온 나라가 통곡을 하고 울고 죄에서 돌이키니까 40일이 다 됐는 데도 하나님이 니느웨성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요나가 마음에 굉장히 괴로웠지요. 하나님, 내가 다시스로 도망을 치는 이유가 이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많으셔서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는데 내내 니느웨가 멸망당할 좋은 기회가 왔는데 내가 그 기회를 이용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지금이 온 나라가 회개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마음을 돌이켰잖아요. 난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 죽여 주세요.

그러면서 성위에 앉아가지고서 그래도 혹시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켜 불로 때려서 심판해줄까 그것을 보겠다고 앉아있는데 햇빛이 비취니까 머리가 굉장히 뜨겁다 말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낙심이 되고 분노가 끌어오르고 견딜 수가 없는데 하루 저녁 자고 나니까 박넝쿨이 자라서 요나 앉아있는 그 움막집 머리 위에 착 덮었습니다. 박넝쿨이 하나님이 예비한 박넝쿨은 하루 저녁에 그렇게 크게 자랐습니다. 박넝쿨이 하루 저녁에 자라는 법이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사 박넝쿨이 하루 저녁만에 요나가 우거하는 초막집 위에 덮었습니다. 요나가 그 박넝쿨을 보고 어허~ 시원하고 좋다. 모처럼 좋은 일 하나 생겼다. 박넝쿨 참 좋다. 그런데 그 박넝쿨이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까 시들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또 벌레를 예비하셨습니다. 벌레가 와서 박넝쿨을 싹뚝싹뚝 잘라버린 것입니다.

요나서 4장 6절에 보면 “하나님 야훼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그러나 요나서 4장 7절에 보면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니 시들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거기에다가 해가 뜰 때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낫습니다. 나를 죽여 주십시오. 그렇게 통탄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것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풍랑도 예비하시고 물고기도 예비하시고 박넝쿨도 예비하시고 벌레도 예비하시고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요 조그마한 벌레도 관심을 가지고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인데 예비 안할 리가 없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은 여러분 위해서 예비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될 것인 것입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독일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당시 그가 겪었던 체험을 바탕으로 정신심리 요법을 개발한 정신의학자입니다. 그는 수용소에 갇힐 때 그의 연구 원고를 옷 속에 숨겨서 그 옷을 입고 수용소에 들어가려고 했더니만 옷을 빼앗고 원고를 다 빼앗아 버렸습니다. 한평생 자기가 연구한 논문을 빼앗기고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대신 받은 누더기 죄수옷을 가슴에 움켜쥐고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죄수복을 걸쳐 입고 그 죄수 포켓트에 손을 넣어보니 뭐가 하나 잡히거든요. 그래서 보니까 누가 전에 입었던지 성경구절을 적어서 그 포켓트에 넣어 놓은 것을 그가 보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는 신명기 6장 4절로 5절의 말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야훼는 오직 유일한 야훼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라” 이것을 보자 빅터 프랭클 박사는 아~ 하나님이 내가 낙심하지 말라고 이 쪽지를 예비해서 포켓트에 넣어 주셨구나.

그래서 그것을 늘 읽으면서 새로운 결심을 하고 그 중노동을 하는 수용소에서 계속 인간심리를 연구해서 종이만 있으면 주워다가 그것을 기록해서 포켓트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습니다. 그러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들이 포로수용소에서 생존되어 나왔을 때 틈틈이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인간을 치유하고 살리는 심리요법을 창안하여, 인류의 정신의학에 큰 기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위기 가운데 하나님이 예비하신 말씀을 통해, 다시한번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기회를 잡게 된 것입니다.

어떤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고 예비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강제노동 수용소에 잡혀간 그에게도 격려하기 위해서 누구를 통해서든지 그 성경구절을 포켓트에 넣어서 예비해 놓았기 때문에 그가 그것을 읽고 견뎌내고 살아남아서 위대한 심리학자로써의 명성을 떨치게 된 것입니다. 요나가 바다에 던져져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큰 물고기를 예비하시어 요나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상황에 구원의 손길을 예비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2. 구원을 예비하신 하나님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예비해서 보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다고 말했는데 하나님의 본성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을 혼자서 할 수 있나요? 나 혼자 앉아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러면 정신병자로 취급할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 돼요. 저는 교회에 오면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대상이 될 수 있고 또 여러분도 저를 사랑하는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려면 서로 인격이 동등해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왜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랑할 대상을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대상을 여러분을 만드셨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과 모양에 닮은 하나님과 동등된 대상을 만들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는 대상으로써 지었고 지극히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사랑할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은 견디지 하나님도 굉장히 필요가 그 가슴속에 있습니다. 무슨 필요냐. 사랑하는 자녀들이 곁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구하지 않고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를 지어서 에덴동산에 두시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거닐면서 아담과 하와가 대화하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사랑하는 사람끼리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상쾌하고 좋습니까?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마귀를 따라 나가버리고 난 다음 하나님의 마음속에 고통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을 버리고 나갔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사랑인데 사랑을 채워줄 대상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서로 대화를 하고 서로 사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즐거워해야 되는데 그럴 사람이 없어요. 천사도 하나님과 대화의 상대가 안됩니다. 하물며 강아지는 절대로 안되지요. 여러분과 나같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교제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나를 도로 구원해서 하나님 품에 안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고난당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고 몸찢고 피흘리면서 고난당할 때 그 고난의 극치 속에 그는 아버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 탄식했는데 그 고난의 강도를 볼 때 하나님의 사랑은 그 고난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해주는 것입니다. 사랑 안하면 그 고난을 받게 할 리가 없어요. 주님이 그 어마어마한 고난을 통해서 여러분의 죄, 나의 죄, 여러분의 불행, 나의 불행, 여러분의 반역, 나의 반역을 다 청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고라도 하나님은 그 보혈의 값으로 우리를 품에 품어서 우리를 사랑하는 대상으로 삼으려고 애를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간에 사랑받고 있습니다. 보통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어서 값주고 살 정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깨를 쭉 펴시라구요.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도 아니하고 인정도 안해주고 나는 쓰레기 같은 인생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 받았으니 얼마나 귀한 존재인 것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가 여러분을 사랑하여 여러분을 도로 구원하기 위해서 베푸신 그 은혜를 오늘 우리가 알아봐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6백년에서 7백년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한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한 아기로 태어났지 않습니까? 한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린 핏덩어리를 보시고 성경은 예언하기를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신 아버지고, 평강의 왕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어린 아이가 되어서 핏덩어리가 되어서 마리아의 몸에 자라서 세상에 태어났는데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겠다고 열심을 내었기 때문에 사람의 죄는 사람이 갚아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를 천사가 갚아주지 못합니다. 사람의 죄를 짐승이 갚아주지 못합니다. 사람의 죄는 사람이 갚아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미리 예언하기를 비록 사람들 보기에는 한 아기요, 한 아들, 핏덩어리된 어린 아기로 태어났지만 실제로 그는 전능한 하나님이고 영존하시는 아버지고 평강의 왕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예수님이 우리의 대속 구주가 된 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밝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1절로 6절에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야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야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여러분과 나를 하나님이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들을 보내서 그 아들이 대속의 죄물이 된 것을 성경은 예수님 오시기 6백여년전에 벌써 예언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2장 1절로 10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허물과 죄로 죽어서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살리셨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그 다음은 우리가 함께 읽어 보십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만세전에 예비하셔서 예정하시고 부르셔서 예수의 보혈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안기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회개하면 뛰어나와서 안아주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탕자가 죄를 짓고 아버지 곁을 떠나서 아버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못먹고 살아서 헐벗고 굶주려서 맨발벗고 아버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겠나이다. 품꾼의 하나로 봐달라고 할 때 아버지가 이 놈아 여기 꿇어 앉아라. 나쁜 놈의 자식. 그렇게 했습니까? 아버지 하나님을 상징하는 이 아버지가 탕자같이 멀리 오는데 미리 뛰어가서 달려가서 그 아들을 끌어안고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 제일 좋은 갖다 입혀라. 아들 된 표시인 금가락지를 끼워라. 그리고 신발을 신겨라.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 아버지가 아들로 인하여 얼마나 기뻐합니까? 아버지는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아들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가 돌아오니 뛰어나가서 아들을 환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구원받기를 학수고대하고 기다린 것입니다. 여러분 일어서고 앉는 곳마다 구원하려고 애를 쓰고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사랑하는 대상으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 있어야 하나님이 사랑합니다. 여러분 없으면 사랑이 허공을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영원히 행복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지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버지 아빠 사랑해요 감사해요 찬양합니다 하면 아버지는 너무 좋아서 아이구 여보 여보 어떻게 할까?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여러분을 좋아해요. 여러분도 하나님을 좋아해야 되는 것입니다. 야훼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마음의 소원까지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은 죄 덩어리지요.

저는 한경직 목사님이 천국으로 가시기 전에 한 인터뷰에서,“나는 죄 덩어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알기에 한경직 목사님은 한국 교회 가운데 가장 거룩하고 청렴하게 사신 주의 종입니다. 그런 분이 “나는 죄 덩어리”라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만히 살펴보면 죄 덩어리가 아니라 온통 죄입니다. 우리는 덩어리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통 죄에요. 그러니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구원을 받으려 해도 받을 도리가 없습니다. 도저히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은 죄없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고통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우리 죄를 청산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 가운데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선한 행위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죄를 짓고 불의하고 추악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해서 구원하려고 여러분 대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몸찢고 피를 흘리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돌아오면 예수님의 피로써 여러분을 덮어 버리는 것입니다. 과거를 덮어 버립니다. 과거를 묻지 않아요. 과거를 묻는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 설 수 없지요. 과거를 덮어 버리고 씻어 버리고 제일 좋은 의의 옷을 입혀 주시고 은혜로 구원을 하시고 너무나 너무나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려고 만든 여러분을 잃어버렸었으나 도로 찾았으니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지 모릅니다.

오늘 이시간에 교회당에 하나님이 와 계십니다. 우리 예배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은 너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이스라엘의 찬양 중에 계시는 야훼여 야훼는 거룩하나이다. 우리가 찬송 부를 때 우리 가운데 와 계시고 우리가 말씀 들을 때 가운데 와 계시고 기도할 때 하나님 등을 어루만져 주시고 여러분 소원을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이 자리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격이 있어서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하고 싶어서 여러분을 사랑한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이 병들었다고 해서 내버리는 부모가 있습디까? 자식이 병들어도 끝까지 자식 곁에 있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성령님을 예비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서 3일만에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은 예수님과 똑같은 하나님으로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인데 구약의 시대는 아버지가 일선에 서서 일하시고 신약 초기에는 예수님이 와서 일하시고 이제는 교회시대는 성령이 일선에 서서 일하시는데 성령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여러분과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와 계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로 18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여러분, 함께 계신 분 여러분 속에 와서 계신 분 이 분이 성령입니다. 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바람은 우리 곁에 있고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렇지요? 한번 심호흡을 크게 해보십시다. 하나 둘 셋. 휴~ 바람이 여러분 속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것처럼 성령님도 여러분 속에 들어왔다가 나오시고 속에 들어왔다가 나오시고 이렇게 가까이 계십니다.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요, 아들 예수님의 영인 것입니다. 보혜사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곁에 계신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보혜사와 예수님은 첫째 보혜사고 성령은 둘째 보혜사인데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십니다. 구만리 장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 계십니다. 여기 계세요. 여기에서 여러분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5절로 26절에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세요. 여러분께서 말씀을 읽다가 해석이 안되거든 성령께서 도와 주시옵소서. 간구하십시오. 성령이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옵시고 성령이 우리에게 예수님께로부터 배운 말을 기억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처럼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기억나게 해주시는 선생으로써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가 자식에게 좋은 것 줄줄 아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는데 그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이냐. 성령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인정하시면 아멘하십시다. 환영하시면 아멘 하십시다. 모셔들이면 아멘 하십시다. 따라 말씀하세요. 성령님, 성령님을 사랑합니다. 저와 같이 계신 것을 인정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보혜사가 되어 주시옵소서. 여러분 이렇게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기 때문에 입술로써 말을 하고 교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여러분과 나에게 와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죄사함은 우리 힘으로는 안돼요. 죄사함은 하나님이 선물로 죄사함을 주셨기 때문에 어떠한 죄인도 예수를 믿으면 죄는 용서받는 것입니다. 자기 공로 없이요. 그러나 거룩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도 우리 힘으로 안되니까 노력을 하지만 성령님이 도와주시면 여러분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술주정뱅이가 술을 끊게 되고 도박광이 도박을 그만하게 되고 세속적인 사람이 세속에서 거룩한 생활로 돌아서게 되고 방탕한 사람이 방탕을 버리고 거룩하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여러분이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고 목적을 삼고 노력하는데 성령이 와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로 4절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어야 되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 마음인 것입니다. 죄도 마음에서 먼저 생각하고 난 다음 죄를 짓게 되고 의로운 것도 마음에서 먼저 의롭게 되기를 원한다고 결심을 하고 난 다음에 그것이 의로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성령이 점령해서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마음을 변화시키면 죄보다 의를 하기를 소원하고 좋아하니까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성령이 우리를 위해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이 오시면 여러분 우리 영혼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이 죽을 육체도 살린다. 그것은 뭐냐. 병고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 죽을 육체도 치료하여 고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영과 혼과 육, 삼위일체 전인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만 구원하시고 육체는 내버려놓는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죽더라도 우리 영혼이 낙원에 가있다가 주님이 강림하시는 날 같이 따라와서 부활의 몸을 새로 입게 되는 것입니다. 몸이 없는 영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영과 혼과 몸 세가지를 다 주님께서 합쳐서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영을 구원하시고 혼을 구원하시고 육체를 성령으로 살리셔서 건강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에게 와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한 은총을 보니 하나님의 아들도 우리 위해서 예비해 주셨고 성령도 우리 위해서 예비해 주셨고 이 성경에 기록한 그 많은 약속의 말씀도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비된 은총을 받으려면 기도를 해야 돼요. 하나님은 여러분과 대화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기도를 들으시고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이 역사하지 아니하세요. 여러분 자녀들과 교제하기를 원하는데 요사이 애들이 바쁘다고 부모말 안들어 주잖아요. 그럼 선물을 가지고서 나에게 달라고 하면 내 선물 줄 것이니 오늘 집에 일찍 들어오라. 같이 밥먹고 내 이야기 들으면 내가 너에게 원하는 바 자전거를 사주겠다. 혹은 자동차를 사주겠다. 네가 원하는 것을 주겠다. 그러면 그것 얻으려고 집에 일찍 들어와서 엄마 약속한 것 해줘! 아빠 약속한 것 해줘! 대화를 강제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 대화를 해도 부모가 기쁘다구요. 말 안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은 여러분이 와서 직접 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하며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왜 구하기만 하느냐. 구함을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하나님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오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2장 9절로 10절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 성령이여, 내 마음속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을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기도를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오냐 알려주마. 보여주마. 돌보아주마.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여 주겠다. 부르짖어야 돼요. 그만큼 하나님은 여러분과 대화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기쁩니다. 그것도 말할 필요없이 해야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일생에 있어서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셔서 우리와 교통하기를 원하십니다. 구원도 예수 이름으로 구원해 달라고 구해야 주시는 것입니다. 거룩함과 성령충만도 구해야 주는 것입니다. 병고침도 병고쳐 달라고 기도하고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주에서 해방되는 것도 하나님께 아브라함의 복을 달라고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영생복락도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의 기도뿐 아니라 적은 일에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위해서 벌레 하나도 다 예비하시고 박넝쿨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예비 안해놓은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다 예비해 놓았어요. 그러나 단지 우리가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정말 누가복음 11장 9절로 10절에 있는 말씀 우리 같이 읽어 보십시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기왕 주려고 하나님이 작정했는데 구하기 전에 하나님이 미리 알아서 척척 주면 좋겠는데요. 하나님은 아니야~ 나는 너의 응답보다도 너가 더 필요하다. 네가 내 곁에 오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므로 네가 구해야 내가 응답을 하지. 안 구하는데 내가 응답 안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나와 가까워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예비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너무나 감사해요. 제가 50년 이상 목회를 해 오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정해 놓은 길로 이끌어주시며,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 병원에 조수로 들어가서 일하다가 하루는 부산 대청동 거리를 걸어가니까 젊은 미국 목사 한 사람이 열심히 설교를 하는데 나는 그때 영어를 꽤 잘했는데 그 통역하는 사람은 완전히 자기말 하고 있어요. 내가 들어보니까 미국 선교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데 이 사람은 교회 나가거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살아계신다. 자기 멋대로 통역을 해요.

그래서 내가 통역을 마치고 난 다음 가서 당신 오늘 설교 반도 통역이 안되었다. 나를 사용하면 잘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선교사 보고서 당신 왜 한국에 와서 이렇게 하느냐고 하니까 자기가 6.25때 군인으로 한국에 와서 싸웠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가고 난 다음 한국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사라지지 않아서 한국 국민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겠다고 신학교를 들어가 공부하고 독자적 선교사로 나왔으니 나는 너를 통역으로 구해도 차비 이외에는 줄 수가 없다. 나는 돈 좀 줄줄 알고서 자원을 했는데... 그러면 좋다. 내가 통역을 하겠다. 그분을 따라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개인전도 하고 단체설교 하는데 통역도 했는데 그분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루피 리처드 목사님이라는 노인 목사 부부가 증권회사 사원으로 있다가 한국 사람을 전도하는 사명을 받고 와서 대청동에 조그마한 미션을 열고서 복음을 전하고 있어요. 거기에 나를 소개해 주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날보고 하는 말이 너 젊고 똑똑하게 보이니까 너 목사가 되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돈이 없어서 목사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장학금을 대줄테니까 서울에 올라가서 우리 교단 신학교에서 공부해라. 그래서 나는 서울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부인을 보고 내 아내가 너를 데려가도록 할 테니까 그렇게 해라. 등록금은 내가 대주겠다. 그래서 그 사모님이 나를 데리고 삼등 열차를 타고 그때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20시간이 더 넘게 걸렸어요. 그 긴 거리를 와서 그 사모님이 교장 선생님께 저를 인수인계 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는 시험을 쳐야 들어올 수 있지 그냥은 못들어온다고 하니까 시험치겠다고 그러니까 시험치러 왔는데 딱 세사람이 시험치러 왔어요. 나하고 우리 어머니하고 나이가 같은 부인 한 사람하고.. 또 청년 한사람이 왔는데 같이 시험을 치는데 제가 시험은 물론 제일 잘쳤지요. 그리고 난 다음에 공부를 하는데 나는 내복도 없고 겉옷도 입은 것밖에 없는데 겨울이 오니까 추워지고 신발도 없고 어려운데 우리 최자실 목사님이 동기동창으로 시험을 치고 들어왔으니까 최목사님이 나에게 내복도 사다주고 겉옷도 사다주고 신발도 사다줘요. 하나님이 야훼 이레시라 가는 곳마다 준비해 놓았더라구요.

그렇게 공부를 마치고 신학교 졸업하고 난 다음에 이제는 갈데 올데가 없는데 우리 최자실 전도사님이 불광동에 어린아이를 돌보는 그것을 뭐라고 말합니까? 육아원을 만들어가지고서 애들 돌본다고 그러고 있어요. 가보니까 애들이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데 코 닦아 주고 목욕해주고 머리 빗어주고 그리고 찬송가 가르치고 하기에 내가 좀 같이 도와줄 수 없습니까 하니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사실 그말 한 것은 밥 얻어 먹으려고... 그렇게 했는데 하나님이 최목사님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저하고 같이 일하자고 그러다가 기왕 육아원을 경영할 바에야 교회를 세우는게 좋겠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기로 하고 남의 깨밭에 천막을 치고 북을 두들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모두다 내가 예비한 것 아닙니다. 나는 어림도 없는데 나를 캔 타이스라는 선교사를 만나게 하고 그분이 리처드 목사님에게 소개해주고 리처드 목사님이 서울의 신학교를 데려다가 주고 신학교에서도 최자실 목사님을 보내서 소개를 해주고 최자실 목사님과 나하고 거기에서 불광동에서 개척을 해서 교인이 많아지는데 교인을 다른데 모실 데는 없고 땅도 없고 돈도 없고 어려움 당할 때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목회하던 존 허스톤 목사님 부부를 너는 서울로 가라. 그 명령을 듣고 서울로 와서 하루는 우리 천막교회 와서 나도 같이 일하면 되겠냐고 그래요. 얼마나 좋든지... 웰 컴. 잘 오십시오. 그래가지고 존 허스톤 목사님이 우리 물주가 되어가지고서 그분이 선교부에 이야기 해가지고서 우리 서대문교회를 창고같은 교회지만 지었어요. 지어서 우리를 거리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래서 얼마있지 않다가 7천명, 만명의 교인이 되니까 더 이상 그곳에 예배를 드릴수가 없어요. 교통 혼잡 때문에... 그런데 이때 김현욱 시장이 여기에 여의도 모래땅에 도시를 만든다고 해서 개간하고 아무도 안오니까 아무나 와도 좋소. 아무도 와도 좋소. 선전을 하는데 내가 올데갈데 없으니까 이리왔어요. 와서 보니까 다리도 하나밖에 없고 수돗물도 없고 환경이 완전히 삭막한데 누가 올 것 같지도 않아요. 그런데 김현욱 시장이 나보고 하는 말이 조박, 외상으로 줄테니까 10만평을 가져 10만평. 박수가 그때 쳐줬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늦었어요. 간이 작아가지고서 10만평을 못받았습니다. 그때 10만평을 받았더라면 우리 교회가 와따지요. 아니, 3천평만 주십시오. 에게게 3천평? 3만평 좋다. 3만평 받아라.

나중에 돈줘야 되지 않습니까? 돈은 천천히 주면 된다. 그러니 받아. 아니오 3천평만 주십시오. 그때 내가 하나님의 뜻을 잘 몰랐어요. 하나님은 크게 예비해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했는데 입을 붕어입만큼 적게 열었어요. 그래서 굴러온 떡도 못 먹었어요.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더 큰 것 주기를 원하는데 우리 믿음이 적어서 그것을 못 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하나님이 예비하셔서 3천명 들어가는 교회를 지을 수 있는 땅은 우리가 구했기 때문에 그 땅이 바로 이 교회 지을 수 있는 땅은 우리가 구했기 때문에 그 땅에 바로 이 교회를 지은 것입니다. 이제 돌아보니 모든 것을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발걸음마다 예비해 놓으신 것을 알고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결론>
하나님은 축복도 고난도 다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훗날 돌아보면 고난이 축복보다 더 큰 복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는 축복이 사탕과자처럼 달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면 현재 내가 당한 고통이 더 큰 은혜가 되고 축복이 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통하지 않고는 한발자국도 발전을 하지 못합니다.

「아, 사랑!」이라는 책에 그의 삶을 사랑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황교진 씨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건축학과 졸업 작품으로 대상을 받고, 한 여인과 뜨거운 사랑의 교제를 시작하며 대학원에 특차로 합격하고 앞날이 탄탄했습니다. 그런데 1997년 11월 27일 늦은 밤,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어머니하고 단둘이 살았는데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며 하나님의 기적을 바랐지만, 7개월 동안 세 군데의 병원에서 받은 결론은 “가망 없다”는 통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오면서 건축가의 꿈도 다 버리고 사랑하는 여인하고 연애도 조용히 끝냈습니다. 식물인간이 된 어머니를 간호하는 것이 이제는 자기의 제일 의무가 되었습니다. 참 효성스러운 아들입니다. 자기의 직장도 다 버리고 사랑하는 결혼 대상자도 버리고 자기의 미래를 어머니 돌보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여서 의사대신 간호사 대신 어머니를 돌봤습니다.

그는 매일 같이 어머니를 씻기고 죽을 쑤워 튜브에 넣어서 드리는 것이 언제부터인가 어머니 표정만 봐도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외출도, 잠도, 공부도 접고 14년을 보내면서 어머니를 섬겼습니다. 여러분, 그런 아들 보았어요? 14년 동안 자기 미래를 다 버리고 청춘도 다 바쳐서 어머니를 돌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혼자 있으니까 말하고 싶을 때마다 공책에다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을 쓴 것을 7년 전 그 책이 이 세상에 출판되어 나왔습니다. 건축가의 꿈을 꾸었던 그는 ‘에세이 작가’가 되어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또한 그가 쓴 책을 읽은 여성과 결혼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돈이 왕창 들어왔습니다.

그의 의식 없는 어머니는 그를 위해 줄곧 기도해 주신다고 믿으며, 우리 어머니가 의식이 없지만 어머니가 축복해 주신 덕분에 나는 작가도 되고 이 책을 읽고 감동한 나를 사랑하는 여인과 만나 결혼도 하고 자녀도 두 사람이나 얻게 되고 또 출판사 편집자가 되었으니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어머니에게 오히려 불평하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어머니 때문에 내 신세 망쳤다. 어머니 돌보기 때문에 내가 내 꿈도 다 접어 버리고 사랑하는 여인하고 결혼도 못하고 돈도 없고 내 신세 파탄이다. 이렇게 말해야 될 것인데 이 사람은 아닙니다. 어머니를 이렇게 하신 것은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이다. 어머니가 비록 혼수상태에 있으면서도 그 아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주셨기 때문에 내가 작가가 되고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하게 되고 자식을 낳게 되고 출판사의 책임자로 취직도 되고 이렇게 좋을 수가 있느냐. 그래서 어머니에 대해서 오히려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어머니의 병간호를 통해 큰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되었다며 어머니가 비록 식물인간인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의 곁에 계셔서 평안하고 행복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식물상태도 좋으니 신혼 가정에 어머니가 있으면 얼마나 부담이 됩니까? 그래도 그가 어머니 똥 오줌 다 가려내고 오늘날도 어머니를 씻기고 어머니를 먹이고 그리고 우리 어머니 덕분에 내가 축복을 받았다고 하나님 예비하신 축복이라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정말 범사에 감사입니다. 보통 사람이 감사할 수 없는 것에 감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머니 덕분으로 말미암아 좋은 일이 생겨서 오늘날은 승승장구하는 작가가 되었고 큰 행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도 고난도 동시에 예비하십니다. 그러나 훗날 돌아보면 고난이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사랑 안하고는 견디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 속에는 미움이 없습니다. 그 사랑을 채우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천사도 하나님의 사랑의 필요를 채우지 못합니다. 더구나 강아지는 채우지 못하지요. 어림도 없습니다. 여러분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여러분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해서 큰 사랑을 베풀고 두 손을 내밀고 있으니 여러분 하나님 품에 안겨서 감사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기뻐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여러분 필요한 것을 구하십시오.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원수 마귀를 내어 쫓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찾아와서 샘을 내서 배반하게 만든 마귀, 예수님이 40주 40야 금식하고 공생애 기간에 제일 먼저 찾아와서 예수님을 꾀던 마귀, 욥을 쳐서 온 자녀들 다 잃고 가산 다 탕진하고 온 몸이 병들게 만든 마귀, 그 놈은 지금도 돌아다니며 여러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정사와 권세를 밖에 벗어버려 승리했지만 아직까지도 쇠밧줄에 매지는 않았습니다. 권세를 빼앗겼으나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마귀는 자기 종자인 타락한 천사, 귀신들과 더불어 온갖 방해를 다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주님과 함께 있어서 마귀를 쫓아 내십시오.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가 오면은 언제나 여러분에게 힘을 다하기 위해서 은혜를 퍼부어 주시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만족하고 잔이 넘치는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마음속에 계시면 하나님은 여러분 아버지가 되시고 여러분과 사랑을 나누는 상대가 되시는 것이므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죽음이냐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아무도 이 사랑을 불로 끄지 못합니다. 이 사랑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가면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다 덮어 버립니다. 다 덮어 버리고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고 품에 품으시고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시고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만들어 주시고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탕자의 아버지가 너 혼자 배 고프지? 밥 먹어라!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나도 먹고 즐기겠으니 너도 먹고 즐기자. 너와 나와 같이 먹고 같이 즐기자. 하나님은 인생을 살면서 여러분의 성공에 같이 즐거워하기를 원하고 여러분의 건강을 함께 즐거워하기를 원하고 여러분의 의로움을 보고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과 함께 살아야 하나님도 만족하고 여러분도 만족합니다. 투게더. 하나님과 함께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아침에도 하나님 바라보고 잠을 깨고 점심때도 하나님 바라보고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말할 필요없이 하나님 품에 안겨서 잠을 자고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2012. 5. 13. 어버이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