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5장 강박증의 유발원인(2)

강박증이 유발되는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이는 강박증이 유발되는 원인이 다양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강박증 유발원인이 유전적이라 보는가 하면, 생물학적, 그리고 심리적 원인까지를 중요시했다. 현대에는 강박증을 뇌 질환으로 보는 견해가 추가되는가 하면, 환경까지 포함시키고 있다. 학파의 견해에 따라 다른 원인을 내놓고 있어 또다른 원인도 얼마든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는 앞의 원인에 이어 다른 요인을 추가하고자 한다.

1. 사회-환경적 원인

강박증은 사회-환경적 영향이 매우 큰 것으로 인정된다. 이는 생활 환경에서 후천적 유발을 가정한다. 생활환경 측면에서는 대개 양육과 발달 과정에서 유발되는 점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부모와의 관계가 정상적이었는지 지적하게 되고, 넉넉한 환경에서 성장했는지도 지적된다. 이런 점을 배경으로 사회-환경적 요인을 더 구체적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1) 부모의 과도한 통제

환경적 요인에서 부모의 과도한 통제는 강박증 유발에서 직접적 관련성을 갖는다. 부모의 과도한 통제는 자녀 훈육방식에 해당한다. 거기에는 과잉보호, 과잉통제, 익애적 태도, 적대적 태도, 방관적 태도, 변덕스럽고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 등이 포함된다. 이런 훈육 태도들은 자녀의 통제방식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자녀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통제방식은 반드시 강박증은 아니라 해도 강박 성격 형성에 가장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런 부모의 양육방법 중에서도 과잉 통제적 태도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과잉 통제적 상황에서는 자녀가 매우 억압되어 자아가 위축된다는 점에서다.

물론 과잉통제는 부모의 확고부동함과 억압적인 태도에서 나온다는 점에서 과잉보호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 자녀들을 과도하게 통제하는 부모들은 물론 자녀를 잘 보호하지만, 아이들을 자신의 뜻대로 따르게 해놓고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데에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 이런 통제방식은 성격적 측면에서 다음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로 과잉보호적 측면이다. 부모의 과잉보호는 보통 의존적 성격을 지닌 아동의 발달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부모의 과잉보호는 아이에게 어떠한 고난이나 역경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부모의 염려, 아이를 적대감이나 가혹함 없이 부드럽게 사랑으로 보호하려는 부모의 욕구 등을 반영한다. 과잉보호적 부모는 처벌에 의하여 아이들이 상처받을까 염려하기 때문에 좀처럼 아이들에게 분노나 위협을 가하지 않으며, 아이들을 부드럽게 사랑으로 대하려 한다. 반면 과잉통제는 아이들을 부모가 그어놓은 줄 위에 세워두려는 강제적 태도와 관련된다.

일반적으로 과잉통제적 부모는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아이들에게 종종 처벌적 자세를 취한다. 지나치게 억압한다는 점에서는 부모의 적대감에서 비롯되는 듯 보이지만, 미움이 기반인 적대적 태도와는 구별돼야 한다. 적대적 부모는 아이의 행동이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자신의 분노에 따라 임의로 처벌을 가하는 반면 과잉통제적 부모는 아이들이 처신을 잘못했을 경우만 처벌하는 점에서다.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둘 모두 아이들에게 억압을 초래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둘째로 부모의 지배적 측면이다. 처벌적 부모는 거칠고 엄격하며 지배적인 사람일 수 있다. 이들은 심각한 경우 아이들을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모습을 보일지 모른다. 반면 과잉통제적인 부모는 자녀가 자신들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살기를 기대하기에 자신이 부여한 기준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을 경우만 자녀를 비난하고 처벌한다. 이러한 과잉통제 방식은 명백하게 제한적 조건에서만 일어나는 선택적인 처벌로, ‘조건부’ 처벌방식이라 표현해도 좋다. 그러면 부모의 과잉통제는 다분히 선택적·조건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선택적·조건적인 자녀 훈육방식은 또다른 성격장애인 연극성 성격의 발달사에서도 나타난다. 연극성 성격자들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의와 관심을 끌고 인정에 대한 욕구도 매우 높아 이를 성취하기 위해 과장된 언어 및 행동 표현을 나타내는 편이다. 이들은 타인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주변 사람들을 조종하기도 하며,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없이는 자기 삶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셋째로 부모의 기준이 지나치게 완고하다. 강박적 아이들은 부모의 기준에 부합하려 노력한다. 이런 문제는 연극적·강박적 아이들의 비교에서 더 잘 드러난다. 연극성을 가진 아이들은 부모가 기대하는 바람직한 행동, 혹은 부모의 욕구에 부합하는 행동에 불규칙적으로 긍정적 보상을 받고,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은 처벌받지 않는다. 이들은 부모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학습한다. 반면 강박적 성격의 아이들은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긍정적 보상보다는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한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학습하는 편이다. 이는 강박성 성격자들은 부모의 규칙과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을 학습하며 성장하는 이유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들에게는 부모로부터 처벌받고 거부당하는 행동의 경계가 엄격하게 규정되지만, 잘못된 일에 대한 처벌만을 주로 경험하며 성장했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인정받을 수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이들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만 잘 알고 있을 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넷째로 부모의 인정이 결여된 상태다. 강박증 환자들은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한 편이다. 예를 들어 강박적 성격의 젊은이들은 아주 특별한 성취가 아니고는 대체로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성취감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기 쉬운데, 이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오히려 부모의 관심이 주어지는 것은 어떠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규칙을 위반했을 경우이기 때문이다. 강박증이 심한 부모는 자녀에게 늘 부족한 것과 잘못한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예를 들어, 자녀가 95점의 시험 점수를 받아왔을 때, 부모가 20개 중 19개를 맞은 것에 대해서 칭찬하기보다는 실수로 1개 틀린 것만 혼내는 편이다. 이들은 아이가 잘한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당연하게 여기고 틀린 것에만 집착하며 아이를 꾸짖게 된다. 이것의 중요한 문제는 바로 자녀에 대해 감동이 없는 부모의 태도이다. 부모가 잘한 것에 대해서 감동하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 격려한다면 아이는 강박증과는 무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아이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이다. 저자가 독일 유학 중에 있었던 일이다. 유명한 유대인 출신 러시아 교수에게 딸이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딸은 재능이 있다고 인정되어 대학에 합격했는데도 레슨을 계속할수록 딸은 자기가 피아노에 전혀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때 교수는 딸이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매우 혹독한 스파르타식 훈련가로 돌변하였다. 게다가 아이들이 지루할 정도로 끊임없는 반복을 강요하여 힘들어했다. 그가 주문한 한 가지를 힘들여 완성하면 또다시 새로운 주문이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딸은 단 한 차례도 “잘했다”는 칭찬을 받지 못했다. 교수의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딸은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렛슨을 받으러 가는 날에는 두려움까지 생겼다.

이때 저자는 이렇게 하다가는 피아노 치는 것보다 아이를 망가뜨릴까봐 다른 교수로 바꾸었던 기억이 있다. 다른 독일 교수는 딸의 장점을 인정하면서 가진 재능을 살려주는 방향으로 가르쳤기에 딸의 실력은 눈부시게 발전하게 되었다. 두 교수는 대단한 실력자들이었지만 가르치는데 차이를 보인 것이다. 한 교수는 자기 식대로 그대로 따라 하기를 강요하였다. 그 기준이 교수인 자기에게 있으므로 아이는 언제나 그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반면 다른 교수는 기준을 아이에게 두므로 잘했다는 칭찬과 함께 잘못했을 때는 격려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나 다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섯째로 칭찬에 인색하다. 강박적 부모는 칭찬에 인색하다. 그런 부모에게서 성장하는 아동은 부모의 칭찬을 더 많이 기대하게 된다. 이 칭찬이 아동에게 정신의 자양분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경우 칭찬은 아동의 정신을 강하게 만들고 자아를 넓어지게 만드는 활력소이다. 아버지의 칭찬을 단 한번만이라도 받아보고 싶은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마당과 대문 앞 골목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치우고 또 치웠다. 그런데 아버지로부터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눈을 치웠으면 치웠지, 왜 빗자루는 부러뜨리느냐?”며 소년을 심하게 꾸짖었다. 잘못한 것과 모자란 것에 대한 선택적 처벌방식, 이것은 강박적인 부모들이 보이는 과잉통제적 태도다.

이런 부모의 과잉통제는 처벌적 절차로 사용되어 아이들의 행동에 명확한 한계를 설정해주는 강압적 훈육 방법이다. 부모의 승인된 경계 내에서만 행동해야만, 아이들은 부모의 비판적 정죄로부터 안전할 것이다. 과잉통제적 태도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고도로 효과적인 ‘훈련’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 입장에서는 기준과 원칙에 집착하고 늘 실패를 두려워하며 자신을 비관하고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강박적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

2) 강박증의 학습

강박증의 학습은 가능할까? 강박증은 유사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 어느 정도 학습될 가능성이 있다. 강박증의 특징들이 가족환경에서 직·간접적으로 학습된다는 개연성이다. ‘학습’은 어떠한 행위가 적절한 보상과 처벌 등을 받으면서 몸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강박증은 다음 방식을 통해 학습될 수 있다.

첫째로 도덕적 기준과 처벌에 대한 학습이다. 아이는 부모의 기대에 순종하고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도덕적 행동을 하려고 한다. 이때 도덕적 행동을 통해 부모의 처벌을 피할 수 있음을 학습한다. 아이들에게 도덕적 행동이란 대개 부모의 완고한 기준에 의하므로 늘 생각해야 하는 강박성이 생긴다. 부모가 권위적이고 통제력이 강하면 반응은 더욱 강하게 일어난다. 신앙적 측면과도 관련될 수 있는데, 청교도적 신앙을 강요하는 부모의 아이들은 오직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다. 그런 부모라면 오로지 교회생활을 잘하는 경우만 자녀들을 인정할 것이다. 이런 부모들의 기준은 오로지 신앙이기 때문이다.

신앙을 기준으로 삼는 부모들의 경우 대개 신앙이 편파적인 경우가 많다. 이들의 신앙은 엄격하고 독선적이며 상당히 자기통제적 특성을 보이며, 적절성이나 권위에 대한 갈등이 많지만 이를 순응의 모습으로 드러낸다. 이런 부모들일수록 강박적 사고에 심한 비판적 태도 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이라는 태도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들은 종교적 조직과 같은 제도에 집착하고 그 안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보상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그들은 오로지 신앙적 동기에서 자신의 행위를 권위적 인물의 행동과 동일시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또 자발적이고 독립적인 행동은 최소한으로 제약하고, 승인된 규칙이나 제약을 엄격하게 따르려고 노력하며, 변화 없는 일관적인 행동 패턴을 유지하려 노력할 것이다.

여기에 완벽주의적 태도나 사소하고 부적절한 사항들에 집착하는 경향을 추가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부적절성을 직면하지 않도록 도와주며 부정적인 자기상으로 인한 자존감 손상부터 이들을 보호해준다는 생각을 하는 점에서다. 이로써 아이들은 사실상 부모가 설정한 기준과 기대에 순응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위협에 의해 강박성이 형성된다.

더욱이 이런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또 자신이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처벌받는 것을 잘 알게 된다. 이런 것은 그대로 어떻게 해야 부모의 처벌을 면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불안감이 바로 아이들에게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성을 형성한다.

둘째로 부모의 강박적 행동의 모방을 통해서다. 강박증을 가진 부모라면 자녀들은 자연히 강박적이 되기 쉽다. 생활습관은 몸에 익숙해지는 것임을 감안할 때 부모의 강박증은 그대로 아이에게 답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의 강박 행동을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 강박 성격의 측면들을 대리 학습하게 되는 원리다. 실제로 이런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특징짓는 철저한 규칙과 금지를 자신에게도 적용하여 답습한다.

한 대학생은 평생을 군인으로서 계획과 규칙 속에 기계적으로 살아온 아버지에 대해 매우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늘 억눌려 살아오면서 아버지에 대해 누적된 적개심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강인하고 질서정연한 생활 모습을 존경했으며,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로 인해 그는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되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서 강인한 체력을 키워야 하고, 남들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거나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이 학생은 부모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자신의 성격 특성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대개 성장 과정에서 부모들이 보이는 적절한 행동을 모방하는 편이다. 이때 부모의 엄격함과 처벌 태도를 학습하고 모방하거나 학습하고 내재화하게 된다. 이런 강박증을 학습하는 아이들이라면 부모의 엄격하고 무자비하고 독단적이며 타인의 미성숙과 무책임을 무자비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복종적이고 순종적인 착한 자녀로서의 자아상을 형성하지만, 한편으로 부모를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사용하여 부모의 엄격하고 처벌적인 성향을 그대로 몸에 익히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기대감이 높은 부모에 의해 강박증이 유발된다. 부모가 아이에 대하여 기대감이 높다면 아이는 능력있게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에게 기대감이 높은 부모는 대개 자신의 과거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이런 부모는 과거 자신이 여러 여건으로 이루지 못한 일들을 아이를 통해 이루려는 보상심리가 있다. 이런 부모일수록 과거 기회를 놓쳐버린데 대한 후회가 있기에 아이들에게만은 반드시 그런 자신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발전된다. 이런 경우 부모는 아이들에게 굉장히 협력할 뿐 아니라 그만큼 능력을 강요한다. 부모의 지난날 콤플렉스를 아이를 통해 풀겠다는 형식이다.

강박증이 심한 어머니 밑에서 자라난 어느 여대생이 있었다. 그녀는 대학에서도 남보다 두 배 더 노력하여 복수전공을 해내었지만,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은 결과 기진맥진하여 취업 상황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감을 잃고 시험준비를 하면서 고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서 공부했다. 그 결과 그녀는 결국 우울증과 강박증으로 상담치료를 받아야 했다. 치료자가 딸의 증상은 어른의 강요에 의한 결과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어머니인 자신이 과거 풀지 못한 것을 자녀에게 강요하여 오늘의 이런 자녀를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가졌던 것이다.

실제 그녀는 부모의 기대에 의해 성격이 형성되고 부모라는 역할 모델을 따라 부모를 닮아가는 동안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학습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부모가 원하는 것만 열심히 해야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는 생각에 맞추어 살아왔다.

이로써 그녀는 자율적 행동 촉진을 스스로 훈련하지 못하여 어떤 상황에도 당황하거나 자신감을 잃은 채 부적절하게 행동하게 되었다. 이제 그녀는 대안을 생각해내고 스스로 선택사항들을 고려하며, 자율적 능력을 제한하고, 자신에게 주어졌던 모델에 엄격하게 집착하여 살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협소하며, 새롭고 예상할 수 없는 사건을 다룰 때는 부적절감을 느낀다. 그 중 더욱 안타까운 것은 기존 규칙을 어기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뿐 아니라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도 결핍됐다는 점이었다.

3) 책임감과 죄책감의 학습

강박증 환자들은 성장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깊은 책임감을 강조하는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는 것이다. 책임감은 어느 정도 독립심을 키워주는 좋은 요건이지만 심한 경우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러한 아이들은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죄책감을 느끼도록 교육받는다. 또 경박해 보이는 놀이를 하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무책임하다고 교육받아 왔다. 더욱이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성향을 억제하도록 ‘도덕화’돼온 점이 더 문제다. 이들은 비도덕적인 행위들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무책임한 것인지 끊임없이 주입받아 왔고, 그러한 행동 결과는 끔찍하다는 경고를 받으며 자랐다. 그렇기에 책임감은 때로 불안을 유발시키는 원인이라 보아야 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Sartre)는 “인간의 존재와 불안은 책임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불안 개념은 책임에 대한 것이다. 이는 하이데거의 불안이 무(無)에 대한 것이며,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은 죄에 대한 것과 비교되는 점이다. 불안은 강박증의 중요한 요건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심한 불안 정도를 ‘강박신경증’이라 부른다. 여기에 불안의 원인이 책임이라는 사실은 과도한 책임감이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런 이유로 이들은 건설적이고 책임감있고 점잖은 방식으로만 행동했다.

이들의 행위는 겉으로 보기에는 계획적이고 어느 모로 보나 정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른 아이들은 얼마나 신중하지 못한지, 그러한 행동을 함으로써 얼마나 부모의 속을 썩이겠는가?” 라는 얘기를 들으며 성장한다는 이유다. 그 결과 이러한 아이들은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자신은 ‘착한 아이’이며 그렇지 않은 다른 아이들은 ‘나쁜 아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다만 이들은 이러한 규칙이나 자신의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배운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비난적 태도를 내재화하고, 자기훈육적·자기비판적 태도를 획득하며, 자신의 행동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를 배우게 되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책임감은 좋지만 지나친 경우 문제로 나타난다. 이행되지 못하면 반드시 죄책감을 수반하는 점에서다. 이는 책임감이 죄책감을 유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죄책감은 특히 신앙이 중시되는 종교에서 강조된다. 죄의식을 강조하는 종교적 신앙은 특성상 개인의 책임감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점에서다.

그러면 죄책감이 무엇인가? 그것은 잘못된 사고나 행동에 대하여 부끄러운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선지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식을 각성시키거나 느끼도록 하는데 앞장섰다. 물론 이와 비슷한 발달사를 그리스 역사도 갖고 있다. 외형적 정화의례가 점차 도덕적인 정화개념으로 변천된 형식이다. 놀라운 사실은 신앙의 증가가 역설적으로 죄의식과 개인적 책임의 증가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죄책감은 현상적으로는 분명히 도덕적 불안에 관련된다. 때로 도덕적 불안이 심한 경우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더럽다고 느끼거나 강렬한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다만 죄책감이 심한 정도에서는 도덕적 불안이 신경증적 불안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 점이다. 강렬한 죄책감은 불안증과 강박증을 수반하여 반복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부모의 강한 억압에서 성장한 아동이라면 죄책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므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불안과 가책을 더 느끼는 편이다. 이는 모두 도덕적 불안이 근본적으로 처벌을 전제로 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죄책감이 종종 과잉통제적 부모들에 의해 아이들 성장 초기에 보이는 반항적 행동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아이들은 규칙과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경우 부모에게 불충하고 불손했다는 죄책감을 느끼도록 질책당한다. 이렇게 조장된 죄책감으로 아이들의 분노는 본래 대상에서 전환되어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된다. 때로 이들에게 수시로 일어나는 죄책감은 내면에서 반항적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다스리는데 사용된다. 아이들은 공격적 충동의 결과에 대해 두려워하도록 배울 뿐 아니라, 이러한 충동을 지닌 것 자체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끼도록 배운다. 그리고 이를 통제하는 태도를 학습한다. 이들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박해자가 되어, 부모가 자신의 삶을 황폐하고 메마르게 한 것 이상으로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기 때문이다.

2. 생각통제의 문제

강박증 환자들에게 생각의 통제는 큰 문제다. 그들은 생각이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관념들이 떠오르면 떨쳐버리지 못할 뿐 아니라 거기에 더욱 빠져든다. 이들은 심리적 안정과 평안함을 추구하지만 원치 않는 불편한 생각이 떠오를 경우 이를 억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기에 불쾌한 감정 상태를 회피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시도하면서 자신의 심리상태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원치 않는 결과를 산출한다. 이로 인해 그들에게는 사고와 행동들이 보다 높은 빈도로 발생하거나 재현되는 역설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강박증 환자들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려는 여러 시도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이들에게 의례적인 생각의 억제는 강박증과 관련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사고억제는 ‘특정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많은 연구에서 어떤 생각을 억제하려는 능동적 시도는 시도하지 않은 경우보다 오히려 더욱 집착하게 만드는 역설적 효과를 생성한다고 보고된다. 다만 특정 생각의 억제 노력은 일시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뒤이은 시기 표현했을 ‘역설적인 반동 효과’라 불리는 사고 빈도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렇게 특정 생각을 의도적으로 억제하려는 시도는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한다.

학자들은 이러한 반동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에는 사고를 억제하는데 사용되는 방법에 초점을 두었다. 이때 사고억제는 특정 주의분산 사고를 사용하면서 시작된다. 주의분산 사고란 원치 않는 생각으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주의의 표적으로 삼는 대체 사고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죄책감의 음란한 생각을 회피하기 위해 성경구절을 생각하거나 교회의 정경을 떠올리는 것이 일종의 주의분산 사고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에게 생각 억제가 반복되면 원치 않는 사고와 주의분산 사고들 간의 연합이 형성되고, 결국 주의분산 사고로 사용되었던 다양한 생각, 심상, 기억 등이 회피하려는 사고를 떠오르게 만드는 광범위한 연상의 단서로 기능하게 되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억제의 역설적 효과는 다른 가설을 가능하게 만든 점이다. 이 설명에 의하면, 생각을 억제하려는 의도는 두 과정을 활성화시킨다. 하나는 원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작동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원하는 상태와 어긋나는 감각이나 생각을 자동적으로 탐지해내는 ‘검색 과정’이다. 의도적인 작동 과정은 의식적이고 노력이 필요하며 주의분산, 인지부하, 스트레스, 괴로움, 시간압력, 불안 등에 의해 쉽게 손상될 수 있다.

반면 검색과정은 무의식적이고 노력이 덜 필요하며 의도적인 억제나 조절이 어렵고, 인지부하 등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자동적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검색 과정은 심리 통제가 실패하는 것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데, 작동 과정이 인지부하 등에 의해 제한되면 어떤 감각이나 사고를 억제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억제된 정보들을 활성화하여 기억에서 더욱 접근 가능하게 만든다. 억제가 정보에 의해 접근가능성을 증가시키는 외부 단서처럼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트레스나 불안이 있을 경우 특정 사고를 통제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역설적 결과를 야기할 수 있으며, 강박 사고나 증상들이 증폭될 가능성도 있다.

특이하게도 불쾌하고 원치 않는 사고는 강박증 외에 다른 장애들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범불안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여러 불안장애나 우울증, 건강염려증 등에서도 나타나며, 정상인들도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사고들을 흔히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생각에 주의를 집중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보다 어려운 일은 어떤 생각을 의도적으로 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적 사고억제는 오히려 원치 않는 생각의 빈도나 강도를 증가시키는 점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며 역설적이다. 원치 않는 생각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역설적이지만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강박증의 인위적 유지로서의 습관적인 요인

강박증은 인위적으로 유지되는 의도적인 측면도 있다. 강박증 환자들은 대처 방안을 찾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강박증상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이들이 강박증에서 벗어나는데 실패하는 요인이다. 실제 이들은 자신의 행동 방식을 변화시키기보다 그대로 유지할 때 고통이 훨씬 적다는 요인도 있다. 이는 그들이 다소 불편할지라도 찾아낼 수 있는 다른 어떤 행동방식보다 훨씬 괴롭고 보상이 더 많은 방식이라는 점에서다.

여기에는 이들이 나타내는 사고 및 행동방식 대부분이 습관과 같은 것들에서 단순히 과거에 학습한 것을 지속하고 있는 점을 들어야 한다. 이러한 행동은 도구적으로 유용해서라기보다는 과거부터 뿌리깊게 박힌 것이어서 계속 지속되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이런 현상은 다른 측면에서는 모든 성격장애에도 적용될 수 있는 특성이다. 잘못된 것을 고치지 않으려는 특성은 모든 성격장애에서 성격의 변화라는 것 자체가 불안을 유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증상은 그들에게 매우 뿌리깊게 박혀 있으며, 동시에 행동과 생각을 결정하는 중추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이들 증상은 자기영속적 늪과도 같다. 이들은 자신의 병적 행동양식을 강화하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 빠져 있는 점에서다. 이런 원인론과 관련해 강박증의 특징이 지속되도록 만드는 다음 4가지의 과정은 중요하다.

1) 행동의 경직성

행동의 경직성은 강박증을 유지하는 1차 특성이다. 경직성이란 유연성이 부족한 경우인데, 유연성 없는 태도는 매사에 방어적이기 때문에 그대로 경직성을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런 시각에서 수동적·양가적 태도를 지닌 사람들은 실수하는 것을 매우 혐오스러워하는데, 바로 이런 이유로 어떠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도 회피하려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들에게 친숙한 생각과 행동만을 함으로써 방어적 입장을 견지한다.

이러한 경직성 때문에 이들은 사물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본다. 이들은 이분법적 측면이 강하므로 유연성이 결여된 점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분법적 흑백논리를 지닌 그들은 맞거나 아니면 틀리거나, 모두 좋거나 아니면 모두 나쁘거나 완전히 까맣거나 아니면 완전히 하얗다는 식으로 회색지대를 고려할 만한 유연성이 결핍되어 있다. 이로 인해 생활 속에도 새로운 것들보다는 반복적인 것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은 매우 ‘예측 가능한’ 사람들이어서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들의 삶이 시계추처럼 왕복하듯 지루하고 단조롭게 보일 수도 있다. 그 결과 이들의 인지적 행동적 양식은 신중하고, 심지어는 기계적인 것처럼 비쳐진다.

이들은 또 좀처럼 과거에 가지고 있던 관점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보거나 방황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매우 제한된 관심이 있고 탈선 위험이 없는 사실적 경험을 회피함으로써 단단하게 잘 짜여 있는 삶의 방식을 유지하려 한다. 이러한 경직성과 협소한 시각으로 인해 이들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상당히 크다. 섬세한 감정 세계나 일상을 뛰어넘는 창조적 활동은 이들의 기계적인 삶의 방식에서는 상상할 수 없다. 게다가 동일하고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는 것은 이들에게 새로운 환경을 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구태의연하고 경직된 사고방식에 집착하는 것이 강박증을 가진 이들에게는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과거 행동양식의 답습과 악순환에서 탈피하는 것이 몹시 어려워진다.

2) 규칙과 규율에 대한 집착

규칙과 규율은 현대 사회의 필수적인 요건이다. 사람들은 문명 사회에서 규칙과 규율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러한 계약을 일종의 필요악으로 보고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의 양태를 선호한다. 그러나 강박증 환자들은 규칙과 규율이 명시화된 상황을 선호하고 그렇게 살아가려 노력한다. 이러한 태도는 내부에서 분출하려는 저항의 충동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들이 외부 권위에서 찾아낸 법칙과 구속이 엄격하면 엄격할수록, 자신의 내적인 충동을 통제하는 데 그만큼 노력을 적게 기울여도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들은 스스로 악순환 속에 빠지게 된다. 이들은 규칙에만 주의를 둠으로써 새로운 환경을 차단하고, 새로운 행동을 학습할 기회나 융통성 있게 세상을 바라볼 기회는 점점 더 제한되는 점에서다.

이들의 행동방식은 자신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한계를 점차 협소하게 만들어간다. 이러한 규율과 규칙은 때로 강박증 환자들에게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강박증 환자들은 규칙과 규율에 대한 집착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관례적·습관적 행동양식을 엄격히 구축함으로써 생활 속 애매모호함을 극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이러한 규칙은 이들 내부에 존재하는 충동과 압박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규칙과 규범, 사회적 인습에 충실함으로써 이들은 자신의 충동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규칙이 이를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들은 의심스러운 상황이 되면 자신의 행동을 이끌어줄 추가적인 규칙과 규율, 지침을 찾게 된다는 점은 확실하다.

나아가 이들은 융통성을 나약함의 신호로 지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규칙이나 규율, 관습의 고수와 집착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들에게는 규칙에 예외를 둔다는 것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감당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진다. 지켜야 할 규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들은 오히려 불안해한다. 그들의 내면적 충동이 풀려나면서 초래될지 모르는 무질서한 혼동 상태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융통성을 보이기 위해 어떠한 예외를 허용한다는 것이 전체 체계를 파괴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므로 엄격한 규율을 고수하는 것은 자신의 심리 내적 평형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지각된다. 그러나 강박증 환자들은 보이는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는 자율적으로 기능할 능력을 상실케 하고 종종 자기파괴에 기여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3) 자기비판

자기비판은 강박증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자기비판은 환자들이 강박증상을 지속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아동기에는 구속과 규율이 주로 외부에 존재하지만 청년기가 되면 강박적인 사람들은 부모의 구속과 규율을 자기 속에 완전히 흡수하여 내면화할 가능성이 많다. 이제 외부의 어떠한 권위도 자신들을 심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해도, 그들은 이미 자기 내면에 무자비한 양심을 발달시켜 놓고, 어떤 행동을 하기 전 자기 내면의 양심에 비추어 끊임없이 의심하고 주저하며 우유부단한 모습을 띠게 된다. 이로 인해 이들에게 ‘적절한 행동’은 이미 내면에 각인되어 있고, 여기서 이탈하려는 무책임한 행동은 스스로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불편감을 준다. 이제는 외부 권위의 구속 뿐 아니라 내부적 죄책감과 자기비난도 스스로를 통제하게 된다.

때로 외부 권위의 구속은 피할 수 있지만 내적인 자기 비난만큼은 쉽게 피할 수 없는 자기통제의 근원이 된다. 이로 인해 강박증 환자들은 스스로에게 검사이자 판사가 된다. 그렇기에 이들은 외현적으로 드러나는 행위 뿐 아니라 자기만 알 수 있는 옳지 못한 생각과 충동도 스스로를 양심 앞에 고소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러한 내적 통제는 이들이 새로운 행동을 탐색하고 습득하는 것을 방해하며, 과거의 습관과 구속을 반박하도록 만든다.

요컨대 강박증 아이들은 청년기가 되면서 자신의 행동을 규제하는 ‘무자비한 양심’을 발달시킨다. 이 양심은 모든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지시해 주고, 자신이 규칙이나 규율, 관습이나 일반적인 사회적 관습에서 이탈하면 죄책감을 일으켜 강력하고 신속한 처벌을 가한다.

4. 결론: 완벽주의에서 벗어나자

지금까지 우리는 강박증이 유발되는 원인에 대해 기술하였다. 이런 원인에서 사회-환경적인 원인, 생각통제의 문제, 그리고 습관적인 문제 등이 중심적으로 다루어졌다. 사회-환경적 원인에서는 부모의 과도한 통제, 강박증의 학습의 문제, 책임감과 죄책감의 학습도 함께 다루어졌다. 강박증이 생활하는 환경에서 후천적으로 유발될 수 있음을 가정한 것이었다. 생활환경 측면에서는 강박증이 사회적 요인도 있지만 대개 양육과 발달의 과정에서 증상이 유발됐다. 그 중 부모와의 관계에서 정상적이었던가를 지적하게 되고, 환경의 넉넉한 가운데 성장했는지도 지적했다.

생각의 통제는 강박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그들은 생각이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관념들이 떠오르면 떨쳐버리지 못할 뿐 아니라 거기에 더욱 빠져들었다. 실제 이들은 심리적 안정과 평안함을 추구하지만 원치 않는 불편한 생각이 떠오를 경우 억제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였다. 그렇기에 불쾌한 상태를 회피하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시도하면서 심리에 영향을 끼치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원치 않는 결과를 산출한다. 이로 인해 그들에게는 사고와 행동들이 보다 높은 빈도로 발생하거나 재현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습관적 유지에서는 행동의 경직성, 규칙과 규율에 대한 집착, 그리고 자기비판이 함께 다루어졌다. 이는 모두 그들이 강박증을 인위적으로 유지하는 의도적 측면도 지적되었다. 그들은 대처 방안을 찾기보다 무의식적으로 강박 증상을 유지했다. 이런 현상은 이들이 강박증에서 벗어나는데 실패하는 요인이었다. 실제 이들은 자신의 행동방식을 변화시키기보다 그대로 유지할 때 고통이 훨씬 적다는 요인도 포함했다. 이는 그들이 다소 불편할지라도 찾아낼 수 있는 다른 어떤 행동방식보다도 훨씬 괴롭고 보상이 더 많은 방식이라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들이 나타내는 사고 및 행동방식의 대부분은 습관과 같은 것들에서 단순히 과거에 학습한 것을 지속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행동은 그들이 도구적으로 유용하다기보다는, 과거부터 뿌리 깊게 박힌 것이어서 계속 지속됐다.

이런 원인은 알고 보면 특성은 다르게 나타나도 심리적인 것과 맥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듯 강박증 환자들은 실수를 상당히 두려워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태도는 때로 모든 행동을 더 완벽하게 하거나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 그들은 엄격하고 순응적이며 의례적이고 보수적 방식으로 행동하면서 실수를 예방하려 한다. 이는 외부 권위로부터의 처벌이나 자기비난 혹은 죄책감을 모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강박증은 부정적인 강화를 통해 스스로 유지되는 것이다. 이처럼 강박증은 인지적, 행동적 경직성, 수많은 규칙에 대한 엄격한 집착, 자신을 과도하게 비난하고 속박하는 경향, 강박적 행동 그 자체의 강화적 속성을 통해 대안적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지속되는 것이다.

인지적 경직성은 결정을 보다 쉽게 내리도록 해주고, 융통성 및 양가성과 관련된 불안을 감소시켜 준다. 규칙과 규율에 대한 엄격한 집착은 강박적인 개인의 삶을 구조화해주고, 원치 않는 생각이나 충동이 일어나게 되는 상황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자기비난은 삶을 정해진 기준에서 이탈되지 않도록 붙잡아준다. 강박적 행동 그 자체가 지니는 부적 강화의 속성은 다양한 회피행동을 증가시키게 되며, 행동방식이 변화에 저항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다. 이런 현상은 모두 강박증을 유발하는 원인이면서도 치료와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