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24장 우울증의 상담치료적 사례와 분석(1)

우울증은 다른 질병보다 치료가 어렵지 않다. 우울증은 원인을 잘 파악하여 치료하면 되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절망적일 필요는 없다. 다만 치료자에게 증상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 핵심을 발견하여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여기서는 우울증에서도 비교적 치료하기 어려운 ‘1차 우울증’ 사례를 들어 치료 과정을 보고자 한다. 다만 사례 성격상 전반기를 중심으로 기술한다.

1. 우울증 정도와 증상의 파악

내담자는 1학년 여대생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심한 우울증으로 자존감이 극히 저하된 상태다. 그녀의 우울증은 고등학교 시절에도 계속되었지만 부모의 이해 부족으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대학 합격 후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스스로 상담치료소에 왔다. 처음에는 우울증과 대인공포증이 심각하여 3개월 정도 거의 눈물로 일관, 상담적 대화가 불가능했다. 그러나 3개월 후부터는 어느 정도 간단한 대화가 가능해졌다. 치료자는 우울증의 핵심적 문제와 학교 공부 요령을 중심으로 상담을 이끌었다. 그녀의 우울증 치료는 거의 3년간 지속됐는데, 치료에서 중점을 두는 방식을 취하던 중 의미있는 회기를 중심으로 특징만을 정리해 본다.

1) 대인관계 어려움 토로

내담자는 우울증이 심각한 상태였다. 첫 상담에서 내담자는 대인관계상 어려움을 1차로 호소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생활의 가장 큰 불편을 대인관계의 문제라 보고한 것이다. 내담자는 상담을 몇 차례 거치면서 더 좋아져야 했지만, 자꾸 외롭고 우울한 마음이 든다는 의구심을 가졌다. 그런 마음을 달래보려 대화상대를 찾으려 해도 마땅치 않고 자꾸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남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너무나 즐겁게 지내는데, 자신은 그것이 잘 안되니 자꾸 열등감을 느끼고, 그들과 어울리기 어려워 모자라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을 극복하려 치료자에게 상담받고 있지만 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쉽지 않아 큰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실제 내담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것이 심한 열등감으로 작용해 잘 어울리는 친구들을 보면 그들이 부럽게만 느껴지고, 그로 인해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더 어려워 회피하게 되어 외로워지고, 모든 인관관계에서도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때 그녀는 치료자에게 “어떻게 하면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하면서 그에 따른 해결책을 요구했다. 특히 그녀는 친구들과의 대화에 잘 끼지 못하고, 소외되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친구들은 알고 있는 정보를 혼자 모르는 것, 그들과 생각이나 경험이 다른 것, 또는 말을 조리 있게 못할 것 같아 말하기를 포기하는 것 등을 문제로 여겼다. 그런 것이 대인관계에서 항상 두려움으로 작용하고, 그런 두려움은 다시 다른 사람을 사귈 때도 그런 좋지 않은 경험들을 반복해서 겪게 되니 두렵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울증은 일차적으로 대인관계의 문제로 드러난다. 우울증 환자는 대개 사람을 피하고 싶고, 혼자 있고 싶어 한다.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이기에 사람과의 정서적 교류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심리적으로 편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힘들고 어렵게 된다. 그것이 심하면 아예 집밖을 나서지 않고 혼자서 집에만 있고 싶어 하는 두문불출(杜門不出) 상태가 된다. 이런 점은 우울증이 대인공포(對人恐怖)로 이어지는 측면이다. 물론 대인공포는 우울증의 부차적 증상으로 나타나지만 그녀에게는 이런 대인관계의 문제점이 어떻게 극복될지 특히 궁금해했다. 치료자는 그 대안의 하나로 조금은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일단 연극성(演劇性)을 발휘해보라고 했다.

연극성이란 지나치면 정신의 작용을 그르치는 요건이지만 적절히 수행하면 분위기나 상황을 매끄럽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을 가졌기에 실행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녀의 마음 상태는 항상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어떤 커다란 마음의 벽이 있다며 그 벽을 빨리 허물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해 치료자의 권유가 그다지 마음에 인식되지 못했다. 물론 이는 단순히 말 한마디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치료자는 여러 번의 권유를 통해 정확하게 인식이 되는 시점에서 상당한 인지 효과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임상경험에 의하면 내담자에게 정확한 인지가 일어나면 어김없이 행동 변화가 일어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2) 대인관계 문제에서 원인 진단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약간의 연극성을 시도하거나 발휘해보라는 것은 우울증 증상의 완화에서 변화를 위한 간단한 시도에 불과하다. 내담자가 다른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역시 증상이 간단한 정도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치료자는 곧바로 증상을 해소하기 위해 하루에 경험되는 감정에 대해 표현하기를 요구했다. 이를 위해 한 주간 동안 느낀 감정을 기록하여 상담시 가져오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리고 상담자를 어렵게 생각지 말고 편한 상대로 대하면 더욱 좋으리라는 것도 일러뒀다. 쉽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로 대하기를 바라서였다. 아울러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데는 치료자만 아니라 친구도 좋고, 주변 가까운 사람도 좋고, 아무라도 대화상대로 할 수 있다면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치료자는 내담자에게 몇 번 상담받았다고 많이 달라지기를 바라지 말기를 요구했다. 상담은 이제 시작이니 서로 인내심을 갖고 진행하자는 의도였다. 그리고 반드시 해결책이 있으니 그다지 염려할 것은 아니라고 안심시켰다. 내담자가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사교 기술보다는 일단 자신감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녀의 더 깊은 원인은 내적인 심리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상태로 드러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성장과정에서 학습되어 굳어진 심리적 장애의 결과이기 때문에 그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야 한다.

물론 내담자가 겪는 우울한 감정은 누구나 갖는 감정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내담자에게는 습관화된 것이 그녀의 증상을 악화시키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런 문제에 대하여 여러 원인을 예상할 수 있다. 그것은 그녀가 대개 바르게 사고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출해내지 못한 경우, 또 마음에서 풀지 못한 것이 얽혀 다른 생각이나 감정을 방해하는 것일 수 있다. 그 결과 내담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스스로 가치 저하를 가져오는 열등감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정신에너지는 거의 제로(zero)상태로 보인다. 이에 대해 치료자는 시간을 가지면서 정확한 원인을 발견하기로 했다. 그 원인은 한 가지일 수도 있고, 다른 몇 가지가 관련되는 경우도 있다.

3) 우울증 유발과 관련된 내담자의 과거사

내담자는 상담을 받고 상담에서 있었던 일을 자주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녀는 상담을 받고 돌아와 상담 때 일러주던 치료자의 조언들을 혼자 책상에 앉아 정리하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그녀는 우울증을 앓게 된 원인을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그녀의 오빠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자주 받았다고 했다. 꾸지람의 이유는 다양했는데,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가 가장 컸고, 그 외에도 ‘행동이나 생각이 좀 모자란다’ 는 식으로 무시를 많이 당했다. 오빠는 중학교 때부터 성적이 안 좋았고, 그로 인해 강박증 비슷한 증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그런 오빠에 대한 아버지의 불만과 꾸지람으로 집안이 떠들썩해지는 날이 많아졌고, 어머니는 그런 오빠를 감싸 안았기 때문에 부모 사이도 점점 나빠졌다.

그러면서 별 걱정 안 끼치고 공부도 왠만큼 하는 그녀를 아버지는 치켜세웠고, 어머니도 그녀를 자기 일을 알아서 한다고 생각하였는지 항상 오빠에게만 신경을 기울였다. 그런 집안 분위기 속에 부모님이 그녀에 대해 거는 기대가 크다고 생각해 그녀는 부족한 점을 보이면 크게 실망할 것으로 생각하고 점점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집안에서 형성된 성격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작용하여 항상 불편하고 괴로웠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해 이같은 문제로 발전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심리적 괴로움에 시달렸다. 가끔씩 너무 힘들 때면 어머니에게 상담을 받아보고 싶다며 호소했지만, 어머니는 그녀의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나이 들면 저절로 바뀐다며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그녀는 “아무도 나의 문제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대인관계에서 항상 어려움을 겪어 좌절하고, 고치려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아 매사에 자신감을 잃어간 것 같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그녀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극복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과 함께 늦게나마 치료자의 도움을 받게 되어 기쁘다고도 했다.

내담자는 시험기간에는 늦게 잠이 든다면서 상담을 쉬었다. 이런 그녀는 상담소를 다닌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기대만큼의 큰 변화는 없었지만 그냥 누군가 자신의 문제를 이해해주는 것과 그 문제를 개선할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져 위안을 받은 정도였다. 앞으로는 치료자의 지시대로 더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이 과정에서 내담자는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문제로 걱정하고 있다고도 토로했다. 남자친구에 대해 조금씩 자제하면서 잊으려고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꾸 전화하고, 학교에 찾아가곤 했다. 머릿속에선 “그러면 안 된다”고 수없이 되뇌이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런 행동을 하고 나면 다시 후회하면서 더 많이 걱정했다. 여태껏 그에게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었기에 쉽게 잊는 일이 너무 벅차게만 느껴졌을게다. 그래도 잊어야 하고, 그것이 현명한 선택임을 알지만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있었다.

2. 내담자의 상태와 현재 증상 파악

내담자의 우울증 상태는 상당히 심각하다. 이 정도라면 1차 우울증으로 상당히 오래 진행돼왔다고 볼 수 있다. 전술한 대로 1차 우울증은 어려서부터 자존감이 저하되어 진행되면서 정신에너지가 고갈되고 맥이 빠진 상태다. 대개 1차 우울증은 중요한 사람이나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존재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결과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내담자는 지금 긍정적인 에너지가 심각하게 저하돼 있는 반면 부정성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의 심리적인 불안감은 이러한 결과로 초래됐기 때문에 치료에 앞서 불안 요인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

1) 내담자의 증상 완화에서 불안 요인

내담자가 느끼는 일련의 걱정과 불안은 한마디로 안정되지 못한 심리상태다. 불안은 심리학적으로 주로 불쾌한 느낌과 그것에 부합되는 신경자극 전달, 또는 그런 부정적 자극에 대한 지각과의 결합이다. 프로이트는 불안에 대하여 누구보다 많이 논하였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불안은 실재적인 것과 도덕적인 것, 그리고 신경증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실재적 불안이란 모든 사람이 겪는 것으로 별 문제가 없는데 비해, 신경증적 불안이란 병리적으로 구분된다. 실재적 불안이란 외부로부터 기대되는 손상에 대한 반응이고, 대체로 특정한 이유 없이 막연하게 불안을 느끼는 상태다. 내담자가 아버지에 대하여 느끼는 불안은 지난날 좋지 않은 경험과 관련된 실재적 불안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오해하기 쉬운 실재적 불안에 대해 더 알아둘 필요가 있다. 실재적 불안은 감각적으로 증가된 주의 깊음과 운동신경적 긴장상태이지만, 전개과정에서 다르게 나타난다. 여기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옛날의 충격적 체험을 반복해서 느끼는 것으로 어떤 신호에 한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때 여타의 반응은 새로운 위험상태에 따라 조절되거나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행위들로 발현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옛날 경험이 우위를 차지하면서 불안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전체 반응이 소진되고 나면 감정 상태가 둔해지는 경우다. 그에 따라 현재 내담자의 심리상태는 부적합한 감정이 되는 느낌을 갖는 점에서 실재적 불안은 현실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하는 능력으로 걱정하는 결과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생활에서 경험되는 불쾌한 경험으로 반복될까봐 걱정하면서 더 유발되고 있다. 그에 대한 반응이 조금은 과도하다는 것이 문제를 더 유발시킬 수는 있다. 그러면 실재적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지 현실적 문제에 가급적이면 신경을 덜 기울이도록 노력하는 태도가 간단한 처치가 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내담자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한 가지를 권하고 싶다. 내담자의 경우 일단 불안감을 유발하는 주체인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는 그녀에게 불안을 자극할 뿐 아니라,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이제 그녀는 아버지가 어떤 경우든 술을 자주 마시는 것은 심리적으로 편치 않거나 속상함, 불만감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흔히 술을 마실 때 동기를 갖게 마련이다. 그 동기는 대개 술을 통해 힘듦과 괴로움을 잊어보려는 수단이다. 일반적으로 술을 많이 마시는 남자는 착한 사람이라 보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것은 일면 맞는 말이지만, 알콜중독으로 이행하지 않으려면 정도가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실제 남자가 술을 마시는 주된 원인은 가정에서 부부 사이가 원만치 못하거나 직장에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내담자의 아버지는 가정에서 따뜻한 배려를 필요로 한다.

칼 융은 술을 많이 마시는 행동은 모성애가 그리운 것이라 말한다. 술을 마시면 포근한 어머니 품에 안기듯 모든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효과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녀의 아버지가 가정에서 인정받고 따뜻한 배려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점과 관련하여 내담자는 아버지의 행동보다 그 행동이 유발되는 심리 문제를 주목하여 이해하려는 태도가 불안감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편이 일시적이기는 해도 그녀가 아버지에 관한 불안감 해소에 도움이 되는 점에서다. 설령 내담자가 취하는 노력으로 상황을 완전하게 바꾸지는 못해도 아버지의 행동을 마음으로나마 일단 허용할 수는 있다. 그러면 내담자는 스스로 많이 달라지는 느낌을 경험한다.

이제 그녀는 아버지의 행동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그러면 아버지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되고, 나아가 그럴 수밖에 없는 아버지가 가련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아버지로 인해 겪는 심리적 괴로움이나 불안감은 큰 문제가 없어질지 모른다. 내담자에게 있어 불안감은 주변의 변화로 인해 유발됐지만, 거기에 강박적으로 과도하게 반응하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그런 아버지의 행동은 그녀에게 별다른 것이 아닐지 모른다. 이해는 문제를 작게 만드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런 모습은 남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아버지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남자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이해를 노력하는 과정에서 내담자는 아버지의 행동을 통해 세상 남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 신경증적인 불안에 대하여

앞에서 우리는 내담자의 불안감에 대해 실재적 불안으로 기술했다. 여기서는 신경증적, 즉 노이로제적인 불안에 대해서 더 논해야 한다.

불안에는 크게 현실적 성격을 가진 실재적 불안 외에 노이로제적인 불안이 있다. 불안이 노이로제적이란 일종의 병적 불안 증세를 말한다. 전술한 실재적 불안이라는 현실적 불안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외부의 충격적 경험이나 현실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노이로제적이란 치료를 요하는 것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덮어놓고 불안해하는 병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런 노이로제적 불안증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는 일반적 불안증이다. 일반적이란 특별한 이유 없이 막연하게 불안이 느껴지는 일종의 ‘기대불안’이다. 불안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도 괜히 불안감을 느껴야 하는 전형적인 불안 노이로제다. 두번째로는 어떤 특정한 표상 내용에 단단히 연결된 것으로 공포증이다. 공포증으로 인한 불안은 외부적 위험과 전혀 관계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포증의 경우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이 부적합하게 과장된 것으로 인식된다. 이는 당사자의 과도한 반응으로 스스로 공포감을 유발하는 현상이다.

마지막으로 히스테리 증상의 불안과 심한 노이로제 증상에서의 불안 형태다. 이런 불안은 리비도가 정상적으로 발현되지 않아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성욕 불만과 관련된다. 본능적 욕구가 발휘되지 못하여 정신의 특유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불안인 것이다. 이런 경우 다른 징후를 동반할 때도 있고, 또 징후들과는 독립적으로 발작이 일어나거나 2-3주, 아니면 그 이상 지속되는 상태로 나타난다. 이같은 노이로제적 불안은 외부 위험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유발되는 점이 특이하다.

그런 점에서 노이로제적 불안이 일어나는 가장 일반적 원인은 좌절된 흥분이다. 마음 깊이에서 일어나는 흥분을 발산하지 못하고 자꾸만 억제하면 불안으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정신에너지인 리비도(Libido)론으로 설명한다. 리비도적 흥분이 촉발되었으나 충족되지 않거나 적절히 발현되지 않을 때, 그쪽으로 사용되기 위해 쏠렸던 리비도가 불안증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아이들에게 상당히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공포증이 좋은 예다. 아이들은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낯선 사람들을 대하면 불안감을 갖는다. 아이들에게 외로움이나 낯선 얼굴 등은 친숙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 아이는 리비도적 흥분을 제어할 수 없고, 유동적 상태를 견뎌내지 못한 채 불안으로 변화된 상태다. 이런 경우 불안은 외부 자극에 의한 것보다는 노이로제적 측면이 많다.

노이로제적 불안에서는 억압이 중요한 이유로 지적된다. 억압은 감정의 여러 표상이 왜곡되는 현상인 점에서다. 억압은 감정이 제대로 발산되지 못하여 눌려있는 상태이기에 불안을 생성하는 주된 요인이다. 심리적 억압 상태에서는 공격적이든, 사랑이든, 어떤 성격이든 거의 언제나 불안을 만들어낸다. 어쨌든 불안 유발요인과 불안 경험상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아의 허약함, 신체 리듬의 변화, 억압 등은 모두 불안을 만드는 요인으로 인정된다. 물론 이런 이론은 모두 학문적으로 설명하는 불안의 요인이다.

그렇기에 치료자는 불안의 학문적 원리를 떠나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자 한다. 노이로제적 불안은 한마디로 매우 현실적이지 못하다. 다시 말하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을 걱정하여 불편해하는 상태다. 이는 돌아오지 않은 것을 미리 상상하여 불안을 스스로 자초하는 꼴이다. 이런 노이로제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지금은 생각하지 말고, 일이 닥치면 그때 대응한다는 생각이다. 일이 일어나는 것, 또 어떻게 일어나든 그때 가서 직면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있는 그대로 경험하겠다”는 솔직하고 진실한 자세가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3. 상담 과정에서 갈등하는 내담자

내담자가 기대하는 만큼 진행되지 않는 상담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심리적 변화란 상담 몇 번으로 쉽게 변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몇 번의 상담을 거치면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순환의 원리처럼 막혔던 부분이 뚫리면 금방 치료될 거라는 희망이 생기기지만,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상담 기간을 인내해야 하는 정도로 생각된다. 이런 상태는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과정과도 같다. 그동안 내담자들이 잘못 살아온 심리적 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이유 때문이다. 전술한 내담자의 경우가 바로 그랗다.

1)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기 전의 상태

1차 우울증의 경우 대개 3개월의 응급처치 기간이 지나면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증상이 완화되는 편이다. 치료자는 우울증 환자들을 여러 번 치료하면서 노하우를 발견하였다. 물론 오랜 경험의 소산이라 소상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대개 심각한 부정성의 상태에서 벗어나는데 초점을 두고 치료하는 것이 중심이다.

이런 원리에 따라 치료 중 내담자는 상당한 심리 변화를 경험했다.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응급처치 기간에 상당한 변화를 보이면 치료 결과가 긍정적이고 상당히 희망적이다. 전술한 내담자의 경우도 상담 횟수를 거듭하면서 심리 변화를 경험했다. 이런 변화에는 물론 치료자가 상담을 다시 기록하면서 반성하는 계기로 삼으라고 한 것도 한몫 했다. 그래도 내담자에게는 아직 정상적인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내담자가 정상적인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학교생활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점을 우선 꼽아야 한다. 그녀는 여전히 아침에는 늦게 일어나 지각을 면치 못했다. 지각하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것은 의지가 살아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수업시간에 별다른 흥미를 갖지 못하는 원인도 있었다.

예를 들어, 가상강의 시간엔 카페에 들어가 글이나 올리고, 인터넷에서 선배 언니와 쪽지를 주고받다 저녁에 야구보러 갈 약속을 한다. 그렇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와 기숙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도착해 좀 쉬다가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녀의 일과다. 상담받으러 올 때도 부정적인 틀이 여전히 작용하는 경험을 한다. “상담에서는 또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후회하겠지. 별다른 도움을 못 받겠지!” 하는 것이다.

2) 쉽게 달라지지 않는 내담자의 심리

내담자의 부정적 심리는 어느 정도 상태인가가 중요하다. 그 상태는 그녀가 치료되는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내담자가 갖는 부정성이 완전히 해소된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다만 수준을 낮추는 것이 치료 효과다. 인간이 가진 부정성이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할 과제다. 내담자의 경우 그 부정성이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정도면 상당히 호전된 것이다. 이는 정신장애와 관련돼 이해된다. 모든 정신장애란 스스로 생활하기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이때 더 심각한 증상은 누군가 도움 없이는 스스로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경우다.

다행히도 내담자는 기대하는 정도의 상태 호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 상태보다는 치료자와의 대화가 조금은 자유스러워졌다. 이렇게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해졌다고 해서 상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회기에서는 말이 유난히 잘 안 되는 때도 있다. 그리고 눈물이 많이 나와 상담이 끝나고도 혼자 한참을 울기도 한다. 그런 자신이 안타깝고 불쌍해서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지는 경우도 여러 번 있다.

어떤 때는 친한 언니와 야구장 가는 것도 귀찮아 아프다는 핑계로 약속을 취소하지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편이다. 그런 때는 혼자 공원의 벤치에 앉아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친구에게 문자도 보낸다. 괜히 시간을 보내느라 서점도 둘러본다. 그러면 일시적이지만 우울한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 듯한 느낌을 갖는다. 그녀는 우울할 때 대개 그런 식으로 한두 시간 혼자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는다.

그래도 내담자는 상담을 통해 후련해지는 마음과 자신의 옆에 의지할 만한 치료자가 있다는 것이 무척 안심됨을 경험했다. 이는 대단히 좋은 결과로 생각될지 모르나, 더 깊게 치료자 마음이 그리 편한 것은 아니다. 얼마나 오래 대화할 상대 없이 외롭게 보내며 살아왔는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치료자는 상담에서 그녀가 입시라는 심리적 압박을 받으면서도 누구와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없었던 상황이 그녀를 엄청난 고통으로 내몰았음을 알게 됐다.

실제 내담자는 상담에서 그런 측면을 여러 차례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누군가와 마음을 놓고 소통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의 문을 여는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는 경험한 사람들만 알 수 있다. 그것이 치료자를 더 의지하고자 하는 심리적 반응으로 보인다.

3) 갈등하는 중 변화의 희망

내담자 심리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상담의 횟수를 거듭하면서 내담자 심리에 서서히 변화가 왔다. 심리적으로 갈등하던 것들이 많이 정리됐고, 학교생활도 나아지고 있었다. 이런 그녀의 태도에 부모도 점차 달라질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상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었다.

그녀의 변화는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통화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어느 날 오랜만에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스스로 뿌듯할 정도로 자제했다. 힘들어도 혼자 힘으로 이기려는 결심으로 자제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전화나 문자를 하면 힘들어 질 것을 알기 때문에 가급적 오래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어 전화를 걸거나 짧은 통화를 했지만 많이 참는 편이다. 이런 자제를 예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당시 내담자는 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자신을 제어하지 못했다. 헤어진 남자친구의 전화를 기다리는 마음을 쉽게 중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참지 못하여 전화를 한 경우가 허다했다.

한번 통화 후 다시 자제력을 잃는 수도 있지만, 그녀는 스스로의 결심을 지키고 싶어한다. 그러다 보니 남자친구로부터 “너 많이 어른이 되었군!” 하고 문자를 받기도 했다. 그는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문자에 남자친구가 답이 없으면 우울해하곤 한다. 아직도 남자친구가 반갑게 전화를 받아주지 않으면 괴롭다. 남자친구의 말과 달리 그녀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나보다 스스로 생각한다.

어느날엔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웠는데, 벨소리가 들려 전화를 받았다. 전에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였다. 그 남자가 그녀에게 관심있어 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있냐”고 물은 것이다. 토요일 그 애를 만날 것 같다는 마음에 약간 흥분이 된다. 그녀를 누군가가 좋아해준다는 것이 기뻤고 고마웠다. 그 순간에도 그녀의 부정적인 틀이 또 발동한다. “내가 싫어지면 어쩌지?” 아직도 마음에 부정성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증상이 상당히 호전된 경우다.

임상경험에 의하면 내담자가 드러나는 정도로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줄다리기식으로 몇번 이랬다 저랬다 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그러다 상당 시일이 경과되면 비로소 옛날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 마치 지름길이 편리함을 알지만 옛날 자주 다니던 꼬불꼬불한 먼 길을 더 선호하는 심리와 같다. 그러므로 내담자만이 갖는 심리적 현상이 아니라, 누구나 갖는 보편적인 심리다. 변화를 기대하고 희망하면서도 이미 익숙해진 습관을 쉽게 바꾸지 못하는 점에서다.

여기에는 이율배반의 심리적 특성이 존재한다. 옛 습관을 버리고 싶지만 이미 정(情)이 들어 쉽게 버리지 못하거나 끊어버리고 싶지 않은 심리다. 달리 말하면 잘못된 습관을 버리고 싶지만 이미 익숙해진 것 때문에 그래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은근히 내면으로는 당기는 것이다.

치료자가 이런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내담자에게 자신이 일러준 대로 왜 확 바꾸지 못하는가? 하고 보챌 것이다. 그러면 치료자는 스스로 치료를 포기할 수도 있다. 성급한 마음이 치료자의 자존심을 자극하여 좌절하게 만들어 치료를 포기하는 것이다. 치료자는 내담자 증상이 빠른 시일에 변화되는 기대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 성급한 마음으로 치료하면 실패하기 쉽고, 그런 방식으로는 치료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치료는 내담자와 함께 단순히 ‘마음의 여행’을 떠나는 것일 뿐 아니라,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 지난한 싸움이다. 성공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치료자에게 무던한 인내가 요구되는 이유다.

4. 결론: 우울증 예방 위해 부모와의 관계에서 심리적 환경이 중요

이상에서 우리는 1차 우울증의 사례에 해당하는 전반부를 다루면서 분석을 시도했다. 1차 우울증은 어려서부터 가까운 사람들, 특히 부모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해 정신에너지가 결핍된 상태로 나타난다. 이런 심리적 결핍 상태가 성장 과정에서도 개선되지 않으면 우울증으로 이행된다. 그 결과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사람을 대하는 사회적 상황에서 사람을 대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대인공포증이 발병하고 의욕이 사라지면서 일상생활에 심각한 불편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1차 우울증은 유능한 치료자에게 장기치료를 받아야 치료되는 질병이다. 1차 우울증을 다른 우울증 치료하듯 한다면 효과도 없을 뿐 아니라 성공적인 치료를 할 수 없다. 1차 우울증을 단순히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도 무리다. 약물은 어느 정도 증상 호전이 가능하지만, 근본 치료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치료자는 임상에서 여러 번 직면한 경험이 있다.

그러니까 성장 과정에서 오래 인정과 사랑을 받지 못해 심각한 우울증이 유발된 경우를 두고, 몇 마디 위로 정도나 몇 번의 약물로는 그 뿌리가 치료되기 어렵다.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1차 우울증의 뿌리는 열등감이다. 열등감이란 뿌리깊은 것이어서 약물로 완전히 치료가 어렵기 때문에, 치료자는 1차 우울증을 나름 ‘뿌리가 있는 우울증’이라 부른다.

다행히 위 내담자는 어느 정도 치료자를 신뢰해 상담 과정이 대체로 순조롭다. 이는 내담자의 성장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내담자는 1차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성격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특성이 두드러질 정도로 매우 이성(理性)적이었다. 이런 그녀가 어두운 감정에 압도되면 합리적이나 객관적 사고 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를 밝히면 내담자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어진 자연적인 환경은 열악한 것이 아니었고,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넉넉한 가정이었다. 문제는 부모와의 관계가 중요시되는 심리적 환경이 문제였다. 아동과 청소년이 성장 과정에서 자연적 환경보다 부모와의 심리적 환경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