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17장 동기와 인지 증상의 치료

우울증은 겉으로는 드러나는 외부적인 것과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부적인 것을 굳이 인지적인 증상이라 한다면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문제는 동기로 말할 수 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인지 작용도 뇌에서 일어나고, 동기도 뇌의 작용이라는 점에서는 외부와 내면을 구분한다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편의상 뇌와 심리라는 측면으로 구분하여 외부로 드러나는 인지의 현상과 동기의 심리적 내면으로 구분하여 고찰하기로 하자.

1. 동기의 상실과 의존성의 치료적 대응

동기(動機)는 행동을 유발하는 내적인 동인이다. 심리적인 행동이 일어나는 것을 동기에 두고 행동의 근본을 이해하려 한다. 동기는 나타나는 행동과는 달리 내적 심리 작용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심리학에서는 본능이나 욕구와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동기가 우울증에서는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를 고찰하기로 한다.

1) 동기의 상실

우울증은 동기의 결여를 특징으로 한다. 동기는 행동을 일으키는 내적인 동인이라 했다. 그러나 우울증은 동기가 결여돼 있어 움직일 에너지가 감소된 상태다. 이런 점에서 심각한 우울증의 주요 증상을 동기의 부족이라고 말한다. 동기의 결여 상태에서 그들은 단순한 과제조차 수행하려 하지 않는다.

동기 결여로 인해 그들은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하거나 알고 있지만, 하려는 내적인 욕망이나 자극이 없다. 대부분 그들은 자신이 활동할 수 없다고 믿거나 그 활동을 함으로써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동기는 긍정적 동기와 부정적 동기가 있다. 여기서 의미를 두는 것은 물론 긍정적 동기다. 이들에게 긍정적 동기의 상실은 대개 건설적 활동을 회피하려는 강한 욕망을 수반한다. 이때 그들에게 나타나는 회피 심리는 과제를 내줄 때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데서 분명해진다.

2) 동기의 극복

동기의 극복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는 인지 행동 절차가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때 우울증 환자들이 회피했던 활동을 실험적으로 시도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이 실험상황이 잘못된 생각을 수정하고 성공을 경험하도록 도울 수 있기 때문에 분명하고 즉각적인 성공은 좋은 동기를 유발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대개 삶의 어떤 특별한 측면을 통제할 수 있음을 깨달으면, 다른 면들을 통제하기 위해 더 많은 시도를 하는 편이다. 이와 관련해 치료자는 우울증 환자에게 특정한 지시를 하여 신체가 행동하도록 도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우울증 환자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야 움직여라… 마루를 차거라 근육들아 움직여라!” 이는 능동적 자기지시다. 그러나 환자에 따라 능동적 자기지시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상적인 일상과 의무를 피하거나 벗어나고 싶어하는 환자들이 그런 편이다. 그들은 능동적 자기지시보다는 일단 그 상황이나 사건에서 회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 증상의 기저에는 대개 절망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절망감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어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는 우울증에서도 절망감, 자살 그리고 회피나 도피 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이유다.

3) 의존성의 증가

의존성은 우울증상의 특징이다. 기력이 없는 사람은 기력이 강한 사람을 의지하는 것처럼 맥빠진 우울증 환자에게는 의존성이 증가한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거나 받아주는 사람을 강하게 의존하거나 집착하는데, 이는 강한 의존성이 우울증의 보편적 증상인 이유다.

실제 우울증 환자는 일상적 활동을 수행할 때 타인의 도움을 구하려는 강한 충동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나타나는 도움받고자 하는 마음은 요구나 호소의 형식을 띨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도움의 필요성보다 과장하게 된다. 게다가 이들을 돕는 행위도 일시적인 안심을 줄 뿐 항구적이지 않은데, 이런 경우 도움은 그들의 의존성과 자신감 결여를 강화시킬 뿐이다.

의존성에는 건설적 의존성과 퇴행적 의존성이 있다. 우울증에 대처하는 방법 교육은 건설적 의존성의 형태로 볼 수 있다. 건설적 의존성으로 인해 우울증 환자는 도움 없이는 풀 수 없는 문제를 갖고 전문가의 도움을 구한다. 반면 퇴행적 의존성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도 도움을 찾는다. 퇴행적 의존성을 보임으로써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을 강화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이 치료자에게 너무 의존하게 되는 것을 걱정한다.

4) 의존성의 극복

의존성의 극복은 우울증 환자가 더 독립적이 되는 것이다. 이런 독립에는 새로운 사고방법과 대처기술을 배움으로써 덜 의존할 수 있다. 안전장치가 없다면 건설적 의존성은 파괴적 의존성으로 퇴락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우울증을 견디는 방법을 배우면서도 치료자가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계속 주장하는 우울증 환자에게서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의존성 극복을 위해선 자기신뢰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 훈련은 우울증 환자에게 자신의 활동을 주도하고 정서적 반응을 수정하는 데 책임감을 증가시키는 것도 포함된다.

의존성 극복을 위한 훈련은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첫째로 자기 신뢰를 회복하는 훈련의 단계다. 처음에 우울증 환자는 잠자리 준비와 같은 이전의 자기신뢰 활동을 회복시킨다. 그가 향상됨에 따라 그의 독자적인 활동의 범위를 증가시키도록 지시받는다. 타인을 통해서만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 환자들에게는 혼자 영화관이나 박물관, 그리고 식사하러 가도록 격려한다. 자기신뢰 훈련에서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상의 활동을 가능하면 많이 하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활동에는 남녀 구분이 없는데, 남성이 요리를 하거나 집안 허드렛일을 할 수도 있고 여성이 집이나 차에 관련된 기계 작업을 할 수도 있다.

둘째로 자기의존성을 증가시키는 훈련이다. 의존성은 자기의존과 타인의존이 있다. 우울증 환자는 타인의존이 높은 반면에 자기의존은 약화되어 있다. 자기의존은 자기 존재를 더 신뢰한다는 점에서 자기신뢰와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자기의존성 증가를 위해 모든 범위의 인지기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 레퍼토리는 할 수 있다고 믿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 실험을 하고 “귀찮아, 너무 어려워”, “누군가 하겠지”, “시간이 없어” 등의 자발성을 주는 생각들에 적극 도전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울증 환자는 낯선 도시에서 혼자 주말을 보내는 것과 같이 자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함으로서 자기신뢰를 급격히 증가시킬 수도 있다. 우울증 환자 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의존성과 독립성을 선택하는 수많은 상황에 매일 직면한다. 일반적인 방략은 그가 자기신뢰를 선택하는 횟수를 검색하고 그 수를 증가시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기신뢰 훈련의 역할은 치료에서 주장훈련의 역할과 유사하다.

셋째로 자기주장 훈련이다. 우울해지기 전 우울증 환자는 대개 적절한 주장과 자기신뢰 행동에 관한 레퍼토리(repertory)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일단 우울해지면 이 두 영역에서 결함을 보인다. 이때 그의 비주장성과 의존성이 표적증상이 되며, 주장훈련이나 자기신뢰 훈련이 적절하다. 우울증이 회복되면 그는 더 이상 이러한 특별한 개입형태를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떤 환자들은 우울증이 없어진 후에도 여전히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비주장적이다. 이들은 추가적인 자기신뢰 훈련이나 주장훈련을 필요로 하면서도 대개 주장성이나 의존성에 관련된 부적응적 생각들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이런 경우 특별한 훈련이 그들의 신념을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주장훈련은 자신의 안녕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는 우울증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자기신뢰 훈련은 타인의 의지 없이는 자신이 무력하다고 믿는 우울증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2. 인지의 우유부단과 치료적 대응

인지는 우울증의 유지와 악화에 작용한다. 이는 인지 문제가 우울증 생성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유다. 인지 문제는 우울증 환자의 사고와 관련돼 증상으로 나타나며, 생각이나 행동이 취해지는 형태로 정해진다. 이런 인지 증상의 대표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우유부단

우유부단(優柔不斷)은 확고하게 결단이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결단과 결정을 내리는데 망설이거나 주저함을 보이는 편이다. 이들의 우유부단함은 내면에서 강박적 성격이 작용한데서 비롯된다. 겉으로는 맥이 빠져 아무 것이나 쉽게 포기하고 허용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은 더욱 완벽성을 추구한다. 이는 강박성이 우울증에서 부차 증상으로 나타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설령 어떤 결단을 내렸다 해도 자신의 결정이 현명한지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한다.

이들의 우유부단함은 질병의 원인을 이해하는 데서도 비롯된다. 그들은 흔히 자신의 직업, 가족, 다른 외부상황 등이 우울증 원인이며, 그런 문제 상황을 떠나면 우울증은 없어질 것이라 믿고 있다. 또다른 문제는 그들이 만족해하지 않을 때 우울증이 유발된다고 믿은 것인데, 이로 인해 그들은 그런 변화를 되돌릴 수만 있다면 더 이상 우울해지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치료자는 그들에게 우울할 때 주요한 결정을 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실제로 거의 모든 경우에 주요한 결정들은 역기능의 결과를 초래하지 않게 지연시킬 수도 있다.

우울증은 증상 정도에 따라 결정하는 것도 달라진다. 그들의 정신능력이 정상 이하로 기능할 때는 우울하지 않을 때만큼 장기적인 결정을 할 수 없는데, 이는 우울에서 벗어났을 때 그의 생활상황을 다르게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기될 수 없는 중요한 결정에 대해서는 그들의 신중한 주의력이 요구되기도 하기에 치료자와 우울증 환자는 각 선택의 장단점을 열거하고 나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지침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우울증 환자는 대안이 되는 결정들과 각각 가능한 결과들의 목록을 작성해도 부정적으로 예측하기 때문에 결정을 못할 때도 있다. 이때 치료자는 어떠한 선택을 한다 해도 별다른 문제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우울증 환자에게 결정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2) 우유부단을 극복하는 방법

우울중 환자들의 우유부단함을 극복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대개 어떤 선택을 하는 데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선택 요령을 도와주면 된다. 여기에는 단순한 몇 가지 방법들이 있다.

첫째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우울증 환자들이 대안들을 가나다 순으로 목록을 만들고, 그런 후 첫번째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동전을 던지는 방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동전을 던져 그대로 따르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지만 정신의 결단을 도와주는 차원에서 상당히 유용한 방법이다. 다만 이때 중요한 것은 우울증 환자가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이런 방법은 물론 우울증 환자의 결단의 확실성을 돕기 위한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결정이 옳다는 것이 절대 확실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들은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없다 해도 그들은 그렇게 확신하려 한다.

둘째로 모든 선택은 실패가 아니라 결과가 있다는 인식 전환이다. 사건 유발에서 어떤 것도 보장은 없다는 사실은 우울증 환자들을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좋아하는 사건과 싫어하는 사건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보장받는 방법은 없다 해도 치료자와 우울증 환자는 어떤 대안적 결정들을 조사할 수 있다. 우울증 환자에게 어떠한 선택들도 반드시 틀린 것은 없으며 다만 다를 뿐이고, 각각의 결정은 다른 결과를 가져올 뿐임을 인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치료자는 우울증 환자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상황으로 구조화하는 경향을 살펴보아야 한다.

한 우울증 환자는 단과대학에 가야할지 종합대학에 가야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여기서 결정의 어려움은 두 선택의 단점만을 보고 장점을 보지 않은 데 있었다. 치료에서 그는 각 선택의 장점을 평가해 보고 단점을 수정하고 대처하기 위한 방법을 교육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모든 것에 승리하고, 패배하는 것은 없는 상황으로 변화시켰다.

셋째로 즉시 행동해야 하는 결정을 다루는 방법이다. 한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해야 하는 결정 때문에 2-3주 몹시 혼란스러웠다. 결정은 바라는 두 대학원 중 어디를 선택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한 대학원은 상당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으나 다른 대학원은 더 유명했다. 이때 그녀는 이기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지 아니면 부모님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지를 반추했다. 그녀는 질 수 없는 상황을 이길 수 없는 상황으로 바꾸려 했다. 그녀는 재정지원이 없지만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최종적 결정을 해야 하는 날에 공황적인 느낌을 경험했다. 이런 결정은 다음과 같은 점들이 관련되어 있다. 이번 결정은 어떤 결정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그녀의 행동은 강박적인 문제의 결과로 절대적 확신을 원한다는 점이다.

그녀의 불안은 어느 선택이 옳은지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이런 문제를 두고 합리적인 반응을 한다면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 혹은 옳은 것을 예측할 수 없다. 누구도 미래를 예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어느 학교를 선택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그녀는 절대적 확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결정하고 그 다음 “우울해지지 말고 대처해야 한다.” 그녀는 어떤 결정을 하든 일주일간 후회할 것을 예상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그녀는 후회의 감정을 수용하고 인지적 기법으로 이에 대처해야 한다.

이런 결정을 앞두고 치료자는 동전을 활용했다. 그는 앞면이 A학교이고 뒷면이 B학교라 말하고 동전을 던졌다. 그녀에게 결과를 보여주기 전, 어떤 면이 나오길 원하는지 물었다. 그녀가 ‘A학교’라 대답했을 때, 치료자는 동전을 그녀에게 보여주지 않고 주머니 속에 넣고는 그녀가 결정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그 학교에 전화해서 자신이 갈 것을 확실히 했다. 치료자는 우울증 환자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상황을 구조화했고 반추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이 방략은 선택의 문제를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거나 즉각적 선택을 해야 할 때 필요하다.

대개 우울증 환자들은 두려움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기초해 선택할 확률을 증가시키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기법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강박적 우유부단함을 끊는 극적인 예를 보여준다. 이때 죄책감은 우울증 환자들이 어떤 결정을 할 때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한 우울증 환자는 새 차를 사야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새 차를 사는 것이 가족의 돈을 뺏는 것이라 믿었으나, 자신의 일을 위해서는 차를 필요로 했다. 우울증 환자의 우유부단함을 다룰 때, 치료자는 죄책감을 없애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때로는 부분적인 해결책만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여러 부분적인 해결책들이 누적되면 그 결과로 이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 다음 실수를 했다는 믿음에서 오는 죄책감에 맞서 자신을 스스로 무마시키는 것을 배워야 한다.

3. 문제에 압도당함에 대한 치료적 대응

문제에 압도당함은 우울증의 인지 증상에 의한 특징이다. 어떤 문제를 직면하면 해결에 엄두가 나지 않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그들이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평소 할 수 있던 것도 힘 빠진 상태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다고 인지한다. 여기서는 물론 그들에게 부정적 인지가 작용한 결과다. 그들의 부정적 인지는 3가지 중요 구성요소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외부세계, 자신,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 관점이다. 그중 미래에 대한 부정적 관점은 절망감으로 우울증에서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은 치료이면서 해결책이 되는 점에서 다음 몇 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로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다. ‘압도되는 문제’들을 다루는 일반적인 방략은 우울증 환자로 하여금 그들이 다루는 특정 문제를 정확히 가려내 건설적인 절차를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갖고 있는 세계에 대한 공식을 ‘압도적이다’부터 ‘특정한 문제가 무엇인가?’, ‘해결책은 무엇인가?’로 재개념화하는 편이다. 그들은 또 한 번에 하나의 일만 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없음을 주지시켜야 한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에게 여러 문제들의 목록을 만들고 우선순위를 정하게 할 수는 있다. 우울증 환자에게 다음 순위들이 문제가 될 때는 활동계획을 세우는 것이 종종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계획의 시작은 누구나 어렵지만 계획이 진행되면 일이 훨씬 쉬워진다. 우울증 환자는 이런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때로 창조적인 문제해결이 필요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우울하지 않은 시점에서는 명백했던 해결책들을 생각해내지 못할 때도 많다. 이에 대해 아론 백은 어떤 사업가를 예로 든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의 양에 압박을 느끼면서도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치료자는 자동응답기를 구입할 것을 권유했다. 이 단순한 개입으로 딜레마는 해결되었다.

둘째로 우울증 환자에게 직접 질문해 보는 방법이다. 다른 사람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겠는가를 우울증 환자에게 질문할 수 있다.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우울증 환자는 자기 자신에게 자문하게 된다.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이 해야 할 것보다 더 많은 일을 떠맡고 있는가 하면, 반대로 실제보다 더 많은 일을 맡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잘못 지각한다. 한 주부는 전일제 자원봉사 자리를 승낙하고 커다란 조직의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도 정당 사무국원으로 입후보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참여를 줄여나가거나 철회는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그녀에게는 주어지는 요구를 줄이는 데 있어 더 주장적이 될 필요가 있다.

셋째로 적절한 상태로 한계를 정하는 작업이다. 대개 이들이 문제에 압도당함은 적절하지 않음에 있다. 대부분 환자들이 어려운 점들을 과장하고 교정 활동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에 압도당한다. 그로 인해 그들은 어떤 행동도 전혀 취하지 못한다. 이때 그들에게는 적절하게 대처할 능력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방법의 하나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들을 상세히 나열하고 가능성들을 탐색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은 사건이나 문제에 적절한 상태로 한계를 정하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을 거치면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나 능력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낼 수도 있다. 이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해낸 일들을 기록하게 하는 일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인지적 왜곡을 교정할 수 있다. 무언가를 하려고 단순히 노력한 것이나 방법들에 대해 생각한 것만도 부분적인 성공을 나타내는 이유가 이들에게 잘 적용되는 것이다.

4. 자기비난과 치료적 대응

자기비난은 우울증의 특성으로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로 돌리려는 경향이다. 이런 경향은 자기비난을 초래하므로 자신의 못남과 무능함, 절제하지 못한 판단과 대응 등의 문제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에 대한 설명을 찾고자 하므로 인과론적 지각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결함을 심리적 장애의 근원으로 보기 쉽다. 이런 경향은 때때로 그들에게 중요한 다른 사람이 “좋아지려고만 한다면 좋아질 것이다”고 말하는 데서 지지되지만, 우울증이 심한 환자는 대개 터무니없이 극단적으로 자기 탓을 한다.

1) 자기비난과 비현실성

우울증 환자들의 자기비난은 현실성이 결여돼 있다. 주변에서 인정하는 객관적인 평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관적 평가에 의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그들의 부정성에서 비롯된, 객관성이 결여된 결과다. 이런 주관적 평가와 객관성 결여를 비현실적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입원한 어느 우울증 환자의 예를 들 수 있다. 우울증으로 입원한 어느 환자는 복도를 지나다 다른 우울증 환자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자동적으로 “내 탓이야, 내가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전염시켰어!”라고 생각했다. 이런 비현실적 자기비난에 의해 우울증 환자는 더 기분이 나빠진다. 치료자는 이 환자의 자기비난을 직접적으로 논박하면 “치료자가 나의 약점을 이해하지 못해!” 라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어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을 비난한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자기비난에 대한 인지적 접근은 지각의 문제를 활용할 수 있다. 우울증 환자로 하여금 특정 자기비난이 널리 퍼져 있음을 지각하도록 함으로써 이런 자각이 증가됨에 의해 자기비난적 사고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의 자기비난은 반복적이고 상투적인 성질이 있다는 이유로 이런 생각이 한 번 수정되면 치료자와 우울증 환자는 의미있는 이득을 얻게 된다. 우울증 환자는 자기비난을 하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보통이므로 특정한 자기비난을 인식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따라서 우울증 환자는 우울함이 심해질 때면 자기비난을 찾기 위해 이전의 사고를 돌이켜보면 된다.

자기비난에는 객관성이 결여돼 있다. 우울증은 주관성 질병이라 할 정도다. 자기비난은 우울증 환자의 객관성을 감소시킨다. 우울증 환자는 보통 자기비난이 정당하다고 믿기 때문에 이 단계는 중요하다. 한 가지 방법은 우울증 환자에게 “내가 당신 같은 실수를 했다고 가정합시다. 그것 때문에 저를 경멸하시겠습니까?” 라고 묻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다른 사람을 별로 비난하지 않는 만큼, 자기비난의 과장된 성질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가벼운 정도부터 중간 정도까지 우울증 환자들은 자기비난의 자기패배적 속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깨우침을 위해 다음은 그 문제를 잘 요약하고 있다. “만약 누군가 내 어깨 위에 올라앉아 내가 하는 일 모두를 비난한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어쩌면 고의는 아니더라도 당신은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당신은 단순히 기분만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에서도 적절하지 못하게 됩니다. 당신이 자기평가를 무시하려 노력한다면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더 성공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자기비난을 극복하는 방법

우울증 환자들은 스스로 자기를 비난하고 있다.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라거나 형편없는 존재로 평가절하시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물론 자신의 부정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정신에서 긍정성 수준이 증가하면 자신의 존재를 가치있게 평가하지만, 부정성이 증가하면 자신을 부정적으로 폄하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우울증 환자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힘들게 하거나 죽이기보다는 자신이 힘들게 하고 스스로를 죽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자기비난은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 자기비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이 제시될 수 있다.

첫째로 공격자 역할 연기다. 우울증 환자에게 객관성 획득은 자기비난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이런 객관성은 역할 연기에 의해 촉진될 수 있는데, 자신을 보는 방식, 즉 부적절하고 부적응적이며 약한 방식들을 극화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가령 실수를 인정하는 환자에게 언어적으로 공격하는 신랄한 비판자 역할을 하도록 일러준다. 숙련된 치료자는 언어 공격과 신랄한 비판의 방법을 통해 경험적으로 인지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환자의 왜곡과 자의적 추론을 드러내기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하는 방법이다. 그들이 비난자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준비되면, 논박연기를 하는 동시에 부정적 판단의 터무니없음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둘째로 자기비난에 대한 자각 증진이다. 우울증 환자의 자기비난에 대한 자각을 증진하는 다른 방식은 역할을 바꾸는 것이다. 이때 치료자는 환자에게 자기비하의 역할을 돕는다. 다음은 입원한 27세의 우울증 환자에 대한 역할 바꾸기의 활용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이전에 3번의 회기에 참여했으나 4번째 회기에 계속 자신을 “너무 어리석고 바보 같다”고 했다. 이러한 자기비난이 그녀가 새로운 과제를 시작하려는 시도를 방해했고, 사실 치료회기 자체도 방해하고 있었다. 이로써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생각을 통제할 수 있음을 알게 됐고, 우울의 상태는 어리석다고 느꼈다.

자신을 변화시키려면 누구든지 일단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치료 전에 환자는 자신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그러므로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자신을 자주 ‘어리석다’고 비난하는데, 비난 이유는 수학시간에 학급에서 성적이 항상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수학문제 때문에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쓸모없는 일인데도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자신을 비난한다. 이런 비난들은 우울증 환자에게 끼칠 숨겨진 효과를 살펴야 한다. 이때 역할 연기가 도움이 된다. 치료자는 역할 연기의 하나로 수영을 가르치는 것을 연습했다. 우울증 환자와 치료자는 둘 다 그 장면을 상상해볼 수 있다. 물 속에서 이완하는 법을 배워야 했기에 치료자는 너무 어리석어 그런 것을 배울 수 없다고 했다. 치료자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우울증 환자는 치료자가 한번 시도해보면 가르쳐준다고 했다. 그녀는 한사코 물속에 들어가면 어리석어 보일 것으로 생각되지만 수영을 배우려면 물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치료자가 틀림없이 바보 같은 짓을 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게 될 것을 염려했다. 이때 우울증 환자는 자신을 어렵게 한다고 하면서 치료자가 수영을 못 배우기 때문에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우울증 환자는 치료자가 자신을 어리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지적하고, 치료자가 물에 들어간 것을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그들은 자기의 주관적 기준으로도 얼마든지 비난할 수 있다. 그들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 생각만으로도 얼마든지 자기비난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객관적인 정보를 붙잡아야 한다. 우울증 환자는 주관적 정보에 기대고 있기에 객관적인 정보를 붙잡아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그녀는 치료자의 지시를 받는 것이 유익함을 자각했지만 자기를 비난하여 전체적인 학습과정이 방해받을 수도 있다. 대처 방법으로 치료자는 자기를 호소하도록, 즉 “한 번에 한 단계씩 나가고, 선척적인 능력이 부족한 것이 있으면 과외적인 노력으로 메꾸라!”고 교육할 수 있다. 이는 주관적 정보에서 객관적 정보에 무게중심을 옮기도록 강화하는 방법이다. 치료자와 우울증 환자는 수영 초심자든 문제 해결의 초심자든 초보자가 하게 마련인 서투른 행동 때문에 자신이나 치료자를 당황하게 만들까 걱정하는 우울증 환자의 두려움을 다뤄야 했다.

넷째로 자기비난을 공격하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의 자기비난을 공격하는 다른 방략은 자기비하적인 자동적 사고에 대해 합리적인 반응을 ‘자동적으로’ 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부정적 사고의 타당성에 도전해 자기를 더 합리적으로 평가하도록 대체하는 법을 배운다. 그 중에 하나는 ‘세칸 기법’(triple column)이다. 이를 활용하여 우울증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부정적 사고를 포착하고 무엇이 잘못되고 부적응적인 인지를 구체화시킬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숙제의 이행은 치료적 면접 동안에 형성된 방략을 시도하도록 하는 데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자기비난을 알아내고 이에 반응하는 기법을 적용한 예를 들 수 있다. 이 사례에서는 우울증 환자가 역할 연기 상황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하도록 하였다. 우울한 여성우울증 환자는 엄마나 아내로서 무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녀의 기본 신념은 가정에서 자신의 책임에 대해 평가하는 데서 드러난다. 그녀는 저녁식사를 차리면서 “음식이 맛있어야 하는데, 만약 먹을만 하지 않으면 새로 준비할께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노력의 결과를 지속적으로 평가절하를 시키는 경험으로 부정적 자기상을 강화하게 되었다. 특히 그녀는 다른 무엇보다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녀의 자기비난을 예상하도록 길들여졌으며 그럴 때마다 우울증 환자가 믿지 않는 긍정적인 지지발언을 해주었다.

다섯째로 대안적 반응의 검증이다. 자기비난에 대한 대안적 반응을 검증해 보는 것이다. 이때 치료자는 우울증 환자에게 가족들에게 하고 싶었던 특정한 말을 기억해보게 한다. 그녀는 “내 노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세요!” 또는 “여기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관심 좀 가져주세요!”라고 말하고자 했던 것을 생각해냈다. 치료자는 우울증 환자로 하여금 자기비난적인 것 이외의 어떤 메시지라도 전하도록 하면서 그런 상황을 역할연기로 하기로 했다. 그녀는 식사장면을 상상하고 남편에게 “당신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실수를 해서 색깔을 너무 많이 입혔죠. 그렇지만 맛은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때 그녀는 불편해졌고 “남편은 케이크에는 관심이 없을 거예요. 아마도 남편은 내가 뭔가 잘못되어 우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라고 말할 것이다. 그녀는 이런 생각에 대해 “이 케이크는 완벽하진 않지만 당신은 맛있게 먹을 거예요!”라고 반박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 우울증 환자는 자동적으로 생기는 두 가지의 자기비난을 찾아냈다. 우선 어떤 일을 하든 남편이 실망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점점 불안해지고, 남편이 “무능하니 무능할 수밖에 없지!”라고 기대할 것이라 결론지었다. 그녀의 자기비난은 여기서 계속된다. 다음으로 남편이나 심지어 두 큰아이를 볼 때마다 “그들이 말하기 전에” 자동적으로 자기비난을 해버린다. 나아가 자신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항상 “방어적”이라 비난하기에 이른다. 이런 문제를 다루는 방법에서는 일단 자기비난의 의미를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찾는다. 세칸 기법을 사용하여 자기비난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그녀의 “서투른 가정관리”에 대한 증거에 대해 긴 시간 토론할 수 있다. 그녀의 음식솜씨에 대해 자발적인 칭찬을 자주 했던 손님들을 떠올렸다. 그녀는 많은 자기비난이 사소한 실수를 과장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케이크에 맛없는 음식착색제를 너무 많이 입혔다고 해서 이 “케이크는 먹을 만하지 못하다.”고 결론지은 것이다.

5. 흑백논리적 사고와 치료적 대응

우울증은 어느 한 쪽을 구분하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마치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우울증의 사고에는 중간지대나 회색지대는 존재하지 않기에 반드시 둘 중의 하나가 존재할 뿐이다. 심지어 그들에게는 현실을 조직화하는데 있어서도 미숙성 아니면 성숙성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단 번에 도달하기 어려운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포괄적으로 판단하고, 경험에 대해 극단적이고 일차원적이고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을 보인다. 포괄적이고 극단적이고 일차원적이란 미숙성을 의미하는 반면에, 성숙한 사고는 생활상황을 여러 차원이나 속성으로 보고, 질적인 용어보다는 양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특히 성숙성에서는 절대적 기준보다는 상대적 기준을 사용하여 개념화한다. 그리고도 우울증에서는 개선이나 재시도는 불가능하며, 부정적인 결과를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지각하는 경향이 있다.

1) 흑백논리적 사고의 원인

우울증 환자들이 흑백논리적 사고를 하는 데는 여러 원인을 들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부정성의 증가를 들어야 한다. 부정성이 증가되면 여유로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간지내나 회색지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현실과는 다른 것이다. 현실에서는 엄연하게 존재한다고 해도 그들의 내면에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물론 그들의 부정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부정성이 증가하면 옳은 것이라도 부정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여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부정하거나 거부해버린다. 그들의 내면에서 부정성의 증가로 인해 수용되지 않고 거부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 결과다. 이런 원리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그것은 비단 우울증 환자들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내면에서 부정성이 증가하면 사실과는 상관없이 거부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된다는 것이다. 부정성이 증가하게 되면 심리적으로 여유로움이 상실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강박적인 특성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강박적인 성격이 부차적으로 존재한다. 이들에게 강박성은 때로는 강박증 환자처럼 철저한 모습을 보이게도 만든다. 앞에서 여유로움이 없어진다고 말했거니와 강박성격이 바로 그런 여유롭지 못한 것이 대표성을 갖는다. 이론 인해 그들은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구분해 놓아야만 마음이 편하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도저히 동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뭔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지 정답은 하나라는 사실에 집착해 있다. 하나 이상의 답은 그들에게 복잡함을 야기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설령 그들의 생각이 틀리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면의 강박성이 그렇게 고집하도록 작용한 결과다. 이런 이유로 만약 이들에게 누군가가 “이럴 수도 있고 저절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그들은 내면에서 화를 낼 것이다. 흑백논리적 사고의 위험성과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 분노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는 겉으로는 힘이 없어 보여도 내면으로는 화를 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분노는 물론 근원을 따진다면 앞에서 언급한 부정성을 들어야 한다. 임상의 경험에 의하면 부정성이 높아지면 내면에 분노가 일어난다. 이 분노는 사실과는 다른 것일 수 있고 사실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은 화를 갖고 있다. 우울증을 흔히 ‘홧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다만 사람들이 분노의 원인을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모든 정신병자는 내면에 분노를 가진 사람으로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그들의 부정성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런 분노를 때로 옳은 사실에 대해서도 인정하여 수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거부하는 태도를 고수한다. 우리의 말에 “쥐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고양이를 문다”는 것은 이와 관련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면에 부정성이 많은 자녀, 즉 분노하는 자녀는 부모에게 대들거나 반항할 것이다. 이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분노가 포화상태에 이르러서 자신도 모르게 항거하고 반격하는 모습인 것이다. 이는 우울증 환자의 흑백논리적 사고를 그들의 부정적인 심리적 상태에서 이해해야 할 이유인 것이다.

2) 흑백논리적 사고의 극복

우울증 환자의 흑백논리의 사고는 외부로 드러난 현상은 여유롭지 못하거나 강박적인 사고, 그리고 분노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그들의 부정성이 작용되어 비롯되고 있는 심리적 형상이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흑백논리는 쉽게 치유되기 어렵다. 우울증의 치료가 끝나가는 정도에서나 완화되거나 개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여기서는 일종의 치료적 대응으로 간단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여기에 범주적이고 실무율적 사고를 통하여 개선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무율적 사고란 생리학에서 생물체에 가한 자극이 일정한 수치 아래에서는 반응이 전혀 없다가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최대의 반응을 보이지만 그 이상은 아무리 강도를 높여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식의 사고다. 이는 실무율(悉無律, all-or-none law)이 자극과 관련해서 이해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다. 여기서는 다음의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로 반대 생각이다. 상황이나 사건을 뒤 짚어서 부분적 이득을 찾아보기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반대편이 긍정적인 측면이라는 생각이다. 우울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건에 대해 전형적으로 흑백논리의 반응을 자주 보이므로 그들의 고통도 상징적인 손실에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일이 완전한 손실로 여겨질지라도 어느 만큼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 우울로부터 막 회복된 한 여자는 상사에게 임금인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고 낙담했다. 치료자는 그 경험에서 어떤 긍정적인 면이 없었는가?에 대하여 물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그 경험이 “완전히 기분 나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치료자는 가능한 이익들을 나열해보라고 시켰다. 그녀는 생각해보고 나서 다음과 같은 이익을 나열할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요구한 경우였으므로, 다음에는 더 쉬워질 것이다. 앞으로는 자기주장을 즉시 할지 아니면 다음에 할지를 배울 필요도 있다.”, “사실 사장은 아주 친절했고, 앞으로는 그에게 말하는 것이 쉬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사장이 내 요구를 딱 잘라 거절한 것은 아니다. 그는 몇 달 후에 인상해줄 것을 고려해본다고 했다. 그러니까 한걸음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예는 특정 사건으로부터 단일한 나쁜 결과만을 기대하는 것이다. 어느 공장주는 자신이 경비의 상승과 수입의 감소 사이에 끼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치료자가 “이러한 일로 뭔가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나요?”라고 물을 때까지는 파산에 대한 생각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이에 생각이 미치게 되자, 그는 현 상황이 사업전환의 장애물로 여겼던 몇 해 동안 누적된 재고를 팔아치울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애라고 생각되던 것을 사업의 전환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마침내 이 기회에 자본을 형성하여 다른 사업으로 바꿀 수 있었다.

둘째로 자기질문의 사용이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미숙한’ 판단유형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잘 하게 되면, 사고양식을 자연스런 수준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 특히 자기질문을 사용하도록 훈련을 받을 수 있다. 이 기법이 다음에 예시된다. 우울증 환자의 흑백논리적 결론은 ‘언제나 완전한 실패자’이다. 실패의 정의가 무엇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실패에도 정도가 있다. 즉 어떤 실패는 다른 실패보다 더 심하다. 어떤 경험들이 단지 부분적 실패였다면, 그것들이 한편 부분적인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울증 환자의 생활의 영역에는 친구, 가족, 학교공부, 여가생활에서는 실패하지 않고 목표를 달성한 영역도 있다. 특정 영역에서 실패했다 해도 그 뒤로 그것이 개선되거나 성공적으로 된 경우도 있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한 인간으로서도 실패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은 항상 타인으로부터 반드시 거부당하는 것은 아니다. 좌절을 겪은 사람들은 자신을 거부함으로써 또 다른 고통을 겪을 필요도 없다. 이를 질문화 하여 우울증 환자의 긍정적인 답변을 이끌어낸다. 단순히 이런 질문을 함으로써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내린 판단을 둘러싼 단단한 벽을 허물 수 있다. 일단, 후속검증이라는 신선한 공기에 노출되고 나면 이런 판단은 자의성이나 부적응성이 감소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6. 결론: 치료할 수 없는 부분들에는 신앙의 힘이 필요

지금까지 우리는 우울증의 동기증상과 인지증상의 치료 대응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이런 것은 증상을 자체를 치료한다기보다는 우울증을 치료하면서 부차적으로 치료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치료라기보다는 치료 대응이라 이름붙여야 했다. 이런 치료적 대응에는 우울증 환자의 집중과 기억의 문제도 있다. 우울증 환자는 학습할 자료들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정보들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다른 증상과 마찬가지로, 치료자는 직장과 기업에서의 장애가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우울한 환자들이 ‘갖게 마련인’ 증상일 뿐이지 환자들이 제정신이 아니라는 증후는 아니다. 우울증 환자는 집중하는데 있어 갖는 주요 문제는 적절하게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가 집중하고자 하는 것과 다른 문제들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도 많은데, 예를 들면 교수의 강의에 집중하는데 자신의 문제들만 반추하게 되는 경우다. 이때 치료자는 우울증 환자에게 일련의 구조화된 훈련을 통해 초점을 맞추는 것을 잘 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예를 들어, 치료실에서 책의 짧은 단락을 소리를 내어 읽으라고 한다든지 간단한 수학문제를 풀어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훈련은 자신이 집중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우울증 환자의 믿음을 교정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이런 훈련의 과정에서는 우울증 환자에게 타이머를 사서 회기 간에 점점 시간을 늘려가면서 특정 숙제에 집중하는 것을 연습시킨다. 한 번에 단 몇분 이상은 가사 일에 집중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어느 우울증 환자에게 자신의 차를 닦는 것을 실행하는 단계목록을 주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이 숙제를 3시간 동안이나 했고 잘 해낼 수 있었다.

만약 우울증 환자가 직장이나 학교에서 특정 자료를 기억해야 한다면 SQ3R방법(훑어보기, 질문하기, 읽기, 외우기, 재검토하기)을 가르치면 좋다. 우선 배우려는 자료를 훑어본다. 이것은 해야 할 일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한다. 그 다음에는 외워야 할 자료부터 특정 질문들을 써내려간다. 이것은 자료에 초점을 두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 다음에는 자료를 읽거나 그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다음으로는 적거나 소리를 내어 말하는 방식으로 자료를 암송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자료를 재검토해본다.

이런 것의 기술은 동기와 인지 증상을 위주로 치료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치료자의 지시대로 순순히 따르면 기대이상의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온전히 치료자를 신뢰하고 따라서 시도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임상의 경험에 의하면 그것이 치료의 핵심이 아니가도 생각될 정도다.

그러나 잘못된 정신의 문제를 바꾸거나 고친다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 치료이론과 방법이 있지만 모든 것이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고친다 해도 처음의 완벽한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이미 수십 년 동안에 잘못해서 망가뜨린 뇌세포가 어떻게 단 시일에 회복이 되겠는가 말이다. 이런 부분에서 신앙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으로 신앙의 능력에 기대어서 또 다른 효과를 기대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생활의 영역에서 신앙의 힘이 요구되지만 특히 정신에 문제를 보이는 영역에서 더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