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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할 때 예 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 하라" (마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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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그날, 손기철 장로의 집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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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9.15 06:58   
총신대 김지찬 교수 인터뷰를 보고

▲송영옥 작가(영문학 박사, 대신대 외래교수).
본지에 ‘송영옥 박사의 기독문학세계’를 연재중인 송영옥 교수(대신대)가 왕의 기도 논란과 관련해 손기철 장로의 집회에 참석했던 소감을 보내왔다. 다음은 그 전문.

두어 해 전 대구의 한 장로교회에서 <성령님 고맙습니다>의 저자 손기철 장로를 강사로 부흥집회가 열렸다. 시작 시간은 7시 쯤으로 기억되는데 나는 다섯시에 출발을 하였다. 집회가 열린 교회까지는 집에서 불과 30분 거리인데, 무려 1시간 반을 남겨두고 차를 몰고 나오게 된 것은 전날 참석했던 직장 동료가 손 장로의 설교를 들으려면 두 시간 이상 남겨두고 출발해야 한다고 말해준 때문이었다.

가는 길 도로변에는 경찰차들이 진을 치고, 도로 한가운데 신호가 바뀌는 곳마다 자원봉사대와 경찰들이 교통 통제를 하느라 진땀을 뺐다. 나는 그 틈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였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행렬 때문에 회전도 유턴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 혼잡은 추석명절의 대 이동을 방불케 하였다.

교회에 도착한 것은 8시쯤, 여러 개의 출입문은 이미 닫혀 있었다. 이곳에서 제일 큰 교회인데도 부속 건물들도 모두 만원이 되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었다. 나는 주위를 빙빙 돌다가 구석에 있는 문으로 두 사람이 휠체어 탄 남자어른을 밀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뛰어갔더니, “장애인 외에는 출입금지” 이라 적혀 있었다. 나는 망설일 여유도 없이 그 문을 밀고 일행인 것처럼 따라 들어갔다. 바로 강대상 뒤쪽으로 통하는 곳이었다. 실내는 꽉찬 사람들과 그 열기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답답했다. 손 장로의 설교는 이미 중반쯤 접어든 것 같았다.

서두에 제시한 것처럼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총신대 김지찬 교수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므로 여기서 잠시 그 내용을 제시함이 바람직할 것 같다. 김 교수는 <성령님 고맙습니다>를 지난 8개월 동안 매진하여 연구하였고 그 결과 몇 가지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 중 지금 내가 쓰는 글과 관련이 있는 부분만을 보면 “한국교회의 방언과 은사 집회의 광풍 중의 하나인 손 장로의 집회에 대하여 많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예수께서도, 칼빈도, 루터도 방언을 하지 않았다는 것, 손 장로의 집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적이 과연 일어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기적의 현상들이 항상 성령의 역사인지 알 수 없고, 손 장로는 객관적 계시인 성경보다 주관적 직접체험을 강조한다는 점”을 들었다.

다시 그날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여느 부흥집회에서 볼 수 있듯 손 장로 역시 말씀 선포가 끝나고 치유를 위해 통성기도를 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말씀에서 받은 감동이 컸기 때문인지 통성기도의 부르짖음과 절규로 예배당이 떠나갈듯 하였다. 나는 물론 내 앞뒤 사람들은 모두 방언으로 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손 장로가 방언기도를 하지말라고 했다. “방언으로 기도하지 마시오. 자신이 말하는 내용을 자신이 인식할 수 있도록 이야기 하십시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가장 격앙된 통성기도의 순간에 사람들이 감정에만 사로잡히면 그 틈을 타서 악한 영이 역사할 수도 있어서가 아닐까.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주관적인 얘기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방언을 해야 한다고는 주장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통성기도가 진행되는 동안 손 장로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병명으로 열거하였다. 그 중 한 마디가 ‘오늘 저녁에 휠체어를 타고 온 그 사람을 성령님 치유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 나는 긴장되었다. 그 사람은 강대상 뒤쪽으로 들어왔고 손 장로는 볼 수도 없었을 것인데, 또다른 사람이 왔는가… 등등 이러한 생각으로 잠시 고개를 들고 두리번 거리며 찾아보았다. 울부짖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왠지 마음이 찡해왔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 그리고 그들이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데 내 마음이 왜 그렇게 아팠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모든 병든 이를 위해 함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손 장로는 통성기도를 중단시키고 마무리 기도를 드린 후 병을 치유받은 사람은 모두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까 그 휠체어의 남자가 벌떡 일어나 손 장로 앞으로 걸어갔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강대상으로 올라갔다. 손 장로는 그들을 안수하고 축복하였고 그날의 집회는 끝이 났다.

물론 나는 그 남자에게 일어난 기적이 김 교수 말대로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믿는 것은 ‘성령의 역사는 성경에 근거해 일어나는 것이고 예수의 생애 33년을 통해 계시된 로고스의 객관성을 드러냄’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드러냄은 로고스를 레마로 체험한 사람들을 통해서이다. 로고스(Logos)를 레마(Rhema)로 체험한 사람은 반드시 성경의 통제 하에 있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손 장로가 집회 도중 사용한 용어나 자신을 지칭한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을 못하겠다. 내 말의 의미는 김 교수가 지적한대로 그의 말이 “성령을 통해 초자연적으로 계시된 정보”라든가, 자기 자신을 가르켜 “성령이 가르쳐주는 지식의 말씀을 받는 자”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게는 그러한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손 장로는 집회 내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머리로만 아닌 몸 전체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강조했다.

기도를 할 때도 하나님의 영과 사탄의 것과 자기 자신의 생각을 구분하여 간구할 수 있도록 마음문을 열고 주님을 기다리라 했다. 즉 그의 초점은 삶의 현장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다시 말하면 로고스를 레마로 체험하는 데 있었다.

지금 손 장로의 집회와 관련하여 이미 예장합동 측에서는 집회 참여 금지조치를 내리려 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나는 지금 예장합동 측에 속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써야겠다고 결정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신학을 모르는 사람도, 그리고 교단이나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평범한 크리스천에게도 깨달아지고 그 깨달음이 그 사람의 인격을 바꾸고 그런 사람들이 이웃과 사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데 보이지 않으나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손 장로의 집회에서 이러한 생명력을 확산하는데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누가 어떻게 규정하든 그들은 생명을 체험한 사람들만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횃불처럼 그 생명력을 펼치며 전진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손 장로의 집회에 대하여 성령의 역사인지 악령의 역사인지를 밝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신학자이든 교단의 지도자이든 간에 그 집회에 참석하여 스스로 경험한 후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진위를 판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레마의 생명력은 어떤 통제로 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신학에도 전통교회의 가르침에도 통제받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모든 것을 인내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며 책임을 감당하며 기다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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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전체(23개)
본질
2011.10.02
손장로님의 문제는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비 본질적인 것(성령님 역사의 현상)을 본질(성령님 그자신)의 자리에, 그리고 두번째 혹 세번3760; 중요한 것을 제일 첫 번째 중요한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병고침이 아니라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므로 참 회개와 순종과 거룩에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신 가장 중요한 이유 또한 이것입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 주님의 뜻은 신앙의 본질 보다도 보이는 표적을 좇아가는 것을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주를 믿는 자는 성령님의 내주를 믿으므로 어떤 고난 속에서도 표적에 상관 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임재를 누리는 것이 진정한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럴 때, 먼저 자신의 생명의 변화와 성숙을 체험하며, 나아가 표적도 경험할 것입니다.
엎드린자
2011.09.17
주의 부르심님 저는 기도의 방법을 이야기하려고 방언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닙니다. 잘못 짚으셨습니다. 암튼 제 입장이든 우리 합동의 입장이던 아주 일부는 은사중단주의자이지만 대다수는 아닙니다. 다만 최근 너무 영적으로 어지러워지고 있어 우려를 하는 것입니다.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단과 신비주의, 광신주의를 만납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 성령운동이 꼭 필요하지만 말씀의 뼈대가 있는 상태에서 성령 운동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k교회에 대해서는 더 공부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쪽의 말만 듣지 말고 여러 말도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댓글로 토론 중 격하게 반응한 점이 있다면 이해하십시요, 젊은 분 같은데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이고, 본인은 나이만 먹었지 부족해서 때로 통제가 잘되지 않기도 합니다. 님과의 토론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나를 도와 주의 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님도 풍성한 은혜 속에 인도해주심을 바랍니다.

그리고 jaesub0207님은 성도라면 그래도 최소한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심이 어떠한지요? 또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이 주장하시는건데 저주를 받으라니 어쩌니 하는 말은 님이 하실 만한 적절한 말씀이 아닌거 같습니다
주의부르심
2011.09.17
엎드린자님!. 기도는 누구에게 하느냐 대상이 문제입니다. 방법이나 형식은 타종교와 비숫한 부분이 많습니다. 타종교에 방언기도 비숫한게 있다면 통성기도나 묵상기도 있습니다.
기도를 형식과 방법으로 분별한다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분별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고 따르느냐의 문제로 분별해야하는 것입니다.

분별 중요합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사역자들의 말과 행동을 보고 함부로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려는 실수를 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병든 성도들을 치유하시고 새롭게하시는 일은 사역자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올해 아이들의 캠프를 인도하며 마지막 날에 아이들을 초청하여 주님을 영접시키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날 아침 저는 고린도 후서 2장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의 구절이 떠올랐고 묵상을 하였습니다..

잠시 후." 저의 마음 속엔 " 네가 하지 마라 내가 할 것이다...."라는 음성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가 되어 아이들을 초정했을 때 전체 90명의 아이들 중 1명을 제외한 89명이 나왔고. 곧바로 수많은 아이들이 대성 통곡을 하며 죄를 회개하는 것을 지켜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너무 울어서 40분을 넘게 울었고 간신히 진정을 시켜서 집으로 돌려 보내야 했습니다. ...

솔직히 아이들이 은혜를 경험하는 그 순간이 저와는 거의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님과 아이들의 관계였고 문제였습니다.

그러니 불완전한 사역자들을 보고 성령의 역사를 분별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을 만나 변화와 치유를 경험하는 성도들의 열매로 판단해야 합니다.
1번은 오해십니다. 저는 7장 21절 그대로 믿습니다
엎드린자
2011.09.17
k교회 성도는 아니시군요, 그러나 k 교회를 성령운동하는 교회로 긍정적으로 보시는군요. 사실 그게 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오해를 하시는데 저는 성령운동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님이 비판하시는 김지찬 교수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성령운동을 인정하지만 말씀에 의해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예를 들어, 방언의 경우 타종교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불교에도 변어라고 나타납니다. 같은 노래를 계속 부르게 한다든지 해서 의식변성 상태에 이르게 하고, 그 상태에서 이적 비슷한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연구 동료이기도 하다가 결국 범성욕론에 의해 갈라진 묘한 관계인 '칼 구스타프 융'같은 경우 죽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영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이 사람이라든지 '죽음학'에서 많이 거론되며 미국의 100대 사상가로 꼽히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같은 경우 하나님도 인정하고 기독교에서 하는 말과 많은 점에서 비슷한 말을 하지만 우리가 받을 수 없습니다. 영적인 문제는 분별이 중요합니다. 색깔이 다소 비슷하다고 다 같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1. 2번하고 결국 같은 이야기라고 했는데 다릅니다. 1번은 결국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지만 2번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운동에 대하여 저도 찬성합니다. 저 역시 한국 목회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마틴 로이드 존스와 웨인 그루뎀을 좋아합니다. 다만 분별있는 성령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손장로님에 대해서는 아직 관망 중입니다. 그분이 신사도운동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진정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의부르심
2011.09.17
엎드린자님...저는 k교회 성도도 아니고 손기철 장로와 아무런 연관도 없습니다...하지만 님처럼 말씀 말씀하면서 성령의 은사를 혐오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어이가 없고 상처가 됩니다. 물론 저도 말씀이 없고 돈을 밝히는 은사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 그들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k교회나 손기철 장로....등 많은 성령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경우는 성령 사역자 이전에 말씀 사역자들입니다. 그만큼 성경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려합니다. 이런 분들의 사역에서 권능이 나타나면 마치 성령이 아닌 악령에게 쓰임받는 자들로 매도하는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서 성령의 역사는 불완전한 사역자들 이전에 성령님이 주인이 되시는 집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김지찬 교수님 같은 영향력 있는 분들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서 순진한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성령님을 악령으로 믿게되는 것입니다.

제가 그분을 교활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확실한 근거도 없으면서 때로는 옹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은근히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각종 이적을 행하고, 선지자(어느 교단이 생각나는군요)노릇하며, 많은 권능을 행하였지만은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그래도 위의 말씀을 강조하며 성령의 은사를 무조건적으로 혐오하는 님의 처음 글보다는 아래의 글이 많이 발전했네요....

1.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아 쓰임 받는 종들은 더욱 겸손하게 아버지의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2.이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의”보다는 “권능”을 앞세우는 태도를 문제삼으시는 것입니다.

결국은 같은 의미가 아닌가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의'가 바로 아버지의 뜻대로 살라는 것이 아닌가요?

내게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엎드린자
2011.09.17
주의 부르심님 쓰는 김에 조금 더 쓰겠습니다.

(마 7장 21-23) “그 구절은 권능이 나타나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역자들의 삶과 자세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아 쓰임 받는 종들은 더욱 겸손하게 아버지의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아니 겸손하게 아버지의 뜻대로 살라고 예수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심하게 책망하셨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의”보다는 “권능”을 앞세우는 태도를 문제삼으시는 것입니다. “의”와 무관하게 행하여지는 은사주의적인 사역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뿐더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으로서 불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자의적인 해석을 하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엎드린자
2011.09.17
사이버스타님, 제가 무슨 믿음의 형제 자매들 상처를 주었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그리고 성령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악령운동이라고 누가 했다는 것입니까? 저는 손기철 교수님에게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 진심은 진정인 것같다고 썼고, 그 점은 김지찬 교수도 마찬가지로 쓴 것 같습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사이버 테러식으로 그렇게 쓰는 것은 유감입니다. 제가 쓴 글을 자세히 읽어보고 나서 하나씩 근거를 대면서 공격을 해도 하시기 바랍니다.
엎드린자
2011.09.17
k 교회 그쪽 양반들이 원래 같이 떼로 몰려 다니면서 댓글을 도배하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오늘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그런데 내가 상처준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김지찬 교수 옹호를 한 것뿐인데 무슨 상처를 받았다고? 질문을 한 것이 상처를 준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점을 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하는 사람은 누군지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김지찬 교수에게도, 또 나에게도.

성경을 자의적을 해석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주의 부르심님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대해서는 성령의 기름부으심 이전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3장을 순수한 마음으로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댓글로 또 얼마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지 보겠습니다.
주의부르심
2011.09.17
p.s 주의부르심님도 혹시 B목사가 사역하는 K교회를 다니시는 분인지 궁금하군요?

엎드린자님.. 점쟁이가 되고 싶으세요?? 항상 가벼운 직감과 낮은 생각을 가지고 모든 걸 판단하시려는 것 같아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씀으로 성장하길 원하시니 성경을 좀 제대로 보세요...대화도 잘 안 통해서 상대할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순진한 분들을 오염 시킬까봐 글을 씁니다.

님이 인용한 마태복음 7장도 위 아래 문맥을 보시고 인용하세요. 권능이 문제가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나타나는 권능을 나무라셨나요????
그 권능을 악령의 역사라고 하셨나요????...

성경을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엉뚱하게 해석하고 사용하지 마세요.

그 구절은 권능이 나타나는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역자들의 삶과 자세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아 쓰임 받는 종들은 더욱 겸손하게 아버지의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사역자가 되더라도 반드시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님을 보면 님이 옹호하시는 김지찬 교수님은 좁은 문이 아니라 넓은 문을 가르치는 사역자가 아닌지 솔직히 걱정이 되는 군요.

엎드린자님께서 무엇을 하시는 분인지는 모르지만 말씀 말씀하시면서 결국엔 말씀이 없는 분이라 안타깝네요..

마지막으로 b목사니 k교회니 ...논쟁중에 남을 끌어들이고 마녀를 사냥하듯 매도하려는 이런 비겁한 짓은 하지 마세요. 이런 짓은 그 사람의 수준을 보이게 만들거든요..
사이버스터
2011.09.17
엎드린자님, 누가 댓글 보면 우리나라에 성령운동 하는 교회가 K교회만 있는 줄 알겠습니다?
제가 섬기는 단체도 성령사역자들 간간히 초빙합니다만 모 교회와는 하등 관계 없습니다.
엎드린자님 본인이 성령운동을 자꾸 이단/악령의 역사 취급 해서 마음이 불편한데, 우리 한번 사역하는 단체/섬기는 교회 까고 이야기해 봅시다.제가 먼저 밝힐까요? 설마 가상공간 뒤에 숨어 믿음의 형제자매들 상처주는 행동을 계속 하지는 않겠죠?
wisdom
2011.09.16
예수님 때도 성령 운동의 가장 큰 저항은 기득 교권 세력에서 비롯된 거라지요.
교단에서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 분별함은 중요하나, 자칫 성령훼방이 되는 것은 아닌지 조심해야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네요.
엎드린자
2011.09.16
"김지찬 교수의 글을 보면서 사람이 참 간사하고 교활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국 교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특별히 김교수처럼 열매로 분별하지 않고 문자와 새치혀로 성령의 역사를 분별한다면 교회에서 많은 치유가 일어나도 수많은 성령의 역사를 악령의 역사로 매도하는 실수를 범하게 만들겁니다."

=> 주의 부르심님도 의견을 말씀하실 때 별로 열매가 향기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김지찬 교수도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의 권능 가운데 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이 샘솟고 힘을 얻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열망이 생기고요. 그분도 그렇게 좋은 열매를 맺고 있더군요. 더군다나 하나님의 지식에 관한 달란트가 있어 많은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뭐, 제가 보기엔 열매로 충분한 것 같은데...아닌가요?

P.S. 주의부르심님도 혹시 B목사가 사역하는 K교회를 다니시는 분인지 궁금하군요? |
주의부르심
2011.09.16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영분별 반드시 필요하다..하지만 능력이 크건 작건, 나타나건 나타나지 않건 ,나타나는 현상은 분별과는 별 상관이 없다..열매로 분별하라는 것이다.

마 12장
22. 그 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지라

23.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영분별은 겸손히 자신에게 먼저 해야한다. ...
엎드린자
2011.09.16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말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주의 이름으로" 각종 이적을 행하고, 선지자(어느 교단이 생각나는군요)노릇하며, 많은 권능을 행하였지만은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권능을 행한다고 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며, 선지자 노릇한다고 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며, 귀신을 쫓아낸다고 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타나는 현상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일점일획 변하지 않을 말씀에 의해 성장하시기 바랍니다
주의부르심
2011.09.16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이고 지식적인 것을 넘어서는 지금 이시간 살아계신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셨다...그리고 입성하셔서 19장 46절에 내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하시며 성전을 정화하시기 바로 전의 말씀이 있다..

눅 19장 "44그들은 너를 짓밟고 너와 함께한 네 자식들도 짓밟을 것이다. 돌 위에 다른 돌 하나라도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45.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기 시작하셨습니다.


무엇이 이토록 예수님을 화나고 슬프게 하셨던가?? 비둘기를 파는 상인인가? 성직자들의 비리인가? .....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바로 보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여기에 촛점을 맞춘다....

아니다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 이것은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로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이 찾아오셨어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성전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주님을 슬프고 화나게 만든 것이다.

예수님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과 바리새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였다.
물가의나무
2011.09.15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간 목적은 무엇일까요? 떡일까요, 말씀일까요? 말씀은 분명히 각자가 소장하고 있는 성경에 계시되어 있고, 개교회의 예배에, 그리고 각자 신자 된 자로서의 삶 속에 있음을 분명히 인정하고 믿으실 텐데요. 그럼에도 그런류의 집회에 교통체증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군중이 몰린다는 것은 분명 말씀보다 더 중요하다거나 더 소중한 무언가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기독교의 신앙의 중심 내용(십자가복음)이 언제부터 능력이며, 초월이며, 병고침이며, 은사며, 방언이며, 치유며... 이런 것들이 되었죠? 절박한 심정이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너무 위험해보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계시되어 있음에도 그러한 부류의 집회를 찾아 헤매시다가 너무 먼 길을 돌아오게 될 것 같아 염려스럽습니다. 기독신앙의 정수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가 아닐까요?
박병균
2011.09.15
정말 용기 있는 교수님이시군요. 큰 박수를 보냅니다.
엎드린자
2011.09.15
왜 같은 글을 읽어도 자기 마음대로 읽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김지찬 교수는 교단에서 이단판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다. 신학자로서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이고 정죄하지 말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손기철 장로를 비롯한 은사주의자들은 칼빈주의가 오늘날 영적 은사는 완전 중지됐다고 믿고 있다고 보는데, 이는 잘못이다. 칼빈주의는 사도 시대와 함께 모든 은사가 중지됐다고 한 적이 없다. 다만 오늘날의 은사는 어떤 은사라 하더라도 사도성이나 계시성을 가지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 뿐이다. 또한 방언은 김우현 PD가 이야기하듯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하는 은사가 아니다. 이미 후크마가 지적한 대로 예수께서도, 칼빈이나 루터도 방언을 한 적이 없다.”

따옴표 안이 김지찬 교수의 글이다. 위의 글에서 주장한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주의부르심
2011.09.15
김지찬 교수의 글을 보면서 사람이 참 간사하고 교활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국 교회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특별히 김교수처럼 열매로 분별하지 않고 문자와 새치혀로 성령의 역사를 분별한다면 교회에서 많은 치유가 일어나도 수많은 성령의 역사를 악령의 역사로 매도하는 실수를 범하게 만들겁니다. 악령의 역사를 분별한다며 성령의 역사를 제한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는 자신들은 반드시 옳다고 믿고 행하지만 결국엔 바리새인의 길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결국엔 교회가 성령님을 바알세불이라고 대적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몸과 마음이 아파도 교회에서 위로받을 수 없고 치유받을 수 없는 성도들만 불쌍하게 됩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교회안에 공존하드시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도 공존합니다...그러기에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판단 할 때는 언제나 겸손하게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분별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김지찬 교수님은 겸손함을 잃어버리셨습니다...

김지찬 교수본인이 만약 평생을 절망과 원망속에서 살아야 할 휠체어 신세에서 일어 났다면 과연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요??

본인이 만약 극심한 고통속에 삶을 비관하여 자살로 내몰리다 치유를 받아 새삶을 살고 있다면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을 까요???

가장 정확한 분별은 너무나 힘들고 아파서 갈급하고 낮아졌기에...그날 그곳에서 주님을 만나고 치유를 경험한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경외
2011.09.15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셨는데 기고하신 교수님의 용기에 존경의 마음을 들고..같이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신학을 모르는 사람도, 그리고 교단이나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평범한 크리스천에게도 깨달아지고 ...』하는데 왜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의 상당수가 그점을 깨닫지 못하고 이시대의 위선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지 정말 의분이 듭니다.
생명안으로
2011.09.15
크리스챤 투데이가 균형잡힌 시각으로 하나님나라의 일을 전하려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송작가분의 말씀에 공감을 표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설교말씀으로도 통성기도로도 묵상기도로도 방언기도로도 찬양으로도 임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몇번 참석한 손장로님의 집회에서는 찬양과 말씀중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믿음의 사람이라면 성령님이 계신 평범한 교회예배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평범한 예배속에서 말씀을 듣다가 삶이 변하고, 마음의 치유, 질병의 치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구요. 저희 교회가 그렇거든요. 부흥을 외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상처받은 많은 영혼들을 보내주시는 그런 교회입니다.
자비량
2011.09.15
집회를 가 보지도 않고 이러쿵 저러쿵 한다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굿
2011.09.15
평신도로서 이 논란을 바라보는 솔직한 심정은 도대체 이게 왜 논란거리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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