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과 전쟁으로 혼돈스럽던 한국의 1961년, 당시 25세의 젊은 나이에 태평양을 건너 한국을 찾았던 젊은 선교사 부부가 있다. 바로 오대원 목사(한국 예수전도단 창립자)와 오엘렌 사모다. 한국의 대학생들을 향해 온 몸으로 복음의 열정을 내던졌던 그들이 사역 50주년을 맞았다.

▲오대원 목사와 엘렌 사모.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예배처소이자 선교사들의 영적 재충전 장소로 세워진 시애틀 인근 안디옥 국제선교센터에서 편안한 웃음으로 맞이하는 그를 만났다. 처음 그를 대하는 한인들은 한국말을 잘하는 그의 모습에 놀라고, 이내 마음 깊은 곳까지 한국과 한국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발견하곤 더욱 놀라게 된다.

대학생들을 향한 복음의 열정과 한민족을 향한 사랑으로 청춘을 모두 한국에 쏟아부은 그의 기도는 지금도 한국을 붙들고 있었다. 오대원 목사, 그는 이제 75세가 됐지만 아직도 하나님 나라와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으로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순수한 아이처럼 익살스럽지만 영혼을 향한 사랑과 깊이가 오랫동안 가슴을 울렸다. 다음은 일문일답.

-선교사역 50년 동안 한국은 첫 선교지였고 사역의 절반을 보냈던 곳이죠. 한국에 대한 추억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1961년도 9월에 배를 타고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서 맛보았던 배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동안 사랑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섬기려고 갔는데 도리어 섬김을 받았습니다. 처음 도착하자마자 한국 가정과 함께 살면서 한국의 문화를 많이 배웠는데, 한국 문화는 수천 년의 역사가 담겨져 깊이가 있고 풍부합니다. 한국의 문화와 정서, 사람들이 좋았지요. 지금도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찬양 부르고 기도했던 아름다운 추억들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 수많은 제자들이 있는데 그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는지요.

“예수님께 다 돌렸어요. 내 제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로 키웠습니다. 그래서 편합니다. 모두들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었어요. 처음에는 왜 저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만 보내주셨냐고 하나님께 불평하기도 했지요(웃음).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나한테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학생들이 거의 우리 집에서 같이 살다시피 했었는데 학생들로부터 많이 배웠고 또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에서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전하는 모습을 볼 때 감사한 마음입니다.”

-한국 선교 초창기 하루 15시간 이상 사역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려웠던 부분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선교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고생하는 것인데, 고생했던 부분은 모두 재밌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라면도 없었지요. 자취하는 학생들이 먹을 것이 없어 배고픈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냉장고는 항상 열려있어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지요. 그리고 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 모두들 좋아했지요. 그 때 라면은 내가 제일 많이 먹었을 거 같아요. 그리고 해태 아이스크림 초콜릿 제일 처음 나온 것을 기억해요. 참 맛있었지요. 재미있게 고생했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이라면 처음에 한국의 문화를 잘 몰라서 고생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자기 나라의 옷을 벗고 그 나라의 옷을 입어야 하지요. 처음부터 배우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는 편견 때문에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어요. 문화 충격 같은 것이죠. 한국을 더 깊숙이 이해하고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회개하고 새롭게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날 때는 안 떠나고 싶은데 하나님께서 옮겨 주시니 어려웠고…….”

▲오 목사는 “가르치는 사람은 배워야 하고, 배우면 또 가르쳐야 한다”면서 “성경 교사는 내용이나 지식 뿐 아니라 사람을 권면해주고, 격려해주고, 일으키고, 위로해주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인 대학생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한국 대학생들도 그렇지만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한인 디아스포라 대학생들을 보면 다른 나라 학생보다 깡으로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모두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일도 학생들은 앞장서서 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한인 대학생들인 것 같아요. 한인 대학생들은 뭔가 뜨거운 마음이 있고, 무슨 일이든 하고자 하고, 겁이 없는 도전 정신으로 어려운 산도 넘어갈 수 있는 열정이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한 열려있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선교사로 헌신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대해서는 열려있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해야 하고 풀어야 할 숙제이지요.”

-한국 선교사로서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요?

“미국교회 한국교회는 회개하면 됩니다. 유럽교회도 마찬가지이지요. 말씀으로 돌아가고 기도로 돌아가고 선교로 돌아가야 하지요. 그것을 위해서는 말씀밖에 모르고, 기도밖에 모르고, 전도와 선교밖에 모르는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한국, 유럽, 미국 교회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미국교회 성장이 안 되고 있지요. 더구나 지금은 무슬림이나 너무 많은 세력들이 들어와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어요. 말씀밖에 없어요. 학생들을 세워야 하구요. 말씀 붙들고 사는 사람들이 소수인데 더 늘려야 하지요.”

-50년 동안 사역하면서 가장 도움이 됐던 사람은 누구인지요.

“사역하면서 멘토들을 많이 모셨어요. 보통 사람들은 멘토를 한 명 또는 두 명씩 두는데, 저는 각 분야에 멘토를 많이 두고 배웠어요. 처음으로 대천덕 신부님이 제 멘토를 해주셨어요. 그 분한테 배운 것은 성령과 공동체에요. 또 한경직 목사님도 멘토로 모셨었지요. 한 목사님에게는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았구요. 특히 한 목사님은 단순한 것 같지만 매우 깊이가 있었지요. 영락교회 계셨던 박재훈 목사님께 한국인의 예배와 음악을 배웠지요. 또 이수복 시인의 시를 통해 한국인의 정서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남은 생애 동안 어떤 일들을 추진하고 싶은가요?

“북한에 가서 살고 싶어요. 얼마동안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이 많이 변화돼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를 돌보는 사역을 하고 싶어요. 성경 공부할 수 있도록 책도 쓰고 싶고, 젊은 사람들도 양육하고 싶고, 여기 사역도 다른 리더십이 생길 수 있도록 잘 물러나고 싶구요.”

-북한에 들어가시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다시 회복된 북한교회 사람들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물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그 고난 속에서 그렇게 깊이 있게 예수를 믿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그것 때문에 가고 싶어요.”

▲“만약 선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일까?”란 질문에 오 목사는 거침없이 “넝마주이”라고 말했다. 선교사로 헌신한 이후에는 다른 일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그에게서 행복한 선교사의 미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목사님의 북한 선교에 대해 지적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뭔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뭔가 하는 일이 없으면 비판할 것도 없지요. 한국교회가 복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통일이 되면 선교를 더 하게 될 것이고 한국 땅이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북한 정부나 공산당을 좋아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 사람 가운데 정부는 지극히 소수입니다. 대다수는 참 좋은 사람들이다. 마침 그 나라에 태어났으니 그렇게 사는 것이지요. 일반 사람들은 남한도 북한도 참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라벨을 붙여서 정치적인 것에 사로 잡혀 가면 제대로 사람을 보기 힘듭니다. 저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요. 영적으로 보면 배울 것이 많습니다. 탈북자들에게서 참 배울 것이 많습니다.

선교사가 다른 나라에 가면 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북한 선교 역시 그렇습니다. 아웃사이더 보다는 인사이더가 되어야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북한이 변화되려면 접촉이 필요합니다. 접촉이 없으면 더 악화되지요. 접촉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사업도 하고 비즈니스도 하구요. 구제사역만 하면 그들이 미워합니다. 주는 사람이라고 싫어합니다. 존엄성도 주고 직업을 주고 경제적으로 나아지게 하고……. 이 모든 것이 복음을 위해서는 플러스가 됩니다.

말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니까 어떤 사람들은 오해하기도 합니다. 전도 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말과 행동과 기도인데 그곳에서 말로는 할 수 없지만 행동과 기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참 어려운 것입니다. 간단하지 않은 것이지요.”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국의 통일은 이제 누구나 공감하고 준비해야 할 시기입니다. 중국은 계속 북한을 중국화 하고 있지요. 그렇게 되면 한국은 고립된 섬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복음이 일찍이 북한에 들어갔고요. 지금 교회가 죽지 않고 광야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반도를 만드실 때 한 민족을 살게 하셨는데 그것이 근본적인 하나님의 공의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로 해야 합니다. 민족적인 입장에서만 아니라 선교학적으로 봤을 때 통일된 한국 교회는 대단한 파워가 있을 것입니다. 북쪽에는 고난을 통해 배우고 형성된 성령의 능력이 있고 남쪽에서는 선교사를 많이 파송할 수 있는 힘이 있지요. 통일된 한국은 선교사들을 여러 나라에 보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복음이 나가야 한국 땅이 살 수 있습니다. 통일은 정치적,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한국교회는 계속 머무는 것에서 벗어나 모든 나라로 선교를 나가야 합니다.”

오대원 목사는

1935년 9월 14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출생으로 1957년 테네시 주 킹대학교를 졸업하고, 1960년 버지니아 주 유니온신학교 졸업 직후 1961년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받았다. 1973년에는 예수전도단을 설립하고 1980년에는 예수전도단을 국제 Youth With A Mission과 연합 사역으로 이끌었으며 1986년에는 미국으로 돌아가 사역을 이어갔다. 1994년에는 사역 중심을 시애틀로 옮겨 ‘안디옥국제선교훈련원’을 설립했으며 북한 선교 사역과 세계 선교에 주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