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육체가 균형을 이루는 삶

일반적으로 많은 크리스천들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갈등을 느끼는 이유는 생각과 몸이 따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일찍이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 마음은 간절한데 육신이 약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41). 생각이 있지만 몸이 따라가지 않기 때문에 신앙생활의 균형이 깨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은 생각이 간절하다는 뜻입니다. 또 “시몬아, 시몬아, 보아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너를 위해 기도했다. 네가 돌이키고 나면 네 형제들을 굳세게 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2:31~32). 체질은 까부르겠다는 뜻입니다. 흔들어놓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지 않게 하고, 사탄의 공격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경건생활이란 생각과 육체가 균형을 이루고 하나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조차도 훈련이 안 된 사람도 많습니다. 생각이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세상적인 생각만 하는 사람입니다.

요즘 온누리교회가 신년특별새벽부흥집회를 열고 있는데,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2도 정도 되는데도 많은 성도들이 성전을 가득 메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늦어도 4시쯤 일어나야 5시30분에 교회에 도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이 가득 찼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두 번은 하겠지만 40일 동안 꾸준히 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기도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꾸준히 나오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훈련이 잘 되어 있는 사람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시험이 드나 가난하나 부유하나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꾸준히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신앙을 끝까지 지킬 수 있는 경건의 힘이 길러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아직도 생각에만 머무르고 있습니까?

느헤미야서는 경건생활을 위대한 사상이나 교리나 지식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성경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이 많으면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느헤미야 13장을 보면 어떤 사람이 신앙이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교회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철저하게 십일조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이방 여자와 결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즉 우상을 숭배하는 등 영적 혼음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경제 원칙, 십일조

지난주에는 제가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십일조 생활에 대해 나눠보겠습니다.
십일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제생활의 원칙이고 기준입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돈과 재물에 약합니다. 돈에 대해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받으면 부정한 일일지라도 눈감아주곤 합니다. 이게 돈의 위력입니다. 믿음이 굳세지 않고서는 돈과 관련된 시험에서 헤어나올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길 수 없는 것입니다(마 6:24). 그래서 성경에서는 돈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악의 뿌리라고 기록돼 있습니다(딤전 6:10).

그렇다고 돈을 배척하거나 돈 없이 살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사람에게 있어서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하나님도 아신다는 뜻입니다. 돈을 중심으로 살면 망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더 많은 땅, 더 넓은 집, 더 많은 부를 쌓고자 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돈을 많이 벌기를 바랍니다. 미국에 밀리언달러 처치가 있습니다. 모든 교인이 백만장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백만장자가 되고, 교인도 백만장자가 되라는 말인데, 동기는 나쁘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장학생도 키우고, 가난한 사람도 돕고, 병든 사람도 돕겠다는 의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지만 돈보다 먼저 구할 것은 하나님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작은 것부터 베푸는 연습 필요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의 구는 우리에게 주셨고, 십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도적질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말 3:8).

제가 아는 분 중에서 사업을 하는 한 분이 독일에서 비싼 기계를 들여왔습니다. 그리고 차관을 해서 공장을 완공했는데, 완공한 날 불이 나 모두 잿더미가 돼버렸습니다. 그분은 불타는 공장을 보면서 “하나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하나님은 공장을 잿더미로 만드십니까”라고 원망했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답니다. “네가 내 돈 떼먹었지?”라는 물음에 바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려드렸답니다. 그때부터 회사가 잘되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만큼은 시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말 3:10). 십일조를 잘 드리면 얼마나 복을 주시는지 시험해보라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10절을 읽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훔칠 수 있을까? 그런데 너희는 내 것을 훔쳤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훔쳤다고 그러십니까?’라고 말하는구나. 너희가 내게서 훔친 것은 십일조와 예물이다. 너희가 저주 아래 있다. 너희와 너희 민족 전체가 내 것을 훔쳤으니 창고에 십일조 전체를 가져다 놓고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라. 이 일로 나를 시험해 내가 하늘 창문을 열고 너희가 쌓을 자리가 없도록 복을 쏟아붓지 않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십일조가 적을 때는 쉽게 드립니다. 천 원을 중 백 원을 내는 것은 쉽습니다. 만 원 중 천 원을 내는 것도 쉽습니다. 십만 원 중 만 원을 내는 것도 괜찮습니다. 백만 원 중 십만 원을 내려면 손이 좀 떨립니다. 천만 원 중 백만 원은 쉽게 내지 못하고 한참 묵상합니다. 왜 그럴까요? 남한테 베푸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만을 위해 산 사람은 절대 돈을 베풀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베푸는 사람, 시간과 물질을 들여서 남을 도와주는 사람,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남을 도와주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누구를 보더라도 ‘내가 뭘 도와줄까, 어떻게 도와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작은 것부터 베푸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의 경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수한 것이 있습니다. 레위 사람들과 찬양하는 사람들을 모두 돌려보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무목교회도 돈이 없으니까 목사님에게 사례비를 줄 게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유지할 돈이 없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800여 개의 무목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온누리교회가 일본 선교에 있어서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이 무목교회입니다. 그러한 교회를 어떻게 도울 것이냐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무목교회 성도들이 자기들끼리 성경만 읽었는데, 요즘 CGNTV가 있어서 TV를 보면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CGNTV팀이 무목교회 몇 곳을 돌아다녀 봤더니 CGNTV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바다를 이루더랍니다.

여러분,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레위 사람들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월급을 주고 싶지 않아 레위 사람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예배를 못 드리는 것입니다. 또 성전에서 찬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폐허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항상 사람이 북적거리고 찬송소리와 기도소리가 넘치고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시는 것입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그러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와 창고에 들였습니다.”
느헤미야가 경고를 하고 야단을 치니까 사람들이 재물의 십일조뿐만 아니라 곡식의 십일조도 전부 성전에 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창고에 십일조가 가득 차자 레위 사람들과 찬양하는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십일조의 원리를 지키자 하나님의 복이 그들에게 임하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지킨다

교회 중심으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루만 지키라는 것인데도 만날 시계만 보면서 지킵니다. 예배 이후의 약속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에게 있으면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게 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고,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40:31).

여러분, 저도 병을 오래 짊어지고 사는 사람이지만, 병들면 병만 묵상합니다. 그러면 더 병들게 됩니다. 병중에라도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설교입니다. 저는 ‘이 강단에서 설교하다가 쓰러져 죽을지언정 설교를 하겠다’라는 마음으로 설교합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이 일으켜주시고, 설교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죽어도 몇 번 죽었어야 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살려주시고 또 살려주시고 또 세워주는 것은 제가 하나님을 앙망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15절부터 21절까지 기록돼 있습니다. “그 무렵 나는 사람들이 유다에서 안식일에 포도주 틀을 밟고 곡식을 들여와 나귀에 싣고 포도주, 포도, 무화과와 그 밖에 온갖 물건을 다 싣고는 안식일에 예루살렘으로 갖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들이 그날에 음식은 팔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두로 사람들도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물고기와 온갖 종류의 상품을 갖고 와서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 유다 사람들에게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유다 귀족들을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안식일을 모독하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짓이오? 당신들의 조상들도 똑같은 짓을 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이 성에 이 모든 재앙을 내리신 게 아니오? 그런데 당신들이 지금 안식일을 더럽히며 이스라엘에 대해 더 큰 진노를 부르고 있소.’ 나는 안식일 전날 예루살렘 성문들에 어둠이 드리울 때 그 문들을 닫고 안식일이 끝날 때까지 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또 내 부하들 가운데 몇 사람을 성문들 앞에 세워 안식일에 아무것도 싣고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온갖 물건을 실은 상인들과 장사꾼들이 예루살렘 성 밖에서 한두 번 밤을 새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경고하며 말했습니다. ‘너희가 왜 성 밖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냐? 다시 이렇게 하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 이후 다시는 그들이 안식일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안식일에 굶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죽게 됐는데, 안식일에 소가 웅덩이에 빠졌는데 그냥 두고 지나가라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 12:8). 사람을 살리는 게 목적이지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안식일에 장사치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건을 가져오고 포도주를 가져와 장사를 한 것입니다.

온누리교회에서도 주일 점심에 음식을 팔고 있습니다. 이익을 남기려고 파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점심은 먹어야 되니까 깨끗하고 싼 음식을 교회에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 교회에서는 주일에 바자를 엽니다. 그것은 특정 개인이 이익을 남기려고 장사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참여해 음식을 만들거나 물품을 모집해 판매한 수익금을 아웃리치를 위해 쓴다거나 누군가를 돕기 위함입니다.

느헤미야가 안식일에 경고한 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안식일을 이용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관한 책을 썼는데 재미있는 문구가 있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내가 안식일을 지키려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면 그 안식일이 나를 보호합니다. 마음 가운데 평안을 주고 물질의 복을 주고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기능이 안식일에 있다는 말입니다.

영적 혼음을 막아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결혼입니다.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것은 오늘날 무조건 외국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이 있었던 시절에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안 믿었기 때문에 이방인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모두 다른 이방신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의 혼음을 막으라는 뜻입니다.

24절을 읽겠습니다. “그 자식들 가운데 절반이 아스돗 말은 해도 유다 말은 할 줄 몰랐습니다.”
그 당시 이방 여자와 결혼하면 자녀에게 유다 말을 안 가르치고 그 여자의 모국어를 가르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아내가 자녀들을 키우게 됩니다. 그래서 이방 여자를 데려오면 유다 말은 잘 못하고 자기 나라 말을 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그 언어를 가르치게 되고, 언어를 가르치다 보니 이방 종교를 가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분노했던 것입니다.

25~26절을 읽겠습니다. “나는 그들을 꾸짖고 저주를 내렸고 그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은 때리기도 하고 머리채도 잡아당겼습니다. 또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하며 말했습니다.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시집보내지 말고 그들의 딸도 너희 아들이나 너희에게 시집오게 하지도 말라.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이 그래서 죄지은 것이 아니냐? 많은 나라들 가운데 그 같은 왕은 없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 하나님께서 그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왕으로 세우셨지만 이방 여자들 때문에 그마저 죄에 빠지고 만 것이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가장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 여자를 천 명이나 데려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이 살고 있는 왕궁은 온통 이방 신으로 가득 찬 제단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에게 저주가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약의 고린도서에서 이 부분에 대해 숨통을 틔워주셨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된다면 그 사람을 예수 믿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땅의 문제가 아니라 하늘에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라

27~28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너희가 이방 여자들과 결혼해 이 모든 끔찍한 악을 저지르고 우리 하나님께 죄짓고 있다는 말을 우리가 들어야겠느냐?’ 그런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아들인 요야다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를 내 앞에서 쫓아버렸습니다.”

여러분, 산발랏을 기억하십니까? 성벽을 재건할 당시 도비야와 산발랏이 얼마나 느헤미야를 괴롭혔습니까. 그런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아들인 요야다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였습니다. 그래서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14절, 22절, 31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제가 한 것을 기억하시고 주의 큰 사랑을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은총을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민족이 하나님 앞에 매를 맞게 되자 느헤미야는 마음이 매우 조급하고 암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붙들고 내가 이렇게 경고하고 내 백성을 고치려고 하니까 용서해 달라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세 번씩이나 했습니다. 왜냐하면 느헤미야는 포로생활을 했었고, 죽을 뻔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이 겪었던 저주를 받을까 봐 가슴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들에게 경고한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이것이 신앙개혁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위대한 사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육체의 훈련에도 힘써야 합니다. 매일 교회 나오는 훈련을 하시고, 매일 새벽기도를 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내 육신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지라도 훈련하십시오. 주일에 봉사하는 모임에 참여하시고 자기를 희생하고 하나님과 자꾸 시간을 보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표정이 밝아지고 근심과 걱정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십시오. 주일에는 하루 종일 하나님을 위해 사십시오. 또한 가족의 결혼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결혼 적령기에 있는 사람들은 함부로 결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보내주신 짝을 꼭 찾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임할 것입니다. 나아가 가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감사하며 사십시오. 일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여러분뿐만 아니라 이 나라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출처: 온누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