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도박하고 싶은 마음은 어떤 것일까, 왜 도박에 빠져드는 것일까, 어떤 요건들이 그들로 도박에 빠지게 만들까 등은 원인을 묻는 질문들이다. 원인은 여러가지를 추정할 수 있고, 또 그에 따른 연구도 가능하다. 그 가운데서도 그들은 도박하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도박 행위를 시도하며, 그것이 점진적·만성적으로 도박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점은 도박중독이 여러 요인과 관련됨을 시사하며,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그 원인이나 도박의 시작 경위 등을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도박이 돈과 관련있다고 해서 단순히 경제적 관점에서 병적 도박행동을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런 이유로 여기서는 대표적인 학파의 견해를 중심으로 도박중독이 유발되는 원인 중 특징적인 몇 가지를 고찰하기로 하자.

1. 도박중독과 정신역동 이론

정신역동론은 도박자의 비합리적인 도박행동을 중요시한다. 정신역동 입장에서 보면 도박자의 행동은 의식 및 무의식적 결과다. 이런 행동은 무의식적 자기처벌 메카니즘으로 보는 입장이다. 도박자는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거나 이성적 행위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전의식적 혹은 의식적으로 수행되는 의사결정, 여러 심리적 메카니즘이 작용하는 집합체로 본다. 이런 점을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피학적 행동으로서의 병적 도박

도박은 정신분석에 의하면 피학적 행동이다. 도박은 보통 즐겁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이 자기를 학대하려는 행위라는 점은 실로 의아한 일이다. 이런 일은 도박을 병적인 관점에서 보면 가능해진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도박자들은 돈을 잃으면서도 도박을 계속하려는 특성이 있다. 그들은 자꾸 패배하면서도 도박을 쉽게 끊지 못하는데, 이는 자신의 의지로도 어찌할 수 없는 병적인 행동이다. 병적 도박자의 행동은 물론 상식에서 벗어난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런 병적 도박자의 행동에 대해 정신분석학은 비합리적이라는 데 해답을 찾고 있다. 도박자의 행동이 무엇보다 ‘패배할 줄 알면서도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는’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패배를 자초하면서도 중단하지 못하는 현상은 가히 피학적이다. 도박자들은 마치 ‘잃기 위해 도박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도박자의 피학적 행동이 드러난다. 피학성(masochism)은 학대 또는 굴욕적 취급이 학대받는 사람에게 성적 만족을 주는 성적도착증을 일컫지만, 자기를 학대하면서도 중단하지 못하는 행동에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피학적 시각에서 보면 도박자의 도박행동은 일종의 자기처벌·자기모멸이다. 뿐만 아니라 도박행동을 피학적으로 본다면 그 대답은 의식적인 목표추구 행동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그보다 무의식에 열쇠가 있다는 가정이 가능해진다. 정신분석에서는 도박행동의 근원을 충동과 죄책감을 동반하는 피학적 쾌락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피학적인 도박행동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그것은 아동기의 무의식적 갈등과 관련이 있다. 아동기의 해결되지 않은 무의식적 심리 갈등에서, 도박은 아동기의 갈등에서 솟아나는 불안을 해결하거나 다루는 자기 처벌적 방법으로 본다. 이는 아동기에 중요한 사람들로부터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들이 더욱 도박에 빠져드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도박행동이란 그들의 심리 기저에 위치하고, 도박자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갈등이 상징적인 도박이라는 행동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2) 죄의식의 해소

앞에서는 프로이트가 도박을 피학과 관련해 설명했다. 그는 도박을 피학증으로 설명한 최초의 인물이다. 프로이트는 당대 유명한 도박꾼이었던 도스도예프스키를 분석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와 아버지 살해(Dostoyevsky and Parricide)’라는 논문을 썼다. 이 논문에서 도박꾼의 도박은 단순히 돈을 따거나 빚을 갚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들의 도박은 단지 합리화에 불과하며, 실제로는 도박 자체를 위해 즉 행위(action)에 내기를 걸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피학적이며, 도박행동은 어쩔 수 없이 빠져든다고 이해됐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일종의 죄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피학적 관점에서는 사실상 돈을 잃기 위한 도박행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도박하고, 많은 돈을 잃어야 죄의식을 벗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들의 죄의식 근원은 바로 무의식에 있는 아버지를 향한 살인충동(증오심)과 존경(애정)의 양가감정이다. 이는 정신분석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관점에서 이해된다. 아버지를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동시에 아버지를 밀어내고 어머니를 차지하고 싶어 어머니가 사랑하는 대상인 아버지와 동일시하고 경쟁한다.

그러나 이들의 경쟁심은 거세불안에 의해 처벌받고 포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소망은 무의식 속에 죄의식과 연관된 채 남아있고, 이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초자아와 자아의 관계로 변형된다. 이때 초자아는 물론 아버지임과 동시에 가학자이면서 핍박자이므로, 자아는 핍박받는 자이며 처벌받을 위치에 있다. 자아는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했던 살해 충동 때문에 자아 속에서 처벌받으려는 숭고한 욕망이 자라난다. 이는 거세 당하는 것, 도박에서 돈을 잃는 것, 패배자가 되는 것이 잘못을 속죄하고 아버지에게 다시 사랑받음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은 자연히 죄책감의 해소로 이어진다.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패배를 추구, 병적 도박자는 창백한 범죄자나 신경증적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는데, 도박꾼은 잃기 위해 도박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도박해야 하며, 많은 돈을 잃어야 죄책감을 벗을 수 있는 원리다.

3) 자기처벌의 메커니즘

도박은 자기처벌 행위로도 이해된다. 이는 전술한 죄책감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본다. 프로이트의 뒤를 이어 병적 도박자를 심리적 피학증(psychic masochism)으로 정립한 사람은 베르글러(E. Bergler)다. 베르글러는 도박꾼이 잃기 위해 도박한다는 생각을 널리 전파했으며, 그의 이론은 프로이트 이후 가장 흥미로운 이론이다.

도박자들은 베르글러에 의하면 죄의식에 의해, 그리고 양심을 속죄받으려는 자기처벌 메커니즘에 의해 움직인다. 이런 것은 전술한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프로이트의 분석에서 드러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혹했던 아버지에게 종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격렬하게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그가 지녔던 죽음의 증후는 자아에게 자학적 충족이고, 초자아에게 처벌을 위한 충족, 이를테면 가학적 충족이다. 전자는 “너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죽는 중”이고, 후자는 “아버지가 너를 죽이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아버지를 대신하는 존재가 자신에게 형벌을 가하도록 방임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가, 그리고 신에 대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 것도 바로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죄의식 때문이다.

죄의식의 근원은 부모의 규제에 대항해 금지된 쾌락을 추구했던 아동기에 있다. 반항은 부모에 대한 무의식적 적개심과 다르지 않으며, 바로 이 공격성으로 죄책감과 자기처벌을 피할 수 없다. 도박자는 부모의 처벌을 무효화하기 위해 스스로 거절당하고 치욕당하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시각에서는 도박판에서 그가 상대하는 적들이 무의식으로 자신을 거부하는 부모와 동일시된다. 그래서 도박자의 공격성은 허위 공격성(pseudo-aggression), 패배와 거부를 열망하는 공격성이다. 도박자의 의무는 ‘나는 사랑받기 위해 패배한다’는 것을 공식화하고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다. 실로 ‘도박이란 무의식적인 수준에서는 금지된 행동이며 죄책감에 의해 움직여지는 행동’이다.

4) 전능감을 위한 투쟁

도박자들은 자기처벌 외에 전능감(omnipotence)에 의해 움직인다. 도박자들은 매순간 게임을 통해 자신이 전능함을 확인하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한다. 그럼에도 신경증적 도박자는 그린슨(Greenson)에 의하면 전능감에 대한 강한 동경심을 자신이 전능하다는 느낌과 혼동한다. 도박자들은 게임에 운명을 걸며, 게임의 결과를 통해 자신이 전능하다는 확신을 얻으려 행동한다. 여기서 자신이 전능하다는 것은 유아기에 자신을 양육했던 부모(nursing mother)와 재결합하는 것이 된다.

그린슨의 분석에서 우연(chance)과 행운(luck), 그리고 운명(fate) 등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는데, 이 세 가지는 모두 아버지를 상징한다. 도박행동이란 운명을 시험하는 것이자 아버지의 지배권력과 우월성을 향한 투쟁이며, 복종하는 행위이고 아버지를 유혹하려는 시도다.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현실에 대한 승리이자 아동기 초기에 자신을 양육했던 어머니와의 재결합으로 성취되는 전능감과 같은 가치를 지닌다.

마찬가지로 게임에서 지는 것은 자신을 양육한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것과 같다. 도박자는 도박을 통해 계속적으로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전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게임에서 지면 한 순간에 전능감이 폐기되지만, 승리하면 전능감을 확인할 수 있기에 도박자는 전능감을 확인하고 싶은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마지막 한 판에서도 전능감을 확인할 수 있으나 한판은 영원히 계속된다. “도박자는 전능감에 대한 환상 속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도박판에서 승리해 막대한 금액을 받으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관대하고 부유한 부모로 여기고 그에게 의지할 것이라 생각하는 반면, 자신은 완전히 독립적 존재로 모든 것들 위에 위치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학은 도박중독의 원인을 이상 4가지 관점에서 기술한다. 이런 것은 아동기에 해결되지 않은 갈등을 표출하는 데 집중한 인상을 준다. 물론 죄의식이나 자기처벌의 문제는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외에도 정신분석은 도박이 정신분석에서 다양한 방어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본다. 아동기의 우울과 상실, 불확실성과 무력감, 자아분열, 죽음이라는 필멸성,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의해 압도당하는 것을 방어하기 위해 통제력과 권능에 대한 착각이 일어난다.

도박은 또 불확실한 정체감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정신분석학은 도박중독의 원인을 의식보다 무의식적 특성에 기초해 이해하는 편이다. 이런 것은 인간의 본능적 특성을 발현하려는 것으로, 도박을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측면을 중요시한다.

2. 도박중독의 원인과 학습이론

학습이론은 도박중독의 원인을 도박중독자들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의 도박행동을 학습 결과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이에 앞서, 행동과 심리를 엄격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점도 전제된다. 심리는 행동으로 드러나고 행동은 그 심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행동주의 이론과 인지 이론이 모두 유사 입장을 견지한다. 이들의 이론에 따르면 병적 도박자들이 도박을 지속하는 이유는 도박행동이 학습되고, 도박에 대한 잘못된 사고를 발전시키는 점 때문이다. 학습이론은 도박중독의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관점을 갖고 있다.

1) 학습의 결과

도박중독은 행동주의에 의하면 쾌감이 증폭되고 스트레스가 감소되면서 점차 강화되는 학습된 행동이다. 사회학습 이론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술을 마시면 술의 약리학적 효과로 사교성이나 즐거운 기분이 일시적이나마 증가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도박에서도 사회적 강화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 사교 목적에서 도박이나 술을 하는데, 특별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줄이거나 쾌감을 증폭시키기 위한 방편으로도 도박에 탐닉한다. 환경이 도박을 고취시키고 도박하면서 쾌감을 얻는다면,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스트레스 감소에 효과적이라면, 그 사람은 도박중독으로 발전할 위험이 높다.

도박을 지속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학습요인은 조작적 조건화(operational conditioning)다. 조작적 조건화란 자극이 주어질 때 그 자극에 자발적인 반응을 하고 강화가 뒤따르면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으면 앞으로 그 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어야 한다. 강화는 반응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도박을 예로 들면, 처음부터 도박에 빠져들어 많은 돈을 거는 도박꾼들은 드물다. 대개 사교적이거나 유희적인 목적에서 적은 액수를 걸지만, 도박에서 우연치 않게 베팅을 해서 큰돈을 맞추면 커다란 쾌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다시 도박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도박 초기에 큰돈을 땄을수록 도박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큰돈을 맞춘 경험이 지속적인 유인가 역할을 하며, 그 경험이 재현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강화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사기 도박판에서는 초반에 돈을 따도록 일부러 져 주기도 한다.

2) 매력적인 보상물

도박판에서 강화물은 돈으로 제공된다. 돈은 가치가 높은 강화물이기에 가장 매력적이다. 인간에게 강화물이 되는 것에는 보상물이 되는 측면이 있다. 여기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그것은 개인의 요구에 따라 다르게 작용되는 측면도 있다. 1차적 강화물이란 대개 배고픔, 목마름, 성적 욕구, 쾌락 욕구 등과 같이 생리적이거나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들이다. 다음으로는 2차 강화물을 들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돈이다.

돈에는 언제든 1차적 강화물을 획득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가치가 있다. 이런 면에서 돈은 1차적 강화물과 유사하거나 동일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그토록 도박판에서 돈을 잃고 따는데 집착하는 이유는 돈이 있으면 욕망하는 1·2차 강화물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은 도박판에서 욕구와 강화물이라는 상관성을 갖는다. 돈을 자꾸 잃는 것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치있는 강화물을 모두 잃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때 학습심리학에서는 1·2차 강화물을 다시 정적·부적 강화물로 구분하기도 한다. 정적 강화물은 행동에 의한 결과가 즐겁거나 소망하는 것이다. 반면 부적 강화물은 반응의 결과로 인해 바라지 않던 어떤 것이 줄어들거나 감소하는 것이다. 정적·부적 강화물 모두 행동 강화 기능을 한다.

도박중독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박꾼은 쾌감을 맛보고 돈을 따기 기대하는, 즉 긍정적 강화에 대한 기대에서 도박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일상생활에서 뒤따르는 불편과 경제적·심리적 고통, 자기부적절감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를테면 부적 강화에 대한 기대에서 도박을 한다. 정적·부적 강화를 맛볼수록 도박에 집착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도박중독은 돈이라는 매력적인 보상물에 깊이 빠져든 경우다.

3) 강화효과의 보상물

강화효과는 도박중독으로 빠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단순하게 도박하던 것이 점차 강화 효과를 경험하면서 도박중독으로 깊이 빠져든 것이다. 이런 것은 그 강화효과가 갖는 보상물이 전제돼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도박판에서 강화효과의 보상물은 돈이다. 작은 돈보다는 큰돈이 그만큼 강화효과의 보상이다.

강화효과의 보상물은 학습심리학에서는 다양하게 조작된다. 강화효과에는 강화 시기(timting), 지연(delay), 양(amount) 등 세 요인이 중요하다. 강화의 지연은 반응한 후 강화가 주어지는데, 시간이 얼마나 지체되는가의 문제기 때문이다. 지연기간이 길수록 강화 효과가 떨어지는 반면, 짧을수록, 즉 반응 이후 빠른 시간 내에 강화가 주어질수록 효과도 크다. 노동의 세계에서 일한 후 대가를 받으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일급을 받는 노동자는 8시간 이상, 월급 노동자들은 한 달이 지나야 대가를 받을 수 있다.

이와 달리 도박에서는 즉시 대가가 주어진다. 노동은 지연기간이 긴 반면에 도박은 지연기간이 짧은 것이다. 간혹 복권처럼 결과를 아는데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예외도 있다. 그래서 지연기간이 긴 복권보다는 짧은 슬롯머신, 경마, 경륜, 카드게임과 같은 도박의 효과가 훨씬 더 강력하다. 최근 이런 단점을 보완해 즉시 결과를 알 수 있는 즉석복권이 등장했다.

강화의 양은 반응 후 주어지는 강화의 크기다. 개인 행동에 대한 값어치가 적다면 행동하려는 의도가 줄어든다. 예를 들어 월급이 너무 적으면 그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도박에서는 간헐적으로 주어지는 돈과 쾌감이 노동이나 다른 놀이의 값어치보다 훨씬 크다. 많은 도박꾼들이 도박판에서 주어지는 강화의 크기, 즉 대박에 맛을 들이면 직장에서 하루종일 일한 후 받는 강화의 양, 즉 월급은 사소하고 값어치 없어 보인다. 한 달 내내 지치도록 일하고 받는 월급은 도박판에서 즐기면서 한 번 크게 돈을 따는 것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이들에게 직장생활은 가치없고 무의미해 보이므로 직장을 포기하고 도박에만 매달리기도 하며, 노동의 의미와 돈의 가치를 상실한다.

강화의 양에는 발생 시기도 연결돼 있다. 발생 시기란 결과가 어떤 시기에 주어지는가를 의미하며, 강화 스케줄(schedule of reinforcement)이 중시된다. 강화 스케줄은 다양한 방식으로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도박판에서는 도박을 끊지 못하고 지속하도록 하는데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강화 스케줄의 영향을 받는다.

오늘날 많은 사업장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강화 스케줄을 은연중에 이용한다. 성과급제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데, 하루 8시간이라는 고정 노동시간에 임금을 균등하게 지불하지 않고 이미 정해진 노동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제품을 생산했느냐에 따라 월급을 차등적으로 지불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한정된 노동시간 안에 더 많이 일을 하거나 노동시간 이상으로 잔업을 하려들 것이다. 여기는 생산성을 올리기 위해, 즉 행동의 양과 질을 증가시키기 위해 강화 스케줄을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4) 연속적 강화로서의 탐닉

학습심리학에서 연속적 강화는 반응 횟수나 시간에 관계없이 유기체가 반응할 때마다 매번 강한 자극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연속적 강화는 초기 단계에서 어떤 행동을 시작하고 강화시키기에 좋은 방법이지만, 소거와 벌(罰)의 영향을 받기 쉬워서 행동을 유지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런 강화의 연속에서 그 결과는 어떤 시기에 어떠한 방식으로 주어질 수 있을까? 우선 강화는 사람들이 행동을 할 때마다 주어질 수도 있다.

이런 연속적 강화(continuous reinforcement)는 도박판에서도 작용한다. 다시 말하면 도박을 할 때마다 돈을 딴다면 이는 연속적으로 강화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도박을 하고 도박판을 떠나지 못하겠지만, 할 때마다 돈을 따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어쩌다 한번, 가끔 간헐적으로 돈을 따는 것으로 간헐적인 강화가 주어지는 것이 바로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다.

도박판에서 도박꾼들이 매번 돈을 따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매번 잃는 편이다. 잃는 것은 처벌이지만, 간헐적으로 큰 게임이 맞으면서 커다란 강화물이 주어진다. 이 강화의 값어치는 처벌, 즉 손실을 모두 만회할 만큼 크다고 기대하거나 실제로 크다면 이들의 마음이 달라진다. 그러나 도박중독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도박 초기에 강력한 대박, 간헐적 강화를 맛본 적이 있다.

간헐적 강화는 두 가지로 구분된다. 다시 보상이 언제 주어질지 예측할 수 있는 고정 강화와 예측할 수 없는 변화 강화다. 고정 강화는 다시 고정비율 강화와 고정간격 강화로, 변화강화는 변화비율 강화와 변화간격 강화로 구분할 수 있다. 고정비율 강화나 고정간격 강화는 일정 시간이 지난 후나 일정한 횟수의 행동을 한 이후 보상이 주어진다. 예컨대 운동선수에게 10번 운동장을 뛴 이후 휴식을 취하도록 하는 경우나, 일정한 시간을 일한 후 월급을 받는 월급제가 고정 강화에 속한다.

반면 변화비율 강화나 변화간격 강화에서는 보상받을 수 있는 비율이나 간격이 일정하지 않다. 예를 들어 운동은 3회를 뛰고도 쉴 수 있지만 20회를 뛴 후에 쉴 수도 있다. 대신 전체적으로 합산한 평균횟수는 10회를 유지한다. 평균적으로 항상 10회를 유지하지만 행동주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행동을 하고 난 후 강화가 돌아올지를 예측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변화간격 강화 역시 시간에 따라 보상이 다양하게 주어진다. 어떤 경우에는 빨리 주어지기도 하고, 다른 경우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주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행동하는 입장에서는 언제 보상이 주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강화 스케줄이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강화가 어떻게 주어지느냐에 따라 얼마나 빨리, 자주, 오랫동안, 열심히 그 행동을 하는가에 행동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

간격 강화에서는 시간에 따라 보상이 결정되기 때문에 반응률이 떨어지는 반면, 비율 강화에서는 개인의 행동 횟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므로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된다. 변화 강화에서는 언제 그에 따른 보상이 주어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휴식이 없다. 보상이 주어질 때까지 행동을 지속해야 하며, 보상이 주어진 후에만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뿐이다.

5) 간헐적인 보상의 마력

도박에서는 간헐적인 보상의 마력이 있다. 그 보상은 물론 대박이다. 도박행동은 2차적 강화인 돈을 따면서 간헐적으로 강화된다. 대부분 사람들이 도박을 지속하는 주된 이유를 “간혹 돈을 따기 때문”이라 답한다.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서도 간헐적으로 큰 돈을 따기 때문에 돈을 딸 것으로 기대해 도박판을 떠나지 못한다. 그 결과 대부분의 병적 도박꾼들은 커다란 대박, 간헐적 강화를 꿈꾼다. 그들은 손실이 누적되면서 후회하지만, 때로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없음을 인식해도 마음에서는 간헐적 강화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간헐적 강화는 도박중독자에게 상당한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들은 도박으로 심각한 손실을 입은 상태에서도 도박을 끊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키는 강력한 요인이다. 더욱이 도박판의 강화 스케줄은 변화의 특성을 가진 비율 강화다. 보상을 얻는데 필요한 행동반응 횟수가 변화한다고 볼 수 있다. 언젠가는 보상이 주어지지만, 다른 측면에서 언제 주어질지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상은 지금 주어질 수도 있지만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주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도박꾼은 빠른 시간에 보상이 주어지기를 항상 희망하며, 마치 지금 당장 주어질 것 같은 조급함에 시달린다. 이는 병적 도박꾼들이 커다란 승리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로 인해 도박중독자들의 손해가 클수록 이런 착각은 더욱 심해진다. 지금까지 돈을 잃었지만, 언제 크게 승리할지 모르며 다음 판에서 큰 대박이 쏟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 주어질지 모르는 보상의 크기가 커지면서 지연 기간도 없다. 강화 스케줄 중에서도 변화 비율 스케줄은 소거에 가장 저항적이며 변화하기 어려운데, 이는 예측 불가능성, 보상의 크기, 보상의 즉시성 등이 도박을 끊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영향력으로 보게 한다.

6) 부차적 보상들

도박에는 부차적인 보상들이 있다. 부차적인 보상들에는 돈을 따는 것만이 아닌 다른 것, 대개 심리적인 것들이다. 이런 특성은 대개 이차적 강화로 볼 수 있다. 여기는 돈을 따는 것만이 2차 강화는 아니다. 도박판에서 맛보는 쾌감이나 1차 강화인 스릴도 빠르고 강력하고 지연 기간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도박판에서 쾌감을 맛보려는 사람이 도박만 하면 언제든 쾌감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만든다. 노름판에서 재미를 못 느끼는 사람은 도박에 심취할 가능성이 적지만, 스릴과 흥분을 느끼는 사람은 병적 도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병적 도박자와 사교성 도박자는 도박할 때 느끼는 흥분수준이 다르다. 한 예로 도박에서 이길 때 병적 도박자는 큰 충만감과 도취감을 느끼는 반면, 사교성 도박자는 이런 흥분상태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병적 도박자는 쾌감과 도취감을 맛보기 위해 도박을 한다. 도박중독자들은 때로 우울과 권태로움, 걱정을 회피하기 위해 부적 강화의 도박에 몰입한다. 도박판의 자극적이고 강렬한 쾌감은 권태와 지루함을 잊을 수 있는 훌륭한 방편이기 때문인데, 도박에 빠져들기 전부터 직장이나 가족, 인간관계에서 만족을 찾지 못하거나 자신에 대한 불만족이 많았던 사람들은 도박판에서 도피처를 찾게 된다. 더욱이 도박꾼들의 삶은 대개 경제적인 어려움과 혼란으로 가득하다.

손실이 누적되고 후회와 자책이 클수록, 자극적인 쾌감을 맛보기 위한 목적보다 후회와 자책감을 피하고 괴로움을 잊기 위해 도박판에 다시 발을 들인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우선 괴로움을 잊기 위해 도박판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다. 도박 순간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효과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도박판에서는 괴로움과 고통을 잊을 수 있는 부적 강화물을 제공한다. 쾌감과 스릴, 고통의 망각은 도박판의 중요한 1차적, 정적·부적 강화, 그리고 도박할 때는 언제든지 맛볼 수 있는 연속적 강화이기 때문이다.

학습심리학에서 도박중독자의 원인은 일정한 특징을 갖는다. 그것은 심리에 중점을 두지만, 근본적으로는 중독자의 자극에 중점을 둔다. 중독자에게 주어지는 자극 문제가 반응을 나타내면서 점차 감각 경험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단순히 자극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자극은 감각적 특성이지만, 이것이 지속되면 심리와 정신에 어떤 현상을 일으키고 다시 학습 특성에서 심리적 특성으로 고정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학습심리학은 도박중독 원인을 반복적 경험 패턴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반복 경향은 심리에서 일정한 틀을 형성해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유발하는 점에서 중독 원인이 되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3. 도박중독의 원인과 동기심리학

동기심리학은 행동의 동기를 주로 밝혀낸다. 개인의 욕구나 동기 등에서 비롯되는 행동 증가에 초점을 둔다. 습관적인 도박행위나 병적 도박행동은 합리적인 경제학에 의해 설명될 수 없으며 도박에 개입된 개인 심리에 의해 설명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심리 요인은 무엇보다 습관적 도박을 지속하게 하는 요인에 중점을 두는 관점에서 다음 몇 가지는 동기심리학 이론의 도박중독의 원인으로 보는 특징을 이룬다.

1) 욕구에의 충족

욕구 또는 욕망은 충족을 원하는 특성이다. 욕구나 욕망은 원하는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것이 원하는 것으로 채워지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것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그래도 욕구나 욕망의 특성은 근본이 채워지는 것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을 욕구나 욕망의 존재로 규정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과 평온한 상태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잠자던 실존에 고통이 치솟아 올라와 심리를 흔든다.

이런 현상은 마치 욕망이 치솟아 올라와 현재 심리 상태와 그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 사이에 깊은 도랑을 만드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이런 때에 인간은 거의 체념적인 태도를 가지고 살거나 그에게 다가오는 여러 가지 쾌락이나 자극적 특성에 자신을 내맡기면서 살기 쉽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런 욕망이 없는 무욕(無慾)의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다.

이런 욕구나 욕망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도박중독자들에게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욕구가 그들을 도박으로 빠져들게 만듦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이런 욕구는 그들을 매혹시키고, 그들의 현재 상태를 보완해 줄 수 있을 듯한 마력으로 다가와 그들을 사로잡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런 묘한 느낌을 깨달으면서 도박의 열정을 불러 일으키면서 점차 도박 행위에 빠져든다.

물론 그들이 이런 자세로 나갈 때 원하던 대로 얼마나 충족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충족하고자 도박에 심취하지만, 충족할 수 있는 내면의 그릇에서는 오히려 허탈감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도박하는 행위에서 원하던 것들이 최초 그들이 바라던 것과 달리 행복한 상태에 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도 그들은 적어도 이런 욕망을 꿈꾸기 때문에 도박하는 행위를 지속한다.

이런 점에서 생각하면 도박중독자들에게는 어쩌면 뭔가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허전함을 도박으로 채우고자 하고, 그것은 다시 일정한 죄의식을 유발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들에게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채우고자 하는 욕망과 그렇게 긍정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적인 느낌을 갖게 되는 죄책감의 특성이 그들을 도박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도박중독자들에게는 채우려는 욕망과, 도박하면서 얻어지는 부정적 감정인 죄의식이 핵심을 이룬다.

2) 결핍에의 자극

도박중독은 재발의 함정이 있다. 아무리 중단하려 해도 자주 도박하고, 그것을 끊지 못한다. 실제 병적 도박자들은 재발이 잦다. 도박을 끊고 몇 년이 지난 후 다시 도박판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도박빚을 갚아주고 다시 도박을 하는 일이 몇 번씩 반복된다. 그러면 병적 도박자들에게 재발이 왜 잦은지 규명돼야 한다. 그 이유는 도박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도박하고자 하는 욕구가 사그라들지 못한다. 이는 아마 동기심리학에서 결핍을 중요시하는 이유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도 설명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학습심리학에서 강조하는 조건화 문제와 연결해 설명할 수도 있다. 이는 조작적 조건화보다 고전적 조건화(classical conditioning)에 가깝다. 고전적 조건화란 무조건적 반응(unconditioned response)을 유발하는 무조건적 자극(unconditioned stimulus)에 중립적인 조건 자극(conditioned stimulus)이 짝지어진다. 일단 무조건적 자극에 조건자극이 짝지어지면 이 조건자극은 무조건적 반응과 유사한 조건 반응(conditioned response)을 유발하는 힘을 갖는다. 그런 이유에서 도박에서는 고전적 조건화가 작용하므로, 도박하면서 학습된 쾌감과 스릴을 잊지 못한다.

자극은 결핍된 부분에 다시 당겨지는 특성이 있다. 그러기에 병적 도박자들에게는 도박판이 무조건적 자극이며, 이 자극은 흥분이나 스릴감 증폭, 우울감 증가 등 무조건적 반응을 일으킨다. 이후 도박을 끊어도 도박과 연관된 환경단서(조건 자극)에 노출되면 도박 갈망(조건 반응)이 증폭된다. 이러한 환경단서, 즉 조건 자극은 우연히 길을 가다 도박장을 지나치는 경우, 같이 도박하던 친구를 만나는 경우, 동료들이 도박하는 모습을 보거나 누가 큰돈을 땄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 도박에 관한 책자나 심지어 도박에 관한 기사, TV 뉴스 등도 포함된다.

도박과 연관된 환경단서들은 흥분, 돈을 따는 것, 도취감, 불편 감정 해소, 도피욕구 등 수많은 긍정적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더욱이 도박할 때는 흥분으로 환경단서에 대한 민감성이 일시적으로 증가해 강력한 조건적 조건화가 일어나기 쉽다. 도박과 연관된 환경단서는 재발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변인들이다.

도박과 연관된 모든 환경 단서들이 긍정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도박과 관련된 부정적 효과는 큰돈을 잃은 것, 패배시의 자괴심과 실망감, 불안, 우울, 공황상태의 초조감 등이다. 부정적 효과가 증폭되면 일시적으로 도박을 끊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 많은 도박자들이 도박판에서 큰돈을 잃은 후 자괴심에 빠져 도박을 끊으려는 마음을 먹는다. 도박에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병존하며 이 두 가지는 상호 경쟁한다.

그런데 병적 도박자들은 부정적 효과에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욕구가 더 커서 오히려 긍정적 효과를 더 높이기 위해 액수를 높이고 자주 도박을 한다. 반면 부정적 효과가 긍정적 효과에 비해 크게 지각되고 부정적 결과에 직면할 용기가 있으면 도박을 끊으려는 의지를 갖고 실행에 옮기거나 주변의 도움을 요청한다. 병적 도박자들이 악순환을 끊고 일시적이나마 도박을 끊거나 치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대개 이 시기다.

3) 절제력의 실패

도박중독자들은 도박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도박을 단절하고 난 후에도 그런 심리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도박을 끊으려는 의지를 갖고 회복단계에 있는 병적 도박자들은 최소한 단기간이라도 도박을 끊기 시작하는 초기에는 도박과 연관된 환경들을 적극적으로 피하고 거절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계속 도박과 연관된 환경에 노출되면 도박에 대한 갈망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장기간 도박하지 않으면 도박과 연관된 환경자극들은 갈망을 증폭시키던 위력이 점차 약해지지만 도박충동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조건화의 위력은 강력해서 장기간 절제에 성공한 후에도 완전히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몇 년간 절제력을 유지하다가도 어느 날 우연히 “이제는 이전처럼 빠지지 않겠지. 조금만 해 보자”고 방심하면서 단 한번 노름판에 끼어들어도 그동안 잊고 있던 쾌감과 갈망이 한꺼번에 증폭될 수 있다. 절제하다 갑자기 도박충동을 느끼며 재발하는 경우도 많으며, 단 한번 손을 댄 것이 걷잡을 수 없이 큰 도박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는 자발적 회복(spontaneous recovery)이 도박환경을 피하는 데 수동적 대처방법에 지나지 않는 이유다. 그리고 많은 도박자들이 이런 수동적 대처에만 의존하다 실패한다.

수동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도박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긍정적 효과를 즐기는 것이다. 나아가 도박의 부정적 결과를 적극적으로 논박하고 긍정적 효과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순간적인 쾌감이 도박보다는 못하지만 건강하고 생산적인 다른 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즐거움과 의미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4) 악순환의 틀

도박에는 악순환이 나타난다. 이런 악순환이란 물론 도박을 중단하지 못하고 반복되는 것이며, 더욱 도박으로 빠져드는 요인이다. 도박중독자들은 대개 그들 나름대로 도박에 가치를 느끼고 의미를 부여해 도박을 중단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다른 것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점진적인 악화 과정을 밟으면서 과도한 탐닉, 추락, 갈망의 악순환에 갇혀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기력이 소진할 때까지, 동원할 수 있는 돈을 모두 잃을 때까지 탐닉한다. 이로써 그들은 도박의 악순환에 발목이 잡힌다.

그러면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은 없나? 그 대답은 일단, “가능하다”. 흥미롭게도 이는 노력으로 얻어지지는 않는 방법이다. 도박 능력이 상실되면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병적 도박자들은 최종적으로 돈이 모두 고갈되고 도박할 기력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겨우 도박을 멈출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악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이다. 악순환에서 발을 뺄 수 있는 길은 이전부터 회피하던 불편한 감정들, 도박으로 쌓인 문제들에 직면하는 길 밖에 없다. 문제를 직시하기 위해서는 도박자의 엄청난 결단과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전부터 피해 온 문제들이 너무나도 거대하고 엄청나 보여, 조금이라도 직면하는 순간 오히려 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힌다.

게다가 그들은 회피에 익숙해진 상태기 때문에 도박을 끊는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이런 학습이론적 측면에서 보면 어리석고 불합리해 보이는 도박꾼의 행동도 이해가 된다. 도박자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또다시 위험한 도박을 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현실에서 손실을 만회하기에는 보상 규모가 너무 적으며 보상받을 시기도 뒤늦게 제공된다. 더욱이 보상받기 위해서는 그 대가로 노동을 제공해야 하며,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나 경로도 제한돼 있다. 그러나 도박은 결과가 즉시 제공되며, 대박과 쾌감이라는 강화의 크기도 매우 크고 강력하다. 따라서 한 순간에 많은 돈을 벌어 손해를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도박자들에게는 도박이 가장 손쉽고 빠른 최선의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지각될 수도 있다.

4. 결론: 마음에 충족이 없다면 도박에 빠질 위험이…

이상에서 학파적 견해에 기대 도박중독의 원인을 기술하였다. 도박중독은 기조가 심리적이지만, 곁에는 자극이 부차로 존재했다. 그러나 이런 견해에도 불구하고 도박중독의 원인은 한 가지로 정리하기 어렵다. 무엇이 중독의 원인인가에 대해 학파의 견해가 다르고, 어떤 관점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에서 기술한 것들은 처음에서 이유를 밝혔듯 대개 신체적 문제보다는 심리 문제에 주안점을 두고 그 원인을 보고 있다. 신체적 문제라면 자극적 특성이 우선돼야 하지만, 심리적 특성이라면 도박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욕구가 중시돼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심리적 측면을 너무나 강조해 균형을 잃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기에 어떤 점이 중요하느냐의 문제를 두고 논하기보다는 개인에 따라 어떤 기준이 적용되느냐, 그리고 현재 도박하는 당사자에게 가장 영향을 주는 환경적·심리적 요인, 그리고 신체적 증상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문제는 원론적이지만 중요하다. 또 하나, 이런 정도에 이르면 점차 그 원인을 발견하고 이해하는 상황으로 점점 다가갈 수 있다.

이런 점은 특히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인간이 허탈감에 있으면 무엇으로든 채우려는 심리가 작용한다. 그러면 도박중독이란 도박에 빠질 수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노출된 문제다. 이런 문제는 인간이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관계된다. 인간의 삶에서는 욕구와 욕망이 항상 내면에 작용하고, 거기에 충족을 원하는 심리가 언제나 작용해 실제 힘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욕망이나 욕구가 부과하는 것들은 옳고 그름을 넘어 개인에게는 필요를 충족하는 것으로 어쩌면 삶에서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도박중독에 이미 빠져버린 사람들 외에도 마음에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충족을 원하는 이유 때문에 도박에 빠져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다시 말하면 무언가 허탈감에 빠져 있는 사람이나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자 하는 신앙인도 언제든 유혹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문제다. 그러니까 신앙으로 충만하지 못한 신앙인이나,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불만감이나 욕구불만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도박에 빠져들 수 있고, 심하면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는 도박중독에 빠져들 수 있다. 영혼을 돌보는 책임을 진 목회자가 이런 점에 무감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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