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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근목사 아가서강해 29] 솔로몬과 술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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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3.27 07:08   
주님의 사랑하는 자의 승리

▲ 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1. 예루살렘 여자들이 여인을 보기 원함

13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로 너를 보게 하라

주님은 이 여인을 ‘술람미’라 불렀다. 그녀는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 됐다. 술람미는 솔로몬의 여성형이다. 동일한 이름으로 남성형, 여성형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태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이 여자를 보고 싶어한다. 주님의 역사를 위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 임했을 때 과거의 그녀를 알던, 그녀의 성숙함을 봤던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싶어하고 자신들도 그러한 상태에 이르기 원한다.

여기서 무려 네 번이나 돌아와 달라고 간청한다. 그녀에게 무언가 믿는 이를 매혹하는 풍성한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녀를 본 적이 있고 그녀에게서 양육을 받아 본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렇게 간청한다. 그녀는 이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진정한 사역은 여기서부터다. 어떤 사람이 정말 자라고 변화되면 자연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보고 싶어한다. 결국 그녀를 보고자 하는 자들이 사역의 대상이 된다.

처음 바로의 준마의 봉사와 너무 대조적이다. 바로의 준마는 주로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그러나 여기서 술람미는 솔로몬을 나타낸다. 주님의 대표가 될 만하다. 그녀를 보면 쉽게 주님을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녀에게 오라고 간청한다. 보고 싶어한다. 그녀에게 배우고자 한다. 이는 다름 아닌 그녀의 성숙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 여인이 승리의 생활에 들어섬

14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누가 이 여인에 대해 말한 것인지는 말하기 참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 말이 여인에 대한 칭찬이라는 것이다. 창세기를 보면 야곱이 얍복강에 있을 때 마하나임의 두 군대를 봤다.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은 강한 군대의 춤으로 승리를 뜻한다. 춤추는 것은 승리와 관계가 있다. 벌써 이 여인의 상태는 디르사, 예루살렘, 천체(해·달), 기치를 벌인 군대로 비유된 것을 보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승리의 생활로 들어섰음에 틀림없다. 이 여인은 그리스도인 생활 가운데 계속적인 승리를 누리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사실 그리스도인 초기에 그리스도인의 승리를 모르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기가 아주 어렵다. 차라리 주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일 때는 항상 죄 가운데,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불편을 못 느낀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나서 승리의 비결을 모르면 참으로 괴롭다. 죄를 지을 때, 실패할 때 너무 괴롭다. 승리의 생활이란 요원한 듯 하다. 그러나 이 상태에 이르렀을 때는 항상 승리가 있다. 실패가 없다. 아주 강한 생활 가운데서 승리를 누린다.

3. 여인의 진보는 ‘조성’된 것

앞에서 이 여인을 어여쁨이 디르사 같고, 고움이 예루살렘 같고,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 같다고 했다. 계시록을 볼 때 새 예루살렘은 조성되고 건축된 것이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계속적으로 성장할 때 우리 속에 성령의 조성이 있어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원숭이는 어쩌다 사람의 흉내를 낼 수 있지만 돌아서면 다시 옛 습성으로 돌아가는데 이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의 변화는 우리 속에 성령의 성분이 점점 조성되는 것이며 그럴 때 우리는 인위적으로 노력해 그리스도를 나타낼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그러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것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며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람으로 변화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 그 사람의 존재가 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여인이 예루살렘, 해, 달이 된 것은 조성 없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그 분 자신을 더 조각하셔야 한다. 신약 성경에는 거룩함에 이른다는 말씀이 많이 있다.

히브리서 12장에서 징계는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더 징계하신다고 했다.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지만, 그로 말미암아 연단된 후에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으며 거룩함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징계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손길을 거칠 때 우리에게서 좋지 않은 기질이 나가고 옛 사람에 속한 것이 벗겨지고 우리 안에 새로운 하나님의 속성이 더해진다. 이사야 1장 27절에 의하면 ‘시온은 공평(심판, 다비역)으로 구속이 되고’라고 했다. 우리 존재는 각 부분이 심판을 통해 주님의 것으로 구속이 된다는 뜻이다. 심판은 십자가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사람의 육신 안에 있는 죄를 정죄하셨다. 육체를 심판하신 것이다.

오늘 우리는 한 가지 한 가지 일에서 우리의 육을 통해 나타나는 인간적이고 동물적인 기질이 심판돼야 한다. 때로 이런 심판은 질병이나 환경의 어려움을 통해 온다. 이러한 심판을 통해 우리 각 부분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쳐지고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 특정한 일에서 내 반응은 매우 천연적이고 주님으로 변화되지 않은 못난 것이다. 그러한 부분이 심판을 통해 주님께 구속될 때 우리 본질이 한 부분 더 주님의 형상으로 화하게 된다. 이것이 예루살렘 성과 같이 조성된 것이다.

원래의 예루살렘은 여부스로 가나안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수 18:28). 이젠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성전이 지어지고 각종 성벽과 아름다운 가옥들로 조성된 성이다. 이방 사람들의 도시가 하나님의 성이 됐다. 조밀한 건축을 가지게 됐다(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같이 건설되었도다, 시 122:3). 십자가와 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여부스적인 각 부분에 다 새로운 하나님의 성을 위한 건설의 역사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과할 때 우리는 과거의 내가 아닌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생활이 흘러나온다. 여기 마하나임의 춤추는 것은 승리에 찬 그리스도인 생활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승리의 생활, 이기는 생활이 가능하다. 우리 모두의 본(本)이 되는 사도 바울이 ‘우리를 항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6장 후반부에서 이 여인은 주님의 일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의 생활은 항상 승리하는 생활이 됐다. 이미 많이 변화했기 때문에 처음으로 ‘솔로몬과 일치됨’을 의미하는 ‘술람미’로 그녀의 이름을 밝혔다. 항상 승리하는 사람이 아니면 주님의 일을 하기가 참 어렵다.

[유동근 목사 성경 칼럼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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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전체(1개)
봄비
2010.03.29
참으로 은혜롭고 명쾌한 해석입니다.
술람미를 통해 승리에 찬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주님의 사랑을 입은자의 승리를 말하는 아가서를
세상적인 성탐닉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무리들에 대해
목사님을 비롯해 한국교회는 왜 침묵으로 일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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