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위기인 것이 분명하지만 희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희망은 미래형이다. 앞으로 성장을 이어갈 수 있고,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회복하려면 달라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변화만이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희망은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의 노력 여부에 달려 있다.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교회, 새 희망을 말할 수 있는가’를 주제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손인웅 목사) 제16차 열린대화마당이 25일 오후 서울 상도동 숭실대학교 한경직기념관 김덕윤예배실에서 개최됐다.

기조발제에는 이원규 교수(감신대)가 나섰다. 30여년간 종교사회학을 연구해 왔으며, 최근 한국교회에 대한 애정을 품고 조언한 저서 <힘내라, 한국교회>로 주목받았다. 이원규 교수는 한국교회의 문제점과 어두운 미래들을 먼저 논한 뒤, 희망의 불씨를 찾는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했다. 이 교수는 “한때 높은 도덕성으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예언자적 통찰력과 운동으로 사회 변혁에 선구자 역할을 했던 한국 개신교가 오늘날 가장 비판받는 종교,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며 “이제 우리는 한국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다시 한 번 냉철하게 돌아보고 겸허하게 반성할 때가 됐다”고 전제했다.

빨간 불이 켜진 한국교회

▲이원규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원규 교수는 양적 성장 정체와 떨어진 사회적 공신력을 들어 한국교회에 ‘빨간 불’이 켜졌다고 진단했다. 양적 성장에 대해 “한국교회는 주로 1960년대 이후 급성장이 이뤄졌고, 이는 기독교 선교 역사상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한 사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며 “그런데 지난 1995-2005년 같은 기간 가톨릭 신도는 무려 220만명이 늘어난 데 비해 개신교는 14만 4천명이 줄어들었고, 최근 동향을 보면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회적 공신력에 대해서는 “한국교회 신뢰도는 떨어지고 있고, 반기독교 정서는 확산되고 있다”며 “한국교회의 보다 근원적 위기는 교인 수 감소보다 오히려 사회로부터 비판과 공격 대상이 되는 지경에 이른 현실”이라고 했다.

이러한 두 가지 사실로 비춰볼 때 한국교회의 미래도 밝지 않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종교 성쇠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출산율 감소와 전통적 가족 가치 붕괴 등 인구학적 변화를 봐도 그렇고,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 사회복지 확산과 여성의 지위 향상 등 사회경제학적 변화를 봐도 그렇다는 것이다. 또 사회적으로 전도와 개종 가능성이 한계에 도달했고 대형교회로의 수평이동만 늘어날 것이라는 통계와 특히 20, 30대 연령층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한국교회 위상과 신뢰도도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이 교수는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들이 전체적으로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 비율이 56%에 머물고 있고, 구체적으로 교인에 대한 신뢰도는 54.3%, 목사에 대한 신뢰도는 68.6%, 교회활동에 대한 신뢰도는 71.1%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결고 높은 비율이 아니다”며 개신교인 스스로 한국교회에 큰 신뢰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심지어 개신교인들 가운데 가장 호감이 가는 종교가 가톨릭이라는 응답자도 11.1%나 됐다(가톨릭교인들 중 개신교가 가장 호감가는 종교라는 응답 비율 2.2%).

희망의 불씨를 찾을 수 있는가

이원규 교수는 “그렇다고 해서 절망적인 것은 아니고, 한국교회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몇 가지 불씨가 남아있다”고 말했다. 먼저 ‘신앙적 역동성’이다. 이 교수는 한국은 종교적으로 매우 뜨겁고(heat) 경쟁적이며(competition) 선택의 여지가 많기(choice) 때문에 교회가 급성장하고 활발하다는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을 소개하면서 “한국교회는 다종교·다교파 사회이기 때문에 서로 경쟁하면서 자극이 되고 있다”며 “신앙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어서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수 있고, 한국교회의 이러한 신앙적 역동성은 한국교회의 미래 가능성에 하나의 희망적인 요소”라고 밝혔다.

감성문화 성향과 개 교회에 대한 충성심도 하나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서도 자유주의(liberalism) 계열과는 달리 ‘감성을 추구하는(seeker-sensitive)’ 남침례교와 성령강림파, 독립교회 등 복음주의(evangelism) 전통의 교회들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의 종교문화가 감성적인 점은 미래의 한국교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아무리 경제 수준이 향상되고 정치가 안정되며 복지제도가 정착되더라도 근원적인 삶의 의미에 대한 목마름은 있게 마련”이라고 풀이했다. 자기 교회에 대한 신뢰도 충성심과 헌신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다만 한국교회의 문제는 이러한 커다란 자원과 내적 동력을 주료 개교회에서만 활용한 점”이라며 “이제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그 판을 세상을 향해 넓힌다면 매우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외에 적극적인 사회봉사도 희망의 근거로 들었다.

이러한 희망의 불씨가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갱신이 필요하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영적 자만심과 분열, 권위주의적 지도자와 소홀한 윤리적 가르침을 극복하고 성장, 신앙, 교회, 조직 중심의 패러다임을 성숙, 실천, 지역사회, 인간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서 <힘내라, 한국교회>에서 밝힌 것처럼 영성과 도덕성, 공동체성을 회복하자는 교회 본질의 변화도 촉구했다.

대형교회,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오정호 목사를 좌장으로 기조발제한 이원규 교수, 논찬한 임성빈 교수, 정병길 목사, 조성돈 교수(왼쪽부터) 등이 발표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같은 조건들과 함께 한국교회 미래를 위해서는 대형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사회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형교회들이 ‘노블레스 오블레주(noblesse oblige)' 정신을 따라 작은 교회들을 배려하면서 풍부한 자원을 베풀고 나누는 일에 더욱 사용하는 상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사회적 이미지 쇄신도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최근 한국교회가 힘을 모아 아이티 구호사업에 나선 점을 평가하면서 “여러 교회단체들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한국교회 이미지 쇄신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록 선행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지만, 이미 하고 있는 적극적인 봉사활동도 적절하게 사회에 알리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에 미래가 있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한국교회가 앞으로 하기에 달렸다”며 “신앙적 열정에 더하여 영성·도덕성·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교회, 세상에 사랑과 믿음과 희망을 심어주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발제를 마무리했다.

논찬도 이어졌다. 임성빈 교수(장신대)는 “한 개인과 단체의 회복으로 한국교회의 새 희망을 논하기에는 너무 역부족”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정치제도와 운영규칙 등을 21세기적 상황에 맞게 갱신해 나가는 노력과 목회후보생을 양육하는 신학교 문제도 매우 중요한 ‘새 희망’을 일구기 위한 과제로 인식되고 수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정병길 목사(송파교회)는 “희망을 논하는 기준은 성장이 아니라 복음과 하나님 나라, 복음의 진보와 교회의 본질이 돼야 한다”는 의견을, 조성돈 교수(실천신대)는 “교회가 좁은 울타리를 벗고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목회로 전환하는 일은 중요한데, 이러한 봉사들을 한 단계 끌어올려 지역 현안들을 조사해서 적극 참여하고 지역 시민사회의 디딤돌이 되는 일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