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서운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인민군의 남침으로 시작됐다. 삽시간에 서울이 점령되었으며, 당시 황해도 옹진군에 속해 있던 백령도도 인민군의 세상이 되고 말았다.

“여러분들, 안심하고 예배를 드리세요, 우리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헌법에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 말에 중화동교회에 출석했던 모든 교인들은 피난 갈 것을 포기하고 수복될 때까지 인민군의 협력을 얻어 3개월간 아무런 재제를 받지 않고 예배를 드렸다. 국군이 수복한다는 소식을 알았던 인민군들은 교인들에게 자신들이 북한에 갈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하여, 교인들은 배 한 척을 준비해서 이들을 무사히 장연군 쪽으로 보내 주었다고 한다. “동무들 감사합니다. 우리가 간단한 선물을 준비했으니 이것을 받아 가세요” 이같은 사실은 먼 훗날인 오늘에 와서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됐다.

백령도는 몇 가지가 없는 섬으로 유명하다. 우선 6.25 전쟁을 만났지만 좌우익간의 원한이 없다. 여기에는 절간이 없다. 또 하나는 귀신이 없는 곳으로 유명하다. 귀신 대신 귀신 잡는 해병 1개 여단이 이 섬을 지키고 있다.

이러한 백령도가 서양문화를 접했던 일은 18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상선이 최초로 상륙을 하였다. 그후 16년이 지난 1832년 런던선교회 소속 구출라프가 최초로 백령도에 상륙하여 선교활동을 하였다. 다시 구출라프 선교사는 남쪽으로 항해하다가 어청도에 머물면서 선교를 실시하였다. 결국 거절을 당하자 남쪽으로 계속 항해하다가 유구열도에 상륙을 하고 그곳에서 쪽복음서를 번역하고 기독교의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런데 토마스 선교사가 중국 상해의 선교를 포기하고 임시로 중국 연태에서 무역 통역으로 활동하던 중, 뜻하지 않게 조선에서 상업차 연태에 왔던 김자평과 최일선을 만나 비로소 조선에도 천주교가 있음을 알고 이들에게 중국어 성경을 전해 주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던 토마스 선교사는 김자평의 안내를 받고 1865년 9월에 백령도 두무진에 상륙을 하였다. 그는 곧 복음서를 그들에게 전하면서 자신이 온 목적을 설명하자 몇 사람의 신도를 얻고 다시 중국 연태에 도착을 하였다.

토마스 선교사는 여기에서 자신감을 갖고 1년이 지난 1866년 9월 조선 평양 근교에 있는 대동강에서 조선 병사에 의해 순교하고 말았다. 그의 순교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선교회에서는 로스, 맥킨타이어 선교사와 헌트 의료 선교사를 중국 요령성 영구에 파송을 하였다. 이러한 일로 이응찬, 서상륜 등이 개종을 하게 되었다. 서상륜은 자신의 고향 의주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관가에 발각이 되자 그의 동생 서경조와 함께 외가가 있는 황해도 장연군 소래로 피신을 하였다. 서상륜 형제가 1883년 5월에 예배를 드린 그 장소에서 바로 자생적 소래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서상륜과 서경조는 주님을 만난 후 열심히 전도하여, 결국 서경조는 조사로서 1898년 백령도 중화동교회를 개척하는 데 성공을 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접했던 언더우드 선교사는 서경조 조사로부터 보고를 받고 그 길로 중화동에 있는 주민들에게 관심을 갖고 기도하던 중 뜻하지 않게 허득, 허간, 허륜 등, 여기에 최영우, 김홍보 등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세례를 받은 역사가 일어났다. 이렇게 해서 설립된 중화동교회는 1998년 100주년을 맞이하여 새롭게 교회를 단장하고 예장 합동측 총회와 옹진군의 지원을 받으면서 서서히 그 역사가 수면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2001년 11월 중화동 교회 옆에 백령도기독교역사관을 완공하고 백령도를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한눈으로 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다.

백령도에는 중화동교회를 비롯해서 진촌교회, 진촌 한사랑교회 등 12개처교회가 자리를 잡고 백령도 전 섬주민들의 80%를 찾이 할 정도로 교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백령도에는 주일이 되면 주일이라 하여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잇으며, 육지에서 온 관관객들을 위해 오후 3시에 문을 연다고 한다.

백령도에 가면 북한 땅이 눈에 선하게 보이고, 여기에 고향을 북에 두고 실향민들은 백령도에 가보기만 하면 고향의 흙 냄새, 또 고향 하늘 더욱이 밤 하늘에 비치어 주는 그 별과 함께 달빛은 더더욱 우리의 마음을 설례게 하고 있다. 백령도는 하나님이 축복해 준 땅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비행장, 곳곳 마다 바다가 육지로 변해 한반도에서는 제일 맛있는 쌀이 이곳에서 생산되며, 1년에 생산된 쌀은 백령도 1만명이 3년이 먹을 수 있는 양식이라고 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축복으로 형성된 땅 백령도를 그냥 나둘 수 없다고 말한 서해관광 대표 전민균 사장은 민주화 운동에 공이 많았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직접 대통령을 수행했던 고급 경찰관에서 제대를 하고 그 길로 백령도 관광에 눈을 돌렸다. 그래서 그는 백령도에 호텔, 식당, 관광 버스, 해양관광 선박 등 레저를 이용해서 백령도를 찾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을 널리 소개하고 싶어하는 그의 사업이 하나님의 사업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일을 했으면 한다.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으니라”

주님은 이 땅에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주셨다. 우리 민족의 소원은 한반도 하나님의 섭리속에 통일 빨리 이뤄졌으면 한다. 남북한에 흩어저 있는 백의 민족이 통일을 이루어 세계평화를 이루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이에 펜을 놓으려고 한다.

김수진 목사(한국교회역사연구원장,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전문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