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1부 중독증의 이해

1. 중독이란 무엇인가
2. 중독의 특징
3. 중독의 원인: 생물학적 원인(1)

중독증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개인적으로 도저히 그럴 수밖에 없는 특성들이 중독 증상을 만들어 낸다. 피하거나 개선할 수 있는데도 중독자들은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이들은 강하게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독을 마치 “원하면 언제든 스스로 끊을 수 있지만, 자신이 중독에 빠진 것은 취미생활”이라거나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서”라 변명한다. 이들은 중독을 오해하고 있다. 중독은 그리 간단하게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중독의 주요 원인들 중 생물학적 원인부터 살펴보자.

1) 유전적 요인

중독의 유전적 요인은 일차적으로 살펴야 할 항목이다. 중독이 유전적인가 하는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중독이 유전이라면 그만큼 중독자의 개인적 의지와 행동에 따른 책임은 약해진다. 실제로 약물 남용의 경우 유전된다는 연구도 있다. 다만 약물 남용에 쉽게 빠지는 취약성, 즉 체질과 소인이 관련되지만 아직 유전 인자를 찾기 위해 여러 연구가 시행 중인 단계다.

이러한 연구에도 유전은 중독의 한 요인으로 간주된다. 알콜중독자 부모의 자녀는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알콜중독자가 될 확률이 4배이며, 입양된 이후 성장해 알콜중독자가 된 남성의 친아버지들 중 25%가 알콜중독자라는 보고도 있다. 일란성 쌍둥이는 이란성에 비해 2배의 유병률을 갖는다. 인종간 차이도 있는데, 유태인과 중국인은 적고 아일랜드인에게는 많다고 알려졌다. 남성 알콜중독자는 가족력과 상관성이 크나, 여성은 산발적인 경향이다.

또 여성과 아시아인에게서 유전성이 많이 발견된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인과 중국인 모두 술로 얼굴이 붉어지는 빈도가 높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알콜중독 유병률이 중국인보다 높은데, 여기서 중독에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관여함을 볼 수 있다. 인구 대국이 아닌 한국의 술소비량이 세계 1-2위를 차지하는데, 이 현상은 한국의 음주문화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2) 생화학 및 약리학 요인

생화학·약리학의 요인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약물 남용과 관련시킬 수도 있는 부분이다. 약물남용과 관계 깊은 신경전달 물질은 도파민, 감마아미노낙산, 세로토닌 등이다. 이로써 약물 남용시 수용체 2차 전달물질 변화, 나아가 유전자 표현까지 변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약리학적 기전에서 아편과 모르핀 등은 엔도르핀과 엔케팔린을 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로 하는 아편 수용체(opioid receptor)와 결합, 진통효과를 나타낸다. 통증이란 아픈 감각과 그에 따른 감정반응의 복합인데, 이 수용기가 감정의 중추인 변연계에 많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미 유전적으로 아편 수용체 기능이 저하돼 있거나 그런 물질이 적은 사람, 그리고 이른바 길항제가 너무 많은 사람은 아편류 남용자가 되기 쉽다.

이 약물들에는 의존성과 내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돼 있지만, 신체 의존과 내성에 대한 기전은 명확하지 않은 편이다. 이런 생화학·약리학적 요인들은 매우 전문적이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전문적인 실험 과정과 연구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3) 뇌 질환

중독증은 뇌 질환으로 보는 편이다. 뇌 질환이란 병리학적으로 뇌에 이상이 생겨 중독 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뇌 질환의 문제는 심리적 측면과 달리 인체 생리적 측면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뇌에서 일어나는 질병은 중독을 부르고, 그에 따른 행동의 결과가 나타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훔치는 절도광(狂)을 예로 들 수 있다. 절도광은 뇌 질환이나 정신지체 때문에 이득이 없는데도 절도행위를 계속한다. 이들의 경우 의학적으로 국소 뇌이상이나 대뇌피질 위축, 측뇌실 확대 등이 일부 발견된다.

그러나 이런 뇌 질환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학파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 차이에도 절도광은 대체로 뇌 질환이라 인정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 정신역동적으로는 상실, 이별, 중요한 관계의 중단 등 의미있는 스트레스와 관련되는 점이 특이하다. 특별히 욕망을 중요시하는 정신분석에서는 절도광이 공격성과 성욕에 관련된다고 본다. 이런 이론에서는 절도광의 행위와 행동 지체·훔친 물건·피해자 등이 어떤 상징성을 갖는다고 보는데, 훔친 물건이 여성의 성기를 상징한다는 견해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그런가 하면 정신분석학적으로는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의 어린 시절 어머니와의 경험과 관련되기도 한다.

중독을 뇌 질환 문제로 인정하기 어려워도, 이를 이해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절도광들은 단순히 절도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실제 절도광들은 물건이 아니라 훔치는 ‘행위’가 목적일 수 있다. 하찮은 물건을 충동적으로 훔치는 경우, 그 물건보다는 훔치는 행동이 중요하다. 금전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훔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는 임상 과정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훔친 물건을 살 만한 돈이 있으며, 훔친 물건을 남에게 주기도 하고, 그 장소에 다시 몰래 갖다놓거나 숨겨두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훔치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접촉점이다.

더 나아가 절도광은 미리 계획하지 않고, 기회를 노리는 일도 거의 없으며, 언제나 혼자 즉흥적으로 저지른다. 훔차기 전에는 충동과 긴장이 고조되며, 훔친 후에는 쾌감과 만족을 느끼고 긴장이 풀린다. 그러면서도 들키는 걱정 때문에 가끔 우울과 불안,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행동 자체를 후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을 수 있다. 이들은 게다가 일반적으로 대인관계에 이상이 있거나 성격장애가 있는 경우가 많다. 성격장애는 흔히 만성우울, 신경성 식욕부진, 방화광 등 다른 정신의학 증상을 동반한다. 심지어는 집에서 가족들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절도광의 행동은 뇌 질환으로 간주될 수 있다.

4) 뇌 손상

중독증은 뇌 손상과도 관련된다. 뇌 질환과 뇌손상은 현상적으로는 비슷하지만, 병리학적으로는 상당히 다르다. 뇌 질환이 뇌에 이상이 생겨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라면, 뇌 손상은 뇌 질환과 상관없이 뇌가 손상돼 중독성을 띤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간헐적 폭발성 장애를 예로 들어보자. 이 장애는 심한 폭력이나 재산 파괴를 가져올 공격 충동을 조절하는 데 실패해 사람이나 재산을 파괴하는 증상이다. 폭발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점에서 중독적이지만, 스스로 지배된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중독성으로 진단된다. 간헐적 폭발은 10-20대와 남성에게 흔하게 나타나며, 가족력이 인정돼 가족 사이에서 발생빈도가 높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뇌가 손상돼 이상을 일으키는 중독증은 병리학적으로 변연계 문제다. 출산 때 뇌 손상, 유아기 경련, 두부 손상, 뇌염 등의 과거력이 그 증거가 된다. 이때 술과 같은 독성물질이 유발인자로 작용하는데, 뇌에서 세로토닌 신경전달이 감소된 상태와 연관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심인성을 주장하는 학자는 공격적인 부모상과 동일시에 의존한다고 본다. 대개 그런 부모는 몸집은 크나 의존적이고 특히 아버지의 남성상이 빈약한 경우도 많다.

간헐적 폭발성은 사회적 자극과도 일정 부분 관련이 있다. 폭발성은 자신의 생활과 관계없이 하찮은 정신사회적 자극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정신사회적 자극이란 외부적으로 그들을 자극하는 것이 폭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발작 증상은 많게는 몇 시간 지속되며, 신속하게 끝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진정한 후회나 자책을 한다. 발작 직전에는 정서 변화, 자율신경계 증상이 건구 증상으로 나타나는데, 발작이 일어나는 동안 가벼운 감각기능 장애가 오거나 발작 후 부분적 기억상실이 온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함을 충분히 알면서도 어떤 강렬한 충동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발작한다고 말한다.

5) 충동 조절

중독은 충동의 조절과도 관련된다. 충동은 내면의 욕구에서 일어나는 중독 유발 요인이다. 중독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반복적·만성적·점진적으로 행동을 억제하는데 실패하는 경우다. 이런 충동은 당사자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만든다. 조절하지 못하는 충동으로 개인 존재나 가정, 직업 생활에 해를 끼치고 파탄을 가져온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을 때는 더 심해진다.

도대체 충동(impulse)이 뭘까? 심리학에서는 ‘마음을 자극하는 세력으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유발시키는 특성’이라고 한다. 충동은 대개 본능적 욕구와 관련되기 쉬운데, 본능적 욕구의 억압에 의한 긴장과 본능적 욕구에 대한 자아방어의 억제 약화로 생긴 긴장을 해소하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대개 폭행에 대한 처벌이나 도박에 대한 재산손실 등의 충동 만족과 그에 대한 징벌까지 포함돼 있다.

충동에는 억제 문제, 긴장감 고조, 그리고 해방감이라는 단계가 있다. 이는 억제가 조절하기 어려움을 의미한다. 환자들은 이런 충동을 의식적으로 억제할 수도 안할 수도 있고, 그런 행동을 계획할 수도 안할 수도 있는 정도를 넘어선다. 긴장감 고조란 충동적 행동을 저지르기 전까지 긴장감이나 각성 상태가 고조되는 현상이다.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그러면서 그 충동을 행동으로 옮겨 해방감을 경험하려 한다. 이들의 충동적 행동은 대체로 자아 동조적인 측면이지만, 행동으로 옮긴 후에는 즉각 후회나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6) 충동과 긴장성

충동은 긴장을 유발한다. 개인은 심리적으로 충동 자극을 받으면 긴장하고, 긴장은 다시 해소되려 한다. 다시 말하면 충동은 긴장 해소 작용을 유발한다. 이러한 ‘충동’이 일어나는 원인은 학자마다 견해가 일치되지 않는다.

이런 충동적 행동은 자연히 처벌받는 행동도 포함되므로 죄책감도 상당 부분 관련된다. 그런가 하면 처벌받으려는 욕구는 충동 조절을 방해한다. 그런 점에서 정신분석 자기심리학자인 코헛(Kohut)는 충동 행동을 불완전한 자아 감각 때문이라고 했다. 자아가 분열을 막고 전체성을 유지하려 본의 아니게 충동 행동을 시도한다는 점에서다. 물론 결과는 자기파괴적이기 쉽다. 이와 관련, 위니코트(Winnicott)는 아동의 충동 행동을 관심을 끌어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시 수립하려는 수단으로 봤다.

이런 점에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장애로 간주된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어느 정도 충동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긴장과 충동의 문제는 어릴 때 경험이 중요하다. 신체 발달에 따라 심리가 성장하면서, 어릴 때 경험이 성인기까지 연속되는 측면이다. 아동이 어릴 때 동일시할 적절한 대상이 없거나 부모가 스스로 충동조절을 잘 못하는 경우 충동 조절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가족 중 가정 폭력, 알콜 남용, 성적 문란, 반사회적 경향도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7) 반사회적 경향

중독증은 반사회적 경향으로 나타난다. 이는 신체적 결과이므로 생물학적 관점에서 얘기해야 한다. 매우 냉소적이거나 차가운 사람은 뇌의 감정 담당기능이 작동되지 않는다. 반사회적 경향도 이런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

방화광을 예로 들 수 있다. 방화광이 중독성인지 충동 조절을 못하는 경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불 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반복해서 목적에 따라 신중하게 불을 지르거나,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 긴장이 완화되고 강한 황홀감을 느낀다. 이들은 물론 보통 때도 불에 심취해 있고 흥미가 있으며, 방화에 상당한 준비가 돼 있다. 돈이나, 사회·정치적 이데올로기 실현, 범죄 은닉, 복수심, 생활 여건 개선, 망상이나 환각에 의한 방화는 해당되지 않는다.

반사회적 경향은 때로 무단결석, 가출, 청소년 비행 등의 기왕력이 있다고 보고돼 왔다. 공격적인 범죄로 수감된 성인 죄수들의 약 3/4이 이미 아동기에 병적 방화, 야뇨증 및 동물에 대한 잔인성이 있다는 보고가 있는데, 이는 모두 부모의 애정결핍 때문으로 알려졌다. 방화자들에게는 다른 동기도 발견되는데, 힘과 사회적 명성에 대한 비정상적 욕망이다. 이는 그들을 소방관과 동일시하게 한다. 그래서 병적 방화자는 불길을 끄는 힘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중독증은 반드시 반사회적이지는 않다. 학파에 따라 다른 견해가 있다. 방화광의 경우 정신분석은 성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불은 성(性)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불에서 나오는 온기는 성적 흥분감을, 불 모양은 남성의 성기라는 식이다.그런가 하면 병적 방화광들은 불지르기 전까지 점차 긴장이 고조되고, 불을 지르면 강렬한 쾌감이나 긴장완화를 느낀다. 이들은 뚜렷한 단서를 남기기나 이웃에 불이 나면 불구경을 즐긴다. 거짓으로 화재 비상벨을 울리기도 하며, 인명·재산 피해에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이를 즐긴다. 뿐만 아니라 소방대원의 활동이나 소방관련 장비에 편집적 흥미를 보인다.

8) 결론: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가지라

중독의 생물학적 원인은 대개 신체와 관련되고, 뇌 기능과 생화학적 특성, 그에 따라 나타나는 뇌 기능 이상에 의한 행동의 비정상성 등이다. 이런 특성들은 적기도 쉽지 않고 읽는 독자들도 난해하다. 그래도 이를 빼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런 생물학적 기반이 있어야 심리적인 것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원인을 제쳐놓고 심리적·사회적 등을 언급한다면, 기반 없는 공론에 불과할 수 있다. 그만큼 중독에서 생물학적 기반은 중요하다.

인간은 실제 자신의 몸에 대해 가장 무식하고 모르는 것이 많다. 이런 문제는 알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피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정기적으로 해야 할 신체 검사를 끝내 회피하거나, 검사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을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심리는 신체에 이상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강한 마음에서 비롯됐다. 자신의 신체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둬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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