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존엄사’ 논쟁은 정작 당사자인 김모 씨의 호흡기를 뗀 후 조용해지고 있다. 호흡기를 떼고도 두 달여 지난 지금까지 거친 숨을 몰아쉬는 김 씨를 보면서 ‘생명’이라는 존재 앞에 모두들 새삼 숙연해진 탓일까.

김 씨가 가족들과 함께 ‘숨쉬고’ 있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는 두 달여 만에 다시 기자들의 출입이 잦아졌다. 한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민주화를 위해 오랜 기간 헌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해 있기 때문이다. 김 전 대통령이 한때 위독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계 인사들이 김 전 대통령의 쾌유를 바라면서 병원을 찾고 있다. 대표적인 경쟁자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병실을 찾아 화해를 선언해 국민들 가슴을 모처럼 훈훈하게 했다.

존엄사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말 세브란스병원 조재국 원목실장은 이런 말을 했다. “2007년 NCCK 전 총무인 故 김동완 목사님이 거의 뇌사상태로 병원에 오셨는데, 의학적으로는 소생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결단’을 내리지 않았고,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목사님을 찾아와 함께 기도하고 생명이 붙어있던 그 자체를 기뻐했다.” 비록 대화를 나눌 수조차 없는 상태였지만, 사람들은 김 목사를 마지막으로나마 실제 만났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한 달여 뒤 자연사했다.

만에 하나, 김 전 대통령이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과 같이 정치권에서 화해와 감동을 주는 일은 일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빈소에서의 통곡은 ‘뒤늦은 후회’일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김 전 대통령이 평소에 김 할머니처럼 간접적으로나마 존엄사 의지를 표현했다면?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가족들이 반대하고, 그리고 국민들이 반대하니 호흡기를 떼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이는 절대 김 씨 가족을 폄하하려는 의도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결국, 문제는 ‘남은 자들’에게 달려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 생명에도 ‘당연히’ 귀천이 없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존엄사 논쟁이 순수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무엇보다 존엄한 생명의 문제를 지나치게 사회경제적인 시각에서, 또는 한쪽 말만 듣고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존엄사 논쟁 당시 이상하게도 보-혁 구분도 없이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이 일제히 찬성표를 던지는 듯 했다). 아니면 의학 기술을 과신한 나머지 바벨탑을 세우듯 우리 자신이 ‘생명’이라는 신(神)의 영역까지 치고 들어가려는 것은 아닌가.

생명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보다 성숙하기를 바라며, 아울러 김 전 대통령과 김씨 모두 곧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