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SBS에서 7월 6일 방영된 ‘신의 길 인간의 길’ 제2부 “무함마드, 예수를 만나다” 다큐멘터리는 이슬람교의 시각에서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현지 방문을 통해서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가 공동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종교라든가 이들 종교의 역사적 삶의 현장을 보여줬다. 그러나 주로 국내학자들 중 종교학자나 중동문화가들과의 인터뷰만을 방영함으로써 기독교회와 신학자들이 보는 역사적 예수의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1. 이슬람 교도들의 순례장면을 보여주면서 “알라”라는 말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알라신은 무슬림만 믿는 것이 아니라고 왜곡한다.

이슬람 교도의 알라 신앙이 유대교와 기독교의 야훼 신앙과 같다는 혼동을 주고 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 제단 위에 세워진 카바 신전을 순례하는 이슬람교도 신앙이 유대교와 기독교 신앙과 공통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이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을 제물로 드렸다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무덤이 있는 곳 막벨라 굴은 세 종교의 성지이다. 성서는 아브라함의 적자(嫡子)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며, 서자(庶子)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그의 어머니 하갈과 함께 쫓겨나가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아브라함을 공동조상으로 가진 것은 사실이나 이삭을 중심으로 하는 야훼 하나님 신앙과 이스마엘을 중심으로 하는 알라신 신앙은 그 맥이 다르다. 단지 역사적 배경으로 보아서 유대교나 기독교 없이는 이슬람교는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2. 예수는 역사적으로 불확실하나 무함마드는 역사적으로 근거가 확실하다고 왜곡한다.

무함마드는 6세기에 역사적으로 여아(女兒)가 살해되고 탐욕이 발흥하고 도덕이 타락한 시대에 살았다. 이러한 시대에 “새로운 공동체”를 성립시킨 무하마드는 역사적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무함마드보다 6세기 이전에 있었던 역사적 예수는 이슬람 교도들에게도 예언자로서 인정을 받고 있다. 이슬람들 가운데도 "이싸"(Issa)라는 영을 가진 자들이 많은 데 이들의 이름은 예수라는 유대명을 아랍어로 부르고 있다. 역사적 예수를 전제로 하여 무함마드의 이슬람 신앙이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예수의 역사적 근거를 불확실하게 보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신약성서의 복음서 뿐만 아니라 유대역사가 요세푸스의 사기가 문서적으로 확증해 주고 있다.

3. 이슬람교는 역사적 예수의 3가지 중요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첫째, 예수는 신이 아니라 성스러운 예언자라는 것이다. 이슬람교는 예수를 무함마드와 같은 예언자의 반열에 두나, 무함마드는 “최종의 예언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예수를 단지 예언자 이상으로 보고 있다. 예수를 하나님이요 로고스라고 보고 있다. 사도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이며, 이 말씀이 인간이 되셨다고 증언하고 있다(요1;15).

둘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서에 대한 결정적인 왜곡이다.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 아들이라고 증언하셨다고, 네 복음서 기자들은 증거하고 있다. 예수님은 당시 어느 유대교 전통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호칭,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호칭하였다. 이것은 특히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과의 독특한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계란 그가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이다.

셋째,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도 신약복음서에 대한 왜곡이다. 4복음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속죄하셨다고 증거해주고 있다. 이슬람교가 말하는 십자가에 못박힌 자는 예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영지주의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4. 이슬람교는 중보자를 배격하여 무함마드를 최후의 선지자로 보나 기독교는 예수를 중보자로 만들었다고 왜곡한다.

중보자의 교리는 무함마드와 예수가 각기 다른 독특성을 가진 데서 비롯된다. 무함마드는 종교의 설립자요 정치인이었고, 심지어는 칼을 사용하여 반대자를 응징하였다. 무함마드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적인 국가를 창건하였다.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은 적대자에 대하여는 경우에 따라서는 응징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예수는 기독교의 창시자가 아니다. 예수님은 기독교를 창립하지 않았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다메섹에서 역사적 예수를 만나 개종한 바울과 베드로 등 12제자들, 그리고 120신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오순절 성령을 체험한 후에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복된 소식을 증거하였고 이들은 매일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 자발적인 예배공동체가 생겨났다. 이것이 기독교의 시작이다. 기독교는 역사적 예수가 의도적으로 창립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 예수는 당시 정치적 저항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가르쳤다. 역사적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승천한 성자 하나님으로 오늘날에도 살아계시고 성부 하나님 우편에서 역사와 우주를 통치하시고 구속하신다.

5. 이슬람교는 지하드(성전)라는 무력행사를 인정하고, 지하드가 천국 가는 지름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슬람교는 자살테러가 낙원 가는 지름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여기서 오늘날 중동의 자살테러가 발생하는 종교적인 배경이 있다. 자선, 성지순례, 율법을 지킴을 가르치는 이슬람교가 폭력과 연관되는 교리적 배경이 있다. 이에 반해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로서 예수님 자신은 폭력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칼 쓰는 자는 칼로 망할 것을 경고하신다. 예수님 자신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향하여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예수님은 오히려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사랑의 실천을 가르치고 있다.

6. SBS 다큐멘터리는 이슬람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 사회는 아직도 80%가 문맹이며 여성이 차별(2007년에만 1800명이 명예살인으로 가족에게 처형)을 받고 있으며, 무지와 정치적 억압이 결합되어 서구 기독교 사회보다는 개화되지 못하고 있다. 순례자들이 아라파트 산에 있는 하얀 바위에 섬으로써 최후의 심판에 신 앞에 설 수 있다고 믿는다든지, 악마의 기둥에 돌을 던짐으로써 악마로부터 해방받으며, 카바신전을 7번 돌고 신전기둥을 손으로 만짐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직도 이슬람교의 신앙이 무하마드의 6세기 때의 신앙의 틀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교는 이러한 면에서는 윤리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주술적인 요소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무슬림 사회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면 사형에 처한다. 이것은 이슬람의 신앙이 강압적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

7. 이슬람교는 “믿음을 가지고 선을 행하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유대교적인 율법신앙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선을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게 됨을 말하고 있다. 기독교가 말하는 선행이란 믿음의 열매로서 믿음은 아름다운 선행으로 결실되어야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기독교 신자들은 이슬람교를 적대시할 필요가 없다. 타종교의 신앙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종교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는 타종교에 대하여 우월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단지 우리가 믿는 신앙이 참된 신앙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슬람교를 믿는 자들에 대하여 열린 마음으로 역사적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