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북스 | CTTV | 시작페이지로
해외판 | 신문구독 | 신문PDF | 로그인 | 회원가입
 
"예 할 때 예 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 하라" (마 5:37)
북스    |    cttv    |    마이블    |    e-church    

“한국교회 순교자 수 초대교회보다 많아”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이대웅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폰트
기사보내기
입력 : 2007.11.06 09:38   
순교자 유가족 초청 위로예배... 순교자 후손들 한자리에
▲이날 50여 명의 순교자 자녀들이 참석해 순교신앙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길 것을 다짐했다. ⓒ고준호 기자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터툴리안의 말처럼 지난 1백년간 한국교회 성장의 밑거름이었던 순교신앙을 기리는 예배가 5일 서울 명성교회 월드글로리아센터에서 드려졌다. 한국교회순교자기념사업회(이사장 노태철 목사) 주최로 열린 예배 장소는 한국교회 초기 순교자였던 ‘토마스’의 이름을 딴 토마스홀이었다.

순교자 가족들을 초청해 위로하는 이번 예배에는 올해 99세인 순교자 김철훈 목사의 사모 연금봉 전도사를 비롯한 400여명의 순교자 유가족들과 후손들이 참석해 순교자들을 추억했다. 책자에는 순교자 50명의 주요 행적이 기록되었고, 이중 설교 후 ‘아버지의 순교신앙을 기리고 사모하며’라는 제목으로 직계자손 20명이 나와 순교자의 생전 모습들을 간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 순교자들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도 옥고를 치르며 살아남았지만, 이후 공산군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의 간증은 순교자 가정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만 여기고 있으리라는 예상을 빗나가게 했다. 먼저 하늘로 떠나가신 아버지의 뒤에는, 먼저 부모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자의 가시와 아픔, 고통이 남아있었다.

순교자 오병길 전도사의 둘째딸 오영례 권사는 “여러분, 어린 나이에 부모 잃고 사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로 간증을 시작한 뒤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키셨지만, 그때 열세 살이었던 나는 하나님을 반대하고 자녀들 고생 안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녀는 “아버지는 신앙을 지키다 고문당하고 있는 제 오빠에게도 ‘하나님이 불러야 순교하는 거야’라며 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결국 아버지와 오빠는 순교했고, 저는 어린 나이에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사회로 열린 이날 예배 설교는 한국교회 원로 방지일 목사가 맡았다. 방 목사는 “한국교회의 이같은 큰 축복은 순교자들의 피값이었다”며 “우리가 순교자의 씨로 발아해서 더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방 목사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전용어가 아니고, ‘날마다 죽노라’는 사도 바울의 전용어가 아니다”며 예수님을 따라 순교신앙에 동참할 것을 강조했다.

이후 가족들에게 새문안교회, 정동교회, 왕십리교회, 명성교회 등에서 준비한 선물을 증정하고, 이들에게 축복송을 불러주며 50여년간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이들을 축복했다. 예배 후에는 푸짐한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또 김인수 교수(장신대), 박용규 교수(총신대),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이덕주 교수(감신대), 이상규 교수(고신대) 등 한국교회 순교자들을 연구해 온 주요 교단 역사학자들이 나와 이들의 순교신앙에 대해 증거하기도 했다. 이중 이상규 교수는 “한국은 짧은 기독교 역사에도 공식적으로 1만명, 비공식적으로는 3만명의 순교자를 배출했다”며 “이는 400여년간 핍박받았던 로마 제국의 순교자 수보다 훨씬 많은 수치”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순교란 자기 희생이고, 자기 포기”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들은 자신의 일락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이덕주 교수는 “6·25 때 감리교 소속 순교자만 170명이 넘는다”며 “이들은 최초 서울이 함락되는 상황 가운데서도 양떼 곁을 떠나지 않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순교자들이 마치 ‘너는 진짜 목사냐 삯군이냐?’라고 묻는 것만 같다”며 “순교자를 연구하는 내가 순교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다”고 나지막히 말했다. 박용규 교수는 “지난 1861년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가 씨앗이 돼 널다리골 교회가 됐고, 이 교회가 1907년 부흥을 이끈 장대현교회”라며 “이런 사실을 교회사적으로 널리 알려야 하는데, 요즘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을 순교로 보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폰트
기사보내기

댓글쓰기

아이디 비밀번호
 
댓글전체(7개)
귀히쓰는그릇
2007.11.06
이영례권사님 그 간증 하실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권사님의마음을 위로하시고 함께 아파하시는 주님이 느껴졌습니다. 그 간증때에 눈물바다가 되었었죠. 하나님께서 부르셔야 순교도 할수 있단 그 말씀이 저의 마음에 깊이 꽂혔습니다. 그거룩한 피를 통해 한국이 이렇게 축복을 받을수 있었겠지요? 감사합니다.
다른복음은없다
2007.11.06
순교자 숫자를 비교하는 것은 매우 무의미하다. 한국교회는 교인숫자로 교회의 본질적 부흥의 현황을 평가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순교자의 수로 하나님 앞에 자랑하지 말라. 순교자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순교자의 전통을 내 자신이 잇고 후손이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숫자가 본질을 해석해주고 평가해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닌데, 한국교회는 유태인들의 공로주의적인 신앙에 젖어있다. 과연 이것을 자랑하지 말라 자긍심을 갖되 숫자로 초대교회의 순교의 전통 그 숫자적인 개념을 자랑하지 말라. 이러한 숫자비교는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매우 유치한 수준의 것이라 생각된다. 기독교의 이러한 모습이 안티기독교인들에게는 어쩌면 비난의 여지와 일부 요소가 아닐까 한다. 숫자란 말은 이제 들어도 지겹다 하나님은 어떻게 과연 이 땅을 내려다보시겠는가? 숫자가 많구나. 그러면 한국을 더 칭찬해주어야겠군 더 복을 갑절이나 주어야겠군 이렇게 판단하시겠는가 하나님과 인간의 사고의 차이는 천 지의 차이가 아닌가..
박성희
2007.11.06
배형규 목사도 사실 순교 아닙니까? 여론에 떠밀려서 지금 뭐하는 겁니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는데 여론에 떠밀려서 우리가 정신 못차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자충수
2007.11.06
50년 전만 해도 공산당이라면 치를 떨었는데.. 기독교의 가장 큰 적이 북괴였죠. 지금은 뭐 일부 교계 사람들은 가장 친한 곳이 바로 북한 아니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을 그렇게 죽여놓고..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 때문에 또다시 퍼주고 퍼주고...
도라산
2007.11.06
이 시대에도 순교의 각오로 수많은 사람들이 사역하고 있고, 또 순교를 두려워하는 수많은 목회자들도 있지요.
길선주
2007.11.06
1920년대 이전에는 토마스의 죽음을 순교라고 안했지. 다들 무모한 선교에 반성하는 분위기였어. 평양이 예루살렘 운운하면서 토마스 목사를 영웅으로 만든거야. 오문환 목사가 프로젝트 성공했지뭐. 요새도 그런 프로젝트한다며...
아펜젤러
2007.11.06
일본에는 순교자가 수 만 명이 넘는다. 수와 양이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1   
가장 많이 본 기사
  • 오 늘
  • 교계교단
  • 최다댓글
회사소개  |  구독신청  |  후원신청  개인정보취급방침  |  편집자에게 광고안내 02)598-4578  |   대표전화 : 02)598-4564  |  Fax : 02)6008-4204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 305, 시티빌딩(혜화동)  /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31-1번지 시티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