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목사(안양제일교회 상담목사, 온누리가정상담연구원 원장)

“저는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어요.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요.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나를 사랑하시지 않아요. 세상에서 저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늘 슬프고 우울했어요. 사랑받지 못했으니까요.”


사랑으로 채워져야 할 영혼 가득히 외로움과 슬픔으로만 채워진 어떤 자매의 절규 어린 말이다.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는 사람이 극심한 외로움과 싸워야 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명한 일이 아닐까. 사람은 사랑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존재다. 우울증이 심한 사람들과 상담하다 보면, 사랑의 부재가 얼마나 한 인간을 깊은 외로움과 슬픔 속으로 빠뜨리는가를 뼈저리게 느낀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가? 성경을 깊이 묵상해 보면 성경 전체가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을 열거하고 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사랑이 추상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이런 것이 사랑이다’라고 명백히 제시한다.

태초의 에덴에서는 온전한 사랑이 한 가정 안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 위에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이 부어지고 있었다. 그 때의 사람들은 외로움이나 슬픔을 몰랐다. 그들은 너무나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과 죄 때문에 에덴의 온전한 사랑은 파괴되었고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가정에 수많은 문제가 생겨났다. 그것은 고통과 절망으로 이어졌고 사랑에 갈급해진 사람들은 일그러진 욕망을 사랑으로 오해하게 됐다. 그 욕망을 채우려고 수많은 죄악이 난무하게 되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온전한 사랑을 누가 이룰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오래 참지 못하고 오히려 성급하며, 온유하지 못하고 오히려 집착과 탐욕스러운 소유욕으로 늘 불안해한다. 성경의 사랑은 우리와 너무나 동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이런 사랑을 하게 될 때만 우리는 외로움과 슬픔에서 벗어나게 된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런 사랑을 하지 못한다. 단언컨대 우리는 온전한 사랑을 할 만한 온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의 보혈을 지나 성령의 능력을 입을 때 그 사랑은 가능해진다. 그렇다고 단번에 온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온전한 사랑은 ‘이루어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이 덧입혀질 때마다 조금씩 그런 사랑을 이루어가게 될 것이다.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은 영혼이 얼마나 심각한 정신적 공황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사랑의 눈물의 씨앗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의 눈물을 잠재워주는 치유의 근본이다.

봄 들판에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보다 감미롭고 아늑한 느낌, 온 몸이 꽃잎으로 감싸인 듯한 향기롭고 포근한 느낌, 그런 느낌들보다 더 고차원적인 모든 따스함이 사랑 안에 넘치도록 들어있다. 부부간의 사랑, 부모 자식간의 사랑, 이웃과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세계 열방을 향한 사랑…. 이 모든 사랑 안에서 우리는 성숙해갈 것이다. 이제 우리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변형된 사랑이 아닌, 하나님이 말씀하신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주변의 우울하고 외로운 이들도 속히 치유되고 회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