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목사(안양제일교회 상담목사, 온누리가정상담연구원 원장)

절망 어린 표정으로 상담실 문을 밀고 들어 온 이 부부는 서로에게 내어 줄 자리가 전혀 없어 보였다. 먼 외계에서 온 듯한 몸짓으로 조금 허둥대다가 서로 등을 돌리고 앉은 채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았다. 드러난 갈등은 남편의 외도 때문이었지만 그 이면에 무쇠로 만들어 둘러쳐진 벽이 두 사람 사이에 싸늘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 벽은 너무나 높아서 두 사람은 결코 만날 수 없어보였다.


많은 부부상담을 해보았지만 이번처럼 힘겹고 어려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결혼의 동기도 가장 좋지 않은 동기 가운데 하나인, 혼전 성관계 때문이었다. 요즘은 성문화가 너무나 자유로워서 결혼 전에 성관계를 갖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점점 없어지고 있지만, 그때는 그랬다. 남자의 요구에 못 이겨 혼전 성관계를 갖게 되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심한 죄책감과 좌절감을 겪으며 다른 남자와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사랑의 확신이 없어도 어쩔 수 없이 그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는 뜻이다.

결혼 전부터 따라다니던 다른 여자들과의 염문을 알면서도 결혼한 그 여성은, 결혼 이후 계속되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미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얼마나 그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는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온 몸에 눈물을 가득담은 금이 간 항아리 같은 모습으로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런 의지도 없어보였다. 다시 시작해보고 싶은 의지, 아이들 때문에 다시 한번 참고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 남편이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의지마저도 없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의 잘못은 시인했지만 지금의 아내와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분명 한쪽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배우자의 외도를 용인해서는 안된다. 외도를 하는 것은 상대 배우자에게 깊고도 깊은 영혼의 상처를 주는 것이며, 온 몸을 난도질하는 것과 같다. 그만큼 상처가 크고 깊다는 말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결혼으로 맺어진 이들 부부는 마지막으로 노크한 상담실에서도 굳게 닫은 마음의 문을 끝내 열지 못한 채 안타까운 뒷모습을 남기고 떠났다. 한 사람만이라도 회복의 의지가 있었다면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 부부를 끝까지 도와주었을 것이다. 남편의 외도로 함께 찾아왔던 많은 부부들이 회복되고 웃음을 되찾고 돌아갔다. 그것은 한 쪽이라도 결코 이혼하지 않고 다시 행복한 부부가 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모든 의지를 다 잃은 채 주위 가족의 권유에 못 이겨 마지막 이혼의 수순을 밟듯이 찾아왔던 이 부부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만 상처로 짓이겨진 그 아내의 마음을 치유해야할 것 같아 그 아내만 따로 상담하기를 권유했다. 나는 지난 수년 동안 대면한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토록 절망스러운 얼굴을 본적이 없다. 사형수의 얼굴이 그런 모습일까.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결혼하기 전의 모든 미혼 남녀들은 결혼에 대한 결정을 하나님 앞에서 신중하게 해야 한다. 함부로 혼전 성관계를 가져서도 안되며, 서로 좋아하는 감정만으로, 혹은 결혼 적령기가 훨씬 넘어섰다는 초조함 때문에 섣부른 결정을 해서도 안된다. 잘못된 결혼의 동기는 고통스러운 결혼생활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종국에는 부부와 그 자녀들까지 돌이킬 수 없는 절망과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며, 서로를 향한 헌신의 결단이다. 단순한 감정은 곧 퇴색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헌신하기로 결단한 마음으로 서로를 섬기는 부부는 어떤 시련이나 환경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다. 서로를 향하여 이런 헌신을 약속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증오하게 되는 일이 없을 것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