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목사(안양제일교회 상담목사, 온누리가정상담연구원 원장)

우리는 대부분 어릴 때의 트라우마(외상, 혹은 정신적 외상, 외상으로 인한 충격)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때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기도 하고 왜곡된 자아상을 갖게 하거나 비뚤어진 인격을 형성하게도 한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도 부모의 불완전한 태도나 표정에 의해 버림받은 기억을 무의식의 넓디넓은 저장소에 고스란히 저장해 놓고, 비슷한 상황이 되면 또다시 버림받은 것 같은 황량한 감정에 휩쓸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정신적 방황을 하기도 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때때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기억 때문에 목놓아 울지도 못하는 상처투성이의 영혼들을 대면하게 된다. 나는 그들의 아픔에 기꺼이 함께 울어주지만 그 아픔을 다 치료해 주지는 못한다. 다만 그 아픔을 다 씻어주실 수 있는 분에게 인도해 줄 뿐.

나는 아직도, 엄마를 잃어버리고 울고 있는 아이의 사진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후미진 골목길 어귀에 낙옆처럼 매달린 벽보들 위에 걸려있는 불쌍한 아이들의 시선은 내 발끝을 따라 오기도 하고 “잃어버린 아이를 찾습니다”라는 글귀가 왕왕거리며 귓전을 때리며 따라 오기도 한다. 그들이 부모를 다시 찾는다 해도 버림받음의 기억은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 따라다닐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날 문득 늘 지나다니는 골목길 벽보의 한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 눈길을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붙박혀 함께 그 슬픔을 나눌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었다. 그 벽보의 어린 아이의 물기 어린 눈을 보며 제발 그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찾아 그 품에 안겨있기를 빌었다. 숨이 막혀오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마침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화상의 옛기억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오래 전 나 자신을 잃어버릴만큼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 통증은 서른 몇 해나 지속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 통증의 기억을 누구보다도 선명하게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 앞에 비슷한 통증의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면 누구보다도 재빨리 눈치를 채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사역자인 내게 큰 자산이 되었다!

서른 해 동안의 상처를 고스란히 가진 한 자매는, 자신의 상처가 무의식 속에서 곪아터져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일그러진 자아상을 가지고 늘 죽고 싶어하며 살고 있었다. 그 자매를 보는 순간, 벽보 속에 매달려 눈물 가득히 애타는 눈길을 보내고 있던 그 잃어버린 아이가 생각났다. 그 상처의 근원지에는 자매의 부모가 있었다. 잘한 것은 칭찬 한 마디 하지 않았고, 늘 핀잔을 주고 야단을 치며 세상에서 가장 밉상덩어리처럼 취급했던 그 엄마 아빠의 말투와 눈빛과 표정이, 이 자매의 영혼 깊숙이 파편처럼 박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고 오랜 시간 상담치료를 받아야 했다.

상담 말기에 나는 자매의 부모를 불렀다. 그 누구도 괴롭힐 것 같지 않은 선량하게 생긴 부모는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자매를 안아 주었다. 딸이 그토록 심한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줄 몰랐다며 용서를 구했다. 자매는 신속하게 치유되어 갔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사랑이 이 자매를 뒤덮으며 깊은 치유하심의 역사가 나타났다. 깊은 치유는 오직 주님만이 하신다!

오래된 트라우마는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일그러진 자아상이 자신의 본모습인 줄 알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속히 치유받아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 진정한 자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기쁨이 충만한 그런 자아를 말한다. 그런 자아상으로 회복되기를 하나님은 너무도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