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목사(안양제일교회 상담목사, 온누리가정상담연구원 원장)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많이 내려가면서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 하면 왠지 쓸쓸한 이미지가 떠오르고,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이별, 눈물, 고독 등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울러 우울증이 있던 사람은 더욱 우울증의 수위가 높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가을의 이미지를 가늠하면 풍성한 결실과 열매와 노동의 대가와 기쁨, 행복, 한여름의 고단함을 쉴 수 있는 시원함 등을 떠올릴 수도 있을텐데, 마음이 아프고 우울한 사람에게는 이 모든 것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우울증은 대물림이 되는 난치병이다. 우울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겠지만 우울증의 증세는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깊은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자살로 이어지는 사례를 수없이 보게 된다. 그가 유명인이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든 관계없이 우울증은 건강한 한 사람을 사망의 골짜기로 유인한다. 정말이지 우울증은 사탄의 강력한 올무이다.

10여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려온 여성이 있었다. 이 여인의 경우에는 가정적 환경이 우울증의 주요 원인이었다. 사랑이 없고 모든 역기능이 다 도사리고 있던 가정환경은 이 여성을 부정적이고 우울하며 열등감에 시달리게 했다. 급기야 가족 중 한 사람이 자살을 했고, 그 장면을 목격한 이 여성은 극심한 불안증세까지 겪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첫 아이를 낳자마자 우울증은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십여년 살아가는 동안 가정의 분위기에는 사랑과 따뜻함 대신에 긴장과 음울함만이 흘렀다. 아이들은 늘 어둡고 신경질적인 엄마를 견뎌내야 했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그 또래의 밝은 모습이 전혀 없었다.

내가 이 여성을 만났을 때는 하루에 세 번씩 독한 항우울증 성분의 약을 먹고 있었고, 여성의 얼굴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무렇게나 차려입고 머리카락은 부스스했고 화장기도 전혀 없었으며 어두운 표정이 죽은 사람처럼 보였었다.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찾아온 것이었다. 나는 이 우울한 여성과 장기상담으로 들어갔다.

약을 먹지 않으면 자살충동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약을 먹게 되는데, 이 약은 하루 종일 잠을 자게 만들거나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처음 상담을 시작했을 때는 거의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졸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5회기가 지나가자 서서히 약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밤에 한 번만 약한 약을 먹게 되었다. 빠른 호전에 정신과 의사가 놀라워했다고 한다.

이렇게 상담이 20회기가 넘어가자 여성은 자신의 존재감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한 번도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도 될 만한 존귀한 존재임을 자각하지 못했는데, 이제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울증의 증세도 점점 호전되기 시작해서 우울할 때마다 무기력해져서 드러눕던 버릇을 고치고 교회 여러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기 시작했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상담이 거의 마무리되고 있던 즈음에, 이 여성은 아이들을 상담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심각한 우울증 환자였던 엄마의 영향을 아이들이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큰 아이와 둘째 아이를 차례로 상담하면서 그 정도가 심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학생인 딸아이는 심한 대인관계 기피증이 있었고 시종일관 눈을 발밑에 두고 있었다. 초등학생인 아들은 약간의 틱장애(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근육이 빠른 속도로 리듬감 없이 반복해서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장애)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엄마에게 아이들에게 상담기관이나 놀이치료 등의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엄마의 우울증이 완전히 치료되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밝게 사는 모습이 되면 아이들은 저절로 고쳐질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우울증이 대물림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나 또한 내 어머니의 우울증이 내게로 대물림되었었다. 우울한 집안 분위기 속에 아이들은 우울하게 자랄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이 여성의 경우는 적극적으로 상담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받게 되었고 자신의 우울증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쳤는지도 깨닫게 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울한 엄마들은 자신의 우울함에 파묻혀 아이들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 아이들은 우울한 엄마의 눈치를 언제나 살피며 자신의 세계에 고립되어 숨도 쉬지 못하고 살게 되는데, 그렇게 몇 년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엄마의 우울이 고스란히 아이들 영혼에 내재화되어 우울한 한 사람으로 병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힘들고 고단하고 상처많은 세상에서 살다보면 어느 정도의 우울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오죽하면 우리를 잘 아신 주님이 수없이 ‘항상 기뻐하라’,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겠는가. 우울증은 우리를 기뻐하지 못하게 만들고 쉼없이 염려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만 보이고 자신의 존재감을 아주 하찮게 여기게 된다.

이것이 사탄의 전략인 것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망각하게 하고 괴로움과 슬픔과 미래의 불안을 주어 사망의 절벽으로 밀어 넣기 위한 또 하나의 올무가 바로 우울증인 것이다. 우울증의 덫에 걸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지고 모든 의욕이 다 없어지고 죽고만 싶어진다.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던 모든 것들, 심지어 가족들이나 자녀들까지 귀찮은 존재로만 여겨지고 세상에 나를 알아주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이 느껴지게 된다.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우울한 기분이 드는가. 바람이 점점 차가워지는 이 가을에 더욱 우울해 지는가. 우울을 우리의 영혼에 흘려 넣는 마귀를 대적하고 그들의 속삭이는 소리를 성령의 빛으로 차단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햇살보다 더 밝은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가자. 그리하면 우리를 엄습하고 장악하려는 마귀의 강력한 기운인 우울감이 순식간에 걷힐 것이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이 끔찍한 영혼의 병을 대물림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밝고 씩씩하고 미래의 희망에 가득 차서 자라야 한다. 우울이 발목을 잡게 해서는 안된다. 영혼의 상처는 나의 대에서 끊어져야 한다.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나의 상처와 나의 고통과 나의 쓴뿌리와 나의 우울을 단호하게 끊고 치유를 받아야 한다. 이 가을에 우울이나 쓸쓸함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과 그 은총의 단맛을 누리고 풍성한 계절을 다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강선영 목사와 이메일상담 somang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