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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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흔 칼럼] 이 몸도 시들기 전 온전히 드려지길

한국교회가 낳은 자랑스런 참 목자 주기철은 1897년 11월 25일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 복부리에서 주현성의 4남 3녀 중 넷째아들로 태어난다. 1905년 한국을 침탈한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주기철의 친척 주기효는 1906년 대한의 젊은이들에게 민…

[송태흔 칼럼] ‘사랑의 원자탄’ 같은 참 목자 없소?

손양원은 1902년 6월 3일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 653번지에서 손종일 장로와 김은주 집사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1914년 4월 1일 칠원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해 일본의 왕이 사는 동쪽을 향해 절할 것을 강요하는 동방요배(東方遙拜)로 어려움을 겪었다. 보통학교…

[송태흔 칼럼] ‘한국의 간디’ 고당 조만식

한국의 간디로 널리 알려진 조만식 장로는 1883년 2월 1일(음12월 24일) 평남 강서군 반석면 반일리 내동에서 아버지 조경학(曺景學)과 어머니 김경건(敬虔)의 독자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병약한 조만식에게 격투기의 일종인 날파람을 익히게 했고, 의리와 곧은 절…

[송태흔 칼럼] 템플턴상의 주인공 한경직 목사

한국이 낳은 최고 최대의 복음주의 목사, 한경직(1902-2000)은 1902년 12월 29일 평안남도 평원군 공덕면 간리에서 전업 농부인 부친 한도풍(韓道豊)과 모친 청주 이(李)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 세워진 자작교회와 진광학교(선교사 마포삼열 설립) 및 평북 정…

[송태흔 칼럼] 빚 보증 잘못 서 전재산 날린 김익두…

한국 초기 장로교회가 낳은 유명한 목사로서 세간에 알려진 김익두(金益斗)는 1874년(고종 11년) 11월 3일 황해도 안악군 대원면 평촌리에서 아버지 김응선의 3대 독자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대단한 부의 상징인 기와집에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힘써 구제하며 노…

[송태흔 칼럼] 신동이라 불렸던 이기풍의 회개

이기풍 목사의 증조부는 홍경래의 난 당시 역적으로 몰려 고난을 당했다. 그때 사형을 당할 뻔 했으나 구사일생으로 황해도 구월산에 몸을 피했다. 그의 부친은 고향인 평양으로 다시 돌아와 신분을 감추고 농민으로 행세하며 살았다. 1868년 11월 21일, 이기풍 목사는…

[송태흔 칼럼] 아버지·언니 죽인 독일군까지 품은 사랑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까지 진정한 그리스도의 대사요, 사랑의 사도로 널리 알려진 코리 텐 붐은 1892년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과 북해 사이에 위치한 할렘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경건한 신앙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송태흔 칼럼] 절망 딛고 팔려가는 아이들을 구해내다

도나버 공동체의 창시자로 알려진 에이미 카마이클(Amy Carmichael)은 1867년 북아일랜드의 유복한 중산층 가정에서 7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밀리슬이라는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제분소를 운영하고 있는 신실한 장로교인이었다. 18세가 되던 해에 부친…

[송태흔 칼럼] 유머 뛰어났던 로이드 존스, 설교할 땐…

영국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담임목사로 거의 평생을 살았던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 Jones)는 1899년 영국 남웨일즈 카디프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 왕실 주치의로 일했던 토머스 호더경의 적극적인 지도를 받아 런던 성바돌로매병원에서 의사 자격증…

[송태흔 칼럼] 19C 무디의 설교, 21C인 지금도 통할까

미국의 현대 대중 복음전도 운동가로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진 드와이트 무디(D. L. Moody)는 1837년 매사추세츠 노스필드(North Field)에서 소작농이자 석수인 에드윈 무디(Edwin Moody)와 베시 홀튼(Betsy Holton) 사이에서 여섯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

[송태흔 칼럼] ‘설교의 황제’ 스펄전에 없었던 한 가지

오직 성경만을 성도들에게 강해하여 탁월한 설교가로 알려진 찰스 해돈 스펄전(C. H. Spurgeon)은 1834년 영국의 한적한 시골 에섹스 켈비던에서 경건한 순회 목사의 아들이요 손자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와 부친은 모두 영국 국교회를 반대한 개혁파 계통의 목사였다. …

[송태흔 칼럼] 구세군 교회의 최초 설립자 윌리엄 부스

구세군 교회의 최초 설립자로 알려진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목사는 1829년 4월10일 영국 노팅험(Nottingham)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에게 ‘구세군의 어머니’로 불린 동갑내기 캐서린 멈포드와 1855년 6월 결혼해 9명의 아이를 키웠다. 그는 14세의 어린 …

[송태흔 칼럼] 술꾼에 도벽까지 있었던 죠지 뮬러

죠지 뮬러(George Muller)는 1805년 9월 27일 독일 크로펜스타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세무 공무원으로 술을 무척 좋아했고, 오직 세상 사람들의 원리에 따라 자녀들을 양육했다. 뮬러가 14세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그때도 아버지는 술에 취해 거리를 비…

[송태흔 칼럼] 45년간 오로지 ‘노예 해방’만을 위해

영국의 노예해방 운동가요, 국가 상류층의 윤리를 바로 세운 정치인 윌리엄 윌버포스는 1759년 요크셔 헐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의 가족은 원래 색슨족의 후예들로 성공한 상인들이었고, 조부는 유능한 정치인으로 시장을 두 번이나 지낸 인물이었다. 윌버…

[송태흔 칼럼] ‘셀프 리더’ 아닌, 남 위한 ‘수퍼 리더’

한센병 환자를 위한 선교회를 이 땅에 가장 먼저 설립한 웰즐리 베일리는 1846년 더블린 남서부 애비레이시에서 태어났다. 베일리는 그곳 스트래스벨리 주택개발 직원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신실한 신앙을 전수받아 다른 세 형제와 아일랜드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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