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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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흔 칼럼] 철물점 종업원이 남태평양의 선교사로

19세기 활동했던 남태평양 군도(群島)의 선교사 존 윌리암스(John Williams)는 런던 선교회가 더프호를 남태평양으로 출항시킨 1796년 영국의 신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의 노동자 계급이 모여 사는 토텐햄 하이크로스에서 자라면서 찬송가와 기도서를 …

[송태흔 칼럼] 원주민들이 앞다퉈 복음을 듣고 싶어했던 여인

칼라바르의 선교사 메리 슬레서는 1848년 스코틀랜드에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집안의 일곱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매우 무지했던 메리의 아버지는 대를 이은 극심한 가난을 비관,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다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급기야 그녀의 아버지는…

[송태흔 칼럼] 노예 폐지 위해 항로 개척한 선교사들

아프리카의 탐험가요, 선교사인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은 1813년 영국의 글래스고에서 남동쪽으로 약 2-3마일 떨어진 블랜타니어 마을에서 매우 경건한 신앙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스코틀랜드 서부 해안의 울바 섬에서 이주해 온 가난한 사…

[송태흔 칼럼] 중국옷 입은 테일러에게 동료들은…

중국 내지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는 1832년 5월 21일 영국 요크셔 반즐리의 경건한 감리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반즐리를 본부로 한 순회설교단 소속 탁월한 설교자였다. 허드슨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방문한 각지 목회자들이 자신의 집 응…

[송태흔 칼럼] 정원사에서 선교사로, 윌리엄 캐리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캐리는 1761년 8월 17일 노스햄톤(Northampton)에 위치한 폴러스푸리(Paulerspury)라는 작은 마을에서 베 짜는 직공 에드몬드 캐리의 아들로 평범하게 태어났다. 캐리는 단 10살까지 정규 학교를 다녔지만, 어릴 때부터 늘 자신이 구할 수 …

[송태흔 칼럼] 존 웨슬리가 감리교를 세운 뜻은

이 땅에서 감리교를 처음 시작한 존 웨슬리 목사(John Wesley)는 1703년 7월 17일 영국의 링컨셔주 에프워스(Epworth)에서 성공회 사제인 부친 새뮤얼 웨슬리(Rev.Samuel Wesley)와 매우 건강하고 신실한 성도인 모친 수산나의 19남매 중 15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새뮤얼 …

[송태흔 칼럼] 감리교 해법, 조지 휫필드에게 물어보라

18세기에 일어난 기독교 대각성운동의 최고 공로자 조지 휘트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는 1714년 영국 글로스터에 있는 한 여인숙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들이 그곳에서 조그마한 여인숙을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그는 드라마에 관심과 특기를 가지…

[송태흔 칼럼] 위장 전입과 탈세 릴레이 속에서도

퀘이커 교회의 설립자 조지 폭스는 영국 중부의 레스터셔(지금의 페니 드레이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크리스토퍼 폭스(Christopher Fox)와 어머니 메리 레이고(Mary Lago)는 매우 교양있고 정직한 크리스천이었다. 폭스는 어려서부터 부모의 영향으로 신앙심이 깊고 정직…

[송태흔 칼럼] 뇌에도 ‘근육’이 필요하다

17세기 천로역정이라는 걸작을 남긴 존 번연은 1628년 잉글랜드 베드포드 엘스토우 마을에서 가난한 떠돌이 땜장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골 학교에서 영어 읽는 법과 쓰는 법을 배웠지만, 10살의 어린 나이에 장남으로 아버지가 하신 가업을 전수받기 위…

[송태흔 칼럼] 예수회 설립과 가톨릭 개혁

1534년 예수회(제수이트교단)를 새롭게 세운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는 1491년 기푸스코아 바스크의 로욜라 성에서 부유한 귀족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57㎝ 정도밖에 안 되는 단신임에도 1506년 카스티야 왕국의 재무관인 후안 벨라스케스 데 쿠에야르의 시종이 됐고, 1…

[송태흔 칼럼] 사역에 방해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존 녹스의 고향 스코틀랜드는 오래 전부터 전통적으로 켈트파 신학을 수용해 수도원 중심의 공동체신앙을 지니고 있다. 주후 664년 휘트니 총회에서 로마 카톨릭교회의 제안에 따라 정부가 예수의 부활절을 인정했고, 그때부터 카톨릭화(化)되기 시작했다. 그후 1093…

[송태흔 칼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을 보며

16세기 프로테스탄트의 불모지 영국에서 희생으로 종교개혁의 기초를 닦은 교회 지도자 토머스 크랜머는 1489년 영국 노팅엄셔주 애슬랙턴에서 가난한 자작농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14세 때 부모의 권유로 케임브리지에 위치한 예수대학으로 유학가서 1511년 그 학…

[송태흔 칼럼] 생명보다 소중했던 성경번역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 윌리엄 틴데일은 1494년 영국 왈레스에서 태어났다. 옥스포드 대학에 입학하여 1515년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루터의 개혁주의 신학을 기초로 설립된 캠브리지 대학으로 옮긴다. 그곳에서 종교 개혁자들의 작품을 심도있게 분석 연구하는 …

[송태흔 칼럼] 깔뱅은 세르베투스 화형에 책임이 있나

장 꼬뱅(Jean Cauvin, 장 깔뱅의 본명)은 1509년 7월 10일 프랑스 북부 삐까르디(Picardie)의 누와용(Noyon) 마을에서 아버지 제라르 꼬뱅(Gérard Cauvin)과 어머니 쟌느 르프랑(Jeanne Lefranc)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1523년 8월 파리 마르슈 학교(Collège de la March)…

[송태흔 칼럼] 교회개혁은 진정한 용기와 말씀으로!

기독교의 위대한 역사를 다시 쓴 종교개혁의 주인공 마르틴 루터는 1483년 독일 튀링겐 아이슬레벤의 한 시골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여섯 개의 갱도와 두 개의 주물 공장을 소유하고 있었고, 또한 구의원으로 도시 중심가에 저택을 보유한 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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