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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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저술활동 펼친 기이(奇異)한 선교사

게일 헤론(Gale. Gibson Heron, 1860-1908) 선교사는 첫 남편 존 헤론(John Heron, 1858-1890) 선교사와 함께 미국 북장로교 파송으로 1885년 내한하여 선교사역을 하다가 남편 헤론이 1890년 7월 26일 33세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하였다. 헤론의 아버지는 테네시주에 있는 녹스빌에…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말씀 실천한 선교사

아펜젤러(H. G. Appenzeller, 1858-1902) 선교사는 미국 펜실비니아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독일 루터교회에 출석하는 부모로부터 신앙을 이어받고 성장하였다. 아펜젤러는 마샬대학을 거쳐, 드루신학교에 진학을 하였다. 신학을 연구하는 중에 세계선교에 꿈을 가졌던 아펜…

신분 차별을 철폐하고 주 안에서 함께 예배하다

무어(S. F. Moore, 1860-1906. 모삼열) 선교사는 1892년 시카고 맥코믹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인 로즈(E. Rose)와 함께 고향인 미국 일리노이를 떠나 1892년 9월 19일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하였다. 여기에 동승했던 그래함 리(G. Lee. 이길함) 선교사 일행과 목선을 타고 강화도 앞을 …
양화진 소다

왜 일본인이 양화진에 묻혀 있을까

왜 일본인이 양화진에 묻혀 있을까. 그가 이곳에 묻혀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유일하게 일본인으로서 양화진에 안장된 주인공은 바로 소다 가이찌(曾田 嘉伊智, 이하 소다)이다. 그는 1867년 일본 야마구찌현(山口縣)에서 출생하였다. 오까야미시(岡山市) 한문…
하디

“하나님 살려주세요, 이제 조선의 고난을 나누겠습니다”

지난 2006년 5월 24일 기독교대한감리교회(당시 감독회장 신경하)는 요한 웨슬리 회심 268주년을 기념해서 하디의 두 딸이 묻혀 있는 양화진에 하디의 영적대각성운동 기념비를 설립하였다. 기념비 내용을 살펴보면 “감리교 선교사 하디는 1903년 원산 부흥운동의 위…
기포드

민비의 주치의 엘러스, 언더우드의 협력자 기퍼드

정신여학교 초대 교장 엘러스(A. Ellers) 선교사와 4대 교장 메리 해인드 기퍼드(M. H. Gifford, 기보부인) 선교사는 양화진에 묻혀 있으며, 2대 교장인 헤이든(M. Haydon) 선교사는 잠시 시무를 하다가 귀국했다. 3대 교장인 도티(S. S. Doty) 선교사는 정동에서 연동으로 학교를 …
안대선

“예수 오실 때까지”, “천의 생명이 있대도”

양화진 이야기는 끝이 없다. 나는 2007년에 양화진에 잠들고 있는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예수 오실 때까지”라는 책을 출간한 일이 있다. 선교사 109명이 잠들고 있는 이곳 양화진에 방문했을 때 책 제목을 짓는 데 영감을 준 선교사가 있었다. 그의 묘비는 …
양화진에 두번째로 묻힌 로티 선교사의 묘비.

아내 잃은 슬픔 뒤로하고, 약속한 선교지로

물론 헤론 선교사의 장례식도 눈물 겨웠지만 두번째 선교사가 양화진에 묻힐 때 그 울음소리는 더욱 컸다고 한다. 그날 참여했던 미국 남북 장로교회 선교사들과 미국 남북 감리교회 선교사들이 모여 장례식을 거행할 때, 여자 선교사들의 울음소리는 유난히 큰 소…
양화진 헤론

이 백성 치료해준 선교사가 묻힐 곳 없어…

아직도 교인들 가운데 양화진 외국인 묘지라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이곳은 이수정의 선교사 유치운동에 감동을 받고 천박한 조선땅에서 의료 선교와 교육사업 여기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해서 많은 선교사들이 이땅에 젊음을 바치다가 순교한 선교…
이수정

일본인에게 선물로 받은, “온 세상 환히 비추는 말씀”

이수정(李樹廷)은 전라도 옥과현에서 1843년 대학자 이병규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그이 큰아버지는 천주교의 탄압으로 순교를 하였다. 그러나 그의 피나는 노력으로 장원급제하여 상경하였으며, 조정의 역사기록가로 활동을 하던 중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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