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프랑스 종교 개혁 발자취

위그노들의 유럽 여러나라, 그리고 북미, 남아공 지역으로의 이주 상황.

개혁추적 500년 - 11) 엑소더스 프랑스

연대기적으로 쓴다면, 우리가 이 연재를 시작할 때 계획했던대로 이제 세르베 화형 사건 자체에 대해서 좀 더 심층적으로 논의할 장면에 이르렀다. 그러나 하던 이야기를 끊고 또다시 돌아오는 일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더 위그노들에 대한 대대적 학살 사건들 이후, 프랑스 개혁교회의 계속된 흐름에 대해 잠시 돌아본 후에 세르베 화형 사건의 전말에 접근해 보기로 하자. 16…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May 10, 2011 08:44 AM KST

그레고리 13세 위그노 학살 기념 메달. 교황은 그들이 자행한 바돌로메 대학살을 천사들의 거룩하고 위대한 사역으로 미화했다.

개혁추적 500년 - 10) 살인자들의 칼집, 똘레랑스?

로마의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이 날을 축하하여 ‘하나님께 찬양’이라는 ‘떼 데움’(Te Deum)을 사은(謝恩)의 찬양으로 부르게 하였고, 스스로 특별 감사 미사를 집전하기도 하였다. 또 프랑스 교구에 거액의 상금을 희사하였다.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이 날을 기념하여 한 손에 십자가를, 다른 한 손엔 칼을 든 천사가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모습을 새긴 메달을 주조하여 팔았다.…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May 03, 2011 07:00 AM KST

1561년 9월 뿌와시(Poissy)에서는 까뜨린느의 주선으로, 국왕 샤를 9세가 입회한 가운데 쥬네브에서 온 베즈가 로렌의 추기경 샤흘르 기즈와 성찬에 관한 신학적 토론을 시도한

개혁추적 500년 - 9)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프랑스 버전?

똘레랑스, 그 바른 역사 위에만 세워지는 행동 잠시 다시 짚어 보건대, 당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대립에서는 자주, 전쟁 프로페셔널 무인(武人)들과 선비 학자들의 싸움이라 해야 할 희극적인 장면이 드러나 보인다. 읽기 나름으로는 이런 말이 좀 이상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겠지만, 역사적 사실의 근저에 흐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흐름을 균…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Apr 26, 2011 07:18 AM KST

“1561년 12월, 이 지역 개신교인들에 의해 성당이 약탈 당했는데 이 사건을 성 메다흐 소동 사건이라 함”이라고만 적혀 있는 역사 안내판. 개신교도 1백여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

개혁 추적 500년 - 8) 그 때 가톨릭 손에는 왕들도 죽었다!

바시 대학살과 바돌로메 축일의 대학살 구한말의 기독교 박해사를 비롯, 로마 시대 이후 기독교회사가 품은 엄청난 학살의 기록들은 그 어떤 전쟁사보다 더 끔찍하다. 그 가운데 한 봉우리에 올라선 시리즈 하나가 오늘 논의된다. 1561년 12월 27일 사도 요한 축제일에 파리에서 2천여명의 위그노들이 장 말로(Jean Malo) 목사를 초청하여 집회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 메다흐 …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Apr 19, 2011 07:03 AM KST

가톨릭에 의한, 당시 학살 모습. 처처에서 목격된 광경이었다.

개혁추적 500년 - 7) 가톨릭이 화형 언도한 세르베투스

당시 교회 내의 개혁 운동을 잠재워 보기 위하여 가톨릭이 동원한 힘은 크게 두 가지, 세속 정치 권력 그리고 군대를 동원한 폭력으로 요약된다. 이는 그 시대에 존재하던 물리적 힘의 총화였다. 그러나 가톨릭은 절대 능력을 보유하여 현실의 모든 위력을 동원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현실적 맹주였음에도, 그들 자신에 내재한 모순과 허위와 부정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는 한 …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Apr 12, 2011 07:17 AM KST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낙수홈(Gargouille). 빗물이 건물벽을 상하지 않도록 만든 장치이지만 불당의 나한상처럼 악한 세력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야수의 형상을 하고 있다.

개혁 추적 500년 - 6) 신원 않으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1529년에는 베르껑이 순교한다. 국왕의 측근 귀족이며 뛰어난 학자였던 아르뜨와의 루이 드 베르껑(Louis de Berquin)은 개혁 운동이 서서히 일어서고 있을 당시, 열정적으로 이에 동의하고 교회 개혁의 필요를 외쳤다. 그는 당시 교회의 개혁을 위해 루터와 멜랑흐톤의 용기 있는 노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교회 개혁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루터…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Apr 05, 2011 07:05 AM KST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을 서명, 발표했던 건물.

개혁 추적 500년 - 5) 깔뱅의 비관용을 주장하는 로마 가톨릭

이른바 ‘관용’(LA TOLÉRANCE),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인간의 기본권으로 양해(諒解)함을 의미하는 이 용어를, 일부 학자들은 마치 1553년 쥬네브에서 발생한 세르베의 처형으로부터 기원한 말처럼 쓰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1556년에 출판된 소책자 ‘1545년 메링돌(Merindol) 지역 개혁자들에 대한 학살과 약탈에 대하여 기억할 역사적 사실’에서였다.…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Mar 29, 2011 06:41 AM KST

개혁 추적 500년 - 4) 역사라는 것의 상식성

요컨대, 피와 인명(人命)만이 변화와 개혁을 사는 값이었다면, 폭력의 양으로 따져서 결국 당하는 쪽이 얼마만큼 지불하며 견딜 수 있느냐의 싸움이었을 따름이다. 이 점에서의 역전(reverse)과 역주행은 결코 있을 수도,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 역사의 철저한 사실이었음을 먼저 직시하자. 한쪽은 의식적으로, 온갖 논리와 간절함을 가지고 나아가 변화와 회복, 갱신을 호소하고 …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Mar 22, 2011 06:59 AM KST

1598년 앙리 4세의 낭트 칙령에 의하여 위그노에 주어졌던 종교적 관용은, 1681년 루이 14세가 위그노들을 강제 징집하는 드라고나드(dragonnade) 정책에 의하여 완전히

개혁 추적 500년 - 3) 종교개혁사는 개혁교도 핍박사

‘중세’라는 시대를 규정하는 기준 자체로부터 이미 종교와 교권의 힘, 그 의미는 절대적이다. 그리고 개혁이라는 운동이 발생하게 된 동기 자체가 이미 기성 권력의 변질과 또 이를 완강히 보수하려는 성향 실체를 전제로 하고 있다. 또 종교 권력이든 세속 권력이든 기성하는 세력으로서 현실적 관성을 보수 지속(保持)하려는 경향성에서 그들은 철저히, 그리고 끝까지 하나…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Mar 15, 2011 06:47 AM KST

2009년 깔뱅 출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프랑스 우표.

개혁 추적 500년 - 2) 변형된 500년 역사의 충격적 전말

깔뱅과 그 시대를 다시 재검토하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또는 의도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부정확한 사실들의 확인 없는 재서술’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수백 년 동안 왜곡 혹은 곡해되었던 점들에 대한 조심스런 재확인, 그리고 이를 바로잡는 과정이 이제 시작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오늘 우리가 당면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때문이다. 이 칼럼이 주목하는 …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Mar 08, 2011 06:44 AM KST

깔뱅

[연재] 깔뱅의 시대와 세르베 사건

총신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권현익 목사(Rev. Hyunik Kwon)는 GMS 파송 선교사로서 20년 가까이 유럽에서 사역해왔다. 프랑스와 프랑스 교회를 위해 관련 선교 단체들과 기관들에서 사역 훈련을 계속하고, 선교 및 교회사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다. 특히 서방 개혁 교회의 원형이라 할 위그노와 깔뱅의 사적(史蹟)을 확인하고,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왜곡된 사실들을 재발견하…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Mar 01, 2011 08:49 AM KST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이노성 분수. 원래는 무덤이 있던 곳이다.

[프랑스 종교 개혁 발자취 최종] 위그노들의 순교

이노성 분수 (Fontaine des Innocents)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레알 지구에는 앙리 2세의 파리 입성을 기념하기 위해 1549년 피에르 레스코(Pierre Lescot)가 설계하고 위그노 건축가인 장 구종(Jean Goujon)이 조각한 이노성 분수가 있다. 이 분수는 원래는 생드니(rue Saint-Denis)에 있었던 것을 1786년에 옮겨 놓은 것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마지막 분수대다. 사진 :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은 …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Jan 28, 2010 07:04 AM KST

깔뱅이 목회했던 쥬네브의 베드로 성당.

‘개신교의 로마’ 쥬네브에도 베드로 성당이 있다

1. 베드로 성당 쥬네브는 깔뱅의 명성이 크게 알려진 곳이자 ‘개신교의 로마’와도 같은 곳이다. 로마에 베드로 성당이 있다면 쥬네브에는 개신교의 로마로 베드로 성당이 있다. 사진 : 깔뱅이 목회했던 쥬네브의 베드로 성당 깔뱅이 쥬네브를 개혁의 도시로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쥬네브에 와서 볼 수 있는 것은 레만 호수의 거대 분수, 국제 연합 본부,…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Jan 21, 2010 06:12 AM KST

‘깔뱅의 도시’ 쥬네브에는 유적이 얼마나 있을까

바울이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고백한 것처럼, 깔뱅 역시 자신의 삶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사역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므로 자신을 기념하는 그 어떤 동상도 세우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깔뱅 출생 5백여년을 맞은 현재까지 깔뱅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물들을 세우려는 시도들이 많…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Jan 14, 2010 05:51 AM KST

비석도 없이 공동묘지에 묻힌, 위대한 종교개혁자

비석도 없이 공동묘지에 묻힌, 위대한 종교개혁자

깔뱅은 Fresneville가 쥬네브를 잠시 떠나게 되어 그의 집에 살게 되지만, 그의 요구로 옆집으로 이사를 간다. 2년 후 쥬네브의 영주가 Fresneville의 집을 구입하였고, 깔뱅은 다시 그곳에서 죽는 날까지 살게 된다. 사역으로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되면 동생 앙뚜완(Antoine)이 그곳을 머물게 된다. 그의 집은 정원 하나가 있었으며 호수와 산이 내다 보이는 곳에 위치하였고, 깔뱅은 하나님…

크리스천투데이=류재광 기자 | Jan 07, 2010 06:01 AM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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