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오피니언/칼럼

이경섭

[이경섭 칼럼]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사랑과 공의 ‘공의(justice, 公義)’ 하면 일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 같은 부정적인 개념만을 떠올리고,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한다. 이는 ‘공의’에 대한 편견이고, 신·구약 전체의 ‘원만한 공의’ 개념엔 이르지 못한 것이다. 성경에 의하…
이경섭

[이경섭 칼럼]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 (2)

‘거듭남(regeneration, 重生)’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존재의 변환(conversion of existence)’이다. 이는 인격 수양이나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이나 율법주의자들의 자력적인 ‘점진 구원(progressive salvation)’과는 전혀 다른, 근본적…
이경섭

[이경섭 칼럼] 성령은 누구에게 부어지는가?

◈‘죄 씻음’으로 부어지는 성령 ‘성령의 부으심(the Anointing of the Holy Spirit)’은 ‘특별한 그리스도인’에게만 해당되고 ‘보통의 그리스도인’에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성령을 못 받을 수 있고, …
이경섭

[이경섭 칼럼] 부요하고 완전한 ‘삼위일체 하나님 사랑’

삼위일체 사랑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삼위일체적(三位一體的)이다. ‘한 분 하나님’이 ‘삼위(三位)’로서 한 대상을 사랑하며, 그 ‘삼위의 사랑’은 혼란, 불화 없이 일산분란(consistent)하다. 인간 세상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사랑법이다. 이 ‘삼…
이경섭

[이경섭 칼럼] ‘믿음’은 인간의 모든 시도를 포기하는 것이다

‘여주동행’보다 앞선 ‘임마누엘’ ‘임마누엘(Immanuel)’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이고, ‘여주동행(與主同行)’은 에녹처럼(창 5:21-24)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한다(與主同行)’이다. 우리 신앙에 있어 ‘여주동행’ 이전에 ‘임마누엘’이 먼저이…
이경섭

[이경섭 칼럼] ‘창세 전’ 영원한 하나님 사랑

◈창세 전의 사랑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 전부터 시작됐다. 이는 하나님 사랑 핵심인 ‘그리스도의 구속’이 ‘창세 전’에 경륜됐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
이경섭

[이경섭 칼럼] 진리와 성령의 계시 위에 세운 신앙

◈열심이냐 진리냐 모든 종교는 대개 ‘치성(致誠)’을 신앙의 으뜸 덕목으로 삼는다. 진심으로 치성을 드리면 신(神)을 감동시켜 그의 자비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구약 엘리야 시대 바알 제사장들이 자기들의 신을 불러내려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
이경섭

[이경섭 칼럼] 기독교의 명시적 진리와 유추적 진리

기독교는 ‘명시적 진리(the clear truth)’와 ‘유추적 진리(the analogical truth, 혹은 비명시적 진리)’로 구성돼 있다. 전자는 말 그대로 ‘성경에 명시된 진리’이고, 후자는 성경엔 명시돼 있지 않지만 ‘성경에서 유추해낸 진리’이다. 우리 신앙 역시 이 두 내용을 …
이경섭

[이경섭 칼럼] 죄인이 어떻게 예수께로 가는가?

◈성령으로 예수께 인도됨 사람들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성부 하나님’은 아무나 접근을 하락하시지 않지만, ‘신·인(神人)’이며 ‘죄인의 친구’이신 성자 예수는 누구에게나 접근을 허용한다고 생각한다. 옳은 말이다. 성경도 그렇게 말한다. 죄인이 …
이경섭

[이경섭 칼럼] 가톨릭의 마리아 무흠 교리와 범신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는 ‘삼위일체 성육신 교리’는 로마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공히 받아들이는 역사적 신앙고백이다. 그러나 로마가톨릭은 그 성육신 교리에 그들 특유의 ‘사변적 추론(speculative reasoning)’을 가미시켜 ‘하나님이 사람이 될 수 있…
이경섭

[이경섭 칼럼] 삼위일체 복음’과 ‘하나님의 충만

‘성자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성육신(incarnation, 成肉身)’은 삼위일체의 핵심이며, 이 삼위일체 성자의 성육신 자체가 죄인에겐 ‘복음’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 1:1).” 그래서 성자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신 이 ‘성…
이경섭

[이경섭 칼럼] 신앙에 비결이 있는가?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의 제목들 중 무슨 무슨 ‘비결(knowhow, 秘決)’이라는 제목들이 많다. 예컨대, ‘복 받는 비결’, ‘부자 되는 비결’, ‘성공하는 비결’ ‘승리의 비결’등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과연 신앙엔 비결이 있는가?’라는 생각과 함께 ‘과연 …
이경섭

[이경섭 칼럼]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진리, 구원

‘진리(truth, 眞理)’는 모든 인류가 이제껏 추구해 온 보편적인 관심 주제이다. 대학을 설립한 목적도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것이다. 대학을 ‘상아탑(Ivory Tower, 象牙塔)’이라 함도 대학이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리’처럼 광…
이경섭

[이경섭 칼럼] ‘죽지 않음'이 곧 ‘영생’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한국 기독교의 한켠에선 ‘아담의 태초 상태’, 곧 ‘범죄 전의 그가 영생(永生)하는 자이다, 아니다’로 의견이 분분하다. 양쪽 주장을 들어보면 다 일리가 있어 보이며, 이러한 둘의 팽팽한 대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느 한 쪽을 편들기가 쉽지 않…
이경섭

[이경섭 칼럼] 보통 사람, 보통 신앙

◈예수님은 수도원장이 아니셨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수도자(修道者) 이미지’와 오버랩(overlap)시키며 그에게서 ‘수도자의 모형(母型)’을 취하려 한다. 그들은 그가 수도생활(修道生活)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며 그의 제자교육도 그것에 방점을 뒀다고 …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