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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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이경섭 칼럼] ‘율법 아래’ 있는 자와 ‘은혜 아래’ 있는 자

◈‘율법’과 ‘율법적 행위’ ‘율법의 의(義)’와 ‘믿음의 의(義)’는 근본 서로 배치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둘의 도달점은 같다. ‘율법의 의’를 통해 ‘율법의 완성’에 도달하고, ‘믿음의 의’ 역시 그것을 통해 ‘율법의 완성’에 도달한다. 따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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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을 버리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자신이 ‘구원 택정하신 자’를 잘못했다고 도태(selection, 淘汰)시키거나 버리시질 않는다. 만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면, 그것은 그가 그들을 선택한 것이 실수였고 그의 전지성(omniscience, 全知性)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전지(全知)하신 하나님은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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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그리스도인이 요구받는 의(義)와 의행(義行)

우리는 죄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율법의 의’를 요구받는지에 대한 분별력 있는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는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요구받은 ‘율법의 의’, 곧 범죄 전에 요구받은 ‘율법의 의’와 범죄 후에 요구받은 ‘율법의 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범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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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무엇이 ‘부정하고 깨끗함’이며, ‘죄이고 의’인가?

◈무엇이 부정하고 무엇이 깨끗한가? 유대인들은 사람이 몸의 양피(foreskin, 陽皮)를 베는 ‘육체의 할례(the circumcision of flesh)를 행했느냐 행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안 되고,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고 믿었다. 또 그들은 음식 먹을 때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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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죄에 대한 하나님의 두 안목

◈죄를 현미경처럼 보심 ‘현미경(microscope, 顯微鏡)’은 ‘생 눈’으로 보지 못하는 세균, 바이러스(virus)까지 본다. 전문가들은 깨끗해 보이는 손바닥도 현미경으로 보면, 화장실 변기에 붙은 세균 수보다 그것(손)에 붙은 수가 더 많다고 한다. 멀쩡해 보이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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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계시의존사색’과 ‘유추적 사색’

개혁파 성경해석에 세 가지 원리가 있다. ‘역사적·문법적·교리적 해석’이다. 세 번째 ‘교리적 해석’은 대개 ‘유추적 해석(analogical interpretation)’으로 통칭된다. ‘역사적·문법적’ 해석이 성경 해석의 근간(根幹)이지만 ‘유추적 해석’역시 이에 못지않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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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후회 없는 하나님의 선택

인간은 남녀 간에 서로 사랑하다가도 ‘아니다’ 하면 서로 갈라선다. 심지어 양부모가 입양한 양자(養子)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파양을 하기도 한다. 어떤 부모는 자기의 친자식임에도, ‘내가 저런 놈을 내 자식이라고 낳았나?’라며 그 자식을 호적에서 파는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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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죄의 유일한 해결책 ‘용서’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끝없는 용서(마 18:22)’에 근거해 인간의 죄를 해결하신다. 만일 하나님의 그런 용서가 없으셨다면, 인간의 죄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여기엔 ‘원죄를 포함한 과거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를 다 아우른다. 이는 ‘구스인(the Ethiop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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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그리스도를 믿는가, 율법을 의지하는가?

‘그리스도를 믿는다' 함은? '믿음대로 된다(마 9:27-29)’는 말은 흔히 생각하듯, ‘손오공의 여의봉(如意棒)’처럼 ‘믿음이 만능(萬能)’이라거나 ‘믿으면 자기가 바라는 대로 다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 말씀은 눈을 뜨고자 예수님께 나아와 부르짖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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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죄인에겐 ‘죽을 생명’이 없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는 ‘첫 언약’을 범한 결과 인류에게 ‘죽음’이 왔지만, 그것이 곧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ment)’으로서 ‘영원한 멸망(everlasting destruction, 살후 1:9)’은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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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죽음은 ‘소멸’과 ‘멸망’이 아니다

성경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종파에 따라 ‘죽음’에 대해 각기 다른 이해를 가진 듯하다. 혹자는 ‘죽음(physical death)’을 ‘소멸(extinction, 消滅)’로 보고 ‘영혼 불멸(immortality, 靈魂不滅)’과 ‘내세(來世)’를 부정해 버린다. 혹자는 ‘멸망(destruction, 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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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삼위일체가 구원이다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이 “스스로 계신 자(I AM THAT I AM, 출 3:14)”이다. 이 이름엔 ‘그의 정체성(Identity, 正體性)’과 더불어 ‘만물의 존재 근원’까지 함의돼 있다. 곧 그는 ‘누구에 의해 존재’케 된 피조물이 아닌 ‘창조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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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하나님을 모시는 유일한 곳, 성전

이방종교인(異邦宗敎人)이나 무속인(巫俗人)들은 그들의 종교적 열심과 치성(致誠)으로 자신들의 신(神)을 불러온다고 믿는다. 그들 뿐 아닌 것 같다. 자칭 하나님을 믿는다는 ‘종교다원주의적 기독교인들(?)’에게도 유사한 신앙 형태가 목도된다. 그들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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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죄인이 예수님께로 감, 예수님이 죄인에게로 오심

◈죄인이 예수께로 감 성경은 예수님이 더 이상 육체로 세상에 계시지 않음에도 ‘죄인이 예수께로 나아간다’는 표현을 썼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27)”. 우리가 즐겨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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