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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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이경섭 칼럼] 당신의 예수는 ‘죽은 예수’인가요?

죽은 예수를 믿음 역설(paradox)로 들릴지 모르나, 그리스도인은 ‘산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죽은 예수’를 믿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꽂힌 이들이나 부활주의자들(the Resurrectionists)이 들으면 ‘욱’ 할 말이다. ‘예수는 죽었다가 사셨고, 승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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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예수 피가 어떻게 구원을 갖다 주나?

하나님과 화목시킴으로 일견 ‘화목’과 ‘구원’은 무관해 보이나, 이 둘은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죄’로 하나님과 ‘원수’ 되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던 인간이,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결과가 ‘구원’이다. 사도 바울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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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하나님 사랑의 네 가지 속성

◈영원한 사랑 택자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롬 9:11), 아니 우리의 형질이 이루기 전부터 시작됐다(시 139:16). 더 근원적으로는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엡 1:3)’이다. 이 하나님의 ‘창세 전 예정 경륜’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 엄마가 장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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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예수 피를 마심은 예수 피를 수혈받는 것인가?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는 자’는 생명(eternal life)을 가졌다(요 6:54)”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수혈받는 자는 살아났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이는 아마 ‘피에 생명이 있다(레 17:11)’는 성경 말씀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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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교회는 왜 지극히 영광스러운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현현하는 곳 ‘교회 건설’은 삼위일체적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네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마 16:18)’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예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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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이신칭의’를 모르면 구원받지 못한 것인가?

‘이신칭의’를 숭상하는 이들 중에 그것에 과도히 몰입하여 그것에 ‘신비주의의 옷’을 입히거나 ‘이신칭의를 깨달아야 구원 얻은 것이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지적 신비주의(gnostic mysticism) 경향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은 마르틴 루터(Mart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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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예수 부활은 계시요 확증이다

예수 부활, 하나님의 전능성의 계시인가? 사람들은 ‘부활’을 하나님의 전능성에 맞추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구원과 연결지어, ‘죽은 자를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으로 귀결(歸結)한다. 그리고 그들이 인용하는 대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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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죄인이 직면한 세 가지 죽음

성경은 죽음을 ‘세 가지’로 구분지어 말한다. 영적 죽음(spiritual death), 육체적 죽음(physical death), 영원한 죽음(eternal death)이다. 이 셋은 하나 하나의 ‘독자적인 의미’와 함께, 또 ‘상호 연관성’속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특히 후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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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공적이고 저주스럽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죽음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에 관한 모든 사건들은 ‘구약의 예언 성취’이다. 그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탄생하신 것도(마 1:1), 동정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도(마 1:20) 다 예언의 성취이다. 특히 여기서 말하려는 ‘그의 죽으심(고전 15:3)’도 그러하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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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피로 맺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한 우리 ‘성도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소위 ‘죄의 대속’을 통한 ‘구속적 연합’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내 죽음으로 삼아 내가 의롭게 되므로 그와 연합된다. 이는 ‘사람’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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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죄인을 부르시는 예수님

예수님이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고 한 것은 단지 ‘실제 죄인(actual sinner)’을 부르러 왔다는 말이 아닌, ‘실제 죄인’이면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죄인(admitted sinner)’을 부르러 왔다는 말이다. 만일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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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복음적 죄의식과 율법적 죄의식

복음주의자들은 복음과 율법을 가까이 놓는 것을 불편해하며, 가능한 한 둘을 멀리 떼어놓는 것을 상책이라 생각한다. 모순돼 보이나, ‘복음’은 오히려 ‘율법’을 함의한다. 복음은 율법을 런칭(launching)한다. ‘복음’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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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섭 칼럼] 죄인을 심판하는 것은 율법인가 복음인가?

신약 성경에 나오는 ‘복음(εὐαγγέλιον, gospel)’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good news)’이다. 당시 헬라 사회에선 이것을 정치적, 법정적, 군사적 용어로 다양하게 사용했다. 구약시대엔 ‘속량(redemption, 贖良)’, ‘포로에서의 해방(시 126:1-2)’, ‘복역의 완수(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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