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역경에도 하나님 신뢰한 다윗왕 떠올라
과거의 고난 기억하는 것, 상처 열어젖히는 일
지금도 고통받는 사람에게 치유와 위로 건네다
유작 통해 자신의 삶과 예술 하나님께 바치다

마르크 샤갈, 푸른 다윗왕
▲마르크 샤갈, 푸른 다윗왕. (캔버스에 유채, 65x81cm, 1967)

렘브란트 이후 성경의 장면을 환상적으로 펼친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작품을 전시하는 ‘샤갈과 성경전(마이아트 뮤지엄, 2021. 11. 25 - 2022. 4. 10)’이 국내에서 열리고 있다.

그에게 중요한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던 성경을 주제로 한 특별전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모으는데, 이 전시에서는 천지 창조부터 아담과 하와, 아벨과 가인, 요셉, 삼손 등 구약성경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책형도를 비롯해 모세, 다윗과 골리앗, 솔로몬 왕 등 샤갈이 자신만의 해석을 담은 성경 작품도 주제별로 만날 수 있다.

필자가 전시를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푸른 다윗왕>(King David in Blue, 1967)이었다. 푸른 색조를 배경으로 한 남성이 비스듬한 자세로 악기를 연주하는 그림이었다.

작품 속에서 다윗왕은 마치 하늘과 땅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평온하게 몸을 뉘인 자세로 하프를 들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예루살렘의 풍경과 그의 백성이 위치한다. 음악을 사랑했던 샤갈은 다윗의 시적 감각과 음악에 대한 관심에 친밀감을 느꼈다.

이 그림의 설명에는 “눈물이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듯 푸르게 물든 작품 속에서, 다윗왕은 고통을 이겨낼 만큼 아름다운 하프 연주와 시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사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그림에서 슬픈 기색을 한 다윗은 하프를 켜며 백성들에게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샤갈이 이 장면을 포착한 것은 그의 동족이 제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가공할 만한 제노사이드를 애통해하면서도, 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곧 구원의 역사가 찾아오리라는 희망을 전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사실 샤갈은 생전에 그 자신이 유랑하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여러 지역을 떠돌았다. 제정 러시아에 속했던 리오즈나(현재 벨라루스)의 작은 도시 비테프스크의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파리에서 활동하던 중, 제1차 세계 대전을 맞아 몇 년간 고향에 피신하였다.

또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파리에 머물던 샤갈은 나치의 핍박을 피하여 미국으로 피신하게 된다. 그는 프랑스를 침공한 나치 정권에 의해 ‘퇴폐 미술가’로 낙인찍혔고, 유대인 강제수용소로 보내질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샤갈은 유대인의 운명에 관한 고뇌를 담은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받은 피해는 그의 삶에 깊은 상처를 가져왔다.

전쟁 중에 일어난 유대인 학살의 악몽은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흔과 충격을 남겼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 상처와의 싸움은 계속되었는데, 그런 흔적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푸른 다윗왕>(1967)이다.

다윗은 지금 낭만적으로 하프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다. 언뜻 보면 연회라도 베풀고 있는 것 같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다윗은 백성들의 슬픔에 함께 공감하고, 이들을 위해 연주를 하고 있다.

작품 오른쪽 귀퉁이에 위치한 신부의 모습은 이스라엘을 일컫는 이미지이자,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가 쉽게 끊어지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샤갈의 성경 그림은 동화적이고 자유로우며 환상적인 특색을 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산양과 닭, 새와 같은 이미지들이 기용되기도 한다. 그의 자유분방한 작품은 중세적 종교 미술의 전통을 무시하고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으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대해 가톨릭 신학자 허버트 샤데(Herbert Schade)는 성경적 회화전통을 자의적으로 취급하였다고 지적하며 “서구 기독교의 전통에 눈이 맞추어져 있는 관찰자에게, 샤갈의 그림 속에 있는 이러한 모티브들은 너무 심하게 혼합되어 나타나 있다”고 비판했다.

그의 그림을 보면 종교적 회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있어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샤갈의 해석이 관례에 따른 것이었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심층적 깊이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샤갈은 전형성의 익숙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에게 성경 그림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은 프로테스탄트 화가 렘브란트(Rembrandt)였다. 평소 자신의 작품을 렘브란트와 비교하면서 ‘몹시 보잘것없는 성서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네덜란드에서 열린 대규모 렘브란트 헌정 전시를 앞두고는 ‘두려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물론 그 두려움은 렘브란트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작품들에는 렘브란트의 회화에서 차용한 모티브가 곳곳에서 보여진다.

샤갈의 <웃는 표정의 자화상>은 렘브란트의 판화 <모자를 쓴 웃는 자화상>(1630)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인정받는 장면은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있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1669)를 약간 변용한 것이며, 다윗과 사울왕의 그림에서도 네덜란드 바로크 거장의 흔적을, 십계명을 받은 모세의 그림 역시 <십계명을 깨트리는 모세>(1659)를 닮아 있다.

샤갈은 자신이 존경하는 화가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미지를 변형하여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연주하는 다윗 역시 렘브란트의 그림에 등장하는 모티브이지만, 샤갈은 이것을 완전히 새로운 맥락 속에 재배치하였다.

여기서 ‘새로운 맥락’이란 샤갈이 이 성경의 테마를 현재의 상황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 있다. 그의 작품 주제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애통해하는 다윗의 연주로 요약되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로 그치지 않는다.

샤갈은 억울하게 죽어가는 유대인들을 보며 어떤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한 다윗왕을 떠올렸고, 이 이미지를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셈이다.

과거의 고난을 기억하는 것은 상처를 열어젖히는 일이다. 상처가 크고 기억이 정확할수록 과거의 괴로움은 배가된다. 미로슬라프 볼프(Miroslav Volf)가 <기억의 종말>에서 말했듯이, 그는 기억 자체로 그치지 않고 기억한 경험을 새로운 빛 아래 비추어 봄으로써 치료되기를 바랐다.

오늘도 세계 여러 나라의 백성들이 테러와 전쟁으로 고난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그림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경 속에서 현대적 등가물을 찾는다는 사실이 유효하다면, 그의 작품은 지금도 어느 한 구석에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치유와 위로의 노래를 건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는 노년에 발표한 ‘또 다른 빛을 위하여(1965)’란 시에서 “눈을 감는 그날까지 하나님을 위해 다시 한 번 그림을 그릴 것”을 다짐한다.

샤갈은 숨지기 전 마지막 유작에 같은 제목을 붙임으로써, 자신의 삶과 예술을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된 모습을 보였다.

서성록
▲서성록 교수.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