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나타난 천사들.
ⓒPixabay
본문: 야고보서 1장 19절


삶은 관계다

영문학 교수님께서 문학의 주제는 아주 크게 이야기한다면 ‘어떻게 삶을 살아가느냐? 어떻게 사랑하며 살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문학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땅 가운데 주어진 삶의 시간동안 살아갑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가느냐’입니다.

동일한 삶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사람마다 그 인생의 색깔이 다 다릅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관계입니다. 내가 원해서 맺는 관계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관계도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어려워지면 삶 자체가 굉장히 힘들어집니다. 문제가 발생합니다.

왜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어질까요? 서로 소통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소통만 잘되면 사람과의 관계는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서로 통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너무나 길게 느껴집니다. 힘이 듭니다. 하지만 통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너무나 행복합니다.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혈관도 막히면 병이 생긴다

병 가운데 뇌졸중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뇌졸중은 뇌혈관질환인데 보통 중풍이라고 합니다. 뇌졸중은 뇌의 일부에 혈액을 공급하고 있는 혈관이 막히거나(뇌경색) 터짐(뇌출혈)으로써 그 부분의 뇌가 손상되는 것을 말합니다.

혈관을 통해 혈액이 잘 흘러가야 사람이 건강한데, 혈관이 막히면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 몸도 사람과의 관계도 소통이 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칭기즈칸이 가장 넓은 땅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두 번째 밀레니엄 시대 살았던 수많은 영웅들 중에서, 칭기즈칸을 최고의 영웅으로 선정했습니다.

칭기즈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지배한 인물이었습니다. 알렉산더와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정복한 땅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광활한 대륙을 차지했습니다.

겨우 15만 안팎의 군사들을 이끌고, 그가 살았던 몽골초원에서 시작해 실크로드를 관통하고 중앙아시아 전역을 정복했습니다. 칭기즈칸에 대한 평가는 역사학자마다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가 보여준 가장 큰 교훈 중에 하나는 땅에 대한 ‘가치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는 점입니다.

보통 정복자들은 무차별적으로 땅을 넓혀 통치의 공간으로 삼았습니다. 이에 반해 칭기즈칸은‘소통하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자기 이름도 쓸 줄 몰랐습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세계를 정복한 위대한 황제가 될 수 있었을 까요? 정복한 그 넓은 땅을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잘 기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칭기즈칸은 ‘내 귀가 나를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그는 상인들에게서 세계 여러 나라의 이야기를 들었고, 학자들에게 오랜 세월 쌓여온 지혜를 들었습니다. 심지어 포로로 잡혀온 사람에게도 본받을 점이 있는 지 귀를 기울였습니다.

지금은 소통의 시대이다

<듣는 것만으로 마음을 얻는다>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니콜스는 심리학 교수이자 35년이란 시간동안 상담치료사로 활동한 분이십니다.

저자는 소통에 문제점은 한 마디로 듣기 부족이라고 말을 합니다. 다른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한 사람은 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만 하려 하지,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소통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든 시대입니다. 기업이 소비자와 소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과 소통하지 않으면 장수할 수가 없습니다. 부부가 서로 소통하지 않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가정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와 성도가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교회를 바르게 세워갈 수 없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는 것은 더디 하라

야고보 사도는‘듣는 것은 속히 하고 말하는 것을 더디 하라(약 1:19)’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말씀하는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당시 성도들이 반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곧 말하기는 속히 하려 하는데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야고보 사도는 말하는 것은 더디 하고 듣는 것을 속히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입은 하나를 만들고 귀는 두 개를 만드셨습니다. 이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두 배로 많이 하라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경청이 소통하게 만든다

그냥 듣는 것과 경청(傾聽)은 차이가 있습니다. 경청(傾聽)은 한자 그대로 귀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말을 대충 대충 듣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건성으로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경청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말을 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말을 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제는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마음 문이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말을 잘한다 해도 통하지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문제보다 자신의 문제에 몇백 배나 더 관심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다른 사람의 문제가 크다 해도, 그 문제에 집중하기 보다 내 문제에 집중합니다. 기근으로 아프리카에서 몇 만 명이 굶어죽어 가는 것보다, 당장 자신의 치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10가지 문제보다 내가 가진 한 가지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방이 그것을 잘 경청해 주면 어떻겠습니까? 마음 문이 열립니다. 그 사람을 신뢰하게 되고 서로 소통하게 됩니다.

경청을 잘한 카네기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고 인간관계론을 체계화시킨 데일 카네기가 한 번은 어느 파티에 초대를 받아 저명한 식물학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카네기는 식물학자에게 흥미로운 식물을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가 있었습니다. 다른 손님이 10명이나 더 있었음에도, 식물학자와 단둘이 자정이 될 때 까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물론 카네기는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제 파티가 끝나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식물학자는 파티를 열어준 주인에게 “카네기씨는 흥미로운 재담꾼이군요”라고 말하면서 카네기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고 합니다.

사실 카네기는 식물학자와의 대화에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고 싶어도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그가 했던 것은 식물학자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준 것뿐이었습니다. 이런 그를 식물학자는 재담꾼이라고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경청은 사람 자체를 소중한 인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상담을 하시는 분들의 공통적 이야기가 상담자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는 것만 해도 그 사람의 문제가 50%나 해결된다고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해 준다는 것은 단순히 그 말만 잘 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 자체를 소중한 인물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요. 그 사람 자신을 나타냅니다. 상대가 나를 인정해 주시고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느끼면 당연히 그 사람에게 마음 문을 열게 됩니다. 소통하게 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에 입사해 근무한 첫날, 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마음의 지표를 삼으라는 뜻으로 휘호가 내려졌습니다. 그 휘호는 바로 ‘경청’입니다. 이건희 회장은 늘 그 휘호를 걸어놓고, 스스로 잘 경청하고 있는가를 늘 묻고 더 잘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경청을 잘하기 위해 해야 할 일

경청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머릿속의 생각을 접어두고 상대의 말에 완전히 집중해야 합니다.

‘확증편향(確證偏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확증편향이란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을 이미 확증해 놓고, 그 확증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그 증거를 찾는데 몰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마디로 확증편향이란 이미 답을 정해놓고 그 답에 대한 것만 증명하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상대방하고 대화할 때, 이미 답을 정해 놓고 대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답을 정해 놓으면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답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하려 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듣기도 전에 말을 가로막고 ‘내 말 좀 들어 보라고’이야기 합니다.

다섯 차례나 판매왕에 올랐던 미국 유명한 세일즈맨인 닉 퍼튼에게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와 다른 세일즈맨들의 차이를 물으면 답은 딱 하나입니다. 나는 고객이 말할 때 절대로 물건이나 실적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고객의 말만 경청합니다.

보통 세일즈맨이라면 열에 아홉은 물건과 실적에 대해 생각하지요. 그러면서 스스로 고객의 말을 잘 듣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고객의 말은 문제지와 같습니다. 당신은 시험장에서 문제지를 볼 때 다른 생각을 합니까? 문제지를 제대로 보지 않으면, 시험을 잘 치를 수 없습니다. 고객의 말을 잘 듣지 않고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닉 퍼튼은 고객의 말을 문제지와 같다고 말합니다. 닉 퍼튼의 말대로, 우리는 시험을 칠 때 문제지를 받으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답도 내 생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출제자가 의도한 답을 씁니다.

우리가 정말 상대방과 소통하는 경청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나의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생각이 초점을 맞추려고 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공감적인 경청을 해야 합니다.

공감적인 경청은 상대방이 말을 할 때 공감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추임새도 넣어주면서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상대가 이러이러해서 요즘 너무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즘 안 힘든 사람들이 어디에 있어, 너만 힘들 줄 알아’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 정말 힘들겠다. 나라면 그렇게 버티지도 못했을 거야. 너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이 부분을 잘해주어야 합니다. 비록 부모가 보기에는 아이들이 공부도 별로 안 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해도, 그 아이의 입장에서는 힘든 것이기 때문에 공감해주어야 합니다.

이야기를 듣는 중간 중간에 내가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표시로 ‘응, 그래, 맞아, 정말’ 이런 추임새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웃긴 이야기를 하면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해줘야 합니다. 또한 사이사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요약해 주면서 질문도 해줘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는 더 신이 나서 이야기를 잘 하게 됩니다.

경청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말할 때 표정과 감정, 몸동작, 말과 말 사이에 담겨진 침묵까지도 듣는 것입니다.

국민 MC라고 불리 유재석 씨가 말하는 10가지 소통의 법칙을 보면, ‘말을 혀로만 하지 말고 눈과 표정으로 하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 사람의 말보다 실제로 비언어적인 요소에 그 사람이 말하는 의도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상대가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데 표정이 어두운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이 겉으로 즐거운 이야기를 하지만 그 속에 근심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의 말뿐 아니라, 비언어적인 요소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경청해야 합니다.

셋째, 쓴 소리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겸청즉명 편신즉암(兼聽則明偏信則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겸허히 여러 의견을 들으면 현명해지고, 편벽되게 한쪽의 말만 믿으면 아둔해진다는 뜻입니다.

이 구절은 당 태종이 군주의 처신에 대해 물었을 때 그 신하인 위징이 대답했던 말 가운데 나옵니다. 당 태종이 위징에게 물었습니다. “군주가 어떻게 해야 현명해지고, 어떻게 하면 어리석어지는가?”

위징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군주가 현명해지는 것은 여러 명의 의견을 두루 듣기 때문이며, 아둔해지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쳐 몇 사람의 말만 듣기 때문입니다.

옛날 순임금은 널리 듣고 보았기 때문에 역적들을 내 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나라 이세황제는 조고의 말만을 믿었기 때문에 조고에게 살해되었습니다.”

군주가 여러 방면의 의견을 널리 듣는다는 말은 듣기 싫은 소리까지 듣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쪽으로만 치우쳐 듣는 태도는 달콤한 의견만을 듣는 것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군주가 듣기 싫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설사 그 말이 옳다고 생각돼도, 자신의 뜻을 그 자리에서 굽히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낮출 수 있는 겸손과 스스로를 절제하는 자제력이 없으면 직언을 듣기 어렸습니다.

군주만 그럴까요? 사람들은 듣기 싫은 소리를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면 그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북이스라엘 아합 왕과 남유다 여호사밧 왕이 길르앗 라못을 함께 공격을 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여호사밧왕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왕이었기에, 아합 왕에게 부탁하기를 여호와의 선지자에게 전쟁에 나가는 부분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알아보자고 합니다.

이 때 400명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적들을 왕의 손에 넘기셨으니 올라가 싸우시라고 똑같은 예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미가야는 싸움에 올라가면 아합 왕이 죽을 것이라는 예언했습니다.

아합은 미가야가 자신에 대해 항상 흉한 일만 예언한다면서, 그의 말을 무시하고 오히려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그를 옥에 가두어 두라고 명령합니다.

결국 아합 왕은 전쟁에서 죽은 시체가 되어 돌아오게 됩니다. 상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말이라면 그 말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상대와도 소통하게 되고 나의 삶 가운데 성장이 있게 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과의 소통이 더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사람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소통을 위해서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저들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면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서 드린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사무엘이 젖을 뗀 이후에 엘리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왔습니다. 엘리가 제사장이던 시절,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 3:1)”.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일이 드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일이 드물었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과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소통도 경청에서 시작된다

엘리는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과 소통하지 못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냥 버려두실 수 없으니,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제 사무엘과 소통하시기 위해서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나이가 어려서 아직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이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자고 있는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이 음성이 엘리 제사장이 자신을 부르는 음성인 줄 알고, 엘리 제사장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느냐고 묻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사무엘이 나를 부르셨냐고 하면서, 두 번째 왔을 때까지도 이 아이가 잠꼬대를 하는 것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왔을 때, 영적으로 어둔해진 엘리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신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엘리제사장은 세 번째 찾아온 사무엘에게 다시 너를 부르는 소리가 나면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이렇게 말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사무엘은 다시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엘리제사장에게 달려가지 않고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말을 합니다. 이런 사무엘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무엘이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은 직분과 상관이 없습니다.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나이 든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과 먼저 소통하고 그 원리를 사무엘에게 알려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엘리는 비록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린 사무엘과 소통하기 위해서 사무엘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도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듣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도 듣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소통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소통은 쌍방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일방적일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일방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만 구하고 마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구하는 기도도 해야 하지만, 듣는 기도도 해야 합니다. 구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니라 듣는 것도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소통은 경청하는 데부터 출발합니다. 경청한다는 것은 단순히 상대방의 이야기만을 듣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말을 듣고 그가 보여주는 비언어적인 것까지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또한 그의 말에 공감해 주며 들어야 합니다.

때론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쓴소리까지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아름다운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소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귀 기울일 때, 하나님과도 아름다운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이재영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