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 발성 아카데미 백성훈
▲백성훈 목사.
<팀사역의 원리> 저자인 백성훈 목사님이 최근 <시편의 위로> 1권을 펴낸 뒤 앞으로 나올 2권 내용을 선공개합니다. 2권은 시편 42-72편을 ‘시편의 소망’이라는 주제로 매일 1편씩 한 달간 묵상하도록 구성했습니다. <시편의 위로>는 발간 한 달만에 2쇄 출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시편 45편

시편 45편은 왕과 왕비의 결혼을 축하하는 내용입니다. 흔히 성경에서 표현되는 남편과 아내는 단순히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신랑 되신 하나님과 신부 된 우리 성도의 관계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시편에서는 하나님과 성도와의 연합을 말하면서도,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 간의 관계로 확장하여, 그들간의 연합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관계를 지금 시대에 적용하면, 왕은 신앙 공동체를 이끌 교회의 지도자를, 그의 왕비는 교회의 성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신앙이 하나가 되어야 하듯, 왕과 왕비가 서로 건강한 연합된 관계를 맺기 위해 어떤 신앙을 요청받는데, 이 신앙이 바로 지금 이 시대 교회 지도자와 성도에게 요구되는 신앙입니다.

처음 이 본문을 읽으면, 대부분 구약 아가서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가서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과 우리 죄인 된 인간의 관계를 남자와 여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로 표현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에스겔 16장이 더 생각났습니다. 에스겔 16장은 아가서와 반대로, 신랑에 대한 신부의 배신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배도를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시편 45편과는 서로 정반대 내용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혼을 통한 아름다운 연합을 말하면서도 반대로 배신에 대한 무서운 징벌까지 함께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에스겔 16장과의 연결고리가 더 깊다고 생각됩니다.

이처럼 시편 45편은 사랑의 하나님이면서도 질투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속성을 묵상하게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와 성도는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왕에게 어떤 신앙을 요청합니다.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1-4절)”.

4절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는 표현이 정말 중요합니다. 앞서 2절에서 왕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그 시작을 ‘아름다운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라고 했습니다. 그 입술이 상징하는 것이 바로 ‘가르침’입니다. 왕의 가르침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고, 그분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우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울러 왕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 말씀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것보다 그분의 말씀을 교회에게 가르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그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배우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관계가 깨어질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다른 것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기 때문입니다. 전도라는 명목으로 큰 교회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정복이라는 명목으로 부자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우선된 사명입니다.

또 성도는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 배우고 훈련받아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구약의 전쟁 문화 속에 사는 이스라엘 나라 왕에게 세상의 추세를 따라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전략을 요청하기보다, 오직 말씀을 가르치는 사명을 요청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매주 또는 매일 예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적을 구하기 위해서입니까?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공로와 업적을 세우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예배 안 드리면 벌을 받을 것 같아서입니까?

결코 예배하는 이유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르침을 받으러 나와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오늘 하루의 일상에 적용시켜, 그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나와야 합니다.

가르침의 핵심은 우상을 버리고 말씀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왕비에게 요청합니다.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10-11절)”.

당시 왕비는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고향에서 우상의 문화 속에 자랐습니다. 이제 왕비가 되는 결혼식에서, 그동안의 모든 우상들을 내려놓고 잊어버려야 한다고 요청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지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가장 민감한 우리의 죄악이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하나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성경을 통해 강조할 수 있는 표현들을 다 사용하셨습니다. 정말 조금도 타협이 없고 조금도 용서가 없습니다. 그만큼 우상을 버리는 일은 하나님이 가장 강조하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우상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일치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우상을 버리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참 안타깝게도 우상이 우리를 유혹하는 도구들이 바로, 우리가 정말 원하고 바라는 것들과 일치하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항상 돈과 명예, 성공과 편함으로 우리를 유혹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들에 제일 약합니다. 조금 더 돈을 벌 수 있다면, 조금 더 나를 자랑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성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조금 더 편해 질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헌신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렇게 타협하는 우리는 이렇게 합리화를 합니다. “이런 것은 우상이 아니고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일 뿐이야.”

사실 우리 일상에 스며든 우상 중에 큰 우상들도 많지만, 작은 우상이라고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우상의 개념을 잘 묵상해 보면, 당장 우리가 가질 수 없지만 꿈꾸는 것들, 우리의 꿈과 비전이 우상이 될 때도 있지만,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것들이 우상이 될 때가 더 많습니다. 나의 편함을 지켜주는 것들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우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우리에게 우상이 무엇인지 알려주셨고 우상을 버릴 것을 강조해 오셨는데, 우리 인류는 그 오랜 시간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계속 변명했습니다. “이건 우상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유행입니다. 관례입니다. 필요한 겁니다.” 하면서 말입니다.

시편의 위로
▲시편의 위로 백성훈 | CLC | 280쪽 | 13,000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지금까지 살면서 몸에 배이도록 기억하고 있었던, 우상의 흔적들을 버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시편 45편의 교훈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합니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17절)”.

우리가 우상을 버릴 때, 하나님이 찬송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우상을 붙들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먼저 압니다. 성경을 보지 않았어도 세상의 유혹들이 하나님의 요청과는 반대된다는 것을 다 압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살았다 해도, 그들부터 인정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의 우상과 지도자들의 우상과 성도의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번성의 우상을, 지도자는 권력의 우상을, 성도는 편리함의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 하루 열심히 돈을 벌고 명예를 벌고 성공을 벌고 인기를 벌고 편리함을 벌어야 하는데, 그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찬송할 것입니까?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기를 그것들이 하나님을 앞서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내 자신뿐 아니라 내 주변의 이웃들이 내가 하나님을 먼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합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요청에 순종하며 응답하는 우리의 믿음의 반응입니다.

백성훈 목사
<팀사역의 원리>, <시편의 위로> 저자
김포 이름없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