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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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갈라디아서 1장 18-24절


경로의존성

경로의존성 이론이 있습니다. 이 이론은 어떤 일정한 경로가 형성되고, 이 경로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다른 경로나 방법이 더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 경로를 잘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차를 운전하시는 사람들은 다 이 이론에 공감을 하게 됩니다. 어떤 목적지를 정하고 차를 몰고 갈 때 보면, 나도 모르게 늘 갔던 길로 가게 됩니다.

때론 그 길로 가면 막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갈 때가 많습니다. 더 빨리 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생겼다고 하는데도, 예전에 다니던 길로 계속 다닐 때가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경로의존성입니다.

왜 사람들은 경로의존성에 빠지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 만큼 편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 시간에 성도들이 예배드리는 자리를 보면, 대부분 늘 자신이 앉던 자리에 앉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은, 그 자리가 익숙하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자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반에 이런 부분들이 많습니다.

익숙하고 편한 것을 좋아하는 이유


사람들이 익숙하고 편한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변화하는 것이 싫어서입니다.

물론 좋은 습관이나 전통은 그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변화해야 하는데 단지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변화하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쉽게 삶이 변한다면 변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변화에는 분명 희생이 따릅니다. 시간도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고 싶어하지만, 익숙함의 자리에 그냥 머물고 있습니다. 익숙함의 자리에만 머물고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망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변화하지 못해서 문을 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코닥필름입니다. 1880년에 설립된 코닥은 세계 최초의 롤필름 개발로 ‘코닥’이 필름의 대명사가 될 만큼 급성장했습니다. 1970년대 롤 필름업계에서는 시장점유율이 약 90%를 상회할 정도였습니다. 90%면 거의 독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늘 고요하지만은 않습니다. 1990년대 들어 디지털카메라가 세상에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코닥은 디지털카메라의 출현에도 둔감한 반응을 했습니다. 코닥은 ‘설마’ 라는 생각으로 무사 안일한 대응을 합니다.

어느 순간 위기의식을 간파한 코닥도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뛰어들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역부족이었습니다. 2012년 급기야 상장을 폐지하고, 파산신청까지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코닥은 급변하는 시장 요구에도 ‘아날로그 필름’에만 의지했습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파산이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6년 계열사 경영진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현 경영 환경에서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서든 데스(sudden death)가 될 수 있다.”

서든 데스(sudden death)라는 것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말합니다. 곧 최회장은 SK그룹이 변화하지 않으면 갑작스럽게 망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넬슨 만델라의 변화


남아프카공화국 전 대통령이었던 故 넬슨 만델라는 인권 운동가로 활약하다가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무려 27년간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처음엔 너무도 힘든 고문과 열악한 환경으로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지옥과도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그를 위해 찾아온 변호사가 감옥 생활은 괜찮냐고 물을 때마다, 만델라는 “이 곳은 지옥이야, 지옥. 지옥 중에서도 이런 지옥이 없을 거야”라고 하면서, 불만을 노골적으로 털어 놓았습니다.

만델라는 감옥에 있으면서, 자기는 아무런 죄가 없는데 이렇게 갇혀 있다는 억울한 생각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만델라는 자기 불만을 털어놓아 봤자,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변하지 않는 환경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자신을 변화시키기로 마음을 먹고는, 매일 마음을 다 잡았습니다.

그러자 지옥같이 느껴지던 감옥 생활에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 후 27년간이나 옥살이를 한 후 풀려났고, 마침내 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자, 흑인들은 이제껏 자기들을 지배하고 탄압했던 백인들을 향해 폭동을 일으킬 기세였습니다. 그때 만델라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모든 것을 밝힙시다! 그리고 나서 모든 걸 용서합시다.”

그 후 그는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만일 만델라가 감옥에서 희망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았다면, 이 세상 가운데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변화는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사항이다

변화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려 해야 합니다.

나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그것이 굉장한 영향력을 미칩니다. 작은 변화는 작은 변화가 끝나지 않습니다. 작은 변화는 큰 변화로 이어집니다. 나의 변화가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 변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됩니다.

변화된 바울

예수님을 만나기 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곧바로 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다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를 만나러 갑니다.

바울이 아라비아 지역 어디로 갔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바울은 3년 동안 주님과 더욱더 깊이 있게 교제하면서, 요즘 언어로 하자면 신학 체계를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아라비아 쪽에서 주님과 교제하면서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부분을 정리한 뒤, 예루살렘에 와서 사도들을 만났습니다.

처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바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죽이던 자가 이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전한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때 바울을 변호하며 나섰던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사도들에게 신뢰를 받는 바나바 때문에 사도들은 바울을 인정해 주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 후, 바울이 수리아 길리기아 지방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 지역 사람들 역시 바울이 예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자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그가 정말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모습을 그들이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바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변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물론 바울의 변화는 보통 사람들의 변화하고는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쓰시기 위해서 바울을 일방적으로 찾아가셔서 만나 주셨습니다. 그에게 계시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바울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정말 180도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이단아로 취급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람이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바울처럼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변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됩니다.

변화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이유

우리의 변화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믿고 변화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를 통해서 믿지 않는 사람에 드러난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신데,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그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다면,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보여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변화를 통해, 결국 하나님이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닮아가려면 변화돼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 얼마나 변화된 삶을 살고 계십니까? 예수를 믿는 시간이 점점 늘어갈수록, 여러분의 삶이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고 계십니까?

우리의 삶이 바울과 같은 극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변화돼야 합니다. 이 세상에 변화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변화가 완성된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 까지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변화돼야 합니다.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롬 12:2)”.

바울은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이 말씀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변화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10년 믿고 20년 믿었더라도, 여전히 세상 속에 빠져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 변화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게 되고 그 뜻대로 살게 됩니다.

내가 변화의 초점이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변화를 위해 애를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자신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싫어하면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합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는 이유는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고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진정으로 변화돼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자신이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내가 변화되면 다른 사람들도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변화되었는데 왜 상대가 변화되는 것일까요?

어떤 특별한 노력을 한 것이 없는데, 내가 변화되면 왜 상대가 변화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상대도 자연스럽게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회심하기 전, 자신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자신이 그렇게 옳다고 생각한 것들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이 변화돼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화돼야 될 사람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때부터 바울은 자기를 변화하는데 삶의 목표를 두었습니다.

바울은 죽는 날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이 변화된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도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변화될 때 다른 사람도 변화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됩니다.

내가 변화되면 변화된 나의 모습을 보고, 나의 남편이 나의 아내가 나의 자녀들이 변합니다.

저도 예전에 목사가 성도들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성도들을 야단도 치고 많이 가르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몇 십 년 설교를 들어도 성도들이 변화되지 않는 것이 기적이다.”

이 목사님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예전에 이 말에 동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성도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목사에게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변하면 성도도 변합니다. 목사가 성장하면 성도도 성장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성도들을 변화시키려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성도들을 성장시키려는데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저의 변화와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가 변화하고 성장하면,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변화하는 것은 허물 벗기다

변화하는 것은 허물 벗기와 같습니다. 여름만 되면 매미들이 얼마나 많이 울어 대는지 모릅니다. 매미들이 우는 이유를 아십니까? 매미는 수컷만 웁니다. 짝짓기를 위해서 웁니다.

암컷 매미가 제일 좋아하는 매미는 가장 크게 우는 수컷매미라고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여름에 우는 매미들은 대단한 매미들입니다.

매미의 수명은 보통 7년 정도 됩니다. 그 7년 중에서 유충 상태로 땅속에서 거의 6년 11개월을 삽니다. 땅속에서 유충으로 살다가 죽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게 살아남은 유충은 장마가 끝날 무렵 굼뱅이 상태로 나무위로 올라와 2-6시간 동안 허물을 벗기 시작합니다. 허물을 벗고 매미로 탄생해서 한 달여 동안을 울다가 짝짓기 후에 일생을 마감합니다.

매미와 같은 곤충이나 파충류들이 허물을 벗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장을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옷을 입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이 어렸을 때는 작은 옷을 입다가 몸이 성장하면서 큰 옷을 입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물론 옷을 입는 것이야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곤충이나 파충류들이 허물을 벗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통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 허물을 벗어야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기에 허물을 벗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됐다’는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허물벗기를 하나 하나 해나가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변화된 것으로 만족하고 끝나면 안 됩니다. 벗어야 할 허물을 계속해서 벗으면서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하기까지 변화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만 하면 됐다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되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합니다.

변화하기 위해 해야 할 일

우리가 변화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 내가 변화해야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세상에 변화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나는 변화되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변화의 출발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변화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변화 자체를 시도도 하지 않게 됩니다. 나는 변화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사람은 교만하게 됩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반해 내가 변화되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배우려고 합니다.

백종원 대표 이야기

예전에 요리 연구가이면서 더본코리아 대표이사인 백종원 씨가 ‘백종원의 푸드트럭’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참 좋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백종원 씨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창업과 장사의 비결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입니다. 백종원 씨는 푸드트럭을 운영하시는 분들에게 단순히 요리만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요식업 분야의 대가’라로써 눈높이 과외를 시켜주었습니다.

엄청난 사업의 성공을 거두고, 음식 장사 앞에서 완벽해 보이는 백종원 씨이지만, 자신이 경험이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솜사탕을 가지고 사업해 본 경험이 없는 백종원 씨는 기초적인 것부터 심도 있는 질문까지 다양하게 물어보았습니다.

백종원 씨는 “모르는 것은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아직 자신이 변화하고 성장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대해 배워서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바울 사도 정도면 무엇인가를 이룬 사람 아닙니까? 무엇인가 잡은 사람 아닙니까?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룬 것도 없고 잡은 것도 없고 오직 나는 푯대를 향하여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자신의 존재가 계속해서 변화되고 성장해야 할 존재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변화는 내가 여전히 변화되어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둘째, 마음을 늘 새롭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마음을 새롭게 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은 그냥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극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마음을 먹고 해야겠다고 결단을 할 때는 어떤 자극을 받아야 가능합니다.

그 자극은 우리의 삶 가운데 다양하게 주어집니다. 무엇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제쳐 두고 주일 낮 예배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냥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하지’ 하고 마음을 다 잡아야 합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는 자의 입장에서 전한 만큼 살려고 나름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애를 쓰다 보니, 저 자신이 많이 변했습니다. 저의 아내도 저 보고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제가 변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전하면서, 그 말씀의 거울에 나 자신을 계속해서 비추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을 살다 보니, 어느 순간엔가 조금씩 변화되는 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거울 앞에 늘 자신을 비추어 보십시오. 비추어 보고 내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면 그렇게 살려고 애써 보십시오. 나도 모르게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변화되면 내 자신이 먼저 행복합니다.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의 가족들이 행복합니다. 나의 가족이 나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변화가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나의 변화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변화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설 때까지 변화되고 성장해야 합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이재영 목사는 “인문학 독서를 신앙생활이나 예수님과 연결할 수 있다”며 “글쓰기를 처음 배웠을 때는 폭이 좁다며 혼도 많이 났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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