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 목사
▲이영은 목사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불임인 아내를 위해 여호와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기도를 들으셔서 그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쌍둥이입니다. 오랫동안 아이가 없었던 리브가 에게 임신의 기쁨도 잠시였습니다. 두 아이는 리브가의 태속에서부터 싸웠습니다.

두 아이들이 리브가의 뱃속에서 서로 밀쳐내는 바람에 리브가는 고통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나인가요?" 여호와 앞에서 자신의 고통을 토하며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는 리브가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두 민족이 네 뱃속에 있다, 한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더 담대할 것이다.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섬길 것이다." 리브가의 태 안에 다른 두 부류가 있다는 말씀이 의미 심장합니다(요 3:6).

때가 차서 리브가는 해산을 했습니다.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쌍둥이라도 먼저 나온 아이가 장자입니다. 에서가 장자이고 후에 야곱이 나왔습니다. 에서는 사냥을 잘해서 밖으로 나돌고 야곱은 조용한 성격이라 집안에만 있습니다. 쌍둥이라도 이렇게 성격이 다릅니다.

에서는 사냥에 뛰어난 익숙한 재능과 기질로 먹고 사는 것은 염려 없는 능력 있는 아들입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온 고기를 먹으면서 큰아들이 자랑스럽고 든든합니다. 집안의 대를 이어 기업을 맡겨도 안심일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든든한 큰아들을 사랑했습니다.

한편, 야곱을 보니 소심하고 겁도 많고 조용한 기질로 하루 종일 집안에만 박혀 있으니 한심하기만 합니다. 자식 하나가 잘되면 그보다 못한 또 다른 녀석이 걱정입니다.

'야곱이 걱정이야, 저렇게 약해 빠져서... 형처럼 나가서 사냥도 하고 돌아다녀야 먹고 살텐데...'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야곱이 더 강하고 담대해서 오히려 에서가 야곱을 섬길 것 이라고 예정하셨습니다(창 25:23).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 다릅니다.

야곱과 에서가 살면서 무엇을 선택하는가를 보면 하나님의 예정이 더 확실해 집니다. 어느날, 야곱은 언제나처럼 집안에서 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에서는 들에서 사냥을 하다 왔는지 무척이나 피곤해서 들어왔습니다.

무리들 중에서 얼마나 탁월한 솜씨를 뽐내면서 정신없이 사냥을 했는지 밥도 못 먹었나 봅니다. 심하게 허기가 져서 곧 죽을 것만 같습니다. 때를 맞추어 마침 야곱이 죽을 쑤고 있으니 보기만 해도 반갑습니다.

"배고파 죽을 것 같다. 빨리 먹자."

그때 야곱은 자기가 만든 죽을 에서의 장자명분을 받고 팔겠다고 합니다. "내가 지금 배고파 죽게 되었는데 그까짓 장자명분이 뭐가 중요해, 빨리 죽이나 내놔라." 야곱은 에서의 맹세를 받고 장자의 명분을 얻었습니다.

야곱에게는 탐이 나서 빼앗고 싶을 정도로 흠모하는 장자의 명분이 에서에게는 별게 아니었습니다.  에서는 당자 눈앞에 보이는 먹고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은 유익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자기가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장자의 명분은 집안의 기업을 잇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안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신 영원한 기업이 있습니다(창 17:8).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입니다. 이것은 인생을 통틀어 놓치면 안 되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에서는 이것을 겨우 죽 한 그릇의 가치보다 못한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히 12:16).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서 부터 영원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그 나라를 이어가는 사람들은 그 나라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능력 있고 잘나가는 사람이 그 나라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통치권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가는 사람이 가지고 있습니다(창 25:23). 교회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갑니다. 세상의 리더는 교회입니다.

이영은 목사(서울 마라나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