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독교, 국가교회와 자유주의 탓에 위기
자유교회만 명맥, 진짜 신자는 1%도 안 될 것
유럽 교회 가장 큰 적은 이슬람 아닌 세속주의
이슬람 전도해야 하는데, 스스로 찾아오는 것

우승기
▲우승기 선교사.
지난 2천년간 유럽은 기독교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최근 유럽에서는 기독교인들이 급속히 감소하고 있으며, 기독교는 일종의 ‘전통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슬람화’에 대한 우려도 크다.

마르틴 루터를 배출한 종교개혁 발상지 독일에서 20년간 현지인 등을 대상으로 선교하고 있는 우승기 선교사(56)도 같은 생각이었다. 잠시 한국을 찾은 우 선교사에게 현지에서 느끼고 경험한 유럽 기독교의 위기와 이슬람화, 그리고 무슬림 선교에 대해 들어봤다.

-독일에서 사역하게 되신 계기가 있는지요.

“지금은 하이델베르크 옆 루드빅스하펜(ludwigshafen)이란 곳에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세계 최대 종합화학회사인 바스프(basf) 등이 위치한 중화학단지로, 이곳에서 루드빅스하펜 침례교회를 맡고 있습니다.

한국 수원에서 목회하던 중, 2000년 4월 독일 괴팅겐에 있던 친구가 목회를 하다 갑자기 나이지리아로 떠나게 돼, 제게 교회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준비 없이 갑자기 한국을 떠나게 됐지요. 성도들도 있고 비워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36세 때부터 시작한 독일 생활이 내년이면 만 20년째가 됩니다.

처음 간 교회는 한인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있어서, 영어로 설교하고 목회했습니다. 독일어를 몰랐기에, 학원을 다니면서 배워야 했습니다. 1년 반 정도 지나고 나니, 통역 없이 독일어로 설교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만 3년 후 큰 도시로 옮겨보라는 권유에 따라 베를린으로 옮겼고, 3년 뒤 동독 지역 라이프치히에서 약 2년 간 사역하다 지금의 루드빅스하펜으로 옮겼습니다. 베를린과 라이프치히에서는 개척교회 사역을 했습니다.

계획에 따라 독일에 간 건 아니었지만, 한인들과만 목회하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독일인이나 독일어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기로 마음먹고, 지난 20년간 한국인들을 상대로 한국어로 목회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들이 오더라도, 독일인 등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독일 교회에 대해, 현재 독일 기독교 상황에 대해 소개해 주신다면.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장로교·감리교·침례교 같은 교파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모두 ‘개신교회’라 부릅니다. 촘촘한 종파 구분 개념이 별로 없다.

대신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루터교회라는 국가교회와 나머지 자유교회입니다. 자유교회들에는 종파 이름이 따로 없습니다. 저희도 침례교적인 방식을 추구할 뿐, 큰 의미를 두진 않습니다.

독일 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가교회는 ‘국가기관’입니다. 말하자면, 목회자들이 ‘종교 공무원’입니다. 교인들의 헌금이 아니라, 개신교인으로 등록한 독일 국민들이 납부하는 ‘종교세’에 의해 사례비를 받는 등, 생계를 국가에서 감당하는 시스템입니다.

기독교 국가인 독일은 ‘종교’ 란에 가톨릭이나 개신교만 기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능한 일이지요. 그러다 보니 성도들은 교회 청소도 하지 않습니다. 국가에서 ‘교회 청소부’도 고용합니다.

가톨릭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교회 신도들은 경제적 부담도 없고 과다한 봉사 부담도 없지만, 목회자들은 신도가 출석하지 않아도 심방을 하거나 전화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물론 자유교회입니다. 예배는 국가교회 예배당을 빌려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도 수도 많지 않고, 건물의 필요성도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국가교회는 등록교인이 3-4천명이라는데, 출석교인은 10여명에 불과합니다. 20년간 지켜봤는데, 독일에서는 자유교회든 국가교회든 30-40명이 모이면 굉장히 큰 교회입니다. 100명이 넘으면 우리나라 여의도순복음교회 수준입니다. 그나마 한인교회는 나은 편입니다. 주재원들이 많다 보니니 제법 큰 교회들도 있습니다.”

-들어보니, 독일이 과연 기독교 국가가 맞는가 의문이 생깁니다.

“무신론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국가교회에서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강하게 진행돼, 오전에는 목사가, 오후에는 신부가, 저녁에는 수녀가 설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슬람과 힌두교 부스를 설치해 종교에 대해 설명하고 소개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같고 나름의 구원의 길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저희가 건물을 빌려 쓰는 교회 목회자는 여성 역할을 하는 남성 동성애자입니다. 독일에서는 목사 취임예배 때 동성 파트너를 데리고 와서 소개하기도 합니다.

목회자들의 90% 이상이 자유주의 신학을 추종합니다. 교회 성도가 10-20명인 것이 오히려 건전하고 이상적으로 봅니다.

역사적으로 성직자들은 귀족과 왕과 교류하는 상류층 계급이었습니다. 그래서 독일 목사나 신부는 월급 수준도 높습니다. 자유교회 목회자들도 그 정도 월급을 기대하기 때문에, 자유교회 중에는 목회자 없는 교회도 많습니다. 그나마 자유교회가 국가교회보다는 건전하고 좀 더 신앙적입니다.”

-종교세를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독일 국민들은 왜 믿지도 않는 종교의 세금을 내고 있는 건가요.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세금을 내면, 생의 마지막에 임종 기도를 받습니다. 그래야 천국에 갈 확률이 높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정작 천국은 믿지 않지만(웃음). 안전장치처럼 여기는 것 같습니다. 수입의 2% 정도라 부담스럽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그것조차 아깝다며 기독교라고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실제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 비율은 전체 인구의 1%(84만여명)도 안 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요즘 독일인들은 내세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 믿지도 않지요,”

-그렇다면 한국 신학생들은 왜 독일로 유학을 떠나는 건가요.

“외형적으로 기독교 국가라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종교 과목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교사들이 대부분 자유주의 신학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 아들이 한 번은 학교에서 교사에게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교사가 ‘선교사 아들인데 왜 태도가 안 좋느냐’고 했답니다. 물어봤더니 ‘선생님이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바벨탑 이야기였는데,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바벨탑을 왜 쌓았느냐고 한 마디 묻지도 않고 무너뜨렸다’며 ‘그때부터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가 나빠졌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아들이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 꾸중을 들은 것입니다(웃음).

어린 시절부터 그런 교육을 받으면, 학생들이 기독교를 냉소적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종교 과목 또는 윤리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어서, 아들은 이후 과목을 윤리로 바꿨습니다.

현지에 독일에 유학온 이들과 인간적으로는 친하지만, 신앙적으로는 다름을 느낍니다. 학위를 준비하느라 그렇겠지만, 일단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구속 등을 모두 부정합니다.

그런 이들이 한국에 돌아가서 목회나 교수를 하지만, 이에 대해 ‘커밍아웃’을 하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강간을 당해서 예수님을 낳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반발이 심할 걸 알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이 다 하나님 말씀은 아니지 않을까’ 하고 슬쩍 떠보는 정도로 언급합니다.

제가 한국 기독교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갖는 이유는, 유학파 등을 통해 이런 추세가 계속 들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한국교회에는 보수적인 분들이 많지만, 갈수록 그쪽으로 조금씩 움직일 것입니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네덜란드는 독읿다 조금 더 심한 자유주의입니다. 영국도 교회가 더 이상 운영이 안 돼서 매물로 내놓으면, 이슬람에서 모스크로 사용하거나 카페·박물관 등으로 팔리고 있습니다.

향후 20년 안에 영국이 이슬람화되지 않겠는가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 전체가 비슷한 상황으로 기독교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지역에서 어떤 마음으로 사역하고 계신지요.

“‘독일에 20년 있었다’고 하면, 주변에서 ‘의료보험도 좋고 교육도 무상이고 살기 좋겠다’고 말씀들을 하십니다.

한두 마디로 다 설명할 순 없지만, 선교사에게 가장 좋은 나라는 가난하지만 순수하고, 무슨 말을 해도 들어주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살기는 편하지만, 이곳에서는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을 만나기조차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신앙을 권유하는 것도 당연히 힘듭니다. 개인의 자유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사역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독일을 선교지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보내셨기에,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기본적으로 말하지만 이곳에서 믿지 않는 피의 구속, 기적의 사실성, 예수님의 다시 오심 같은 중요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베트남이나 태국, 아프리카 사람이 한국을 찾아와 1년간 배운 한국어로 한국인들을 전도하는 상황입니다. 독일인이 동양인에게서 뭔가를 듣고 배울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전도를 하지만 성과를 얻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좀 이상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독일에서 선교하다 보면 ‘한국에서 이런 열정으로 선교했다면 참 잘 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웃음).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독일 중년 여성을 매 주일 오후 100km를 운전해서 찾아가 만나 성경공부를 가르친 적도 있습니다. 1년 반 정도 가르쳤더니, ‘하나님을 믿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지금은 가까운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만큼 한 사람을 얻기가 힘듭니다.”

-사실 처음엔 독일 내 무슬림 사역 이야기를 들으려 했는데요.

“저도 최근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습니다. 교회에 나오시는 형제 두 명이 이라크 북부, 갈대아 우르 출신입니다. 후세인 정권 때 박해를 받다가 독일로 어렵게 들어오신 분입니다. 그 분을 통해 이슬람과 중동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시리아 난민 2백만여명이 독일로 들어왔는데, 이 분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쿠르드족은 10% 정도가 기독교인입니다. 그들도 독일에 와서 교회를 세우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창시 후 1,400년간, 개신교 신앙이 이슬람 세계에 이렇게 많이 전파된 적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개종한 무슬림들이 기독교 공동체로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란이 가장 많고, 이라크와 이집트가 뒤를 잇고 있습니다.

예전 저희 교회에 나오시던 분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장로교 신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저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사역을 준비하시다가, 아랍인들을 상대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이집트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는데, 광범위한 종교 자유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기독교인들이 예배드리면 돌멩이가 날아왔지만,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는 신정국가를 탈피해 세속주의 국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종교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사유 재산권 침해와 폭행 등 사법적 사건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입니다. 기독교인 박해가 예전에 비해 적어졌고, 엄청난 자유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목사님이 딸 3명을 아랍 문화와 아랍어에 적응시킬 겸 이집트로 보내, 곧 있을 대규모 청소년 수련회에 참석시킬 거라고 합니다,

이라크도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중앙정부 힘이 약해지고, 광범위한 지방자치제 같은 분권화가 진행 중입니다. 독일에 북부 이라크 쿠르드족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는데, 완벽한 종교 자유를 누립니다. 건물을 지어 예배드리고 이곳 동족들에게 신앙을 전하면서, 기독교가 급격하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중동 무슬림 이야기는 유럽과 달리 희망적이네요.

“고무적인 사실이 있습니다. 보통 이슬람 하면 하나의 종교라고 알지만, 수니파와 시아파가 서로 엄청나게 싸우고 있습니다. 이교도보다 더 미워하고 폭력적입니다. 서로 싸우고 죽이던 중, 쿠르드족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이들의 변화된 행동을 보면서 ‘우리 종교와 너무 다르다’며 호감을 갖는다고 합니다.

키프로스에도 기독교인들의 헌금과 투자로 기독교 방송국이 세워졌습니다. 이란어와 이라크어, 쿠르드어 등으로 방송을 내보냅니다. 왼쪽에는 꾸란, 오른쪽에 성경을 놓고, 둘이 어떻게 다른지 기독교로 개종한 이맘 출신이 설명해 줍니다.

‘무함마드에게는 14명의 아내가 있고, 50세가 넘었을 때 7세 아내를 얻었습니다’ 하는 식입니다(웃음). 무함마드가 나귀와 ‘수간’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가짜뉴스가 아니라 ‘팩트’를 제시하면서, 사실 무함마드는 선지자가 아니라 정신병자 같은 사람이었다고 알립니다.

3대 세습 정권인 북한도 ‘백두 혈통’에 대한 믿음과 정통성이 무너지면 정권이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이슬람도 무함마드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면, 그들의 신앙이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게 알음알음 기독교인이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커밍아웃’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슬람’ 하면 ‘탈레반’, ‘IS’ 같은 극단적 단체들만 생각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단체들에 염증을 느껴 이슬람을 버리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유럽의 이슬람화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무슬림들이 샤리아 통치를 주장하고 게토화된다고 들었는데, 독일은 어떤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이슬람이든, 지금 종교의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세속주의입니다.

탈레반 정권이 싫어,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란을 거쳐 독일까지 걸어와 망명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너무 어려운 상황에 있다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 분들은 독일에 살기가 너무 좋습니다.

제 옆집 사는 쿠르드족 출신의 시리아인 젊은 부부가 있습니다.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데, 국가에서 집부터 생활비와 교통비, 노부모 혜택까지 받습니다. 저보다 더 잘 삽니다(웃음). 그러다 보니 이슬람 지역으로 돌아가거나, 그 신앙을 고수할 이유가 없습니다. 독일이 너무 살기 좋거든요.

이슬람 신도가 1만명 입국해서 10명만 폭력적인 행동을 해도 이슬람화를 걱정하기 마련이지만, 독일 현지에서는 그 정도 위기가 아닙니다. 그 부부 남편은 이슬람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부인은 사원에는 나갑니다. 하지만 제게 자유롭게 말을 겁니다. 이슬람권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말을 걸면 안 되는데 말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게토화에 대한 우려도 나오긴 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합리적인 국가들입니다. 무한정 퍼주는 게 아닙니다. 독일도 처음 난민들이 들어오면 지원을 해주지만, 3-4년 내에 독일어를 배워서 취직하지 못하면 다시 추방됩니다.

독일도 우리나라처럼 노년 인구가 급격히 늘어서 노인연금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반면 이슬람 난민 출신 입국자들은 대부분 젊기 때문에, 그들을 수혈하겠다는 의도도 섞여 있습니다. 단순히 인도적 차원만은 아닌 것입니다. 젊고 유능한 엘리트 난민들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이슬람 난민 또는 노동자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무슬림 선교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고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정도라 많은 말씀을 드릴 순 없겠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하고 공포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독일에 있다 보니 생각이 유연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 되라’고 하셨는데, 개인적으로 그 땅끝이 17억명의 이슬람이라고 봅니다. 배타적·수동적·방어적 자세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스스로 동독에 건너간 루터교회 목회자의 딸로서 신앙인입니다. 이슬람인들을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될지 하는 우려가 나왔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이슬람 가서 전도해야 하는데, 스스로 찾아오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입장에서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이슬람 유입은 전도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감을 갖고 대하면 좋겠습니다. 중동에서 선교를 잘 하고 계신 선교사님들도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셨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을 얻는 일을 해야 합니다.

위험할 수도 있는 발언을 하자면, 저는 신앙이 보수적이고 동성애에 대해서도 당연히 반대하지만 자주 마주치는 루터교회 동성애 목회자나 제 위층 사는 동성애자 여성과도 반갑게 인사합니다. 동성애자라고 피하는 게 아니라, 이웃으로서 자연스럽게 대하고 인사해야 하겠지요.

무슬림들이 우리 집에 찾아올 때도 돼지고기를 피한 음식을 대접합니다. 이것은 당연히 그들의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는 전 세계에서 모범적인 곳이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그들을 대하며 전도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