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 목사
▲이영은 목사
삭개오는 세리장이며 부자였습니다. 세리는 당시에 로마 식민지로 살던 유대 동족들에게 가장 손가락질을 받던 죄인 이었습니다. 로마가 규정한 세금만 걷으면 되는데 그것 보다 더 많이 걷어서 자기 주머니를 채웠습니다. 명백한 도둑질입니다.

게다가 같은 동족의 돈을 속여 빼앗았으니 유대인들 에게 새리는 로마인들보다 더 나쁜 새리놈들 이었습니다. 삭개오가 부자라는 말은 그만큼 동족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을 많이 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삭개오 에게 숨은 원망과 분노가 쌓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삭개오를 아는 사람들에게 그는 천하에 몹쓸 인간입니다. 삭개오는 오직 돈하나만 건지고 나머지는 다 무너진 인생 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어쩌다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돈이라고 해도 다 같은 돈이 아닙니다. 받을 돈이 있고 못 받을 돈이 있으며 쓸 돈이 있고 못쓸 돈이 있습니다. 그것을 구분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정당하게 벌어서 합당한 곳에 쓰는 것은 누구든 할 말이 없지만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속여 빼앗아 받은 돈으로는 무슨 일을 해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합당치 않게 벌어서 가져온 헌물은 하나님도 받지 않으십니다(신 23:18). 삭개오 같은 부자가 되려면 양심을 굳게 해서 마비시켜 놓아야 합니다. 피도 눈물도 없어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삭개오가 자기 동네 여리고에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던 걸 보니 뭔가 갈급한 마음 이었던가 봅니다. 그렇겠지요... 남을 속이고 빼앗으면서 양심에 부딪치는 일을 하면서 살았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더 큰일이지요.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앞으로 달려가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지나가시던 예수님이 뽕나무 위에 있는 삭개오를 올려 보셨습니다.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삭개오가 바라본 눈은 하나님의 눈이었습니다.

긍휼함의 눈, 어느 누구에게서도 받아 보지 못했던 시선, 삭개오의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이 채울 수 없는 공허하고 텅 빈 갈급한 마음을 넉넉히 담고도 남을 만한 사랑의 시선입니다. 하나님의 동공 속에 삭개오가 들어 있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남들만큼 먹고 살 것만 있으면 되는데... 왜 그렇게 쌓고 또 쌓으면서 쟁여 두었을까? 삭개오의 굳어있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할 때 예수님이 부르십니다.

"삭개오야, 빨리 내려와라, 오늘 네 집에 들어 가서 묵어야겠다."

이런 사람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오신다니... 삭개오는 기쁘게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즐겁고 기쁜날, 갑자기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멈출 수가 없습니다.

돈만 생기면 무슨 일이든 못할 게 없던 자신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싫은지... 정해진 세 만큼만 걷으면 되는데 가난한 내 형제의 한 푼을 더 빼앗다니(눅 3:13), 내가 정말 못할 짓을 많이 했구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해 보이는지...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회심의 눈물입니다. 그때 삭개오의 마음 속에는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말씀대로 내가 누구 것을 속여 빼앗은 것에 대해서 4배로 보상하겠습니다. 내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 주인 이신 하나님 앞에 반납 하겠습니다."

천국은 죄인이 회심하고 들어가는 곳입니다. 처음부터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었던 사람이 회심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죄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했습니다.

삭개오의 회심은 사람에 대해서 소망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회심하기 전까지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섣불리 말 할 수 없습니다(눅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