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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글쓰기 능력, 타고난다?

글쓰기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고 되는 것은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아버지로부터 많이 듣던 말 중 하나는 ‘열정으로 살라’였다. 열정으로 삶을 사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열정으로 사는 것,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은 삶의 기본이다. 만약 최선이 아니라 차선으로 산다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힘들다.

학생들은 사명이 공부다. 공부할 때 열정을 다해야 한다. 최선의 자세로 해야 한다. 학생의 사명이 공부라는 것은 ‘배운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공자는 배움이 기쁨이라고 했다. 그 유명한 말이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다.

설교자들도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되, 많이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신학교 편제상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다.

설교를 위해서도 공부를 많이 할 수 있게 돼 있다. 설교대학원, 세미나 등 엄청나게 많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공부를 하는 것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그 많은 설교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설교자들이 글쓰기에 대해 배우려는 열망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설교자들은 먼저 설교를 글로 표현해내야 한다. 설교자가 설교를 글로 표현해내려면, 설교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설교자는 설교 작가이기 때문이다.

설교자들이 설교 글쓰기의 쓸모와 가치를 잘 못 느끼는 것 같다. 수많은 주석, 설교집, 인터넷 등을 통해, 글을 쓰지 않고도 설교할 수 있는 것들이 넘쳐나기 때문인 듯 하다.

언젠가 설교 세미나 강의하러 갔는데, ‘글쓰기는 타고난다’는 분위기였다. 글쓰기는 타고나야 한다는 분위기가 설교자들에게 인식돼 있으니, 글쓰기를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밖에 없다. 당시 참석한 사람들은 설교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는데도, 그런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사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자신이 타고난 글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엄청난 노력을 통해 여기까지 왔다고 말한다. 글쓰기는 타고난 것이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남다른 노력을 한 끝에 얻은 결실이다.

세상은 글쓰기와 책쓰기 열풍의 한 복판에 있다. 그들이 글쓰기를 할 줄 몰라서 배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더 잘 쓰고 싶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열망 때문이다. 그렇다며 설교자는 설교 글쓰기에 더욱 박차를 기해야 한다.

타고남이 아니라 가진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유전보다 중요한 것이 태도다.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전자, 부모, 자라온 환경, 주위 사람 등이다. 통계에 따르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유전자가 60%, 환경 등이 30%, 태도가 10%라고 한다. 하지만 40%밖에 안 되는 환경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 더 나아가 10%밖에 안 되는 태도가 중요하다.

유명한 맹자의 어머니 이야기는 환경과 태도가 얼마다 중요한지 말해준다. 맹자의 탁월함에는 헌신적인 어머니가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탁월한 자녀에게는 헌신적인 부모가 있다.

골프 선수 박세리의 아버지,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핫스퍼 축구선수 손흥민의 아버지, 그리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최연소의 나이로 금메달을 딴 ‘스노보드 천재’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김의 아버지가 그랬다.

클로이 김의 아버지는 직장을 뒤로 하고 딸의 뒷바라지만 했다. 아버지는 딸이 2007년 스위스로 스키 유학을 가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1시에야 집에 돌아오는 일상을 2년간 반복하며 뒷바라지했다. 미국에 돌아가서도 김 씨는 하루 수백 ㎞를 6시간씩 차를 운전하면서 딸의 뒷바라지를 했다.

유전자와 환경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보다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10%밖에 안 되는 사람의 태도다. 유전자와 환경은 외부적인 요인이지만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 내부적이 요인이다.

유전적인 요인보다 내부적인 요인이 중요함을 말해주는 통계가 있다. 아이들 두뇌가 가장 성장하는 시기는 출생 직후 3년 동안이라고 한다. 출생 직후에서 36개월 사이에는 뇌회백질이 0.3kg에서 1.3kg까지 증가하며, 언어 능력을 비롯한 가장 중요한 인지 구조들이 형성된다.

태도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결국 태도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독서도 마찬가지로 태도가 중요하다. 독서의 태도를 갖는 시기도 3살부터 12살 전 후까지다. 결국 어릴 적의 태도가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

마이크로소프트 CEO인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는 2016년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뭐든지 배우려는 사람(Learn-it-all)은 타고난 능력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뭐든지 아는 체 하는(Known-it-all) 사람을 항상 능가한다.”

유전적인 요인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면, 설교자는 글쓰기를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만약 유전적으로 타고난다고 해도 그런 사람은 0.0001% 정도에 불과하다.

설교자는 설교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설교 글쓰기를 배워서, 남 줘야 한다. 곧 설교를 통해 청중을 행복한 신앙생활 하도록 해줘야 한다.

글쓰기는 ‘글을 씀’으로 배운다

글쓰기는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쓰는 것이다. ‘아트설교연구원’은 매주 설교 글쓰기를 한다.

수업 시간에 설교 글쓰기를 하면 많은 회원들이 생각에 생각을 한다. 생각으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글을 쓰라고 하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하지만 글은 한 두 줄 쓰고 멈춘다.

글을 머리로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글은 머리로 쓰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는 먼저 생각을 하니 머리로 그린다. 수학을 풀 때도 생각을 해야 풀릴 수 있다. 하지만 글은 머리로 쓰지 않고 손으로 쓴다.

글을 손으로 써야 하는 것은 손은 제2의 뇌이기 때문이다. 글을 손으로 쓰다보면 생각이 떠오르게 되어 있다. 그럼 글이 술술 써진다.

글은 손으로 글을 쓰면서 배운다. 설교도 글을 씀으로 점점 나은 설교를 할 수 있다. 글은 쓰면서 배워야 한다. 설교 글도 쓰면서 배워야 한다.

그 말은 설교 글을 많이 써야한다는 것이다. 무턱대고 많이 쓰는 것보다는 잘 써야 한다. 잘 쓰려면 제대로 배워야 한다.

설교 글쓰기는 자전거 타기와 비슷하다. 자전거를 탈 때, 처음에는 잘 타지 못한다. 많이 타면 나중에는 손을 놓고도 타는 것이 가능해진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도 많이 쓰면 잘 쓸 수 있게 된다.

설교를 해결하는 방법 중 최고의 방법이 글쓰기다

설교는 모든 설교자의 과제다. 그 과제를 축제로 만들려면, 글쓰기가 중심에 있어야 한다. 글은 설교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 줄 수 있다.

글쓰기가 축제가 되려면, 설교자가 지적 성장을 이뤄야 한다. 지적 성장을 가장 빠르게 이루게 하는 것이 글쓰기다. 글쓰기는 암송보다 독서보다 효과가 최소한 5배는 되는 것 같다.

글쓰기가 설교의 답이다. 그 방법을 해결하는 길이 있다. 설교자들이 설교 글쓰기를 함께하는 것이다.

‘집단지성’이란 말이 있다. 함께 하면 못하던 것도 할 수 있다. 글쓰기도 혼자 쓰기보다는 같이 쓰면 잘 쓸 수 있다. 문제는 설교자가 설교 글쓰기를 ‘넘사벽’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힘들다. 아주 많이 힘들다. 하지만 글을 쓰는 선생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이 있다. 설교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 글쓰기 배워야 한다.

“Better me than yesterday.“

설교자는 설교 글쓰기에 있어서 눈부시게 성장해야 한다. 필자는 10년 전부터 설교자의 성장을 강조했다. 다른 분야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설교자의 글쓰기는 발전이 담보상태다. 그러므로 성장을 위해 몸부리쳐야 한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인 김난도는 그의 책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내년 트렌드 중 하나로 ‘업글(upgrade) 인간’을 강조한다. 그는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라’고 말한다. 성공보다 성장을 추구하는 새로운 자기계발형 인간이 되라고 말한다.

설교자도 예외가 아니다. 김난도 교수가 ‘업글 인간’을 말한다. 설교자도 ‘업글 설교자’가 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업글 설교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초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함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설교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눈에 띄는 성장’이다. 믿음의 성장이다. 신앙의 성장이다. 성품의 성장이다. 설교 글쓰기의 성장이다. 성장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도인 아트설교연구원
▲김도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김도인 목사/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 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 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 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 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 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 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