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포럼 18차 세미나
▲대표 이경섭 목사가 인사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사람들은 원죄자(原罪者) 아담(Adam)의 죄와 죄책(罪責)과, 원죄를 물려받은 그 후손의 그것들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날 것이라고 추정한다. 곧 원죄자 아담의 죄와 죄책(罪責)보다 후손의 그것들이 훨씬 더 작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둘의 죄는 그 무게에서도 죄책에서도 동일하다. 아담의 원죄(original sin, 原罪)가 자기에게 전가된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아담만의 원죄가 아닌 자기의 원죄가 되기 때문이다.

만일 개인의 자범죄(actual sin, 自犯罪)를 아담의 원죄로 말미암은(자기에게서 말미암지 않은) 2차적인 죄 정도로 치부한다면, 개인에게는 엄중한 죄의 귀책(歸責) 사유가 없게 된다. 나아가 그런 2차적인 죄로 받는 지옥 형벌은 너무 가혹한 것이 된다.

세상 형법에서도 죄의 주범(主犯)과 종범(從犯)은 그 죄책의 경중이 다르다. 주범에게는 엄격하게 죄를 묻지만 종범에게는 비교적 관대하다.

아담과 그의 후손이 다 같이 동일한 죄책을 받는 것은 둘의 죄의 무게가 차이가 없다는 뜻이며 ‘아담-주범, 후손- 종범’이라는 등식이 적용되지 않음을 증명한다.

◈인류의 대표 아담

원죄자 아담의 죄책(罪責) 정도는 아담(Adam)이 인류의 ‘머리’인가 ‘대표’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아담이 머리가 될 때 그는 죄의 ‘주범자(主犯者)’ 곧 죄의 원흉이 되고, 인류 후손은 아담의 머리에 복속된 죄의 ‘종범자(從犯者)’가 된다.

그러나 아담이 인류의 대표자일 땐 죄인으로서의 아담과 인류의 지위는 동등해지고, 죄와 죄책에서도 차등이 없게 된다. 아담은 ‘인류의 대표’로서 범죄했고, 그 결과 그의 후손들도 그의 죄에 동일하게 참여했다.

‘아담의 원죄’가 인류의 운명을 결정지운 것은 그와 그의 후손을 죄의‘주종관계’로 만드는 그의 ‘머리’로서의 지위 때문이 아니라 둘을 ‘동등하게’ 만드는 ‘대표’로서의 지위 때문이다.

물론 아담이 ‘머리’든 ‘대표’든, 그가 인류에게 죄와 저주를 갖다 준 원인자임은 분명하다. 아담의 원죄를 전가 받아 인류가 죄인이 됐고, 인류는 전가 받은 원죄로 자범죄를 짓게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기의 죄책을 아담의 원죄에 떠넘겨 자신의 죄를 가볍게 만드는 것은, 아담에게 인류의 ‘머리’ 지위를 부여한 결과이다. 성경에는 일견 원죄자 아담(Adam)이 ‘머리’의 지위에서 범죄한 것처럼 보이는 내용들이 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롬 5:19)”,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사망이 들어왔다(롬 5:1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고전 15:22)”라는 구절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입장은 이 구절들을 아담을 인류의 대표자로 묘사한 것으로 이해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서(The Westminster Shorter Catechism) 제16문(원죄의 전가)은 “아담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은 그 자신만 위하여 하신 것이 아니라 그 후손까지도 위하여 (그를 대표자로 세워)하신 것”이라고 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이며, 소요리문답 해설서 저자인 토마스 빈센트(Thomas Vincent, 1634–1678)는 ‘대표자’ 아담이 범죄했을 때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모든 ‘그의 후손’도 함께 범죄했다고 했다.

또 “아담이 최초로 죄를 지었을 때 그 안에 있던 모든 후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그들은 실제적으로 그 안에 있었다. 그들은 그의 허리에 있었다(히 7:9)”라고 했다. 이러한 아담의 ‘대표자’ 지위는 인류 개개인의 죄책을 아담에게 돌릴 수 없게 한다.

‘인류가 대표자 아담의 원죄에 참여했다’는 의미는 소극적으로 단지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았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아담의 첫 범죄 때 그들도 함께 참여하여 함께 원죄자가 됐다”는 뜻이다.

◈아담과 후손의 범죄는 시간차가 없다

‘대표성’ 원리는 ‘대표하는 것’과 ‘대표 받는 것’의 ‘동시성(同時性)’, ‘동질성(同質性)’을 담보한다. 먼저 인류의 대표자가 범죄했을 때 인류도 함께 범죄했고, 둘 사이에는 시간차가 없다는 ‘동시성’을 말하고자 한다.

인류의 대표자 아담이 범죄한 그 시간 동일하게 그의 후손도 함께 범죄했다는 뜻이다(동시성 원리는 앞서 설명했기에 여기선 간단히 부연하고자 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서는 ‘죄의 동시성’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아담의 모든 후손들 즉 일반 생육법에 의해 태어난 자들은 아담과 함께 넘어졌다(롬 5:12).”

토마스 빈센트 역시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인데 어떻게 그들이 아담과 함께 넘어지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그들이 아직 태어나기 전에도 아담 안에 있었고 그래서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고 그와 함께 넘어졌다(고전 15:22)”고 했다.

‘아담의 원죄와 그 후손들의 죄의 동시성’은 그것과 대칭 구도를 이루고 있는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의 죽음과 택자의 죽음’에 그대로 치환(置換)된다. 곧 아담의 첫 범죄시 인류도 함께 범죄 했듯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었을 때 그의 택자들도 십자가에서 함께 죽은 것이다.

실제로 성경은 택자의 대표인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을 때, 그의 ‘택자’도 함께 죽었다고 선언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갈 2:20)”라는 현재 완료형 시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택자의 죽음’ 사이에 시간차를 용납지 않는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었을 때 신구약을 불문한 인류의 모든 택자들도 함께 그의 죽음에 연합됐다.

또한 ‘아담’의 대표성 원리에 따른 ‘아담의 원죄’와 그의 ‘후손의 죄’의 동일시는, 대칭(對稱)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의 원의(原義)’와 ‘택자의 의(義)의 동질성(同質性)’을 담보해 준다.

원죄자 ‘아담의 죄’와 그 원죄를 전가 받은 ‘후손의 죄’가 동일하듯이,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의 원의’와 그것을 전가 받은 ‘택자의 의’도 차이가 없다.

토마스 빈센트는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칭’관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떻게 전 인류가 아담의 첫 범죄에 동참하게 되고, 택자가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게 됐는가?”라고 질문하면서, “전 인류는 전가(imputation)에 의해 아담의 첫 범죄에 동참하게 되었듯이,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의는 모든 신령한 후손, 즉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전가됐다”고 했다(롬 5:19).

그는 계속하여 그리스도로부터 전가 받은 ‘택자의 의’가 ‘그리스도의 원의’와 질적으로 차이가 없음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되는데, 그 의는 그리스도 안에 고유하게 존재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의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마치 우리가 우리 안에서 스스로 이룬 것인 양 우리의 것으로 여긴다.”

만일 ‘그리스도의 원의’와 그로부터 ‘전가받은 의’가 조금이라도 차별된다면, 율법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므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와 동일한 의만이 율법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대표자 아담이 ‘원죄자’가 되어 모든 인류를 죄에 참여시킨 것은 아담과 ‘대칭구도’에 있는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가 ‘원의자’가 되어 택자를 ‘하나님의 의’에 참여시키려는 그의 놀라운 경륜이 숨어있다. 측량할 수 없는 그의 지혜여!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