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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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여름 국립공원에서 근무하시는 우리 교회 신도 분의 소개로 속리산 깊숙이 있는 비로산장을 다녀왔다. 그곳에 가려면 걸어서 한 시간 반을 올라가야 한다. 얼마나 깊숙한 곳에 있는 산장이겠는가. 우리 교회 장로님 몇 분과 함께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입이 쫙 벌어졌다. 영화 아바타에 나오는 숲과 같은 신비로움, 아니 신성함마저 느끼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산장 주인의 말을 들어보니 아버지께서 "주인과 나그네가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그 추억을 다음대로 이어가게 한다"는 아름다운 동기로 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어서 자녀분이 산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산장의 마당에서 장로님들과 함께 고기를 구워먹으며 이야기 천국을 이루었다. 큰 나무가 하늘을 가려줘서 낮에는 천장 같은 그늘이 되어 주었고 저녁에는 촘촘한 잎사귀들에 가리워서 별들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주인이 피워준 모닥불 연기는 자연스레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하였다.

해지기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새벽 3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여름 숲과 모닥불의 향기를 몰래 몰래 가슴 속에 훔쳐 넣었다.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던 내 가슴에 나도 몰랐던 삶의 갈증이 있었는지 여름밤의 찰나들이 서걱거리는 마음에 깊이 흡수되었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는 유곡수성(幽谷水聲), 즉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고막을 씻겨주는 듯 했다. 또한 아직도 꺼지지 않은 모닥불연기와 숲의 향기는 나의 영혼을 씻겨 주었고, 웬 축복인지 비까지 내려 나무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꿈같은 잠을 누렸다. 속리(俗離)의 순간이었다. 회색빛 도시에서의 분주한 삶에 길들여진 나에게 비로산장의 밤은 잊을 수 없는 늦은 여름밤의 꿈이었다.

비는 아침까지 이어졌다. 문정희 시인이 '한계령 연가'에서 노래한 것처럼 나 또한 비로산장에서 행복한 조난을 당하여 고립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난 당할 일은 없었다. 산장 주인이 배웅을 할 때 나는 주인을 위해 숲속에 선 채로 기도를 해 주었다. 종교는 달랐지만 기도 중에 산장 주인은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아, 어린 시절 그곳에서 태어나 자랐고 또 아버지의 유훈을 지켜야 하기에 떠날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렸을지, 산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느끼는 그 무엇 -삶의 갈증과 그리움- 때문일는지, 아니면 내 기도 속에 근원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영혼의 애틋함과 아련함을 느꼈는지..."

나뭇잎들이 산장을 붉게 에워쌀 때면 다시 꼭 찾아오겠다고 인사를 나누고 왔는데 나는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어디를 그리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지, 내 마음 속 비로산장은 어느새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추억의 사진첩에 꽂혀 있다. 먼 훗날 비로산장의 추억 역시 이선희의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라는 노래처럼 한 페이지의 추억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비로산장에 떨어지는 단풍잎은 나에게 가을엽서로 다가온다. 이 초대장을 받고도 당장 가지 못한다면, 반드시 겨울엔 그곳을 찾아서 눈 내리는 산장의 설경을 보고 싶다. 하늘을 가려 주었던 수많은 나뭇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빈 나뭇가지 위에 하얀 눈발이 한 송이, 한 송이 날리다가 아침엔 그 가지 위로 하얀 눈들이 아스라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 아름다운 추억의 책장을 위하여 나의 마음은 이미 눈 내리는 설산, 사람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산길에 나만의 하얀 발자국을 찍고 있다. 아니, 주인과 나그네가 추억을 함께 나누며 그 추억의 책장마저 대를 이어가게 하는 순수와 낭만의 비원, 그곳에서 아름다운 추억의 책장을 넘기게 하고 싶다.

* 월간 「샘터」 12월호 소강석 목사의 <행복이정표>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