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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린도전서 9장 24-27절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때로는 지금의 삶과 좀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마음만 가질 뿐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어’라고 하면서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되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리차드 버크가 쓴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갈매기의 꿈’에는 주인공 갈매기인 조나단을 비롯한 많은 갈매기들이 등장합니다. 다른 갈매기들은 먹는 것과 먹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에 열중을 합니다. 하지만 조나단은 나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조나단의 그런 행동은 다른 갈매기들에겐 아무런 가치 없는 그저 헛된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갈매기들은 조나단을 보고 비난을 했습니다. 하지만 조나단은 다른 갈매기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직 나는 일이 전부인 양 푸르른 창공을 향해 힘찬 날개 짓을 해댔습니다.

조나단은 하늘을 나는 것이 좋았습니다. 높이 날아오를수록 희열을 느꼈습니다.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한 참을 날고 나면 온 몸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났습니다.

날이 갈수록 조나단은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다른 갈매기들은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조나단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조나단은 세상에서 가장 멀리 가장 높이 나는 최고의 갈매기가 됩니다.

새로운 것은 새로운 생각에서 만들어진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 되는 삶은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조나단을 비웃었던 갈매기들은 결국 자신들과 다른 삶을 사는 조나단을 보고 자신들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다른 길을 걸으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때론 조롱을 받기도 하고,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합니다. 그들이 지향하는 일이 일반적인 일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보편적인 생각이 자신을 옭아매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새로운 생각에서 만들어집니다. 또한 어떻게 보면 무모해 보일 때도 있지만 단순하고 묵묵한 것이야말로 최고 되는데 있어 가장 필요한 방법입니다.

역설(逆說, paradox)

오늘 말씀의 제목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로마 제국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분명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모순적인 말입니다. 천천히 하다 보면 서두를 수 없고, 서두르다 보면 천천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은 서로 반대되는 개념끼리 합쳐놓은 말이 됩니다.

이것을 ‘역설(逆說, paradox)’이라 부릅니다. 세상을 가만히 보면, 이 역설 속에 엄청난 보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 사랑과 미움, 기회와 위기, 이런 단어들은 모두 역설적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들은 반대되는 개념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은 반대가 아니라 존재의 다른 양태일 뿐입니다. 성공과 실패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패했고 실패한 것 같아 보이지만 성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모든 상황에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고 기회가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천히’와 ‘서두르다’는 겉으로 볼 때 상충되는 개념이지만, 이 말의 의미는 서두르지만 전후 좌우를 따져보면서 천천히 목표를 정하고 서두르라는 말입니다.

곧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은 서두르되 내가 무엇을 위해 서두르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라는 말입니다.

일본 격언 중에 ‘이소가바 마와레(急がば回れ)’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일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흔하게 사용되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 뜻은 “급하게 서두르면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을 대표하는 말이 ‘빨리 빨리’ 아닙니까? 빨리 빨리 무엇인가를 이루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빨리 서두르다 보면 오히려 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서둘러도, 천천히 서둘러야 하는 것입니다.

급할수록 정신차려야 한다

몹시 목이 마른 비둘기가 옥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탈진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기 건너편 건물에서 무언가 반짝거렸습니다. 그것은 시냇물처럼 맑아 보였습니다.

비둘기는 “물이다!” 하고 소리치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날아가 시냇물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비둘기는 날개가 꺾인 처참한 모습으로 길거리에 떨어졌습니다. 비둘기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헐떡거렸습니다. “아아… 분명히 물이었는데.”

그런데 비둘기가 부딪힌 것은 시원한 시냇물이 아니라 시냇물이 그려진 광고탑이었습니다.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었던 비둘기는 시냇물이 그려진 광고탑을 진짜 시냇물인줄 생각한 것입니다.

위급한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되면 눈 앞에 보이는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급할수록 더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서둘러도, 천천히 서둘러야 합니다.

상 받기 위해 달음질해야 한다

고린도 시에서는 2년마다 이스미안이란 운동경기가 열렸습니다. 로마 제국의 가장 큰 체육 제전은 아테네에서 열린 올림픽 경기였고 그 다음 규모가 이스미안 경기였습니다. 이스미안 경기가 열릴 때가 되면 고린도에는 경기 10개월 전부터 선수들이 몰려들어 훈련의 열기로 가득찼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을 때 이스미안 경기 가운데 육상선수가 달리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에 빗대어 고린도 교회 성도에게 본문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를 통해 육상선수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선수들은 출발 신호탄이 울리면, 정말 사력을 다해 달립니다.

특히 100m 달리기는 더욱 그렇습니다. 실제 올림픽에서 혼신을 다해 달리는 선수가 허벅지 근육이 파열돼 주저앉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들이 피나는 훈련을 하고 사력을 다해 달리는 이유는 우승이라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이들은 있는 힘을 다해 달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상 받기 위해 달음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방향을 잡고 달려야 한다

바울은 무조건 달음질만 하면 상을 받는 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고전 9:26)’.

바울은 먼저 달리기 전에, 가장 먼저 분명한 방향을 보고 달려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방향 없이 달리면,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상을 탈 수 없습니다. 실격 처리 되는 것입니다.

‘가젤과 사자 이야기’라는 글이 있습니다. 가젤은 영양의 일종입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가젤이 잠에서 깬다. 가젤은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가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온힘을 다해 달린다.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깬다. 사자는 가젤을 앞지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온힘을 다해 달린다. 네가 사자이든, 가젤이든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

사자도 가젤도,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사람들 가운데 사자의 입장에, 가젤의 입장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입장에 있든,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른다고 달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가젤이 사자를 못 따라오도록, 아무리 빨리 달려도 낭떠러지나 막다른 골목으로 달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낭떠러지나 막다른 골목으로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결국 뛰 따라오는 사자에게 잡히는 것입니다.

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달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가젤을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아무런 목표물도 없이 무조건 빠르게 달린다 해서 먹잇감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야구를 할 때 타자가 투수의 공을 아무리 장외로 멀리 날려 보냈을지라도, 파울은 홈런이 아닙니다. 파울은 파울일 뿐입니다. 정확하게 정해진 팬스를 향하여 넘길 때, 그 공은 홈런이 되는 것입니다.

방향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합니까? 이 질문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과도 같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시는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바울은 우리의 달려가야 할 푯대, 우리의 살아야 할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두르기 전에, 먼저 내가 달려가는 목적이 무엇인 천천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천천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빨리 방향부터 수정해야 합니다. 그대로 달려가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어쩌면 달려간 만큼 다시 돌아와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가서 엄청난 업적을 이루었다 해도,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비록 이 땅 가운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송받을 수 있어도,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라

목적이 분명히 섰다면, 우리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워야 합니다. 목적과 목표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목적은 목표보다 위에 있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목적은 본질을 말하는 것이고, 그 본질을 추구하기 위한 과정과 목표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목적이 정해졌으면 무엇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단기적 목표와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목표를 세우는 것과 세우지 않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목표가 있는 사람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안에 있을 때, 기쁨과 평안을 누립니다. 또한 목표를 향해 열정을 가지고 달려갈 때 기쁨과 평안이 넘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절제해야 한다

천천히 목적과 목표를 정하였으면 이제 서둘러야 하는데 서둘러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있음을 바울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절제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고전 9:25)’. 서둘러야 하지만, 무조건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절제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하는 운동선수는 절제합니다. 먹는 것도 절제하고, 하고 싶은 것도 절제하고 시간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시험이나 수능 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TV 보는 것, 스마트폰도 절제하고 노는 것도 삼가고, 오직 공부에만 집중합니다. 우리 삶이 무절제하다면 근본 이유 중 하나는 목표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분명히 있고,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은 절제하게 됩니다. 정말 살을 빼야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사람은 먹는 것을 절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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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은 바로 이 절제력에서 나옵니다. 못이 단단한 나무를 뚫고 들어갈 수 있는 힘은 집중력에서 나옵니다. 쓸데없는 곳에 힘을 주는 것을 절제하고 한 곳에 집중할 때 그 힘이 구멍을 냅니다. 절제는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 낭비하는 것을 자제하고 한 곳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마시멜로 이야기

1960-1970년대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자 월터 미셸 박사는 아이들의 욕망과 자제심에 관한 실험을 했습니다.

미셸 박사는 취학 전에 있는 아이들을 초대해 큰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방에는 작은 책상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 책상에는 마시멜로 두 개와 종 하나가 있었습니다. 마시멜로는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입니다.

미셸 박사는 방에 있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바빠서 잠깐 나가봐야겠구나. 그런데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 여기 있는 마시멜로 두 개를 다 줄 테니까, 기다리기를 바란다.

혹시 그 전에 마시멜로가 먹고 싶으면, 종을 울리고 하나만 먹으렴. 하지만 하나를 먹으면 그걸로 끝이야. 두 개를 다 먹으려면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이렇게 말하고는 미셸 박사는 그 방을 나갔습니다. 방문은 굳게 닫혔고, 어린이들만 방안에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방 안에 있는 아이들 가운데 어떤 아이는 불과 1분 만에 종을 울리고 마시멜로 하나를 먹어치워 버렸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 눈을 가리고 노래를 부르고 책상을 차기도 하며 딴청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꾀가 많은 아이는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실험 결과 미셸 박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1/3의 아이들은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를 먹었고, 나머지 2/3는 끝까지 참아서 마시멜로 두 개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로부터 10년 후 실시한 2차 연구 때문입니다. 마시멜로의 유혹을 이겨낸 아이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아이들을 비교한 것입니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절제한 아이들이 몸매도 날씬하고 사회 적응을 잘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또 SAT에서 210점이나 더 많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무엇을 말해줍니까? 절제를 잘하는 아이들이 결국 목표도 이루고 절제 하는 못한 아이들 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절제하며 준비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 제일 마지막 열매가 절제의 열매입니다.

왜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서 절제를 마지막 열매로 말씀하셨을 까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열매들을 맺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결국 절제가 되지 않으면 덕이 될 수가 없고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아무리 좋은 것이지만 사랑도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브레이크 장치와 같은 역할이 바로 ‘절제’입니다. 절제한다는 것은 분명히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절제하는 만큼 목표에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자신이 세운 목표를 위해, 얼마나 절제를 하고 계십니까?

그런데 무조건 절제만 한다고 해서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하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준비해야 합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비가 필요합니다.

천천히 서두른다고 할 때, 서두른다는 것은 곧 준비하라는 의미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꿈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꿈이 곧 목표 아닙니까? 그런데 꿈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많고 꿈을 꾸는 사람들도 많은데, 꿈을 이루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꿈만 꾸고 목표만 정하고 준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꿈은 꿈만 꾼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꿈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이루는 것입니다. 목표는 목표만 거창하게 세운 사람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 이루는 것입니다.

래리 버드 이야기

미국 프로농구단 보스턴 셀틱스에서 활약한 전설 같은 스타인 래리 버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신인 시절 슈팅기술 말고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습니다. 점프력에서는 리그 전체를 통틀어 253위였고, 스피드면에서도 146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미국 프로농구 역사상 최고 선수 5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위대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래리 버드는 그의 화려한 경력만큼 이나 ‘부지런함’으로도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또 큰 재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별난 습관이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수준 이하의 팀과 경기할 때도 다른 선수들 보다 몇 시간 전에 경기장에 나와,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습관은 경기를 치를 농구 코트에서 머리를 숙인 채 혼자 천천히 공을 드리블 하면서 두세 시간 내내 코트를 이리저리 분주하게 오가곤 했던 것입니다.

어느 날 스포츠 전문기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습니다.

“래리,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죠?”

“보시다시피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단순한 몸 풀기 연습 같지 않은데요. 고개를 푹 숙인 채 청소부처럼 코트 바닥만 살피던데요?”

“네, 맞습니다. 저는 지금 코트 바닥을 유심히 살피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래리는 빙긋 웃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래리 버드가 경기 전에 치르는 자신만의 ‘의식’이란, 다름 아닌 코트 점검이었습니다. 드리블 연습도 아니었고, 슈팅 연습도 아니었습니다. 코트 바닥에 혹시나 흠이 있는지, 있다면 어디에 어떤 형태의 흠이 있는지, 그 흠은 공을 어떤 방향으로 튀게 하는지, 코트를 미리 샅샅이 점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래리 버드는 경기 도중에 공이 불규칙한 방향으로 튀어오를 수 있는 가능성의 지점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래리 버드는 언제 어느 팀과 경기를 하더라도 자신만의 의식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후에 같은 곳에서 경기를 가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주일 남짓한 짧은 기간에도 코트 상태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래리 버드는 불규칙 바운드 때문에 패배했다는 푸념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대신,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끈기를 갖고 지속함으로써 누구보다 많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래리 버드가 자신의 준비가 없었다면 그는 꿈을 이룰 수도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천천히 서두르라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오신 가장 큰 목적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 가운데 천천히 서두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고는 운명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생애가 끝나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았노라고 고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천천히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목표가 세워졌으면 이제 서둘러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절제해야 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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