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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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태복음 14장 22-33절


르상티망이란?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르상티망은 프랑어로 원한, 증오, 질투 따위의 감정이 반복되어 마음 속에 쌓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고급 프렌체 레스토랑 갈 필요 없어, 파스타 체인점이면 충분해. 다들 명품을 왜 그렇게 좋아할까? 퀄리티는 거기서 거긴데, 난 보세가 좋아.”

언뜻 보기에 이 말은 겸손한 발언처럼 들리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르상티망’에 사로잡혀 있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르상티망은 철학에서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강자에 품는 시기심을 말합니다.

르상티망, 변명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철학자 니체가 제시한 르상티망은 조금 더 폭넓은 개념입니다. 이솝 우화에 보면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가 니체의 르상티망을 아주 쉽게 설명해 줍니다.

어느 날, 여우가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포도를 따려고 애를 써도 손이 닿지 않았습니다. 결국 여우는 ‘이 포도는 엄청 신게 분명해 이걸 누가 먹겠어’ 라고 화를 내며 가 버립니다. 여우는 손이 닿지 않은 포도에 대한 분한 마음을 ‘저 포도는 엄청 시다’고 생각을 바꿈으로써 풀어 버립니다.

니체는 바로 이 점을 문제로 삼았습니다. 니체는 르상티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열등감을 노력이나 도전으로 해소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합니다. 대신 열등감의 원천인 ‘강한 타자’를 부정하며, 자신을 긍정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 갈 필요 없어. 파스타 체인점이면 충분해” 라는 발언에는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은 격식 높은 음식점이며 그 곳에서 식사하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다”는 가치관을 뒤엎고 싶은 르상티망이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니체의 이야기가 공감이 됩니다. 우리에게도 어쩌면 르상티망이 있는지 모릅니다. 르상티망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르상티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전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을 한다는 것입니다.

도전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다

도전의 반대말이 혹시 무엇인지 아십니까? 실패라고 생각하십니까? 도전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입니다. 무엇인가에 대해 도전하다 보면, 실패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는 도전했기 때문에 경험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 실패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한두 번 실패를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수없는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동일하게 이런 말을 합니다. “실패했기 때문에 다시 도전할 수 있었고 결국 이 자리에 까지 오게 됐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실패는 또 하나의 큰 도전인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는 사람은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다.’ 또한 볼튼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살면서 미쳤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면, 너는 단 한 번도 목숨 걸고 도전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성장은 도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전하는 삶보다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안주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렵습니다. 경제가 어렵다 보니, 많은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고 거기에 몰려듭니다.

젊은이들에게 도전 정신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젊은 패기는 사라져 버리고 7포세대니 5포세대니 3포세대니 하면서 자신들을 포기한 세대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마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힘든 상황이면 이런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하지만 이 자리에 계신 어르신들이 살던 시대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대가 아니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시대에 포기하지 않고 살아오셨기에 오늘 대한민국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전하는 사람이 없이 안주하는 사람들만 있으면,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도전하는 것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다

2017년에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는 80대 할머니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2017년 7월 15일 영국 데일리메일은 그 당시 86세였던 용감한 트리쉬 웨그스태프 할머니가 매년 고난이도의 익스트림 스포츠에 도전하며 선행을 이어왔다고 보도했습니다.

자선 단체 활동을 시작한지 10년 만에 웨그스태프 할머니는 15만 파운드(약 2억 2,500만원)의 자선기금을 모았습니다. 군인의 아내로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할머니는 2007년 남편이 죽은 후 돌발적인 모험을 즐기는 여성이 됐습니다.

할머니가 도전을 하게 된 것은 단순히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도전이 절실하게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충분히 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첫 도전은 ‘수족관에서 상어와 함께 수영하기’였습니다. 그리고 2010년, 포츠머스의 100m 높이 스피내이커 타워(Spinnaker Tower)에서 고정된 로프를 이용해 하강하는 ‘압자일렌’을 완수했습니다. 2016년에는 날고 있는 비행기 위에서 하는 곡예인 ‘윙 워킹’에도 성공했습니다. 2017년에는 패러글라이딩과 스카이다이빙도 성공을 했습니다.

할머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난 지나치게 늙어서 그것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걸 들어왔다. 이제 그 말을 멈추고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하도록 장려할 것이다. 슬프게도 모든 연령대에 사람들이 TV 앞에 앉아서 혹은 핸드폰을 만지는 것 외에는 많은 일에 도전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말에 공감이 되지 않으십니까?

201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차이나 패션쇼 런웨이에서 바지만 입은 80세 남성 모델이 당당하게 워킹을 했습니다. 그의 운동으로 단련된 군살 없는 몸매에, 사람들은 감탄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왕 데슌(王德順)이라는 할아버지였습니다. 80세 나이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늙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을 도전할 수 있느냐고 자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80세가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왜 이렇게 도전하는 삶을 사는 것일까요?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연세 높으신 어르신들이 계속해서 도전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도 당연히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는 도전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계십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삶을 통해서 도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베드로의 도전

오늘 말씀에서도 도전하는 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베드로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볼 때마다 베드로가 믿음이 없어서 물에 빠진 사건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물위를 걷는 다는 것은 도전이었습니다. 상식을 깨는 베드로의 도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시고 난 이후에 제자들을 재촉해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남아 있는 무리들을 보내시고 홀로 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십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탄 배가 물결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밤 사경에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밤 사경은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를 말합니다.

배에 있던 제자들은 그 깊은 밤에 무엇인가 시꺼먼 물체가 보이니까, 너무 놀라서 유령인줄 알고 무서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나니까 두려워하지 말라(마 14:27)”고 말씀해 주십니다.

성격 급한 베드로는 물 위에 걸어오시는 분이 유령이 아니라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마 14:28)”.

어떻게 보면 베드로의 말은 얼마나 엉뚱합니까? 그 밤에 물 위를 걸어오신 분이 주님이라고 하셨다면, 빨리 주님에게 이쪽으로 오시라고 해야 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베드로는 “정말 주님이시거든 자신을 명하사 물 위를 걸어서 오라고 해 달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말대로 오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물 위를 걸어 주님께로 갔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지금 베드로 입장이라면 물 위를 걸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하셨지만,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걷기 위해 발을 내딛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베드로에게 이것은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비록 자신이 내뱉은 말이지만, 이것을 지키는 것은 베드로에게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물 위를 걷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과감하게 발을 내딛었습니다. 도전하였습니다. 그는 물 위를 걸었습니다. 비록 그가 바람을 보고 바다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는 바다 위를 걷는데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바다 위를 걸었던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라고 하셨는데 불구하고 도전하지 않았다면 그는 물 위를 걷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배에는 베드로 외에 다른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와 같이 도전하지 않았습니다. 도전하지 않았기에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의 이 도전 정신은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이어집니다.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다고 전해져 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자신은 예수님처럼 똑같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 없다고 하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도전정신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바울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수 있는 이유는 도전정신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바울이 이룬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그는 안주하지 않고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계속 달려갈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전해야 하는 이유

그런데 우리가 왜 나이와 환경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도전해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 도전해야 목표를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2019년을 시작하면서 각자 나름대로 올 한 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목표를 세우는 것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폼으로 세워 놓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람들은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있어도 이루어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목표를 이루기 위해는 내가 노력해야 합니다. 도전해야 합니다. 도전하지 않고는 목표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다이어트를 하기로 목표로 삼았다면,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그동안 내가 하지 않았던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하지 않았던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많이 먹던 음식도 줄여야 합니다. 이렇게 도전할 때 다이어트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라는 한 가지 예를 들었지만, 어떤 목표를 세웠던 그 목표를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전해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도전하지 않고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둘째, 도전하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분명히 사람이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한계라고 여기는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한계라는 것은 어떤 물체나 상황처럼 눈에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마라톤의 골인지점처럼 미리 정확하게 규정 돼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나의 마음 속에 내가 그어놓은 선일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스스로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정말 나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한계가 자신의 진짜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신 많은 분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도저히 힘들어서 할 수 없다고 중도에서 포기하려는 그때가 그 일의 정점에 도달한 때이다.”

이 말은 이것이 나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포기하지 말고 더 견디라는 것입니다. 곧 나의 한계가 나의 한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더 도전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도전대상은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신광철 작가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나를 먼저 바꾸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기엔 개인으로서 나 자신을 너무 작다. 하지만 나를 바꾸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내 마음 속의 산이다. 마음 속에 있는 산을 넘지 못한 사람은 어느 것도 할 수 없다. 모든 도전은 마음 속의 산을 넘는 순간 이루어진다. 도전하는 인생이 되려면 마음 속의 산부터 점령하라. 그러면 길이 보인다. 그 길로 가면 세상은 문을 열어준다.”

마음 속의 산을 점령하는 도전을 해보십시오. 여러분의 한계를 뛰어넘게 될 것입니다. 열한 살 때 완전색맹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흑백천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미대에 입학했습니다.

색맹인 사람이 미대에 입학하는 것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따가웠습니다. 그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하고 미대에 입학한 것은 비록 색명이지만 색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이것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이런 꿈을 가지고 도전한 그는 2003년 인공지능학 교수 애덤 몬탠돈(Adam Montandon)을 만나면서 꿈을 이루게 됩니다. 몬탠돈 교수는 그에게 색 고유의 파장을 주파수로 변환해주는 색상 탐지기계 ‘아이보그(eyeborg)’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피나는 연습을 통해 각 색의 고유한 주파수를 기억함으로써,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360가지 색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색을 볼 수 없지만 색을 들을 수 있는’ 화가 닐 하르비손(Neil Harbisson)입니다.

그는 ‘아이보그’의 도움을 받아 여느 화가와 마차가지로 갖가지 색깔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닐 하르비손은 색명이지만 도전함으로 인해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다양한 색깔들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가 되었습니다. 도전하는 자만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셋째, 도전하면 성장하게 됩니다. 성장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전할 때 성장이 일어납니다.

도전하다 보면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실패했다 해서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까? 퇴보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실패를 실패로만 끝내면 그것은 퇴보입니다. 하지만 실패를 교훈 삼으면 그 실패는 성장의 동력이 됩니다. 도전을 통해 실패도 하고 성취도 하면서 점점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장수 예능 프로그램 SBS <정글의 법칙>이 있습니다. <정글의 법칙>은 이제 김병만 씨를 상징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올해 46살입니다.

김병만 씨는 1995년 연극배우 생활을 하다 개그맨에 도전하기 위해 수차례 개그맨 시험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개그맨 공채 시험에만 연속으로 7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개그맨이 되기 위해서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안 해 본일 없이 많은 고생을 하던 끝에 드디어 2002년 KBS공채 17기 개그맨으로 본격 데뷔를 하게 됩니다.

그는 개그맨이 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였습니다. 지금 그는 비행기 조종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김병만 씨는 도전하는 삶을 살았기에 성장했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습니다. 도전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 도전하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전을 계속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끊임없이 해야 하는 도전은 영적 도전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영적 도전을 계속이어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엄청난 영적 도전을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2018년보다는 더 나은 영적 성장을 위해 영적 도전을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 읽는 것, 기도하는 것, 예배드리는 것, 전도하는 것을 비롯한 영적 성장을 위해 여러분이 하셔서 할 것들을, 2018년보다 2019년에는 조금이라도 더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도전할 때 영적인 성장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도전을 하라

특별히 올 한 해 영적 도전 가운데 믿음의 도전을 하면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도전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가 돼서 따르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해가 되기 때문에 그냥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믿음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실제로 베드로의 도전은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면, 주님께 말씀하신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그는 바다위에 발을 내딛지 못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믿음의 도전을 기꺼이 하였기에 바다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장’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영웅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도전을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노아를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가 120년 동안 비가 한 번도 내리지 않는 땅에서, 그것도 산에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것 자체가 믿음의 도전 아닙니까?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순종한 것이 믿음의 도전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바친 것이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모세가 200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고 나오는 것이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무 말 하지 않고 여리고성을 도는 것이 믿음의 도전이었습니다.

도전에는 마침표가 없습니다. 도전에는 ‘이만큼이면 됐다’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도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도전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도전하면 나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들은 무엇보다 영적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영적도전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도전을 해야 합니다.

안주하지 않고 올 한 해뿐 아니라 남은 생애 동안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 예기치 못한 은혜와 열매를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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