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 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며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요 (누가복음 19장 8-10절)”.

‘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은 히브리어로 ‘의로운 자, 순수(청결)한 자‘입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강제로 세금을 징수하며, 로마 군대의 힘을 빌어 동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며, 그를 보기 싫기까지 힘들게 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나이와 신분,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뽕나무 위로 올라가는 용기 있는 행동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삭개오의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 그 중심을 아셨기 때문에 그를 만나 주십니다. 덕분에 별 볼일 없었던 뽕나무 역시 지금까지 유명세를 타고 널리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삶에서 상식적으로 모든 것이 안될 것 같은 상황에서 마음먹었던 일들을 의외로 쉽게 이루어 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모든 것이 잘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이 계획한 일들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끈 사람들의 성공 비결에는, 그 동안 해 오던 기존의 방식과 격식의 틀을 허물고 새로움에 도전하며 나아갔던 것들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무사안일주의를 따라 늘 하던 방식대로 고집하고 안주하는 사람들은 더 새롭고 나은 세계를 보거나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세리 삭개오와 예수님과의 만남을 보면서, 질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삶을 누리고 싶다면, 참된 삶의 지혜를 배우고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맛보게 됩니다.

바로 매 순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을 버리는 것을 뛰어넘어, 예수님의 마음과 시선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려는 끊임없는 삶의 노력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오늘 예수님과의 만남 속에서, 삭개오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 모든 내외적 상황과 조건이 예수님을 만나는데 불리했습니다. 내면의 상황은 죄인으로서 부당한 모습이었고, 외적으로는 작은 키 때문에 군중 속에 가려져 예수님을 바라볼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이런 내외적으로 불리한 모든 환경을 극복하고, 누구보다 먼저 예수님과의 만남을 절실하게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 있게 행동했습니다. 그 결과 의로운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이를 통해 삭개오는 여태까지 해 오던 자신의 사고와 방식, 그리고 타성에 젖었던 허물들을 버리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을 구원하고 가정을 구원했으며, 이웃과 백성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물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전개되었습니다. 실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요.

삭개오는 사람들을 앞질러 가서, 세관장의 지위와는 어울리지 않게 뽕나무 위로 올라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삭개오로부터 초대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조건이 훨씬 더 좋은 사람들 대신에 삭개오의 집에 머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 ⓒ유튜브 캡처
예수님과 삭개오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열려있을 때 모든 인간적인 장애와 어려운 여건과 환경에도 불구하고, 못 이룰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열려 있다는 것은 다름 아닌 새로운 세계를 향한 시선이요 의지이고 갈망인 것입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매일 끊임없이 변화된 새 삶을 갈망하며, 늘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모습을 가리고 못 보게 하는 우리 자신의 인간적인 탐심과 이기심의 장벽을 허묾으로써 주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이루어냅니다.

신앙이 가져다 주는 삶의 행복을 온전히 우리 자신의 것으로 누리고 체험하는 신앙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주님께 기도하며 은혜를 구하는 이 땅에 모든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 되어야 하고, 교회의 주인 역시 주님이 되어야 하는 것임을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의 깊은 곳까지 주님께서 주인이 되셔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의 주인은 사랑이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의 주인을 믿는다면, 교회 안에서의 분쟁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완전한 주님을 모시지 못하고, 나의 인간적인 생각과 주님보다 나를 우선시하는 옛 모습 그대로 살아간다면 결코 새로운 천국을 바라 볼 수가 없다는 것을 시급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의 권력, 그리고 권위의식, 나를 자랑하고 나를 드러내는 추한 신앙생활입니다. 이는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지는 한 기독교의 미래는 암울할 뿐입니다.

교단들마다 성경을 중심 삼고 주님을 주인 삼아야 하는데, 교단 총회장이 주인이 되고 임원들이 주인이고 교회 안의 목사 장로들 모두가 주인이 되어 한통속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어디에 계신지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실한 변화의 모습에는 철저히 자기를 버리고 낮추는 깊은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언행일치가 이루어지는 성도만이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오롯이 목사와 장로들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삭개오의 참된 변화를 모델 삼아,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 앞에, 그리고 세상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참 모델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지금도 깨닫지 못하는 교회 지도자들이여! 삭개오의 신실한 변화를 가슴에 새기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내 안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더더욱 세상연락에 취해 버릴 것이고, 사람들은 천국의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들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은 “내 안에 있는 진실을 제외한 모든 것들 비워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정 아름답고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곧 ”내 안에 가두어 놓은 틀을 하루속히 허물어가는 일”입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