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비제작소
▲‘가비제작소’에서 만난 황성윤 목사. ⓒ김신의 기자
피아노면 피아노, 기타면 기타, 노래면 노래. 음악인으로 살던 그에게 어느 날 시련이 닥쳤다. 목소리가 잠긴 것. “일주일 정도 쉬면 될 겁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그는 차도 집도 다 팔아야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살게 된 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크기의 바퀴벌레를 마주했다. 그 바퀴벌레를 피하기 위해 새벽녘에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교회. 사회생활을 하며 떠났던 하나님 앞이었다.

그는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조부모 밑에서 자란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의 조부모는 일찍 세상을 떴고, 초등학교 5학년 경 홀로 남겨졌다. 아이를 돌보고,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그는 동네 어른들에게 심부름을 하면서 용돈을 받아 삶을 이어갔다. 굶기도 많이 했다. 그런 와중에 친구 덕에 교회에 전도 됐고, 대학 졸업 때까지 교회에서 살게 됐다. 학비를 못 내서 무기정학을 받기도 했지만, 하나님 은혜 덕에 사춘기도 모르고 컸다. 그랬던 그가 오랜만에 다시 교회를 찾은 것이었다.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가요나 세속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겠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겠노라고 기도했다. 그는 늦은 나이에 신학교를 갔다. 마침내 그의 목소리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 성령님이 제 속에 오신 것 같아요. 흔히 간증을 들으면 콧물 눈물 흘리면서 참회를 한다고 하는데 저도 그것을 경험했습니다.”

서초구에 위치한 ‘가비제작소’에서 만난 황성윤 목사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은혜”를 고백했다. 사역 초기, 그는 사례비가 없어도 사비로 방문한 교회에 먹을 것을 나누고 헌금을 하면서 전국의 개척교회나 가난한 교회를 다녔다. 그는 “그때가 참 은혜로웠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왔다.

“부교역자 신분일 때는 심부름만 잘하면 됐는데, 개척교회를 하면서 막상 목회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때 친구 목사님 한 분이 커피를 배웠으면 좋겠다고 전화를 한 거죠. 제가 ‘커피는 먹으면 잠을 못 자니까 안 좋아한다’고 답했는데, 그분이 ‘목회 하다보면 대접을 해야 하니 배우면 좋다’고 ‘가난한 목사님 대상으로 커피를 가르쳐주는 분이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친구를 따라 한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이 커피를 내려 주시는데 처음 보는 향과 맛인 거예요. 색도 까맣지 않고 향긋하고 달콤한 향이 나고 너무 신기해서 커피인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르쳐주시는 3주 동안 열심히 공부했고, 그 이후도 전문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셨던 것일까? 그는 얼마 후 ‘커피 고수’로부터 아프리카의 한 종합대학 농과대학의 커피 마스터클래스 수업 초청을 받게 된다. 그는 커피를 ‘선교의 도구’,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커피’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강한 마음을 안고서. 이후 그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개척교회는 바빠졌고, 그는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난 그는 일간지나 공영방송에 ‘커피 볶는 목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황성윤 목사
▲황성윤 목사는 “음악과 커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힘을 다해 하나님의 고상한 나라를 재미있게 나누고 싶다”고 했다. ⓒ김신의 기자
“제가 커피를 아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커피도 사람처럼 도발적인 아이가 있고, 피해의식이 깊은 아이가 있고, 또 자존감이 낮은 아이도 있습니다. 어떤 커피는 모양이 일그러져있어서 사람들이 잘 안사는데, 사실 굉장히 맛있는 커피입니다. 사람들이 볼 줄 모르는 거지요. 제가 그 커피를 뽑아봤는데, 정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커피가 되더라는 겁니다. 그 향이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롭고 달콤하고 온화한지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이처럼 오랜 기간 커피에 대해 배우고 제자를 길러낸 그는 사람들이 하드(hard)하다고, 딱딱하다고 여기는 ‘커피’라는 소재를 통해 그가 받은 은혜와 묵상을 ‘스토리텔링’처럼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는 “목회에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커피와 음악을 통해 예술적 차원으로 목회를 하는 것이 시대에 참 요긴한 것 같다”며 “커피와 사람이 닮은 점이 있다”고 말했다.

“로스트를 목사, 커피콩을 성도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바리스타 대회가 많은데, 사실 로스트가 중요합니다. 콩을 잘못 볶으면 아무리 바리스타가 잘 해도 향을 못 내거든요. 이 로스트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커피 고유의 향과 우리 몸에서 화학·생물학적 반응을 일으켜 치유해주는 것을 잘 끄집어내서 표현하는 일을 하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을 택하셔서 기독교를 전파하셨는데, 이를 묵상하면서 제가 이전까지 인간적인 목회를 해왔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영혼을 보는 눈이 없던 거죠. 로스트가 불을 떼듯, 목회자가 어그러지고 찌그러진 사람들, 또 모퉁이에 버려지고 수치를 당한 사람들, 외롭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성령의 불을 받도록 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DNA, 기질이 삶의 상처로 인해 망가진 부분을 회복시키고 성도들을 하나님의 건강한 백성으로 회개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로스트와 같은 목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가 운영하는 ‘가비제작소’는 청년들 사이에서 렌탈하기 좋은 장소로 소문이 나 있기도 하다. 가능한 저렴한 가격으로 공연 장소로 렌탈을 해주고 무명 아티스트에게 무료 대관까지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제가 돈을 많이 벌거라고 생각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재능을 많이 주셨지만 돈 버는 재능은 없습니다. 여기는 주로 젊은 아이들이 많이 와요.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세대라고 생각하고 저희 교인이 아니더라도 섬겼더니 아이들이 소문을 많이 내줬습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오픈해야한다는 생각으로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렌탈을 하고 최선을 다합니다. 어릴 때부터 베푸는 게 좋았어요. 저처럼 외로운 아이를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돕고 싶은데 도울 힘이 없으니 커피를 기술적으로 가르치는 거죠.”

더불어 황 목사는 또 다른 달란트를 통해 지경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과 이 시대 사람들에게 가까이 찾아가는 전도에 대해 고민하던 중 ‘토크 콘서트’를 기획하게 됐다. 하나님께 받은 아가페적 사랑과 은혜를 어떻게 삶에 접목할 것인지 등이 주제다. 이밖에도 꿈 꾸는 ‘요셉’처럼 10년을 보고 개척교회와 커피 전문 제작소 등을 꿈꾸고 있다.

“요즘 시대가 ‘강퍅해졌다’고 ‘말세’라고 하는데, 제게 주신 은사로 쓰러져 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정성을 다해 대접하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남은 삶을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생각하며 가고 싶습니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최선을 다해 목회와 악기, 커피를 들고 힘이 없는 교회, 용기가 필요한 교회, 회복이 필요한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힘이 다 할 때까지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꿈을 향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뜻을 함께하는 동역자가 있어야할텐데, 교회를 짓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또 커피 전문 제작소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직장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