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국내 한 기독교 용품 서점에 비치된 각종 헌금봉투들. ⓒ크리스천투데이 DB
1. 지난 9일에 열린 광화문 집회에서는 주최 측인 ‘문재인하야 범국민투쟁본부’ 대표 전광훈 목사가 참가자들에게 헌금을 걷었습니다. 교인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돈을 내달라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오늘 순서 중 가장 기쁜 시간 돌아왔습니다. 무슨 시간일까요? 헌금하는 시간이죠, 헌금.”

교회를 안 다니시는 분들도 모두 내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집회 현장에서 이렇게 돈을 걷는 것은 ‘기부금법 위반’입니다. 종교단체가 신도에게 모금하는 것은 예외지만, 신도가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걷은 것은 법 위반이기 때문입니다. 1,000만 원 이상을 모으려면, 사전에 관공서에 등록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난 3일 집회에서만 1억 7,000만원을 걷었습니다.

더 의외인 것은 이 헌금함에는 헌금의 처분 권한을 전광훈 목사에게 위임한다고 돼 있었던 것입니다. 이 부분도 사회법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성경 어디에도 그런 법은 없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목사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기독교에서 말하는 ‘헌금’이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으로, 교회를 통해 교회와 교인, 그리고 이웃을 향한 나눔을 목적으로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총칭해 모든 것의 주인인 ‘하나님께 드린다’고 정의합니다. 그러므로 바칠 ‘헌’자로 표기하여 헌금(獻金)이라 칭합니다.

그렇다면 모금(募金)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모금의 사전적 의미는 ‘성금(誠金)이나 기부금 따위를 널리 모음’입니다. 그래서 ‘모을 모’자를 사용합니다.

모금은 공공의 필요를 위해 역시 자발적으로 모아지는 금전을 가리킵니다. 이 헌금과 모금은 자발적이라는 점과 공익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헌금은 신앙고백적 행위이고, 모금은 공익을 위한 개인 의지의 표현인 점이 다릅니다.

3. 오늘날 교회마다 주일헌금은 물론이고, 갖가지 ‘헌금’을 당연시합니다. 십일조 헌금과 절기 헌금, 건축 헌금과 장학 헌금, 여신도 헌금과 남신도 헌금, 심방 헌금, 생일 헌금, 또한 작정 헌금과 여러 감사 헌금….

교인들로서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명분의 것들입니다. 이러한 헌금 내역은 매주 주보뿐 아니라 개인 신상카드와 함께 기록됩니다. 출석 통계와 헌금 내용은 재직 임명이나 구역장, 장로 추천시 담임목사에게 집계되어 보고됩니다.

그러나 헌금 사용 내역은 제직들의 모임인 ‘제직회’에서만 공개됩니다. 익히 아는 바 헌금 목적에 부합하는 항목의 지출은 사실 매우 미약합니다.

소위 대형교회로 불리는 부자교회라 할지라도 ‘교회운영비’가 헌금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담임목사 사례비를 비롯하여 후생복지비, 자녀 학자금, 목회비를 포함하면 어마무시한 액수입니다.

헌금 대부분이 ‘목회자 사례비’와 ‘건물유지비’로 지출되는 현실은, 말하자면 바쳐진 헌금들이 자체 소비로 사용되는 구조라는 의미입니다. 그에 반하여 ‘모금’은 거의 전액이 그 목적을 위해 사용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는 고발되기까지 합니다.

4. 목회자의 시각으로 바라보아도 한국교회 헌금은 그 목적과 사용에 있어 사실상 헌금이라 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습니다. 헌금의 항목은 갈수록 다양해지는 반면, 헌금 지출 항목에는 변화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공개적으로 받을 돈인양 헌금을 요구하며 대가성 복을 남발하지만, 사용처는 그 목적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헌금이 아닌 수금(收金)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수금이라 함은 ‘받을 돈을 거두어들인다’의 의미로, 미수금과 미납금과 같은 용도를 뜻합니다.

‘모여!’ 하면 모이고, ‘헌금!’ 하면 쓸어 넣는 이것을 종교라 할 수 있을까요. 헌금이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좋은 계절 이 가을,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장하시기를, 그리하여 온 땅과 생명 위에 빛을 발하는 교회되기 원합니다.

이성호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위원, 포항을사랑하는교회 책임사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