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기독교인들의 나라와 민족 사랑은 엄청나다. 때문에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된 이래,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독립운동과 민족 계몽,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건국, 무신론적 공산주의 세력과의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에 앞장섰고, 때로는 이를 위해 피를 흘리고 심지어 순교하기까지 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앞장서 세운 나라라는 표현은 단순히 기독교인들만의 신앙고백을 넘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이기 이전에 하나님나라의 백성인 우리가 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해야 하는가? 나라와 민족 사랑이라는 명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정작 그 근본적인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 사랑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잃고 그저 절대적인 당위로서만 존재한다면, 그것은 폭력적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성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유와 목적을 바로 알고 나라와 민족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바울은 당대 최고의 특권을 지닌 로마의 시민권자였지만, 자신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음을 선언했고(빌 3:20), 평생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나라를 위해 기꺼이 바쳤다. 그런 그가 자신의 형제 곧 골육의 친적, 다시 말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자신의 마음에 원하고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고 고백했다(롬 9:1-5, 10:1).

요컨대 그리스도인들의 나라와 민족 사랑은 그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는 것이 근본적 이유이자 목적이다. 이 민족에게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 그리스도께서 주신 진리로 그들을 자유케 하는 것, 이 나라를 예수 잘 믿고 잘 전파하는 나라로 세우는 것, 바로 이것을 위해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목숨까지도 내던져 싸웠던 것이다.

역으로, 나라와 민족은 이 구원 사역에 합치될 때에 그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국익에 저해되는 일이 있더라도 자신의 종교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적 집단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예수 사랑과 민족 구원, 그리고 나라 사랑과 발전의 길은 서로 배치되지 않는다.

이 근본적 지향점을 잃고 오직 나라와 민족이라는 당위만이 절대적으로 지배하게 될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도출되는지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는 비극적 반증이 바로 북한이다.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도시를 수도로 삼고 한반도 이북을 점유한 북한 정권은, 사람 중심의 주체사상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고 종교 자유를 박탈하며 그 나라와 민족을 도탄에 빠뜨렸다.

더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독일은 기독교 국가였고 위대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도 많이 배출했지만, 예수 사랑과 민족 구원이라는 근본적 목적을 상실하고 자기 나라와 민족만의 이기주의에 빠졌을 때 나치 광풍에 휩쓸려 역사상 최악의 끔찌한 전쟁과 학살의 비극을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현 정권과 그 비호 세력들은 무슨 이유 때문에서인지 오직 나라와 민족, 그리고 평화와 통일이라는 당위만을 앞세워 온갖 혼란과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 자신과 다른 진영의 문제에 대해서는 엄혹하면서, 전쟁을 일으켜 수백만을 살상하고 그 이후로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도발과 테러를 자행한 세력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다.

민주와 인권을 부르짖으면서, 독재 체제 하에서 최소한의 인권마저 박탈당한 채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한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환심을 이끌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자신들만의 또 다른 기득권을 철옹성과 같이 쌓고 있었다. 이 나라 산업화의 결실은 앞다퉈 누리면서도, 그 산업화 주도 세력은 적폐로 몰아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반대 진영을 온갖 수단으로 겁박했다. 자신들의 수가 적을 때는 불의한 강자에게 핍박받는 억울한 약자 행세를 하며, 자신들의 수가 많을 때는 다수가 곧 정의라는 식으로. 자신들의 수가 많건 적건 ‘국민의 뜻’을 앞세우며, 상대편 진영은 사람 취급도 하지 않도 오직 증오와 타도의 대상으로 여겼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일부 기독교계 인사들조차 이 같은 행위들에 부화뇌동하고 더 나아가 부채질까지 한다는 것이다. 같은 기독교인들끼리도 정치적 견해는 다양할 수 있지만, 북한의 종교 자유를 위해 한 마디도 못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목사 혹은 신학자라는 이름을 내걸고도 거짓된 평화를 위해 북녘 동포들의 절규를 외면하라 하는 자들, 이 나라가 통일하는 것이 최우선이니 다른 모든 불의에 대해서는 일단 침묵하라 하는 자들은 역겹기까지 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자기 우상으로 삼은 자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가 다시 일어섰다. 지난 10월 3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대규모의 집회가 열렸다. 주최 단체들조차 깜짝 놀랄 정도의 엄청난 인파였고, 그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기독교인들이었다. 대형교회들이나 대형 교단들의 주도적 참여 없이, 기독교계의 대형 집회는 더 이상 힘들다는 냉소적 평가도 뒤집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룬 쾌거다. 이후 10월 9일에도 상당수가 참여한 집회가 있었다.

과거 기독교계 대형 집회들의 상당수가 몇몇 초대형교회 스타 목회자들의 인원 동원 능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에 대한 의존 없이 이 정도의 인원을 동원한 것은 큰 시사점들이 있다. 첫째는 이 나라의 현실에 대한 위기의식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보우하신다.

이제 기독교계는 단순히 인원 동원 능력을 확인한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대사회적 영향력을 더욱 제고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는 기독교인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영적 능력을 회복해야 하며, 둘째는 도덕성에서도 모범을 보여야 하고, 셋째는 하나돼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수가 모인다 해도 단순한 세 과시에 불과할 것이다.

특히 이번 집회에 한기총과 한교연 두 연합기관의 대표회장들이 함께 참석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고 상징성이 큰 장면이었다. 서로 문제는 바로잡되 이렇게 점진적으로 차이는 극복하고 하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더욱 깨어나야 한다. 그래서 이 집회를 통해 나타난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동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기도가, 이 민족을 구원하고 이 나라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는 열매를 맺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