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 남궁억 보리울의 달
▲만화 <한서 남궁억> 中.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키아츠 제공
남궁억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그의 허연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학생들도 깜짝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참 동안 창문만 바라보고 있던 남궁억이 말했다.

“3·1운동이 시작된 이후 3개월 동안 피해 상황을 대강 어림잡아 보면 이렇습니다. 집회 회수는 약 3천여 회, 참가인원 수는 약 5백만 명, 사망자 수 10만여 명, 부상자 50여만 명, 검거된 사람은 약 10만 명입니다. 그리고 불에 탄 교회가 약 50곳, 학교는 10곳, 민가는 2천 채나 탔다고 합니다.

3·1 독립운동은 일제의 잔인한 탄압으로 많은 희생자를 낸 채 비록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우리 민족의 독립정신을 만천하에 드러낸 바가 되었습니다. 또한 중국의 5·4운동이나 인도 지도자인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 아시아와 중동 지역 민족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때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남궁 교장은 말을 마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들도 이윽고 긴장감에서 풀려나 몸을 움직였다.

사실 그런 수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만일 일본 당국에 알려진다면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받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민족이 당한 일을 바로 알리고 학생들을 미래의 대들보로 키운다는 지극한 사명감이 없는 한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기꺼이 내놓은 사람만이 하는 일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며 빗줄기가 점점 세차게 쏟아지더니 천둥과 번개가 천지를 울렸다.

보리울의 하루하루는 시냇물처럼 빠르면서도 한가롭게 흘러갔다.

남궁억의 시간은 새벽에 유리봉에 올라 기도하는 일 외에는 모두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바쳐졌다.

그의 교육은 입으로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식이 아니라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실천을 통해 이루어졌다.
또한 현실을 무시한 채 이론만을 나불거리지도 않았다. 잔머리나 굴리는 지식보다는 폭넓은 이해력과 참된 인격을 갖추는 것이 미래 세상을 살아가는 데 더욱 필요하리라고 강조했다.

“생각은 실천의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생각이 있다고 바로 실천되어 현실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천하려는 노력과 능력이 꼭 있어야만 합니다!”

남궁억은 학생들에게 되풀이해서 강조하곤 했다.

“씨앗만 뿌린다고 맛있는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는 건 결코 아닙니다. 가꾸는 농부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모곡학교는 산골의 농촌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농촌의 실정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아침 일찍 일어나 풀을 베어 등교 길에 지게에 지고 오도록 했으며, 하교 길에는 땔나무를 해서 한 짐씩 지고 가도록 독려했다.

“여러분이 학생이라고 해서 우리 농촌의 현실을 무시하고 무작정 책만 읽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흙은 흔하지만 아주 귀중한 것입니다. 흙이 없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겠지요.

그래서 농촌은 모든 인간의 마음의 고향이며 생명의 터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흙 속에서 흙과 함께 한 기억들은 평생에 걸쳐 소중한 재산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나가 아무리 출세를 하더라도, 향긋한 흙내음을 잃어버린다면 진정한 마음의 행복을 느끼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농사일을 거들면서 익힌 대자연의 이치와 부지런한 습관은 평생의 보물이 되어 행복으로 이끌어 주리라 믿습니다.”

등교 시간에 운동장으로 줄지어 밀려드는 풀지게에는 책보퉁이와 도시락이 매달려 달랑거렸으며 간혹 진달래나 민들레가 꽂혀 마치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궁억은 우리 농촌이 푸르고 싱싱하게 살아나야만 앞으로 온 나라가 건강해지리라고 믿었다. 사실 모든 선진국에서도 농촌은 그 나라의 기초체력으로서 중요시되고 있었다.

보리울의 달 한서 남궁억
▲소설 <보리울의 달> 저자 김영권, 제작 키아츠 <보리울의 달>은 한서 남궁억 선생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서 남궁억 선생의 소설화된 파란만장한 인생을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통찰하도록 안내한다. 만화 <한서 남궁억> 저자 김재욱, 그림 최현정, 제작 키아츠 <한서 남궁억>은 남궁억 선생의 위대하고도 큰 뜻을 남녀노소 모든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만화로 표현한 책이다. 남궁억 선생이 여러 등장인물과 역사를 헤쳐 나가는 이야기가 실감나고 흥미롭게 담겨 있다.
새벽 일찍 유리봉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도하고 나면 남궁억은 밀짚모자를 쓴 채 동네를 돌며 청소년들을 깨우고, 버려진 짚신짝들을 주워 모아 오줌통에 담갔다가 텃밭의 거름으로 뿌렸다.

그는 집 앞의 텃밭에 직접 채소를 심어 가꾸었으며 수확을 하면 이웃과 나눠 먹었던 것이다. 농사 경험은 없었으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하나씩 깨쳐 나갔다.

그런 겸허한 자세는 마을 사람들과 학생들에게 큰 감동을 주어 배움의 귀감이 되었다.

그는 길을 걸을 때 유리조각이나 위험스런 물건을 보면 꼭 치워 놓고 지나갔으며, 아이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동심으로 돌아가 스스로 지은 노래를 함께 불러 가르쳐 주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과자나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면 어떤 작은 일이라도 시킨 다음에야 응낙했다.

또 취미로 우표 수집을 하는 학생이 올 경우에도 적절한 돈을 받거나 심부름을 시켰다. 공짜를 바라지 말고 자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모곡학교는 입학하는 학생이 계속 늘어났다. 설립될 당시의 시설로는 좁아서 어려움이 많았다. 남궁억은 감리교회 선교부의 보조금과 홍천군의 민간인들로부터 기부금을 모아 강신재 언덕 위에 1백 평 정도의 새 교사와 기숙사를 건립했다. 그리하여 모곡학교는 정규적인 6년제의 사립학교로 인가를 받았다.

강원도 산골에 위치한 모곡학교가 이렇게 발전하게 된 것은 3·1운동 이후 신학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전환되었기 때문이었다.

3·1운동은 학생과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조국의 독립을 부르짖은 것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좋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물론 남궁억 교장의 헌신적인 열정이 없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영권 남궁억
▲본지에 <꽃불 영혼>에 이어 <보리울의 달>을 연재하고 있는 김영권 작가.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걷는 동상>,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