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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주로 내 삶에서 드러나는 외적 행동과 표현, 혹은 습관들을 버리는 것에 의해 예수를 믿는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술을 끊어야 하고, 담배도 끊어야 하고, 식사할 때 기도를 해야 하고, 십일조를 해야 하는 등, 이런 행위들이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였습니다.

물론 이런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자연적으로 이런 삶의 변화는 당연히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행동 변화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내면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고, 그 내면의 변화는 내 가치관의 변화, 내 생각의 변화 등 내가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나 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 삶 속에서 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고 하지만, 내면의 변화는 빠진 채 단지 종교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만으로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재의 이유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은 채, 단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외적인 변화를 의도적으로 실행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참된 변화가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거나 식사할 때 기도를 열심히 하기도 합니다. 성경적 가치에 근거하지 않는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자들에 의해 사회적인 지탄이나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결국 전도나 선교의 문을 닫게 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하고, 또한 주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의 명예와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치명적 오류가 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각 교단마다 총회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 쓴 글에서도 총회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는데, 제가 속한 합동 측 총회는 2년 동안 11만 명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 결국 그들이 왜 떠났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유와 원인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총회에서 무엇인가를 회의하고 결정하고, 바로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떠남에 대한 원인과 대책에 대한 의논도 없이 보고를 받는 것으로 끝을 낸다면 그것이 진정한 총회일 수 있을까요?

통합 측 총회에서는 5년만 버티면(?) 세습을 할 수 있는 법안이 압도적 표차로 통과되었고, 합동 측 총회에서는 정년 연장에 대한 연구를 1년 더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런 결정이 11만 명의 사람들을 교회로 떠나게 한 원인과 이유가 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늘날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삶은 외형적이고, 종교적인 상징적인 행위만을 가지고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교적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참된 가치와 내면적인 변화가 근본적인 삶의 변화의 원인과 목적이 되어질 때에 공의와 정의, 그리고 진실과 인애로서의 책임감이 있는 신자로서의 회복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껍데기 신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 자들을 변화시키고, 바른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키는 사명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고, 교회를 떠났던 가나안 성도들을 다시금 회복시키는 것이 교회가 교회될 수 있는 본질적인 가치일 것입니다.

종교적 행위를 잘한다고 칭찬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작은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연약한 사람을 칭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서상진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미래로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