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월례포럼
▲‘중세 신비주의 영성과 종교개혁 영성’ 주제로 개최된 제77회 월례포럼 현장. ⓒ김신의 기자
제77회 월례포럼
▲‘중세 신비주의 영성과 종교개혁 영성’ 주제로 개최된 제77회 월례포럼 기념사진. ⓒ김신의 기자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제77회 월례포럼이 20일 서울 강북구 삼양로에 소재한 반도중앙교회에서 개최됐다. 이날 포럼은 '중세 신비주의 영성과 종교개혁 영성'이라는 주제로 오후 4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영한 원장이 개회사를 맡았으며 이어 이날 포럼의 핵심 주제에 대해 조병하 교수(백석대 은퇴교수), 강경림 교수(안양대), 김요섭 교수(총신대)가 자신들이 발제 인물로 선택한 중세 신비주의자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각각 발표했다.

먼저 조병하 교수가 '마이스터 엑크하르트'의 신비주의에 대해 소개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14~15세기에 주요한 역사주제로 스콜라철학의 지적인 학습방법과 함께 신앙의 경험과 '하나님의 바라봄'을 구현하는 독일의 신비주의가 등장했다. 그는 "신비주의는 당시 대다수의 교회가 몰락하고 있을 때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독일의 신비주의는 독일 내부에서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동방에서 생겨나 비잔틴제국에서 꽃피운 것으로 이후 프랑스를 거쳐 독일에 유입되어 신앙적으로 특별하게 성장한 사상이었다"고 했다.

독일에서 신비주의의 확산과 신앙적인 삶의 내면화를 향한 갈망은 남부독일의 '하나님의 친구들(이들의 활동지역은 남부독일 지역인 스트라스부르와 바젤지역)'에게서 잘 나타났으며 14세기 당시 가장 의미있는 신비주의자가 바로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수도사였던 '마이스터 엑크하르트'과 그의 두 제자 '요한네스 타울러'와 '하인리히 수소'였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엑크하르트는 '하나님은 완전한/절대적인 존재이시다'는 정의를 가지고 가장 깊이 있는 신앙의 경험을 묘사했다"며 "엑크하르트 신학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신앙의 내면화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크하르트는 인간과 하나님의 존재적 일치를 주장했으며 일치는 영혼 안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이 일치는 '영혼의 불꽃'으로 일어나며 '신'은 '낳는 것'이며, '좋은 사람'이란 신적 본질을 자기 안에 받아들여 '낳아진 아이'라는 것이다. 조 교수는 이어 "에크라흐트는 '좋음'과 '좋은 사람'과의 관계를 창조주 '성부 하나님'과 육화한 '성자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유추했다"며 "그의 이러한 사상에는 인간 영혼의 나심과 성자의 나심 사이에 구별이 불분명해지며 여기서 범신론적 혼돈이 야기된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계속해서 "엑크하르트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 안에서 침투하여 머무는 모든 신적인 현존 주장은 범신론 의혹을 불러일으켰으며 결국 그는 이단의 가르침을 유포한 혐의로 교회법정에 제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마지막으로 "시대적으로 교회가 쇠퇴해 갈 때 엑크하르트는 교회 진흥을 위해 노력했다. 엑크하르트는 후에 경건주의에 깊은 영향을 끼친 독일의 신비주의를 정점으로 이끌었다. 엑크하르트는 독일 신비주의 학파를 이끌었고 그의 제자들이 신비주의의 완숙도를 더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제자들은 그의 범신론적인 하나님 이해는 피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강경림 교수가 엑크하르트의 제자로서 윤리적 신비주의를 주창했던 '요하네스 타울러'에 대해 발표했다. 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타울러는 18세 때 도미니크회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원의 대학인 쾰른대에서 공부하면서 당시 그 곳에서 활동했던 에크하르트의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에크하르트의 신비체험에 실천적인 관점을 보완해서 발전시킨 인물로 알려져있다.

강 교수는 타울러의 핵심 사상을 '자아 벗기'라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타울러는 종교인들이 외적 의식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비판하고 내적 생명력을 중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친구들(Friends of God)이라는 운동의 지도자였던 타울러는 후에 마틴 루터의 영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강 교수는 타울러의 '자아 벗기'에 대해 "자아 벗기란 곧 고통과 고난을 통하여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는 욕구, 사도 바울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살기 위하여 죽는'이다. 타울러는 세상 모든 재화의 포기보다는 더 깊고 진실한 영의 빈궁을 지향했다"며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포기함으로써 새 생명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이어 "타울러는 엑크하르트의 철학을 이어 받았지만 엑크하르트보다는 더 복음적인 강조를 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타울러는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창조되지 않은 신적 섬광(an uncreated divine spark)이 있다고 믿었는데 인간의 눈이 너무 약해서 그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어둠 속에 남아 있으며 그 때부터 그것은 하나님 은혜의 전달자인 신성한 빛을 비춘다고 보았다"고 부연했다.

또 "타울러는 삶의 가장 높은 영적 목표는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을 달성하는 것이라 믿었다"며 "그러나 이것은 감정적 격변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인내하고 다른 사람을 향한 사랑, 동정심, 봉사로 행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점검받아야 했다"고 전했다. 강 교수는 타울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당신이 모든 사람을 향해 온전하고 완전한 사랑을 가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시려고 하는 신적 영향들이 이 사랑 안에서 당신을 통해 흘러갈 것이다"

강 교수는 마지막으로 "6세기 이후 타울러에 대한 증언은 그가 자신 안에서 이 흘러넘치는 신적 사랑을 많이 가졌음을 보여준다"며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기쁘게 그에게 귀 기울인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 발제자인 김요섭 교수가 '하인리히 수소의 생애와 신비주의 사상'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하인리히 수소는 독일 콘스탄츠 지역의 경건한 성직자였던 부모에 의해 13세의 나이에 성직자가 되도록 콘스탄츠 소재 도미니크 수도원으로 보내졌다. 수소가 쾰른대에서 공부하던 1327년 초 신학교수 엑크하르트는 이단 혐의로 교황의 소환을 받아 아비뇽에서 자신의 주장의 정통성을 변호하는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 수소는 그의 스승 엑크하르트로부터 '영혼 속의 하나님의 빛의 탄생' 사상을 이어받았다.

김 교수는 "수소는 자신의 스승 엑크하르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기원이자 목적이며, 절대적인 신성한 무(無)로서 모든 것들은 그 안에서 그들의 본래적인 생생함과 영원한 기원 안에 존재한다고 보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수소의 신관은 너무 스콜라적이며 사변적인 성격이어서 인격적인 하나님이라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수소 역시 엑크하르트와 마찬가지로 이단 혐의로 소환되어 1330년 마스트리히트에서 조사받았다. 이후 수소는 수도원 학교 강사직에서 물러나 수도생활에 매진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수소의 핵심 사상인 초연사상에 대해 전했다. 김 교수는 "수소는 피조물들이 존재함에 있어 두 가지 측면을 지닌다고 보았다. 한 측면에서 피조물은 하나님 안에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피조물은 그 자체로는 영원한 존재가 아니며 오직 의존적인 존재로서만 존속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질문을 함으로써 목적에 도달하지 않는다. 차라리 초연을 통해 이 감춰진 진리에 도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연은 자신마저도 포기한다면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진정한 초연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와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들은 어떤 존재인지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분 안에서 스스로를 내려놓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소유욕으로부터 스스로를 포기하게 되면서 이루어진다"며 초연의 매커니즘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