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김명혁 목사. ⓒ이대웅 기자
일곱째로, 정진경 목사님은 북한 동포 돕는 일에 대해 폭넓은 입장을 지녔고, 타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에 대해서도 폭 넓은 입장을 지니셨습니다.

아마 제가 하는 일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격려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북에 퍼주는 것이 잘못이라고 여기 저기서 소리를 지를 때, 정진경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먹으면 어떻습니까? 그들도 우리 동족이 아닙니까?”

그리고 2009년 3월 5개 종교의 지도자들이 ‘3.1 운동 90주년을 맞으며 3.1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경동교회에서 함께 모인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 모임도 전적으로 후원하며 좋아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원로이신 방지일 목사님이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기도’를 최희범 목사와 박경조 주교와 김상복 목사가 드렸고, 이응준 원불교 교무가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노래한 후, 개신교의 입장에서 이만열 교수가, 천도교의 입장에서 임형진 교수가, 불교의 입장에서 법륜 스님이, 천주교의 입장에서 김홍진 신부가 각각 주제 발표를 했고, 김대선 원불교 교무와 손봉호 교수가 응답을 했습니다.

참석자 모두가 일어나 애국가와,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한 후, 정진경 목사님이 축도를 했는데 참석자 300여 명이 모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방지일 목사님과 정진경 목사님은 그 모임이 너무너무 좋았다고 말씀했습니다.

여덟째로, 정진경 목사님은 강변교회를 사랑하시며 자주 오셔서 말씀을 전하시곤 했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1993년 8월 2-4일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하나’라는 주제를 가지고 속리산에서 모인 강변가족 수련회에 오셔서 ‘성도들의 복된 삶’,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 ‘성도들의 생활 원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 하나님의 품과 자연의 품과 성도들의 품 안에서 사랑과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리고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11월에 가진 ‘원로목사 초청 주일 예배’에 오셔서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 동안 방지일, 정진경, 김준곤, 강원용 목사님(2003년), 방지일, 정진경, 김준곤, 강원용 목사님(2002년), 정진경, 방지일, 림인식, 강원용, 김창인 목사님(2003년), 정진경, 방지일, 조향록, 김창인 목사님(2004년), 정진경, 방지일, 김창인, 강원용, 이종성 목사님(2005년), 정진경, 조향록, 림인식, 방지일 목사님(2006년), 방지일, 김선도, 조향록, 정진경 목사님(2007년)이 오셔서 은혜의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나눔의 행복(2002)’, ‘국민 화합과 교회의 역할(2003)’, ‘하나님은 왜 야곱을 사랑하셨나?(2004)’, ‘네 이름부터 바꾸라(2005)’, ‘누가 주인인가(2006)’, ‘바르게 사는 길(2007)’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께서 강변교회에 오셔서 마지막으로 하신 ‘바르게 사는 길’이란 제목의 설교의 내용의 일부를 여기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무나 귀한 고백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다시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저도 나이가 많습니다. 방지일 목사님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제가 21년생입니다. 그런데 오래 살다 보니까 지금은 남은 생애를 어떻게 정리를 할까 그런 생각이 2년 전부터 들었습니다.

요새 늘 생각하는 건 그 동안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러분들의 도우심으로 정말 잘 살았습니다. 고통 없이 살았는데 제가 정말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바르게 살았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남은 생애라도 바르게 살므로 매듭을 짓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 오늘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이런 제목을 택했습니다.

여러분 김 목사님이 지금 우리에게 다 고맙다고는 하지만 사실 우리 한국교회에서 한 달 동안을 낮 예배 밤 예배를 원로들과 중진목사들을 청해서 계속 낮 예배 설교를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한국교회에서도 없고 아마 세계교회에도 없을 겁니다.

우리 김 목사님의 특별하신 배려고, 김 목사님은 보수적인 신학자요 목회자로 알고 있지만 그가 하는 일을 보면 이분처럼 개방적인 분이 없습니다. 우리 원로들이 모이면 고맙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방지일 목사님과 어딜 갔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 목사, 이번에도 강변교회에 가? 그럼요 작년에는 제일 꼬래비로 갔지만 이번에는 첫 주일에 갑니다. 그랬더니… 그 김명혁 목사 아무리 봐도 이상해. 우리같이 나이든 사람 왜 이렇게 청하는지 몰라… 너무 고맙지…, 그런 이야기 하는 걸 들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 올 때마다 성가대 은혜 많이 받습니다. 정말 노래를 은혜롭게 잘 부릅니다. 감사하구요.”

“그래서 오늘 잘 사는 길을 말해야 될텐데… 잘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왜 꼭 교회야 다녀야 합니까? 왜 꼭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서는 바르게 살 수가 없기 때문에 교회에 나가며 또 예수를 믿는다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일 것입니다.

밥 버포드라는 사람이 쓴 <하프타임>, 다시 말해서 ‘전환점’이라는 제목의 책이 지금 세계적으로 바르게 살기운동을 선풍적으로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새롭게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인생의 전반부는 누구나 다 성공 추구에 모든 것을 바칩니다. 권력을 얻기 위해, 지식을 얻기 위해, 재물을 얻기 위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열명 중 아홉 명은 잘 살기 위한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생각이 있는 사람. 현실을 바로 바라보는 사람,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인생의 후반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즉 생애의 성공 추구에서 의미 추구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에 선다는 것입니다. 젊으나 늙으나 이러한 ‘turning point’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생애 전반에 대한 아무런 점검도 없이 후반의 삶을 사는 사람은 이웃과 사회, 교회와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오셔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마라, 오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목적과 수단을 바꾸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바르게 사는 삶은 첫째,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둘째, 수단이 정당해야 하며, 셋째, 목적과 수단이 혼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노력해서 이 만큼 쌓아 놓았으면,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다가 하나님 부르실 때 기쁨으로 가겠는가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삶입니다.

잘 사는 게 바르게 사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바로 벌고 바로 저축하고 바로 쓰는 것이 기독교 경제 윤리에 근간이고 바로 사는 원리입니다.

우리는 한 세상 살면서 하프타임이 언제인가 생각해 보세요. 전환점이 언제인가 오늘까지 이렇게 해서 이렇게 쌓아 놓았으면 이걸 가지고 이제부터 무얼 할거냐 어떻게 살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기쁨으로 가겠느냐…. 그게 바로 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게 성공 추구에서 의미 추구에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다 보니 이제는 이런 것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잘 사시되 그걸 가지고 바르게 사는 여생이 축복된 생활로 나가길 바랍니다. 강변교회 성도 여러분의 삶이 바르고 축복된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정진경 10주기
▲정진경 목사 10주기 추모예식 후 기념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교회 제공
아홉째로, 정진경 목사님은 사람들을 칭찬하시고 격려하시는데 아낌이 없으셨는데, 특히 저를 지나칠 정도로 칭찬하시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1999년 설날인 화요일 저녁 KBS 방송이 ‘내가 존경하는 이 사람’이란 제목으로 생방송 프로를 진행한 일이 있었는데 그 프로를 진행하는 동안 정진경 목사님이 부족한 저를 ‘내가 존경하는 이 사람’으로 지목하시고 저를 지나치게 칭찬하시고 격려하셔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그날 저녁 KBS 방송에서 생방송 된 대화 내용의 일부를 여기 그대로 소개합니다.

“사회자: 릴레이 인터뷰 ‘내가 존경하는 이 사람’ 1부에서는 이해찬 교육부 장관을 시작으로 박영숙 소장, 중앙병원 김유호 박사, 울산의대 홍찬의 교수, 김형석 전 연세대학교 교수, 정진경 목사님 이런 분들이 서로 존경하는 분들을 추천을 해 주셨습니다.

‘존경할 만한 사람은 고사하고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존경할 만한 대상이 있는 분은 참 행복한 분이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1부 마지막에 정진경 목사님이 추천해 주신 김명혁 교수님, 지금 저희 KBS 김현주 리포터가 가족과 함께 설을 보내고 계신 김명혁 교수님 댁에 나가 있습니다….”

저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정진경 목사님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알리기 위해 저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합니다.

정 목사님은 사람들을 칭찬하시고 격려하실 때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하시면서 하시는 분이십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제가 쓴 <영 몰라 통 몰라 가르쳐줘도 몰라>라는 책의 추천서를 쓰시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저를 너무 과찬을 해주셨는데, 1999년 2월 쓰신 그 추천의 글을 여기 그대로 인용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김 목사. 오래 살다 보면 주변에 아는 사람도 많이 생기고, 가까운 친구도 갖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경험일 게다. 그러나 내 마음을 열어 보이고, 또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허용할 수 있는 친구를 갖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김 목사와 같은 신실한 친구를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드린다. 내가 김 목사와 가까이 사귀게 된 것은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일에 관계하면서부터이다. 내가 회장이 되고 김 목사는 총무가 되어 복음주의 운동을 함께 하면서 나는 그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도 나를 믿어 줌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위하여 가까운 동반자가 되었다.

그 후 우리 두 사람은 외국 여행을 함께 하는 기회가 잦아졌다. 주로 아시아복음주의협의회, 세계복음주의협의회 일로 홍콩, 싱가폴,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러 지역에서 개최되는 국제 회의에 같이 참여하는 일이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일본, 소련, 중국 등 여러 지역을 함께 여행했다.

우리 두 사람은 외국에 갈 때마다 룸 메이트가 되어 사사로운 일로부터 한국 교회의 문제, 사회, 국가에 관한 일까지 폭 넓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주 안에서 정이 들고, 서로의 신학적인 입장이나 사상, 이념 같은 것도 이해하고 신뢰하게 되었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목회와 선교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서로 상의하는 동역자가 되었다.

김 목사는 복음적인 신학자로서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고 그의 학문적인 업적도 높이 평가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신실한 목회자로서 18년 전에 강변교회를 개척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개혁주의 신앙과 덕으로 신자들을 훈련하고 보살펴 오늘의 성숙한 교회를 키웠다.

그가 오랜 세월 지불한 희생과 봉사의 대가는 지난 4월 훌륭한 성전을 지어 봉헌하는 결실을 거두게 되었다. 또한 그는 폭넓은 문필가이다. 자신의 전공에 대한 저작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썼다. 그는 문필력이 뛰어난 학자이다. 때로는 회의를 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내일 발표할 연설의 원고를 쓰기도 한다. 어떤 때는 방금 의논된 내용들을 문서로 정리하여 언론 보도에 넘길 정도로 신속하게 붓을 놀린다.”

“그는 또한 선교 사업, 구호 사업에도 앞장서서 주도하는 교계의 지도자이다. 한동안 아시아 지역에 홍수가 범람하고, 아프리카 지역에는 한재가 극심하여 식수가 끊겨 사람들이 병 들고 죽어 갈 때 발벗고 나서 동분서주하며 많은 성금을 모금하여 수십 개의 우물을 파 줌으로 식수난을 해결해 주었다.

요즘은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서 일하고 있다. 그의 북한 동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을 나는 안다. 그가 신앙의 자유와 성수 주일을 위하여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단신으로 월남하여 오늘까지 통일되기만을 바라는 그 일념으로 살아왔기에, 북한 동포들을 돕는 일에 쏟아 붓는 그의 애정과 정열이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김 목사는 많은 시간과 정열을 바쳐 교파의 벽을 헐고 보수니 진보니 하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분열된 한국 교회의 일치와 화합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내가 김 목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위에서 지적한 그의 능력이나 받은 은사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가 맡은 일에 쏟아 붓는 정열을 좋아한다. 어떤 때는 일에 미친 사람같이 보이기도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미친 사람은 못할 일이 없다. 그는 이해 관계를 초월하여 자기가 맡은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지칠 줄 모르는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지도자이다. 그에게서는 일의 욕심을 빼고는 아무런 사심도 욕심도 없다. 그저 일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 같다. 나는 김 목사의 이런 점이 늘 부럽다.

또 내가 김 목사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검소하고 청렴한 생활이다. 몇 해 전에 그가 시무하는 강변교회 제직 수련회의 강사로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속리산에서 수련회를 마친 후 그 교회의 나이 드신 권사님 한 분이 자기 차로 나를 서울까지 태워다 주었다. 오는 도중에 그는 나에게 자기 교회 목사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그 중에서 하나만 이야기한다면, 김 목사는 조그마한 자기 집을 가지고 사는데 교회가 그 집보다 좀더 넓은 집을 마련해 드리려고 제의했다가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주변에 이런 집도 없는 사람이 많은데 더 큰 집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권사님 말씀은 ‘우리 김 목사님은 차도 작은 것, 집도 작은 것만 좋아하시니 그 정도밖에 못살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 말은 김 목사의 청렴한 생활의 일부를 공개한 것이다.”

“내가 김 목사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숨김없이 사는 그의 솔직한 성품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있는 그대로 생각하며 그대로 산다. 그에게는 가식이나 꾸미는 것이 없다. 속과 겉이 같은, 요새 말로 하면 투명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그의 강한 추진력 때문에 연합 운동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치성이 강하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그에게 정치성 같은 것은 티끌만치도 없다. 다만 자기의 소신대로 밀고 나가다 보니 그런 오해를 받기도 한다.

내가 김 목사를 좋아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의 망각증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이 많아서 잊어버리는 것과는 종류가 다르다. 그는 어떤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자기 주변 정리에 소홀할 때가 많다.

여행을 같이 하다 보면 여권을 잃어버리고 이 대사관에서 저 대사관으로 뛰어다니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기가 가지고 온 소지품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고 ‘내가 분명히 이런 옷을 가방에 넣었는데 이상하다’고 한다.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런 와중에서도 당황하거나 염려하거나 안달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무관심의 사람인지 현세를 달관한 사람인지 분간이 안될 때도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할 일은 빈틈없이 다해낸다. 나는 그의 그런 면모가 좋다.

그래서인지 강변교회 사람들은 우리 목사님은 “영 몰라 통 몰라”라고 부른다고 한다. 여기 “영 몰라 통 몰라”라는 제목으로 김 목사가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놓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김 목사가 쓴 글을 기쁨으로 추천한다. 1999년 2월 정진경 목사.”

저는 위와 같은 분에 넘치는 과찬의 글을 읽을 때마다 너무 부끄럽고 너무 황송한 마음을 지닙니다. 앞으로 천국에서 정 목사님을 바로 뵙기 위해서도 보다 온유하고 겸손하고 모두를 품고 사랑하는 포용과 긍휼과 사랑의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정진경 10주기
▲정진경 목사의 사진 앞에서 림인식 목사가 설교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열 번째로, 제가 정진경 목사님을 비롯한 원로 목사님 몇 분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곤 하던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1999년 설날 전날인 월요일 오전 제가 존경하는 세 분 목사님을 찾아 뵙고 세배를 드린 일이 있는데 그 때 쓴 글을 여기 그대로 인용합니다.

“나는 2월 어느 월요일 안만수 목사 부부 그리고 아내와 함께 한경직 목사님을 찾아 뵙고 세배를 드렸다. 한경직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동양 난을 사 가지고 갔다. 마침 그 날이 한 목사님의 97회 생신이었다. 생일 축하 노래를 함께 불러 드렸을 때 한 목사님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셨다. 한 목사님을 돌보시는 백 장로님이 이렇게 말씀했다. ‘한 목사님이 김 목사님 오시면 제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과천으로 가서 박종렬 목사님에게 세배를 드렸다. 난과 귤 한 상자를 가지고 갔다. ‘오늘 아침에는 목사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무 말씀도 못하셨는데 김 목사님이 오시니까 이렇게 말씀을 잘하시네요.’ 사모님의 말씀이었다.

우리는 안양으로 가서 정진경 목사님에게 세배를 드렸다. 난과 귤 한 상자를 선물로 가지고 갔다. 정 목사님 내외분은 너무나 반가워 하셨고 너무나 좋아하셨다. 어른들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아벨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사를 드렸다. 첫째 아벨의 인사에는 존경과 경외의 자세가 있었지만 가인의 인사에는 형식뿐이었다. 우리가 세 분 목사님을 찾아 뵐 때 믿음과 존경의 자세가 없었다면 우리의 인사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둘째 아벨의 인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물인 양의 첫 새끼를 드린 인사였지만 가인의 인사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가 세 분 목사님들께 들쭉 술이나 곰 발바닥을 선물로 드렸다면 아무도 좋아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셋째 아벨의 인사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인격이 드려진 인사였지만 가인의 인사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세 분 목사님들을 찾아 뵈었을 때 좋아하신 이유는 선물보다는 우리들의 인격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보아 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사를 드리며 살 때 우리에게는 기쁨과 행복이 있다. 인사를 드리고 인사를 나누며 살자.”

열 한번째로, 정진경 목사님께서 세상을 떠나시던 날 마지막으로 나눈 이야기와 장례식 때 읽은 조사를 읽어 드립니다.

저는 2009년 9월 3일 목요일 아침 정 목사님께 전화를 걸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나 지금 병원에 와 있어. 기침이 나서 주사 맞으려고 병원에 왔어.” “빨리 나으셔서 청평에 놀러 가셔야지요.” “그래, 그래.”

사실 저는 정진경 목사님 등 몇 분 목사님들을 모시고 청평 별장에 자주 가서 놀곤 했습니다. 박종렬 목사님도 방지일 목사님도 최복규 목사님도 모두 모두 좋아하시곤 했습니다.

정 목사님과 전화를 한 후 방지일 목사님께 전화를 걸고 오는 15일 청평으로 놀러 가자고 말씀했더니 “좋아, 좋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정진경 목사님께서 밤 9시경 몸이 아파서 다시 병원에 가셨다가 10시 15분경 세상을 떠나셨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금요일에도 토요일에도 병원 빈소로 달려갔고 9월 7일 월요일에는 신촌성결교회에서 거행된 장례식에도 달려가서 조사를 읽었고 그리고 벽제 화장터에도 오산리 메모리얼 파크 납골당에도 달려갔습니다. 너무너무 허전하고 아쉽고 슬펐습니다.

그러나 너무너무 감사하고 너무너무 고마웠습니다. 너무너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09년 9월 7일 정진경 목사님 장례식에서 읽은 조사를 여기 그대로 옮깁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진경 목사님! 차가 막혀서 좀 늦었습니다.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진경 목사님! 정 목사님께서는 신촌성결교회와 한국교회를 너무 사랑하시고, 신촌성결교회와 한국교회를 위해서 생명의 진액을 다 쏟아 부으셨지만, 부족하고 부족한 저를 누구보다도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시고 격려해주시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저는 온유 겸손하신 한경직 목사님으로부터도 분에 넘치는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정진경 목사님으로부터는 더 친밀한 사랑과 격려와 칭찬을 몽땅 받았습니다. 백두산을 비롯한 중국 일본 러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홍콩 등 세계의 수 많은 곳을 정 목사님과 함께 여행하면서 저는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들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모릅니다.

한국교회에 훌륭한 분들은 많지만 정 목사님과 같이 항상 가까이 친밀하게 사귈 수 있는 분들은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은 저의 진정한 스승이시고 형님이시고 아버님이셨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진경 목사님! 림인식 목사님께서 입관 예배 설교에서 지적하신 대로 목사님께서는 한국교회에 ‘예수의 흔적’을 남기시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영성과 사명과 실천과 영광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사시면서 예수님의 흔적과 모습을 순수하게 나타내 보여주시고 가셨습니다.

정 목사님께서는 또한 한경직 목사님처럼 온유와 겸손과 포용과 격려와 칭찬의 삶이 무엇인지를 친히 삶으로 보여주시고 가셨습니다. 갈등과 분노와 분열이 가득한 한국교회에 포용과 연합과 일치가 무엇인지를 삶과 사역으로 보여주시고 가셨습니다.

정 목사님은 한국교회와 여러 기관들을 사랑하셨지만 특별히 한국복음주의협의회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사랑하시고 애정을 가지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어느 다른 기관들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며 사랑하신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적인 복음주의 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저희들 곁을 너무 갑자기 떠나셔서 저희들은 너무 당황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 소천하신 지난 목요일 아침 전화를 걸고 인사를 드렸는데, “나 지금 병원에 있어 주사 맞으러 왔어” 라고 말씀하셔서 걱정은 했지만, 그렇게도 빨리 돌아가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주사 맞고 집에 돌아 오셨는데 밤에 다시 아파서 병원에 가셨다가 곧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은 우리들 곁을 너무 빨리 떠나셔서 너무 슬프고 공허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하실 일을 다 하시고 많이 앓지 않으시고 평안하게 하늘 집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조만간 천국에서 사랑하는 정 목사님을 반갑게 만나 뵙기를 바리며, 천국을 준비하는 참회와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봉사와 연합과 일치와 평화의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모님과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와 사랑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9월7일 월요일 아침 목사님의 사랑 받던 제자 김명혁 목사 드립니다.”

열두 번째로, 2010년 9월 3일 신촌 성결교회에서 모인 ‘고 아천 정진경 목사 1 주기 추모예배’에서 읽은 추모사의 일부를 소개하므로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장례식 때 읽은 조사의 내용과 같은 부분도 있지만 그대로 읽겠습니다.

“저는 지금 정진경 목사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집니다. 물론 어제 소천하신 옥한흠 목사님도 보고 싶어집니다.

정진경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이야기할 것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 분은 온유 겸손하신 분이셨고 부드럽고 따뜻하신 분이셨고 모두를 품는 넓으신 분이셨고 욕심이 없는 깨끗하신 분이셨고 한국교회와 남북을 사랑하신 긍휼과 용서와 사랑의 스승이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함께 다니기에 너무너무 편한 분이셨고 소박하시고 따뜻하신 분이셨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훌륭하시지만 함께 다닐 때 좀 불편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진경 목사님은 함께 여행하고 함께 다니고 함께 먹고 함께 놀고 함께 자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고 아주 편하고 즐거운 분이셨습니다.

저와 룸메이트를 한 경우가 참 많았는데 러시아와 중국을 여행할 때 저의 집 사람은 다른 여 집사님과 함께 자고 저는 정 목사님과 같은 방에서 함께 자기도 했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다른 사람들을 칭찬하시고 격려하시는데 아낌이 없으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북한 동포 돕는 일에 대해 폭넓은 입장을 지니셨고 타 종교와의 대화와 협력에 대해서도 폭넓은 입장을 지니셨습니다. 지난 2009년 3월13일 5개 종단의 종교 지도자들이 ‘3.1 운동 90주년을 맞으며 3.1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경동교회에서 함께 모인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 모임도 전적으로 후원하며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정진경 목사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정진경 목사님께서는 또한 온유와 겸손과 포용과 격려와 칭찬의 삶이 무엇인지를 친히 삶으로 보여주시고 가셨습니다. 갈등과 분열과 분노가 가득한 한국교회에 포용과 연합과 일치가 무엇인지를 삶과 사역으로 보여주시고 가셨습니다.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은 우리들 곁을 너무 빨리 떠나셔서 지금도 너무 공허하고 안타깝습니다. 사랑하는 정진경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조만간 천국에서 사랑하는 정 목사님을 반갑게 만나 뵙기를 바리며, 천국을 준비하는 참회와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봉사와 연합과 일치와 평화의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선교 목사,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