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와 성례전

웨슬리와 성례전
오레 보르겐 | 조종남 역 | 선교횃불 | 415쪽 | 22,000원

존 웨슬리는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18세기 뛰어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동생 찰스 웨슬리와 더불어 두 사람은 감리교 운동을 시작하였고, 영국과 미국의 감리교단을 창설했습니다.

웨슬리는 이후에 일어난 성결운동이나 오순절 운동에도 영향을 끼쳤고, 기독교가 사회복지 운동에 참여하는 일에도 막강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자인 오레 보르겐(Ole E. Borgen)은 감리교에서 자라난 배경이 있다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그가 노르웨이 신학자이자 감리교 주교였다는 사실입니다(1925-2009).

미국으로 건너와 1963년엔 웨스트사이드 애비뉴 감리 교회에서 목회했고, 1968년엔 드류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바로 이 책, <웨슬리와 성례전(John Wesley on the Sacraments. A Theological Study)>이 그의 박사 논문이었습니다.

이 책의 번역자인 조종남 교수는 서울신학교, 미국애즈베리 신학교, 에모리 대학교 등 다양한 교육을 받고, 여러 저서와 역서를 남겼는데, 주목해야 할 점은 많은 저서와 역서가 ‘웨슬리 신학’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조 교수님의 저서는 요한 웨슬리의 신학, 웨슬레의 선교운동의 특징, 웨슬레 신학의 메니훼스트, 웨슬리의 갱신운동과 한국교회 등이고, 역서는 요한 웨슬레의 기독자 완전에 대한 해설, 존 웨슬리 설교선집, 웨슬레 단권 성서 주해 등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웨슬리 신학을 집중해서 연구한 보르겐 박사의 논문을 웨슬리 신학에 관한 저술 활동을 많이 한 베테랑 학자가 번역하여 출간한 책이란 말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웨슬리 신학에 관하여, 특히 이 책이 주목하고 있는 성례전 신학에 관하여 누군가에게 묻는다면,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 없이, 오레 보르겐과 조종남 교수에게 물어도 되겠습니다.

웨슬리가 성례전에 관하여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분석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자 보르겐도 그 부분을 아쉬워하며 자신의 논문이 그 분야에 유익을 끼치기를 희망합니다.

그는 라텐버리, 바우머 등 먼저 이 주제를 연구한 학자들의 한계를 분석하고 웨슬리의 입장을 더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웨슬리가 성례전을 미신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변호합니다. 동시에 웨슬리가 성례전을 통해 강조했던 것은 성례전을 통해 실제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는다는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침례나 성찬이 단지 기념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실질적인 수단이라고 가르칩니다.

“성례전이란 그리스도의 고난당하신 것과 죽음과, 또한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희생하신 사실을 우리들의 목전에 내놓는 것이다.

말하자면, 주님의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례전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고난당함을 되살아내게 하며, 마치 그것이 현재 지금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하나님이 계획하고 정하신 것이다.

단지 우리들의 마음과 기억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오감(all senses)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130쪽).”

감리교 신학대학교 웨슬리 채플.
▲감리교의 어머니 교회로 불리는 ‘영국 웨슬리 채플’의 모습.
어떤 사람은 웨슬리의 성례전 신학이 화체설처럼 이단적인 것이 아닌지 의심합니다. 혹은 성례전을 통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습니다.

유아 세례에 대한 웨슬리의 설명을 읽어보면 그런 오해를 받을만한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웨슬리가 성찬을 미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성찬이나 세례를 통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 견인설이 가지고 있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경계한 부분이 있었지만, 구원의 시작과 끝이 모두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인정했으며, 웨슬리가 강조한 것은 구원의 하나님께 붙어 있기 위해 그분이 베푸신 은혜의 수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임을 명확하게 밝힙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은혜의 수단이 그저 형식적인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것처럼 치부되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하나님이 교회에 마련하신 은혜의 수단에 참여하는 모든 이에게 베풀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기 원했습니다.

그것이 웨슬리가 말하는 신학이 문맥을 떠나 살펴볼 때 위험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고, 웨슬리 신학을 분석했던 이전의 저자들이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데 실패한 부분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웨슬리가 체계적으로 신학을 조직해서 정리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은 웨슬리가 남긴 여러 문서들(편지를 포함하여)을 통해 웨슬리가 성례전에 관하여 가지고 있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물입니다.

이전에 연구한 자들의 한계나 분석한 결과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굉장히 논리적이고 예리한 검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독자는 저자의 생각을 따라 무엇이 진정 웨슬리가 말하려고 한 것인지 파악하는 데 대단한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책의 편집입니다. 논문을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책의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번역이 더 매끄러워야 저자의 생각이 독자에게 명료하게 전달될 것입니다.

이 책이 2019년 6월 15일 초판 발간된 책인 만큼,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번역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게다가 오타가 너무 많습니다(‘웨슬리’를 ‘슬리’라고 쓰거나, ‘우러나오다’를 ‘울어 나오다’로 쓰거나, ‘드러내어’를 ‘들어내어”로 씀, 조사가 안 맞는 경우가 많음). 그래서 더더욱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만일 웨슬리 신학을 교계에 제대로 알리고 싶은 투철한 목적의식이 있다면, 그리고 이 책이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현대어로 번역을 하고 편집 과정을 거쳐 오타를 모두 수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신학자가 연약한 부분이 있는 것처럼, 웨슬리도 신학적으로 약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인하기 힘든 사실은, 웨슬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의 은혜의 복음을 따라 살기를 간절히 원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각자 가지고 있는 신학적 배경에 따라 자신과 차이가 큰 진영을 쉽게 판단하고 잘못된 것을 부각시켜 이단에 가까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쉽게 범하는 잘못입니다. 그 뿌리엔 교만이라는 죄가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기반으로 무엇이 진리인가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여 가르칠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올바른 분별이 꼭 필요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용하신 종, 주 안의 한 형제가 가진 완전하지 않은 신학을 분별할 때는 거짓 교사를 대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책 <웨슬리와 성례전>을 읽을 때 독자에게 필요한 자세가 그와 같습니다. 왜 웨슬리가 성례전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그가 사랑하는 성도를 무엇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강조한 부분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며 믿음의 선배 웨슬리의 신학을 공부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던 웨슬리를 이해하는 데 유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