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
▲복음 전도자의 모습. ⓒBen White on Unsplash
“POST TENEBRAS LUX(어둠 후에 빛)”.

교회 개혁자 칼뱅이 했던 말입니다. 지금의 교회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보입니다. 점점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고, 심지어 미워합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무언가 잘못돼있고,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이구동성 입니다.

저마다 개혁을 말하고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여러 가지 결과들을 보고, 교회의 추락하는 도덕성을 보며 윤리에 관심을 갖고, 사회 정의를 외치고, 도덕교육 강화를 말하고, 사랑의 섬김을 주장하고, 세상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연대하는 것을 주장하고, 제도적 보완을 말하고, 개혁운동을 주장하는 것 등입니다.

교회의 타락은 근원적이고, 본질적으로 교리적 타락으로 말미암은 교회의 세속화에 있습니다. 마치 그 어두웠던 중세에 루터가 제도 개혁이 아닌 교리를 개혁함으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듯, 그리고 종교개혁시기에 토마스 뮌처가 농민운동을 일으키고, 루터에게 협조를 요청했을 때 그것은 종교개혁의 본질이 아니라고 일갈한 루터의 대답과 같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전도의 미련한 방법을 통해 복음이 선포된다고 말한 것(고전 1:21)이 와 닿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불신자들 뿐 아니라 현 시대에는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들을 통해서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도 복음 전도는 미련한 것처럼 보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기에, ‘복음 + OO’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제2의 니골라당, 영지주의, 펠라기안, 알미니안들이 이러한 가르침으로 교회를 잠식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 당장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을 보라고 촉구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비웃었던 10명의 정탐꾼처럼 말입니다. 마치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복음? 그래요, 중요합니다. 그런데 눈앞에 이렇게 부조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복음을 선포하는 것만 하겠다는 것입니까? 일단 일어서서 뭔가를 해야 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죠! 복음만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고, 지금은 긴박한 상황이니 복음을 선포해서 그들이 변화되길 기다리기엔 너무 늦습니다!!”

상당히 일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택합니다.

하지만 저는 옛적 길(렘 6:16)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신 섭리와 보존의 손길을 통해 자신의 진리를 전해 주셨습니다.

사도들로부터 교부들, 종교개혁자들, 청교도 & 언약도, 대륙의 개혁주의자들, 찰스 스펄전, 구 프린스턴 장로교의 후예들, 20세기 마틴 로이드존스에 이르기까지 오래된 진리는 보존되고 여전히 옛적 길을 통해 흐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 개혁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복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죄인들을 통한 사회 개혁이라는, 복되고 성경적이며 자연스러운 방식을 택했습니다.

성경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속 사역, 이미 선포된 복음, 이미 역사 속에서 보여진 복음의 열매 등….

작금의 시대에 지상의 교회는 세상뿐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지탄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몸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누구에게 복음을 전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더불어 이 세상도 가면 갈수록 죄악이 관영해지고 어둠은 짙어갑니다. 교리적 타락으로 말미암은 수많은 열매들이 교회를 뒤 덮고 있지만, 여전히 세상의 유일한 소망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담고 있는 유일한 구원의 방주이며, 파멸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이들에게 유일한 생명의 길을 제시 할 등대이며, 우리의 머리 되시는 주님을 사랑하는 몸된 공동체입니다.

세상의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에, 교회가 다시 복음만을 붙들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약간의 빛만으로도 어두움을 밝히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복음의 영광스러운 빛이 죄악된 세상을 밝히 비춰서 더 많은 이들이 구원 받을 수 있기를!

김성욱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삼송제일교회 중고등부 부장